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귀검신(弓鬼劍神)제22장 선발대(先發隊)-2-2
그런데 곽영의 작은 오라버니인 곽검명(郭劍明)은 다른 누
구보다도 소문과 친하게 지냈다. 곽검명이 소문과 친해진 이
유는 곽검명, 형조문(衡造雯)과 더불어 강북 무림의 삼광(三
狂)으로 불리는 개방의 소방주인 단견(短見)이 소문과 친하게
지내면서부터 였다.
삼광(三狂)!
어디를 가던지 그 지역, 단체, 무리에는 남들과는 조금 다
른 성격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당연히
강호에서도 그런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삼광이라 불
리는 이들도 그 들 중 한 무리였다. 다만 그 무공이나 문파,
지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조금 더 명성
을 떨치고 있을 뿐이었다.
색광(色狂) 여의공자(女意公子) 형조문!
산서에서 제법 유명한 무가로 알려지 형씨가문의 삼대 독
자인 그는 어려서부터 여색을 탐하여 나이 스물 일곱에 색도
(色道)를 이루었다고 스스로 자부하며 다녔다. 과연 그의 말
대로 그를 거쳐간 여자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조차 없었고,
특히 그가 떳다는 소문이 들리면 근처의 기루의 기녀들은 하
나 같이 장사를 때려 치고 그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갔다.
하지만 형조문은 얼굴이 그다지 잘생긴 것도 아니고 언변이
뛰어난 사람도 아니었다. 게다가 그토록 많이 여색을 탐하면
서도 한번의 분란을 일으키지 않으니 사람들은 그 점을 매우
이상하게 생각했다.
무광(武狂) 검치자(劍癡者) 곽검명!
화산파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말 그대로 검에 미친
자였다. 그와 만나는 사람들은 항상 인사말로 '한 수 배울까
요?'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검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그저 무인이라 생각되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비무를 신청했다. 소림에서도 방장인 영오대사에게 대뜸 비
무를 청하였다가 그의 아버지인 곽무웅에게 죽지 않을 정도
로 맞을 뻔한 적이 있었다. 특히 그는 검에 미쳐 밤낮을 가
리지 않고 검에 몰두했는데 그 정도로 검에 미친 사람이 비
무를 할 때마다 한번을 이겨보지 못하니, 사람들은 이를 참
으로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주광(酒狂) 상취개(常醉 ) 단견!
다음대의 개방의 방주가 될 그는 어려서 어미 젖 대신 사
부인 황충이 주는 술을 먹고 자랐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술
이라면 사족을 못썼다. 밥 대신 술을 먹었고 물대신 술을 마
셨다. 주독이 올라 항상 코끝이 빨갛게 되어 있는데 사람들
은 술만 준다면 개방이라도 능히 팔아먹을 놈이라고 말하곤
했다.
다만 술 취한 상태에서 발휘되는 강룡십팔장(降龍十八掌)
은 원래의 위력에 취권(醉拳)의 묘미까지 더해져 그 적수가
없다고 알려질 정도였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고 사람들로부터 미치광이 취급을
당하는 이들은 서로의 특이함에 이끌렸다. 만나자마자 의기
투합을 하게 되고 만남을 기념하기 위하여 그들이 처음 만난
북경의 한 기루에서 형제의 연을 맺으니 사람들은 이를 일컬
어 삼광결의(三狂結義)라 하였다. 그런 삼광 중의 막내인 상
취개가 시도 때도 없이 술을 구해다 주는 소문을 싫어할 리
가 없었다. 소문 또한 술을 좋아하는 사람 치고 마음이 악한
사람이 없다는 말을 굳게 믿고 있어서 그런지 자신보다 어린
그를 매우 좋아하게 되었다. 소문이 단견과 이렇게 자주 어
울리다 보니 삼광의 나머지 사람들과도 자연히 친하게 되었
다.
장강을 얼마 남기지 않고 노숙을 하는 지금도 그들은 서로
모여 술을 마시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여자야말로 세상을 살아가는 기쁨이자 보람이요 낙(樂)이
지. 만약에 여자가 없는 곳에서 살라면 난 그날로 세상을 하
직하고 말 것이네. 두 아우가 무공과 술에 미쳐 있는 것을
탓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자네는 결코 그런 것에 연연하지 말
게나 자네가 원한다면 내 그 동안 갈고 닦은 나의 색도를 알
려주도록 함세"
"허, 형님 또 한 명의 색마(色魔)를 만드실려고 그러십니
까? 남자라면 자고로 강함이 미덕 아니겠습니까? 무공이 최
고지요. 강한 무공을 위해 끊임없이 자기를 갈고 닦는....카!
얼마나 멋진 말입니까?"
형조문의 말에 곽검명이 강하게 반발을 했다. 소문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하하. 정말 재밌는 사람들이란 말야...'
"허허, 모르는 소리. 색마라니...내 말은 소문아우를 색마로
만들자는 것이 아니네. 자네는 소문아우의 말도 못 들었는
가? 지금 사천으로 신부감을 보러 간다고 하지 않았는가? 자
고로 한 여자를 신부로 삼으려면은 많은 여자를 알아야 하
네. 이 여자도 만나보고 저 여자도 만나보고 신분의 귀천(貴
賤)에 관계없이 많은 여자를 사귀어 봐야 진짜 제대로 된 여
자를 만날 수가 있는 법이지. 이보게 소문아우! 자네는 여자
를 얼마나 아나?"
"예?"
곽진과 형조문의 말다툼을 재밌게 구경하던 소문은 형조문
문이 갑자기 말을 바꾸어 자신에게 말을 걸자 당황을 했다.
여자라니... 여자라면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말도 해본 적이
없지 않은가? 소문이 말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 거리자 그
럴 줄 알았다는 듯 형조문은 고개를 끄덕였다.
"쯧쯧, 내 저럴 줄 알았지. 키는 커다래서 아직 총각딱지도
못 뗀 어린아이였구만. 그래가지고서야 신부를 얻는다해도
어디 첫날밤이라도 제대로 치루겠나...? 하지만 걱정하지 말
게 내 자네를 위해 이론(理論)부터 실전(實戰)까지 모든 것을
가르쳐 줌세. 그러니 나만 믿고 따라오게나...하하하!"
형조문은 소문의 어깨를 잡고 자신을 굳게 믿으라는 말과
함께 호탕하게 웃어 제꼈다. 그러자 여지껏 술만 마시던 단
견이 아직 넘기지 않은 음식물을 씹으며 소문에게 말을 걸었
다.
"그것이 참말이요? 아직 여자를 경험해 보지 않았다는 말
이? 하하하 이것 참. 나이는 내가 어리지만 어른이 된 것은
내가 빠르니 이제부터는 내가 형님 노릇을 할 꺼요. 하하하"
웃고 있을 수많은 없었다. 여자를 모르는 게 무슨 죄라고
졸지에 이런 처지를 당한 단 말인가. 소문은 반격을 하고자
마음먹었다.
"하하, 모르시는 말씀, 자고로 저희 조선에서는 일부종사
(一夫從事)라는 말이 있지요. 아내는 남편을 끝까지 믿고 따
라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 아내를 두고 어찌 딴 여자를 품
는단 말입니까? 그 또한 대장부가 취할 행동이 아니지요"
"허, 무슨 말을 옛 성현(聖賢) 말씀에 영웅(英雄)은 삼처사
첩(三妻四妾)을 두어도 흠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 있네. 여자
를 많이 취해보는 것도 영웅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라 할 수
있지 암!"
소문이 그런 말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조선에서
도 양반가들은 몇 명의 첩을 두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미
자존심을 건 말싸움은 시작되었고 여기서 물러설 소문이 아
니었다. 짐짓 화가 난 듯 목소리를 높였다.
"허허, 어떤 미친놈이 그따위 말을 했단 말입니까? 공자(孔
子)가 그랬습니까? 아님 노자(老子)가 그랬습니까? 그건 중원
에서나 있을 법한 말이지요. 군자(君子)의 나라인 조선에서
그런 말을 했다면 성현은커녕 맞아 죽기 십상일 것입니다.
다시는 그런 말씀하시지 마십시오"
"아니 누가 머라나. 그리 열을 낼 문젠 아닌데..."
형조문은 소문이 흥분해서 말을 하자 일순 당황을 했다.
자신이 조선에 가본 적이 없으니 뭐라 말을 하진 못하고 그
저 소문의 화가 가라앉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하하하. 거 보슈. 내 그럴 줄 알았다니까. 잘 알지도 못하
면서 나섰다가 무슨 망신이요? 내가 알기로도 옛 성현들이
그런 말을 한 적은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그거 형님이 만
든 말 아니요? 하하하"
"클클클"
"하하, 오늘 내 망신을 단단히 당하는구만."
곽검명과 단견은 서로 마주보며 낄낄대고 웃었다. 그런 그
들을 보며 형조문도 마주 웃어 주었다.
큰 소리로 웃고 떠드는 그들을 지켜보는 못마땅한 얼굴이
있었다. 아까부터 계속 여자 어쩌구 할 때부터 지켜보던 곽
영이었다. 형조문이 삼처사첩이란 말을 할 때 발작적으로 뛰
어 나갈려다 간신히 화를 눌러 참았었다. 그런데 소문이 형
조문의 말에 멋드러지게 반박을 하자 제법 기분이 나아졌다.
해서 자신도 모르게 소문을 칭찬하는 말을 하고 말았는데 그
것이 소문과 곽영을 아주 웬수지간으로 만드는 결정적인 역
할을 하였다.
"흥, 꼴에 입은 있다고 저래도 말은 제법 옳게 하는구나!"
곽영과 그들의 거리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모여있는 모든
사람은 곽영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곽영은 나름대로 칭찬
을 했는데 듣는 소문은 그게 아니었다.
'뭐? 꼴에? 저년이 미쳤나... 네가 정말 죽여달라고 아주 사
정을 하는구나. 사정을 해!....'
꼴에라니... 생할수록 괘씸하고 기도 안 차는 말이었다. 소
문이 지그시 입술을 깨물고 곽영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곽영은 계속해서 떠들어 대고 있었다.
"조선에서 온 촌뜨기도 여자를 존중하고 있는데 조문오라
버닌 중원 망신 그만 시키고 그 여자 타령은 그만 하세요.
창피하지도 않나요?"
"아 그게... 저"
형조문이 뭐라 대답을 못하고 머리를 긁적이고 있을 때 그
를 구해주는 한줄기 음성이 있었다.
"하지만!!! 비록 많은 여자를 탐하지 말라는 말이 있지만
저희 조선에서도 여자에 대해 전해 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 그게 무엇인가?"
옆에 앉아 흥미진진하게 사건의 추이를 지켜보던 곽검명이
재빨리 물어왔다. 그러자 소문은 앞에 놓인 술을 한자 들이
키더니 차분한 그러나 힘있는 어조로 말을 이었다.
"싸가지 없는 마누라는 북어와 마찬가지로 삼일에 한번씩
복(伏)날 개 패듯이 패라는 말이죠!"
"이....이!!!"
곽영은 어이가 없어서 도끼눈을 하고 소문을 노려보고 있
었지만 소문은 안색하나 변하지 않고 곽영을 마주 보고 있었
다.
"오, 그런 심오한 뜻이 있었구나. 이야... 암 싸가지 없는
마누라는 어쩔 수가 없지."
형조문은 마치 곽영 보고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박장대소
(拍掌大笑)를 했다. 졸지에 망신을 당한 곽영은 독기어린 눈
으로 소문을 노려보며 말을 했다.
"누가 당신의 신부가 될지 모르겠지만 참으로 불쌍하군
요!"
"낭자보고 내 신부가 되라는 소리는 안 할 테니 걱정 마시
구려..."
"뭐야! 누가 네놈 같은 잡놈의 신부가 되기나 한다더냐?"
"걱정하지 마시오. 나도 낭자 같은 사람은 수레로 실어다
주어도 싫소. 에그, 차라리 혀 깨물고 죽고 말지..."
"네...네놈이....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구나"
곽영은 결국 참지 못하고 칼을 뽑았다. 당장이라도 소문의
목을 날려버릴 듯한 기세로 칼을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함
부로 칼을 휘두르지 못했다. 여지껏 웃고만 있던 곽검명이
갑자기 안색을 바꾸어 그녀를 꾸짖었기 때문이다.
"무슨 짓이냐? 당장 칼을 거두지 못하겠느냐?"
"오...오라버니도 저놈이...."
"어서!"
곽영을 억울하다는 듯이 곽검명을 쳐다보았지만 평소에는
부드럽다가도 한번 화를 내면 그 누구보다 무서운 게 곽검명
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곽영은 결국 칼을 거두고 말았다.
"흑...흑"
곽영은 칼을 거두고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더니 뒤
도 안 돌아보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자 난처해 진
것은 소문이었다.
"형님 죄송합니다. 제가 괜한 말을 해서...."
"흠, 아닐세 저 애의 행동이 잘못이었지. 자네가 무슨 잘못
이 있었겠나. 술이나 드세"
사실 곽검명도 소문의 말이 조금은 과했다 싶었다. 하지만
그 동안 소문에 대해 끊임없이 욕을 해오던 곽영인지라 뭐라
말을 하지 못할 뿐이었다.
'크크크, 그것 봐라. 다시 한번 내 욕을 한다면 그때는 오
늘처럼 간단히 끝나지 않을 것이다. 다시는 그따위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자근자근 밟아주마....카카카'
소문은 여전히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곽검명이 따라주는
술을 받고 있었지만 실은 자신의 자리에 돌아가 여전히 울고
있는 곽영을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렇게
또 하룻 밤이 지나고 있었다.
선발대가 소림을 떠난 지 만 나흘이 되던 날 이들은 장강
을 건널 수 있었다. 이제 하루만 더 달려가면 남궁세가에 도
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풍전등화(風前燈火)의 남궁세가와 마
찬가지로 이들에게도 서서히 위기는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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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원색적인 욕이...ㅡㅡ; 어느 분이 그러던군요, 거의
한권분량이 넘어가는데도 여자가 한명도 등장하지 않는다고.,.
이제 여자두 나옵니다....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