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귀검신(弓鬼劍神)제23장 습격조(襲擊組)(1)
[11860] [연재] 궁귀검신(弓鬼劍神)제23장 습격조(襲擊組) 첨부파일 :
등록자 : 한옥영(chohan1) 조회수 : 1
등록일 : 2001-11-20 00:02:29 관련자료 : 없음 본문크기 : 37734 bytes
"뭣이! 그쪽에서도?"
"예, 군사 어른! 흑면도(黑面刀) 이귀(李鬼) 이하 삼십명이
모조리 전멸 당했다고 합니다"
귀곡자는 계속해서 들려오는 소식에 짧은 신음성을 내뱉었
다. 단 하루동안 무려 백여 명에 이르는 부하들이 전멸 당했
다는 소식은 그의 기분을 몹시 언짢게 만들었다.
"흠, 소수의 인원으로 이런 기습작전을 펼칠 줄이야... 백도
에서 이런 방식으로 싸움을 하다니... 이거 예상 밖이로군"
"그만큼 저들이 당황하고 있다는 증거 아니겠나. 너무 심
려치 말게. 어차피 이미 모일 병력은 다 모이질 않았는가?"
"물론 그렇습니다만 사망자가 무려 백여 명이 넘습니다.
제가 염려하는 것은 이렇게 당하다가는 수하들의 사기에도
제법 문제가 있을 듯 해서..."
"군사의 말에도 일리가 있지만 너무 그렇게 큰 걱정을 하
는 것도 과히 좋지 않은 모습일세. 자넨 이번 작전의 최고
책임자가 아닌가 여유를 가지게..."
"무슨 그런 말씀을 최고 책임자라니요. 저야 그저 머리를
쓰는 것이지요. 이번에 남궁세가를 굴복시키느냐 못하느냐는
다 어르신의 손에 달린 일입니다."
"허허허, 말이 또 그렇게 되나...."
천살검존(天殺劍尊) 궁사흔(弓沙痕)은 귀곡자의 말에 너털
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주변에 서 있는 호법들을 바라보았다.
강남의 백도를 낙엽 쓸 듯 쓸어버린 흑도의 무리들은 패천
궁의 지휘아래 남궁세가가 위치하고 있는 유가촌에서 남쪽으
로 이십여 리 떨어진 하애장(荷愛藏)에 집결하고 있었다. 수
십 갈래로 분산하여 이동한 이들은 병력의 대부분이 이미 도
착하여 휴식을 취하고 있었고, 단지 몇 무리의 인원들의 도
착이 늦어지고 있을 뿐이었다.
이번 남궁세가와 세가를 돕기 위해 나선 백도의 무인들을
제거하는 백도멸살지계(白道滅殺之計)의 총책임은 패천궁의
군사인 귀곡자가 맡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형식적인 책임자
일 뿐이고 실질적으로 병력을 움직일 자는 패천궁의 태상장
로(太上長老)인 천살검존 궁사흔이었다. 이곳에는 궁사흔 이
외에도 패천궁의 호법(護法)인 염왕도(閻王刀)헌원강(軒轅强),
귀면쌍살(鬼面雙煞) 형제, 환혼객(還魂客) 목사혁(木赦革) 등
패천궁의 기라성(綺羅星)같은 고수들이 운집해 있었다. 특히
세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알려진 혈참마대도 대거 포진하
고 있었다.
"태상장로님! 이제 공격을 하시지요. 더 이상 기다리면 저
들에게 시간만 벌어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하시지요. 이미 충분한 휴식도 취했고 공격을 해
서 단번에 쓸어버리시지요."
호법인 귀면쌍살 형제는 더 이상 두고 볼 것도 없다는 듯
이 당장 공격을 감행하자고 주장을 했다. 궁사흔도 이만하면
모든 준비는 충분히 되었다고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의
책임자는 어디까지나 군사인 귀곡자에게 있었다.
"이보게 군사. 이제 공격을 함이 어떠한가? 너무 기다리는
것도 좋지 않은 듯 싶은데..."
"예, 저도 이미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밤을 기
해서 공격을 하시도록 하십시오. 하지만 지금 소수로 움직이
고 있는 자들도 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계속 그들에게 당하
는 것은 사기에도 문제가 있고 하니..."
"그 문제랑 걱정을 마시게. 그들은 내가 맡도록 하지. 저들
이 기습을 한다면 역으로 함정을 만들면 되겠지. 걸리고 안
걸리고는 저들의 운이겠지만"
귀곡자의 말에 자신의 애도인 묵향(墨香)을 품에 안고 있던
염왕도 헌원강이 나서며 말을 했다. 그의 말에 귀곡자는 반
색을 했다.
"감사합니다. 염왕도 어르신이 나서주시면 그 문제는 간단
하게 해결될 것입니다. 그럼 그들에 대한 걱정은 접고 오늘
밤에 어찌 공격을 할 것인지를 의논하도록 하겠습니다."
"허허, 이 사람. 의논을 할게 뭐 있겠나... 그냥 밀고 들어
가는 것이지"
"하하 환혼객 어르신은 언제 보아도 믿음직스럽습니다. 하
지만 저들은 우리의 공격에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니
저희도 또한 준비를 해야 겠지요. 특히 남궁세가의 근처를
정탐하고 있는 비혈대(秘血隊)의 요원에게서 들어온 말로는
남궁세가의 주변에 강력한 진이 설치되어 있다고 합니다."
"진이?"
"예. 태상장로님. 아마도 제갈세가의 인물이 설치한 듯 합
니다"
귀곡자의 말에 궁사흔은 상당히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제갈세가는 병법과 진법에서 그 능력이 탁월한 곳이 아니
던가? 그렇다면 그 진 또한 만만치 않을 터인데... 진을 뚫을
방책은 있는 것인가?"
"물론 제가 직접 가서 진을 파해한다면 시간은 제법 걸리
겠지만 못할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그 동안 힘
들게 얻어놓은 시간을 허비하게 될 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려는가?"
귀곡자는 자신만만하게 웃음을 보였다. 그리고는 수하를
시켜 커다란 상자를 하나 들고 오게 하였다. 상자를 앞에 둔
귀곡자는 그 상자를 열어 좌중의 사람들에게 내용물을 보여
주었다.
"아니 이것은 폭약(爆藥)이 아닌가? 이런걸 어찌?"
"폭약이라면 국법으로 군에서만 쓸 수 있는 것 아닌가?"
패천궁의 수뇌들은 깜짝 놀라 귀곡자를 쳐다보았다. 귀곡
자는 여전히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남궁세가의 주변에 진이 펼쳐져 있다는 말을 듣고 급히
구했습니다. 비록 법으로 금지를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소량
이면 그리 큰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미 관에는
손을 써 두었습니다. 그리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입니다."
"흠... 그렇다고 하여도 이 폭약으로 어찌 진을 뚫는단 말
인가? 진의 범위가 보통이 아닐텐데..."
"태상장로님의 말씀이 옳기는 하지만 진이라는 것은 그 일
부가 무너지면 나머지 부분도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
는 법입니다. 이 폭약을 이용해 진의 일부분을 파괴하면 그
진은 자연스럽게 무너질 것이고, 그런 연후에 밀고 들어가면
쉽게 승리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귀곡자의 자신만만한 말에 의의를 제기한 사람은 지금껏
구석에서 회의를 지켜보던 혈참마대의 대주인 냉악이었다.
"지금 쉽게 승리를 얻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까? 결국 우리
가 이기기야 하겠지만 이번 싸움은 결코 쉬운 싸움은 아닙니
다. 우리도 엄청난 피해를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겠지... 남궁세가! 이름만으로 오백여 년을 버텨온 곳
은 아니지. 자네 말대로 힘든 싸움이 될 게야. 물론 이기는
것은 당연히 우리겠지만 말일세. 선봉은 내가 맡겠네 군사"
"그럼 왼쪽은 우리가 맡지"
목사혁이 나서서 선봉을 맡는다고 자청하자 귀면쌍살 형제
도지지 않고 나섰다.
"그럼 우측은 저희가 맡아야 하겠군요"
냉악이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지만 그의 말은 단번에 귀곡
자의 반박을 받았다.
"아니네. 자네와 혈참마대는 우리 패천궁의 실질적인 주력
이 아닌가? 처음부터 나서서 희생을 당할 필요가 없네. 자네
들을 대신해서 싸울 다른 많은 흑도의 무인들이 있네. 자네
들은 최후의 순간에 저들의 숨통을 조이는 역을 하게 될 것
이네. 다른 호법님들 께서도 처음엔 우리 패천궁의 수하들은
나서지 않을 것이니 다른 흑도문파의 제자들을 이끌고 공격
을 하도록 하십시오. 그들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우리의 적은
여기 있는 남궁세가라기 보다는 강북에 있는 구파일방입니
다. 그 전까지 전력을 최대한 보호해야 할 것입니다."
"............."
하지만 대답이 없었다. 아무리 명목상(名目上)으로 패천궁
의 수하들이 아니더라도 패천궁은 이미 흑도를 통일했지 않
은가? 저들 또한 패천궁의 수하였다. 그리고 이들 역시 패천
궁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그저 흑도의 한 무인이었을 뿐이었
다. 미묘한 기류가 잠시 흐르자 결국 궁사흔이 나섰다.
"저들도 우리의 수하라네. 군사는 그 생각을 바꾸도록 하
게. 그러나 군사의 말에도 일리는 있네. 우리의 주력은 아낄
필요가 있어. 훗날을 대비해서라도 말이지..."
"예, 태상장로님 명심하겠습니다."
귀곡자는 냉큼 고개를 숙이며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사
과했다. 그런 귀곡자의 등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귀곡
자가 그렇게 나오자 다른 사람들이 이견(異見)이 있을 리가
없었다. 이후의 계획은 일사천리(一瀉千里)로 수립되었다. 그
때 회의장으로 한 수하가 뛰어들어왔다.
"군사님, 강북에 있던 비혈대의 요원에게서 연락이 왔습니
다."
"오, 그래 이리 가져와 보게"
수하는 전서구를 통해 날아온 서찰을 귀곡자에게 공손하게
올리고는 뒤로 물러섰다. 차분히 서찰을 읽던 귀곡자의 안색
이 잠시 흐려졌다. 궁사흔은 그 안의 내용이 궁금했다.
"그래. 무슨 연락인가?"
"예, 강북의 구파일방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진 정도맹에서
병력을 모으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그 전에 거의 백여 명에
이르는 병력을 먼저 파견했는데 그들이 어느새 장강에 이르
렀다는 전갈입니다."
"흠, 일이 급하게 되었구만. 그들이 온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겠지만 귀찮기는 하겠지. 빨리 일을 마무리해야 하겠어."
궁사흔의 말에 귀곡자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젓더니 말을
했다.
"아닙니다. 오히려 더 좋은 기회입니다."
"기회라니?"
"저들은 지금 남궁세가를 돕기 위해 정신없이 이곳으로 달
려오고 있을 것입니다. 아예 매복을 하고 있다가 기습을 한
다면 이들을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것이고 그리만 된다면 백
도의 무리에게 상당한 타격을 주는 것이고 정도맹에서 지원
병력을 보낸다 하더라도 우리는 이미 남궁세가를 무너뜨리고
있을 것입니다.
"매복이라... 하지만 저쪽이 숫자는 적어도 그 무위가 범상
치 않을 것 같은데 쉽사리 되겠는가?"
궁사흔은 짐짓 염려가 된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목사혁이 껄껄 웃었다.
"염려마십시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어차피 이곳은 제가
없어도 무리는 없을 듯 싶으니 아예 퇴로도 끊는 겸해서 제
가 매복을 하여 지원 오는 병력을 쓸어버리겠습니다."
"자네가? 그래 자신은 있는가?"
"태상장로님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자
신이라니요... 자신이 아니라 확신입니다."
"허허허, 알았네. 그럼 자네가 맡아서 처리하도록 하게. 사
람 참...허허허!"
궁사흔이 너털웃음을 내뱉자 좌중의 사람들이 일제히 웃음
을 보였다.
"하지만 저들도 만만치는 않을 겁니다. 허니 혈궁단(血弓
團)의 인원을 데리고 가십시오.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헛, 혈궁단까지...? 알았네. 그들까지 지원을 해준다면 더
바랄게 무엇이 있겠나. 그리하지"
물론 자신이 있었지만 목사혁은 혈궁단을 지원해 주겠다는
말에 크게 흡족해 했다. 혈궁단이 무엇인가? 비록 세인들에
겐 혈영대나 혈참마대 만큼 알려지지 않았지만 패천궁안에서
는 그들의 능력이 실로 높게 평가받고 있었다. 이들은 적색
(赤色) 갑옷을 입고 개인마다 거의 오척(五尺)에 이르는 큰
강궁(强弓)을 지니고 있었는데 화살을 하나 같이 강철로 만
들어 그 위력이나 파괴력에서 다른 어떤 궁수대도 보여주지
못하는 힘을 보여주고 있었다. 게다가 이들은 열 명이 한 조
가 되어 마치 하나의 몸처럼 속사(速射)며, 연사(連射)며 자유
자재로 구사하는 통에 이들에게 걸리면 웬만한 병력은 눈 깜
짝할 사이에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 그들까지 지원해 준다하
니 목사혁이 그리 흡족해 하는 것도 당연했다.
"저는 쥐들을 잡으러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그럼 난 고양이 떼인가요. 하하! 저도 지원군을 잡으러 떠
나겠습니다."
헌원강이 몸을 일으키자 목사혁도 덩달아 일어났다. 출전
하는 두 호법을 향해 귀곡자는 깊게 읍을 했고, 태상장로인
궁사흔은 웃음으로 그들을 격려했다. 결전의 분위기는 점점
무르익고 있었다.
"서둘러라. 우리가 제일 늦은 것 같다. 더 이상 지체하다간
문책을 당하기 십상이다"
앞서가던 독신수(毒神手) 마무백(馬霧伯)은 자신을 따라오
는 이십여 명의 수하에게 걸음을 서두르라고 벌써 여러 번
독촉을 하고 있었다. 어느새 해는 지는데 아직도 본진에 도
착하려면 한 시진 정도는 죽어라 뛰어야 할 듯 싶었다. 수하
들은 긴 여정에 많이 지친 모습들을 하고 있었지만 여기서
머뭇거릴 수는 없었다.
"힘든 것은 안다. 하지만 이미 도착했을 다른 친구들 또한
우리처럼 먼 곳에서 달려온 친구들도 있을 터 기운을 내도록
하자. 잠시만 더 가면 편히 쉴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수하들을 격려하고 있을 때였다.
"으악!"
"컥!"
"적이다!"
갑자기 대오의 후미에서 비명성이 들려왔다. 마무백은 갑
작스런 상황에 깜짝 놀랐지만 재빠르게 대처를 했다.
"당황하지 말고 원을 형성하여 한곳으로 모여라. 적의 위
치를 파악하고 암습(暗襲)에 대비하라!"
마무백은 자신의 검을 빼어들고 후미로 뛰어가며 소리를
질렀다. 어느새 자신의 수하 일곱 명이 싸늘한 시체가 되어
누어 있었다.
"독이 묻은 암기(暗器)에 맞은 듯 싶습니다."
수하 하나가 마무백에게 달려와 보고를 했다.
"독? 이런. 어떤 놈이냐? 비겁하게 숨어서 암기나 날리지
말고 모습을 드러내라."
마무백은 사위를 둘러보며 소리를 쳤다. 하지만 대답대신
그에게 날아온 것은 몇 개의 비침(飛針)이었다.
"흥, 이따위 잔재주를..."
마무백은 날아오는 비침을 검을 들어 모조리 쳐냈다. 하지
만 그것이 전부는 아닌 듯 했다. 자신의 뒤에 서 있던 수하
들은 덩달아 날아온 암기에 또 몇 명이 쓰러진 듯 했다. 벌
써 자신을 따라온 수하의 반이나 되는 숫자가 힘 한번 써보
지 못하고 암습에 당해 버렸다. 마부백의 얼굴에 핏대가 섰
다.
"나와라. 더 이상 암습 따위의 더러운 수작은 그만두고 정
정당당(正正堂堂)하게 붙어보자. 나와라!"
"하하하! 언제부터 네놈들이 정정당당을 찾았지? 지나가던
개가 웃겠구나. 하지만 정이 원한다면 그리 못할 것도 없지."
마무백의 외침에 죄측 숲의 풀이 움직이며 한 사내가 나타
났다. 그와 더불어 사방에서 인영이 나타났다. 마무백의 말에
대답을 한 남궁진은 한 덩어리로 뭉쳐 있는 적에게 다가갔
다. 마무백은 싸늘한 음성으로 정체를 물었다.
"누구냐?"
"남궁진!"
"강남잠룡?"
마부백이 깜짝 놀라 되묻자 남궁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가 네놈들의 무덤이 될 것이다. 벌써 여럿이 묻혔으
니 그리 아쉬울 것은 없을 것이다."
남궁진은 자신의 검을 빼어들며 말을 했다. 그러자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검을 고쳐 잡은 마무백은 조금도 꿀림 없이
남궁진에게 대꾸를 했다.
"쿡쿡, 그 건방진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구나.
목이 땅에 떨어지고도 그런 말이 나오나 두고보자"
마무백은 말을 마치자마자 뒤에 서 있는 수하들에게 손짓
을 했다. 이것을 신호로 양측의 무인들이 서로 뒤엉키기 시
작했다. 하지만 애초에 싸움이 될 수가 없었다. 이쪽은 남궁
세가에서 고르고 골라 보낸 습격조(襲擊組)로 대부분이 각
문파의 후기지수(後期之手)인 반면에 상대는 오랜 여행에 지
쳐 있는 상태였다. 특히나 이들은 당문의 삼형제에 의해 반
수나 되는 동료들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자 이미 사기가 떨어
질 대로 떨어진 상태였다. 다만 한 목숨 구하고자 발악을 하
고 있기는 하였지만 역부족이었다.
당문의 형제들은 자신들이 할 일은 다했다는 듯이 손을 멈
추고 뒷짐을 지고 서 있었고, 이들 대신 팽씨가문의 형제와
황보세가의 남매만이 무섭게 손을 쓰고 있었다.
"크악!"
"아악!"
황보장의 성명절기(姓名絶技)인 벽력장법(霹靂掌法)이 시전
될 때마다 흑도의 무인들은 삼 사장씩 날아가 땅에 처박히
고, 황보영의 쾌검이 한 번씩 지나면 그 자리에는 목 없는
흑도의 무인들의 땅에 쓰러지고 있었다. 이에 질세라 팽가의
두 형제 또한 다른 사람이 쓰는 무기의 거의 두 배나 됨직한
도를 들고 흑도의 무인들을 핍박하고 있었다.
'이럴수가...'
남궁진과 대치하면서 장내의 상황을 살피던 마무백의 신형
이 크게 흔들렸다. 좋지 않을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 일 줄
은 미처 생각을 하지 못했다.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남궁진만
해도 상대하기 곤란하다고 여기고 있었는데 다른 이들 또한
그 무위가 보통이 아니었다.
'내가 오늘 여기서 뼈를 묻겠구나...'
싸움은 차 한잔 마실 시간도 되지 않아서 끝나고 말았다.
이미 흑도 측 사람 중에 두 다리로 서 있는 사람들 단지 마
무백 혼자 일 뿐이었다.
"우리도 어서 끝을 내야 하지 않을까?"
남궁진은 서서히 마무백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마무백 역
시 남궁진에게 다가왔다. 서로간에 노려보던 대치상태도 잠
시 마무백이 먼저 공격을 시작했다.
"지옥검세(地獄劍世)"
마무백은 남궁진의 오른쪽으로 신형을 돌리더니 처음부터
자신이 지닌 최고의 절기를 사용했다. 어차피 살아가기는 힘
든 것. 후회라도 없이 싸우기로 작정을 한 듯 싶었다. 하지만
자신의 옆구리를 노리며 빠르게 다가오는 검을 보는 남궁진
의 모습은 너무나 태연했다. 그저 약간의 움직임으로 검을
피한 남궁진은 당황하는 마무백에게 한마디 말을 던졌다.
"나의 검에 인정은 없다. 그러니 최선을 다하도록. 그런 공
격으로는 나를 어찌하지 못한다."
마무백은 입술을 깨물었다. 상대에게 이런 말을 듣는 것은
무인으로서의 수치였다. 그는 다시 한번 공격을 시도했다. 아
까 와는 다르게 처음 일초와, 이초는 남궁진의 눈을 현혹하
려는 의도로 다소 과장된 움직임이 섞인 허초(虛招)를 뿌려
댔다. 진짜는 세 번째에 시전 되는 초식으로 자신의 온 힘을
쏟아 부은 것이었다. 예상대로 남궁진은 자신의 허초에 잠시
혼란을 일으킨 것 같았다. 마무백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남궁진의 머리를 노리고 도약을 했다. 그의 검이 막 남궁진
의 머리에 도착할 때 그때 마침 자신을 쳐다보는 남궁진의
눈을 볼 수 있었다. 입간에 살짝 비웃음을 띠고 눈은 살기로
번뜩였다.
'앗차, 함정!'
마무백은 재빨리 공격을 거두어들이고 뒤로 물러서려고 했
지만 남궁진은 그런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흥, 도망을 가겠다고? 그리는 안되지..."
뒤로 물러나는 마무백을 향해 신형을 날린 남궁진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어떤 특별한 초식도 아니었다. 그저 한번의
휘두름이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미 기세가 꺾여 뒤로
물러나던 마부백은 참으로 허망하게 쓰러지고 말았다.
"비...러머....글....이런.. 식은...아닌...데..."
마무백은 억울하다는 듯 감기는 눈을 뜨고자 몸부림을 쳤
지만 죽음의 사신은 그런 그를 용납하지 않았다. 결국 마무
백 마저도 먼저간 수하들과 마찬가지로 차디찬 땅에 몸을 누
이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