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귀검신(弓鬼劍神)제22장 선발대(先發隊)-2
소림사의 대웅전 앞에는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
었다. 제각기 다른 색, 모양의 옷들을 입고 있었는데 그들 모
두가 각자의 무기를 들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얼굴에는
나름대로의 자부심과 불안감, 긴장감이 교차하는 그들은 어
제 정도맹의 수뇌들이 결정한 대로 남궁세가를 돕기 위해 급
히 차출된 각 문파들의 제자들이었다. 선발대의 면면을 간단
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았다.
소림에서는 지객원주인 영각스님을 대표로 하여 나한전주
(羅漢殿主)인 무령(無靈)스님을 비롯한 십팔나한(十八羅漢)이
선발되었는데 특이하게도 무공인 약한 영각스님의 막내제자
인 무상이 포함되었는데 이는 자신의 무상이 사부인 영각에
게 따라가겠다고 거의 막무가내로 억지를 부린 결과였다.
화산에서는 장문인 곽무웅을 비롯하여 제자 스물 여섯 명,
개방에서는 장로인 구육개(狗肉 )를 필두로 제자 열세 명,
그 외에 강북에서 활약하는 고수 오인이 합세해서 선발대는
총 육십 칠인 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이보다 훨씬 많은 사람
들이 차출되었지만 구파일방 중 아미, 공동, 곤륜, 청성, 종남
등 나머지 문파들은 급하게 소림에 오느라고 미처 많은 제자
들이 따라오지 못해 제외되었고, 소림에 모인 많은 무인들
또한 너도나도 지원을 했지만 효율적인 명령체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그중 실력이 뛰어난 오인을 포함 시켰을 뿐이었다.
남궁세가로 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는 무당에서는 본산에서
직접 제자를 파견하여 이들과 합세하기로 하였다.
정도맹의 수뇌들과 많은 무인들은 떠나는 이들을 배웅하고
자 아침부터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이윽고 선발대의 출발
준비가 끝나자 정도맹의 맹주를 맡고 있는 영오대사가 이들
앞에 나섰다.
"지금 강남의 백도문파들은 패천궁에 의해 이미 풍비박산
(風 雹散)나고 말았습니다. 오로지 호남성의 남궁세가만이
버티고 있는데 혹여 남궁세가마저 무너진다면 강남에서 더
이상 우리 백도의 세력을 찾을 수가 없을뿐더러 패천궁은 자
신감을 가지고 그 마수(魔手)를 강북으로 점차 확대시킬 것
입니다. 그러기 전에 미리 그 싹을 자르기 위해서라도 남궁
세가는 꼭 지켜내야 합니다. 하지만 저들의 간계로 우리는
많은 시간을 헛되이 보내버리고 말았습니다. 해서 본 맹에서
여러 백도세를 하나로 집결시켜 지원군을 파견하는 것은 그
시기가 늦었다고 판단하여 미리 선발대를 남궁세가로 보내어
최대한으로 시간을 지연시킨다는 방책을 세웠습니다. 그 틈
에 이곳에서는 전열을 가다듬고 본격적으로 지원에 나설 것
입니다. 여기 서 계신 여러분들이 그 선발대의 중 차대한 역
을 하게 될 것입니다. 무척이나 힘들고 고된 여정이 될 것입
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의 노고와 희생속에서 우리 백도들은
저 간악한 무리로부터 중원을 지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명심해 주십시오. 여러분이 가시는 길에
항상 부처님의 은덕이 따를 것입니다.....아미타불...."
영오대사는 불호로써 말을 끝마쳤다. 그러자 이번 선발대
의 실질적인 지도자(指導者)라고 할 수 있는 석무웅이 말을
이었다.
"맹주님의 말씀대로 우리는 백도의 사활(死活)을 좌우할 중
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오. 모두 맡은 바 소임을 다해 주
길 바라오. 우리는 우선 숭산을 내려가 그 곳에 마련된 말을
타고 이동을 하게 될 것이오. 남궁세가까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린다면 사흘이면 당도하겠지만 그리 해서는 우리가
먼저 지쳐 제대로 된 실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당하게 될 것
이오. 해서 이동은 적당한 휴식과 함께 이루어질 것이오."
"그렇다면 너무 늦는 것이 아닐런지요?"
선발대의 일원이기도 한 구환도(九還刀) 하후강(夏候强)이
질문을 했다.
"아, 하후협사(俠士)시구려. 비록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싸
우지도 못하고 당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리
고 남궁세가에는 나머지 사대세가에서도 지원군이 도착했다
고 하니 약간의 시간은 더 주어질 것입니다."
곽무웅은 간단하게 대답을 마치고 다시 시선을 중인들에게
돌렸다. 선발대에게 이동을 지시하였다. 그러자 개방을 필두
로 하여 나머지 선발대들이 천천히 소림을 빠져나갔다.
"후, 제발 무사히 도착하여 최대한의 시간을 벌어주어야
할 텐데요....아미타불....."
"곽장문이 그 무리를 이끄니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저희들은 하루라도 빨리 이곳에서 힘을 모아야 할 것입니
다."
"그래야겠지요. 여러분들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우매한 본 승을 많이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운검진인의 말에 영오대사는 선발대에 두었던 근심을 걷고
남아있는 수뇌들의 협조를 당부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잘 알
고 있는 그들이 영오대사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음은 당연
했다.
소림의 산문을 벗어난 선발대는 무리가 이동하는 순서를
살펴보며 우선 개방의 제자들이 앞장을 섰고, 그 뒤를 소림,
독자적인 무인, 화산파의 순으로 걷고 있었다. 그런데 소림의
맨 뒤에는 소림사와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두 인물이
쫄래쫄래 따라가고 있었다. 그것이 처음부터 불만이었던 몇
몇 사람들 중 한 명인 화산파 곽무웅의 딸 곽영(郭英)이 처
음으로 그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이건 말도 안돼요. 어째서 선발대의 중요한 임무에 저런
자가 끼어 있지요? 안 그래요, 평산오라버니?"
곽영의 말에 화산파의 대제자인 임평산(任平散)은 말없이
웃고 있었다. 곽영의 말에 동의를 한 것은 임평산의 사제 하
지극(夏持戟)었다.
"네 말이 맞다. 저런 자가 어찌 선발대에 들었는지 원.."
"저것 좀 봐요. 키는 멀대 같이 커 가지고 꼴에 등에는 활
도 매고 있네요. 흥, 저 어깨에 앉아있는 이상하게 생긴 새는
뭐람... 요즘은 표국에서 쟁자수 하던 자들도 저러고 다니
나...?"
어젯밤에 영오대사는 장경각으로 불려갔다. 감히 누가 부
르는 것이라고, 지체없이 달려가 사숙조에게 인사를 하던 영
오대사는 그 자리에 서 있는 소문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사숙조에게 한마디의 말을 들은 것이 전부였다. 그 말로 인
해 영오대사는 아침에 선발대가 출발하기 전에 선발대의 수
장인 곽무웅을 개인적으로 만나야 했다. 영오대사는 그 자리
에서 소문과 노인을 소개하고는 그간 사정을 간략하게 말했
다. 반야심경도해에 얽힌 소문과 소림의 인연을 설명한 후
곽무웅으로부터 소문과 노인의 동행을 약속 받았다. 하지만
곽무웅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소림의 체면을 생각하여 반야심
경도해의 얘기는 하지 못하고 그저 소문이 천리표국에서 쟁
자수를 했다는 것과 꼭 남쪽에 가야 하는 이유가 있다는 것,
그리고 일행의 말을 잘 돌볼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양해
를 구했다. 이렇게 해서 소문이 선발대에 끼게 되었는데 그
모양세가 영 마음에 안 들었는지 곽영은 아까부터 계속 소문
에 대해 불평을 하고 있었다. 딴에는 자신의 주변 사람들만
듣도록 조용히 말을 한다고 생각하는 곽영이었지만 그 대상
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소문이었다. 눈치 밥 이십 년에 발달
한 것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눈치와 탁월한 청력(聽力)이
었다.
'저런 싸가지 없는 년을 보았나. 지는 얼마나 잘났다고...나
참 어이가 없으려니....사천이고 뭐고 당장 저것을 요절내 버
릴까보다....'
아까부터 계속되는 자신에 대한 욕을 듣고 있던 소문이었
다. 좋은 말도 여러 번 들으면 짜증이 나는 법이거늘 소림을
나올 때부터 시작한 불평이 산을 다 내려온 지금까지 이어지
고 있으니 화가 날만도 했다. 그러나 소문은 참았다.
'참아야 하느니....인(忍)!인(忍)!인(忍)! 후....이것으로 난
또 한번의 살인을 면하게 되는구나...
운이 좋은 줄 알아라 계집!'
곽영이 계속 불평을 하고 소문이 혼자서 분을 삭이고 있을
때 일행은 숭산을 벗어나고 있었다. 곽무웅의 말대로 산 아
래에는 선발대를 위한 말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반기는 일행
과는 달리 소문은 울상이 되었다.
'이...이런...말이잖아...'
탈수도 그리고 천천히 움직일 수는 있어도 말을 타고 달리
거나 자신의 의지대로 조종을 한다는 것은 애초에 포기한 소
문이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은 다 말을 타고 가는데 혼
자 경공으로 따라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자 모두들 준비된 말에 오르도록 하시오. 이제부터 빠르
게 이동을 해야 할 것이오"
곽무웅의 말대로 사람들은 너도나도 자신에게 할당된 말에
올라탔다. 소문도 말에 타기는 했다. 그러나 문제는 곧 발생
하고 말았다.
"엥? 저...저것이...."
"헐... 저런!"
소문의 뒤에서 말을 타고 오던 사람들은 모두들 깜짝 놀라
고 말았다. 개방의 방도들이 말을 타자마자 속력을 내어 앞
으로 달려가고 그 뒤를 이어 소림의 제자들도 속력을 올리며
따라가는데 소문의 말도 덩달아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그러
자 말의 속력을 줄일 수도 없는, 그렇다고 멋들어지게 고삐
를 쥘 줄도 모르는 소문은 아예 눈을 감고 말 등에 바짝 업
드려서 모든 것을 말에게 맡기고 말았다. 그러니 뒤따라오던
사람들이 깜짝 놀랄 수밖에... 솔직히 소문도 창피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명색이 선발대인데 말도 타지 못하고
이러고 간다는 것이 못내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하고 있었
는데 이런 소문의 가슴에 또 한번 대못을 박는 소리가 들려
왔다.
"흥, 내 저럴 줄 알았다니까. 아예 말을 업고 뛰어 오는 게
덜 창피하겠다. 저런 멍청한 자가 선발대에 들어오다니..."
연신 말에 채찍질을 하던 곽영은 누가 듣던지 상관없다는
듯이 큰소리로 외쳐댔다. 화산파의 제자들은 그 말을 듣고
서로 킥킥거리며 웃을 뿐이었다.
'하늘이 두쪽나는 한이 있더라도 내 너의 버르장머리를 고
치고 말겠다. 빌어먹을 년!'
눈을 감고 말 등에 실려 가는 소문이지만 성질까지 죽은
것은 아니었다. 다행히 소문의 말이 의외로 영리했는지 일행
은 무사히 이동을 할 수 있었다. 한 시진 정도를 달리고 잠
시 쉬기를 반복하며 하루동안 꽤 많은 거리를 이동할 수 있
었다.
선발대가 소림을 떠난 지 삼일 째가 되자 일행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처음에는 각자 자신의 문파 사람들과 무리를
지어 이동을 했지만 서로의 안면도 익히고 각 무리를 이끄는
수뇌의 회동도 잦아지자 서로 친목이 있는 사람들끼리 뭉쳐
서 이동을 하는 형태를 띠게 되었다. 또한 무당에서는 운검
진인의 사제인 운경진인(雲鏡眞人)이 삼십여명의 제자를 이
끌고 선발대에 합류했다.
선발대의 규모가 급격히 커진 와중에서도 자신의 자존심을
살리기 위한 소문의 노력은 피눈물 나게 계속 되었다. 소문
은 자신의 위치나(쟁자수라는) 첫날 보여줬던 모습으로 인해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못하자 그 실수를 만회하기 위하여 부
단히 노력을 했다. 식사 때가 되면 철면피와 함께 산으로 올
라 사냥을 했다. 전직 사냥꾼이었던 소문은 짧은 시간에도
엄청난 양의 동물을 잡아 올 수 있었다. 한 두 번 도 아니고
매 식사 때마다 그렇게 사냥을 해오자 마른 건량(乾糧)이나
육포(肉脯)만 먹으리라 생각했던 사람들은 매우 좋아했다. 특
히 개방 사람들의 환영은 실로 대단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
고 때때로 고기를 먹지 않는 소림의 승려들을 위해 마을까지
내려가 음식을 구해오고 만인의 친구이자 연인인 술도 몇 병
씩 구해 오니 소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단번에 바뀌고
말았다.
게다가 약간의 술은 피로와 긴장을 푸는데 좋다고 무리의
수장인 곽장문인이 나서 소문의 행동을 공개적으로 허락을
하자 일행의 기쁨은 더할 나위 없이 컸다. 그 동안의 노력이
헛되이 되지 않아 천덕꾸러기였던 소문이 이제는 선발대의
중요한 일원으로 자리잡는 순간이었다. 그 동안 마을을 찾기
위해 출행랑을 시전하며 얼마나 많은 산골을 뒤지고 다녔던
가... 소문은 감개가 무량했다. 하지만 그런 소문을 모두가 좋
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단 두 사람, 처음부터 소문을 탐탁치
않게 여기던 곽영은 소문이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친해지
자 더욱 더 그를 싫어하게 되었고 그런 곽영을 남 몰래 사모
하는 하지극도 덩달아 소문을 싫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