궁귀검신(弓鬼劍神)제23장 습격조(襲擊組)(2)
"후, 이것으로 벌써 여섯 번째인가...?"
남궁진은 피묻은 검을 닦을 생각도 없이 그대로 검집에 넣
으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그의 곁으로 나머지 습격조들이 다
가왔다.
"수고했네. 이번은 그 다지 어렵지 않게 일을 마칠 수 있
었군"
팽문호의 말에 남궁진은 그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러자 곁에 있던 황보영이 말을 이었다.
"그런 말이 어딨어요. 저들이 오랜 여행으로 지쳐서 그랬
지, 저기 누워 있는 자도 결코 쉬운 상대는 아니었을 거예
요"
"그...그런가?"
팽문호가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어 하자 그 모양을 보는 팽
후가 싱글싱글 웃음을 지었다.
"그렇긴 뭐가 또 그렇다고.. 그저 누님의 말 한마디에 꼼짝
못하니, 그러는 걸 보면 앞으로 남자 망신은 혼자서 다 시킬
것 같단 말야...."
"이놈이..."
팽만호가 도끼눈을 뜨고 동생을 노려보자 사람들은 저마다
크게 웃음을 지었다. 그때였다. 한줄기 음침한 소리가 그들의
뇌리를 파고들었다.
"실컷 웃어두거라. 너희들이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웃는 웃
음일 것이니...."
"누구냐?"
갑자기 들려온 말에 습격조는 황급히 주위를 살폈다. 어느
새 검은 무복을 입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주위를 포위해 오고
있었다.
"네놈들을 보기 위해 아침부터 지금까지 이곳 저곳 돌아다
니지 않은 곳이 없다. 결국 이렇게 만나게 되었구나..."
무리의 가운데 여유 있는 모습으로 그들을 지켜보는 노인
이 있었다. 가슴에는 칙칙한 빛이 뿜어져 나오는 도를 도집
도 없이 가슴에 품고 있는, 자세히 보면 왼쪽 얼굴엔 관자놀
이부터 턱 밑까지 날카로운 상흔(傷痕)이 자리잡고 있는 노
인이었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 그를 알아본 것은 의외로
황보영이었다.
"호....혹시 염왕도 헌원강....?"
"호... 날 아는 사람이 있다니 의외인걸..."
헌원강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을 했지만 듣고 있는 사람
들의 심정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염왕도 헌원강!!
칼을 차고 무림인 행세를 하는 사람치고 이 이름을 모른다
면 그 사람은 삼류(三流)는커녕 사류무사(四流武士) 취급도
못 받을 것이었다. 원래 흑도의 자그마한 문파인 도역방(刀易
幇) 출신이었던 그는 비교적 늦은 나이인 서른에 강호에 출
도 했다. 이후 기라성 같은 고수들을 꺾고 지금까지 수 없이
많은 비무를 했지만 단 한번 패천궁의 궁주인 구양풍에게만
무릎을 꿇었다는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특히 그의 독문도법
인 염왕도법(閻王刀法)은 구양풍도 감탄을 금치 못했을 정도
의 뛰어난 무공이었다. 이후, 혼자서 강호를 독보하던 그는
홀연히 패천궁에 들어가게 되고 호법이라는 막강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비록 흑도의 인물이었지만 그 인물의 됨됨
이가 피를 싫어하고 호방하며 의리를 지킬 줄 아는 자라해서
백도에서도 어느 정도 인정을 하고 있는 무인이었다. 그런
그가 자신들을 상대하고자 나타났으니 기겁을 할 수 밖에....
'여..역시.. 전해져 오는 저 기!'
남궁진은 담담하게 서 있는 헌원강의 몸에서 자연스럽게
뿜어져 나오는 예기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비단 그 뿐만
아니라 옆에 있던 습격조 전원이 그런 느낌을 받고 있었다.
마치 호랑이 앞에선 동물들이 그 존재감에 달아날 엄두를 못
내듯이 이들의 행동이 지금 그러했다.
"어린 자네들을 해치고 싶진 않으니 칼을 버리고 버리고
투항을 하게. 내 자네들의 목숨은 책임지지"
"........."
헌원강은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기분이 좋
았는지 부드럽게 항복을 권했다. 하지만 습격조의 누구도 입
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의 마음은 하나였다.
'죽는 한이 있어도 항복은 없다!'
이들의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헌원강은 안색을 굳히고
품에 있던 염왕도에 손을 가져갔다.
"자네들이 굳이 벌주를 택한다면 나도 어쩔 수가 없지. 그
래 누가 먼저 나서겠는가? 물론 합공을 해도 개의치 않겠
네."
합공이라... 다른 사람 같으면 자신들을 모욕한다고 방방
뜨고 난리가 났겠지만 헌원강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자 너
무나 자연스러웠다. 절대강자의 여유였다. 하지만 그들도 나
름대로의 자존심이 있는 명문대파의 후예였다.
"제가 먼저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남궁가의 장자 남궁진
입니다."
남궁진이 굳은 얼굴로 헌원강의 앞에 나서며 포권을 했다.
그러자 헌원강의 얼굴에 흥미롭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호, 자네가 검성의 손자란 말인가? 내 아직 자네의 조부와
겨루어 보지는 못했지만 내심 그분을 존경하고 있었네. 이렇
게 그분의 후예를 만나니 반갑구만. 그래 어디 솜씨를 구경
해 볼까?"
남궁진은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상대는 자타가 공인하는
최강의 무인 중 한사람이었다. 조금의 실수도 용납이 안 되
는 상대였다. 그는 신중하게 초식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자신
이 알고 있는 남궁가의 최고의 검법인 창궁무애검법이었다.
"창궁무애검법(蒼穹無涯劍法) 제1초 창궁약연(蒼穹躍鳶)"
남궁진은 푸른 하늘을 날던 소리개가 먹이를 낚아채듯이
헌원강의 신형에 신속하게 접근하더니 일검을 날렸다. 하지
만 헌원강은 막지도 그렇다고 반격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남궁진의 공격을 흘려 보냈다. 남궁진은 이를 악물었다.
"창궁무애검법(蒼穹無涯劍法) 제2초 창궁무한(蒼穹無限)"
아까 와는 다른 기운이었다. 첫 번째 공격에서 전혀 이득
을 얻지 못한 남궁진은 함부로 움직이지 않았다. 검에서 일
어난 기운이 천천히 그러나 상대방의 움직임을 낱낱이 파악
하며 다가갔다. 일순 헌원강의 얼굴에 놀람의 빛이 드러났다.
"허, 창궁무애검법이라... 대단할 걸. 하지만 자네의 화후가
아직 나를 핍박할 정도의 실력은 아니구만..."
헌원강은 감탄을 하면서도 묵향을 들어 검기를 막고 손을
한번 휘두르는 것으로 남궁진의 공격을 무위로 만들어 버렸
다.
'빌어먹을...역시 안 되는 것인가?'
남궁진의 마음속에 절망감이 싹텄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
할 순 없었다. 남궁진은 흐트러진 마음을 고쳐 잡았다.
'아직 제대로 익히지 못했지만...'
"창궁무애검법(蒼穹無涯劍法) 제3초 창궁조화(蒼穹調和)"
마침내 남궁상인을 검성의 위치까지 끌어올린 창궁무애검
법의 마지막 초식이 시전 되었다. 남궁진은 아직 그 오의 조
차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위력은 방금 전
의 시전했던 일초와 이초의 위력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
이유로 여지껏 여유가 있던 헌원강이 처음으로 자세를 고쳐
잡고 있었다.
"허허, 좋구나!"
헌원강은 아직 남궁진의 검이 다가오지도 않았지만 밀려오
는 압박감에 온몸을 떨고 있었다. 그 동안 잊어왔던 이 긴장
감. 그는 어쩔 수 없는 무인이었다.
'그래 어쩌면 그 동안 너무 편안히 놀고 있었는지도 모르
지...'
온몸의 세포하나까지도 곤두서는 이 긴장감을 즐기는 헌원
강 이었다. 잠시 잊고 있었던 하지만 가장 좋아했던 이 느낌
을 다시 맛보게 해준 남궁진에게 고마운 마음까지 느껴졌다.
무인의 보답은 무공으로 보여 주는 것! 헌원강은 처음으로
자신의 무공을 시전했다. 남궁진처럼 큰 동작은 없었다. 그저
자신의 애도인 묵향을 들어 일직선으로 내려치는 간단한 동
작을 취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공격을 하던 남궁진은 그게
아니었다. 헌원강의 너무나 간단한 동작에 하나에 자신이 그
토록 심혈을 기울여 뿜어내었던 기가 뿔뿔이 흩어지고 그 여
세를 멈추지 않고 도기는 어느새 자신에게 밀려오고 있었다.
"크윽!"
남궁진은 검을 잡고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필사적으
로 버텨보려 했지만 계속해서 밀려오는 힘이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무려 오장이나 밀려가고 나서야 간신히 그 기운을
해소 할 수 있었다. 남궁진은 심한 내상을 입었는지 입에서
연신 피를 흘리고 있었다.
경악이었다. 남궁진과 헌원강의 대결을 지켜보던 이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남궁진의 동료들은 물론이고 헌원강이
데려온 수하들마저도 입을 딱 벌리고 놀라고 있었다. 그들이
보기에 남궁진의 마지막 초식은 상상을 불허하는 위력을 담
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간단히 그저 단 한번의 움직임
으로 남궁진을 저런 꼴로 만들다니...
헌원강이라는 이름! 역시 명불허전(名不虛傳)이었다.
간신히 신형을 지탱하고 있는 남궁진을 향해서 헌원강은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
"옛날의 나를 기억하게 해준 보답으로 내 독문무공을 보여
주었네. 이름은 염왕현신(閻王現身)이라 하지."
"손에 사정을 두어서 고맙습니다."
남궁진은 힘들게 말을 이었다. 그런 남궁진을 재빨리 잡은
사람은 황보장이었다. 그는 비틀거리는 낭궁진을 부축하며
멍청하게 서 있는 동료들에게 전음성(傳音聲)을 보냈다.
[지금 상황이 몹시 좋지 않소. 너무 강한 적을 만났소이다.
하지만 이대로 잡힐 수는 없는 법. 내가 남궁형을 대신해서
헌원강에게 도전을 할 터이니 내가 공격을 하는 순간 그 틈
을 타서 일제히 도주를 하시오]
황보장의 말에 그의 동생인 황보영이 뭐라 말을 하려했지
만 황보장의 눈짓에 의해 멈추어 지고 말았다.
[영아는 움직이지 말거라. 너는 오라비를 믿지 못하느냐?
이기는 것은 힘들어도 쉽게 지지는 않는다. 문호는 내 동생
을 잘 부탁하네. 그리고 가급적 뭉치지 말고 흩어져서 도주
를 하게. 한사람이라도 더 살아야지. 여기 남궁형은 경공이
가장 뛰어난 당씨 형제들이 맡아 주시구려. 그럼 내 공격을
신호로 하여 일제히 움직이도록 하시오]
황보장은 누가 뭐라 할 틈도 없이 헌원강 앞에 나섰다.
"이번에 제가 한번 나서 보겠습니다. 황보세가의 황보장입
니다."
"허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네...하지만 내 도에는 눈이 없
으니 그리 알게"
헌원강은 뻔히 다칠 줄 알며 자신에게 도전하는 이들이 안
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이들은 자신이 속한 단체의 적
이었다.
"그럼 제가 먼저 손을 쓰겠습니다"
황보장은 자신이 끌어 모을 수 있는 최대한의 내공을 끌어
모았다. 그런 그의 주위로 주변의 공기가 모여들며 작은 회
오리를 만들고 있었다.
[지금이다. 어서]
황보장은 헌원강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전음성을 날렸다.
황보장의 전음을 받은 습격조는 동시에 세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당문의 당소기, 문호 형제는 다친 남궁진을 안고
동쪽으로 달렸고, 팽문호는 황보영의 손을 잡고 북쪽으로 치
달았다. 나머지 팽후와 당소걸은 서쪽으로 달렸다. 여전히 그
들을 포위하는 헌원강의 수하들이 있었지만 한참 긴장되는
마음으로 황보장과 헌원강의 대결을 지켜보던 그들은 갑작스
런 공격에 미쳐 대비를 하지 못하고 도주하는 그들을 놓치고
말았다.
"추격하라. 어서!!"
그들이 비록 일순간의 방심을 틈타 포위망을 벗어나기는
하였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이쪽에서도 제법 높은 자
가 있었는지 우왕좌왕하는 수하들을 다그쳐 추격을 시작했
다. 결국 헌원강을 따라왔던 수하들은 모두 세 갈래로 도주
하는 습겨조를 잡기 위해 뿔뿔이 흩어지고 이곳에는 여전히
내공을 끌어올리고 있는 황보장과 헌원강과 수하 두어 명만
남게 되었다.
헌원강은 황보장을 쳐다보며 말을 했다. 그러나 노기 어린
음성은 아니었다.
"흠, 이것이었나? 자네가 뜸을 들인 것이?"
"염왕도 어르신을 이길 자신이 없으니 도망갈 수 밖에요"
"딴은 그렇군. 하지만 과연 벗어 날 수 있을까?"
"그건 그들의 운에 맡길 뿐입니다."
"그건 그렇고 자네는 언제까지 그렇게 서 있으려나? 어서
오도록 하게"
헌원강은 말을 마치고 진지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마치
맛있는 음식을 눈앞에 둔 표정이었다. 헌원강 자신은 잘 인
식을 못하겠지만 지금의 그의 모습은 과거 비무를 하며 상대
방의 무공에 호기심을 보이던 바로 그 모습이었다.
"그럼 가겠습니다."
황보장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자신이 알고있는 무공을 떠올
려 보았다. 그 어떤 무공을 동원한다해도 이길 자신이 없었
다. 아니 서 있는 저 자세를 무너뜨릴 자신이 없었다. 자신의
무공이 약해서라기보다는 상대의 무공이 그만큼 절대적이었
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곧 피식 웃고 말았다.
'내가 언제부터 이리 말이 많아졌지...'
"벽력파천(霹靂破天)"
결국 황보장은 자신이 알고 있는 한 가장 강한 무공을 시
전했다. 검기에 못지 않은 엄청난 강기가 휘몰아쳤다. 그것은
남궁진이 최후에 보여줬던 검기의 위력에 조금도 손색이 없
는 위용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는 헌원강이었다.
"크흑!"
약간의 노기는 있었을까? 헌원강이 휘두르는 도의 위력은
아까 와는 다르게 제법 힘을 싣고 있었다. 남궁진이 간신히
버틴 반면 황보장은 이미 공중에 떠서 뒤로 날아가고 있었
다. 황보장의 점점 희미해져 가는 의식의 너머로 자신의 동
생이 보이는 듯 했다.
'부디 살아서...영아....야...'
"죽지는 않을 것이니 본진으로 데려 간다."
"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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