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귀검신(弓鬼劍神)제22장 선발대(先發隊)-1
"지...지금 무엇이라 하시었소? 패천궁이 움직였단 말이오?"
정도맹의 맹주직을 맡고 있는 소림의 영오대사는 화급히
달려온 추혼신개 황충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고 있었다. 비
단 그 뿐만 아니라 좌중의 모든 사람들은 영오대사와 마찬가
지의 반응을 보였다.
"말씀드린 그대로이외다. 이미 저들은 움직이기 시작했고
벌써 강남의 대부분이 저들의 수중에 떨어졌다 합니다"
황충은 침울한 얼굴로 말을 했다. 그러자 그 말을 듣고 있
던 청성파의 장로인 석부성이 벌컥 화를 냈다.
"무언가 착오가 있겠지요. 바로 어제만 하더라도 그들의
움직임이 전혀 없다고 하시지 않으셨소이까? 헌데 하룻밤 사
이에 강남이 넘어 가다니요? 도무지 이해가 아니 갑니다"
"후, 낸들 알겠소. 하지만 강남의 모든 성에서 빗발치듯 전
서구가 올라오고 있소이다. 그 내용인 즉 이미 패천궁의 공
격이 시작되었고 강남의 모든 백도 문파들은 멸문을 당했거
나 굴복했다고 하니..."
"무량수불....우리가 저들의 간계에 당한 것 같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무당의 운검자가 탄식을 했다. 석부성은
운검자에게 그 의미를 물었다.
"간계라니요? 그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들이 우리의 눈과 귀를 속이고 단번에 강남을 석권한
것 말입니다. 우리는 개방의 말만 믿고 있었지만 일의 돌아
가는 모양을 보아하니 패천궁을 감시하던 개방의 방도들이나
복건성에 있는 개방의 분타는 이미 전멸을 당한 듯 싶소이
다. 우리가 지금껏 받아온 전서구는 아마도 패천궁에서 위장
하여 거짓 소식을 보낸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이런 낭패가...그렇다면 진정 강남의 백도는 무너진 것
이라는...."
"아직은 아닙니다. 호남성이 무너졌다는 소식이 없을뿐더
러 그곳에는 남궁세가가 버티고 있습니다."
화산파의 장문인 곽무웅이 담담한 어조로 말을 했다. 그는
지금 이곳에서 유일하게 평상심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
이는데 이 모든 사태를 미리 예측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마
저 들 정도였다.
"그렇소이다. 이 노화자가 받은 전서구에는 호남성에서 올
라온 것도 있는데 아직 그곳까지는 그들의 손이 미치지 않았
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곳도 곧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수수방관만 하고 있다면 말입니다."
곽무웅은 좌중을 둘러보며 자신의 주장을 펴기 시작했다.
"아직도 때는 늦지 않았습니다. 비록 강남이 저들의 수중
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그것이 곧 백도의 패배로 이어지리라
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상징성이나 전략적 중요
도로 보아도 호남성 특히 남궁세가는 반드시 지켜내야 합니
다. 시간이 없습니다. 어서 빨리 지원군을 보내야 합니다. 이
번 싸움은 틀림없이 시간의 싸움이 될 것입니다. 저들이 그
토록 조심을 하며 이번 일을 꾸민 것도 바로 그 시간을 벌기
위함일 것입니다. 우리의 지원군이 얼마나 빠르게 남궁세가
에 도착하느냐가 그 무엇보다 중요한 관건이 될 것입니다."
곽무웅이 그토록 열을 내며 설명을 했지만 사람들응 그의
말에 대한 지지도 거부도 하지 않은 채 묵묵부답이었다. 잠
시후 그 침묵을 깨고 맹주인 영오대사가 말을 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원군을 빨리 보내야 할 듯 싶습니
다. 어찌 생각들을 하십니까?"
"하지만 아무리 빨리 보낸다 하더라도 각파에서 제자들을
차출하고 집결시켜 출발을 한다면 적어도 보름은 걸릴 것이
니 너무 늦는 것이 아닐런지요. 차라리 강남은 포기하고 장
강을 경계로 하여 전열을 정비하고 싸움에 임하는 편이..."
"말도 안됩니다. 이미 남궁세가를 돕기위해 사대세가가 나
섰다고 합니다. 만약 여기서 우리가 돕지 않는다면 그들 또
한 위험해집니다. 사대세가가 백도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너
무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아니...난 그저..."
강남을 포기하자는 말을 했던 종남파의 장문인은 곽무웅의
말에 궁색한 변명을 하려 했다. 하지만 운검진인은 그런 그
의 의도마저 막아버렸다.
"노도의 생각도 곽장문과 같소이다. 그곳은 절대 포기해서
는 안 되는 곳이외다. 그러니 빨리 방법을 강구해 보도록 합
시다"
"대규모의 지원군은 시일이 다소 걸릴 터이니 우선 급한
대로 여기 있는 제자들이라도 선발대로 지원을 하는 것이 어
떠 할런지요..."
여지껏 아무런 말도 하지 않던 아미파(峨嵋派)의 장로인 금
정신니(金井神尼)가 조용히 말을 했다. 아미파에서까지 지원
의 의사를 밝히자 곽무웅의 주장을 그리 탐탁치 않게 여겼던
종남파나 청성파에서도 더 이상 반대를 하진 못하였다.
"금정신니의 말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우선 급한 대로 이
곳의 제자들을 보내어 다소간의 시간을 지연시킨 다음 전열
을 정비하여 대규모의 지원군을 파견하는 것으로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보다 세부적인 것은 우선 제자들을 모아보고 결
정을 합시다."
영오대사는 조용하게 말했지만 이미 정도맹의 맹주가 된
그의 말은 절대적인 명령이나 다름없었다. 방안에 모였던 모
든 사람들이 허리를 숙이고 그 의사를 존중하였다.
이렇듯 백도의 수뇌부들이 머리를 싸매고 있을 때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숭산을 오르고 있는 인물이 있었다.
'제길 아무래도 내가 뭐에 씌웠지... 이 뻔뻔한 영감탱이를
뭣하러 구해 가지고서는...'
소문은 여전히 자신의 등에 업혀 잠을 자고 있는 노인을
보면서 이를 갈았다. 물론 소문의 무공이라면 사람하나 업고
길을 나서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소문이 저처럼
화를 내는 것은 노인의 행동행동 하나가 어찌나 장백산에 있
는 자신의 할아버지를 닮았는지 때때로 할아버지가 따라 온
것은 아닌지 하는 착각을 할 정도라는 것에 그 이유가 있었
다. 지금도 그랬다. 천리표국을 나설때만 해도 멀쩡하던 다리
가 왜 산에 들어와 경공을 펼치려 하니까 상처가 도지는 것
인가?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끝내는 자신의 등에 매달리
고는 지금까지 한 걸음도 그냥은 움직이지 않았다. 꼭 소문
의 등에 업혀 이동을 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마음이 급한 소
문을 이리저리 괴롭히며 시간을 지체하는 통에 소문이 출행
랑을 시전 하면서 달려왔지만 상당한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숭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헌데 천리표국에서 쟁자수의 일을 하고 있어야 할 소문이
무슨 이유로 이곳에는 다시 나타난 것인가. 돌려주었던 반야
심경도해를 훔치러 오는 것은 아닐텐데...
"뭐라구요? 강남으로 표행을 안 간다구요? 그게 무슨 말이
예요?"
소문은 당분간 강남으로의 표행이 모두 중단되었다는 장삼
봉의 말에 믿기 어렵다는 듯이 말을 했다. 그러자 장삼봉은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이번에 패천궁의 궁주가 죽으면서 강호의 분위기가 아주
어수선해졌어. 특히 흑도세가 많이 모여있는 강남의 분위기
는 아주 안좋아. 물론 그들이 표행길을 방해한다고는 장담하
지 못하지만 여차하면 공격을 받지 않는다고 보장도 못하지.
일반 녹림도와 다르게 그들은 아주 무섭단 말야... 아무리 우
리들의 표사들이 날고 긴다해도 어림도 없지. 암. 그러니까
애초에 조심하자는 것이지... 강호가 안정될 때까지는 관에서
부탁한 표물 이외에는 아마 강남으로의 표행은 없을 것이
야.."
장삼봉의 말이 거듭될수록 소문의 얼굴은 소태를 씹는 듯
울상이 되어갔다.
'그럼 난 뭐야...여기서 일한 게 도로아미타불 아냐....아악!'
"아니 자네 왜 그러나. 왜 갑자기 머리는 쥐어뜯고 난리인
가...?"
"그럼 저...는 사천에 언제 간단 말입니까?"
소문의 목소리는 울음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 모양
을 보던 유금산이 소문의 어깨를 툭툭쳤다.
"하하하, 이 친구... 이제는 자네도 제법 노련한 쟁자수 아
니던가. 이제는 혼자서도 충분히 사천에 갈 수 있을 것이야.
중원 말도 그만하면 충분하고 몇 달간의 표행을 경험 삼아
사천을 찾아간다면 힘이야 들겠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
그까짓 힘이야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좋은 경험이 될
걸?"
"...."
유금산의 말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자신이
혼자서 사천으로 가지 못한 것은 중원의 문물과 풍습에 아주
어두웠기 때문이다. 비록 모사드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는 하지만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요, 또 열 번을
봐도 한번을 해보는 것 보다 못하다고 하지 않던가.. 그 동안
소문이 배운 것과 실제로 이곳에서 접한 것은 너무도 많은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인데, 유금산 말
대로 이제는 그렇게 망설일 필요도 없었다.
'여기서 계속 시간만 지체할 수는 없고....그래 돈 있겠다.
무공이야...경험도 쌓았으니 혼자 가봐?'
소문이 결정을 내린 것은 꼬박 하루를 고민하고 나서였다.
자신이 집을 떠난 지도 벌써 이년이 다 되어 가는데 사천은
커녕 중원의 가장 윗자리에서 헤매고 있다는 것이 영 맘에
안 들었다. 그래서 또 한번의 모험을 강행하기로 했다. 이튿
날 강량을 찾아간 소문은 자신의 의지를 밝혔다.
"그래, 내 그렇지 않아도 강남으로의 표행이 사실상 중단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네 생각을 하고 있었네. 역시 떠나
기로 마음을 정했구먼."
"그 동안 여러모로 많은 도움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 은혜는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허허, 이 친구 이제는 영영 못 볼 사람처럼 말을 하는구
먼. 어차피 조선으로 돌아가려면 이곳을 지나야 할 것이니
그때 다시 보도록 하고 잘 다녀오게나. 몸조심하고..."
"예, 어르신 보중하십시오"
올 때는 조용히 왔지만 갈 때는 그렇지 않았다. 그 동안
같이 생활한 동료 쟁자수들은 물론이고 소문과 표행을 다녀
온 표사들까지 모여 소문의 여행에 안녕을 빌어주었다.
"자, 국주님께서도 지난번 자네의 공을 아시고 여행에 보
태라고 약간이 노자를 내리셨네. 받게나."
자신을 최초로 받아들여준 총관 양기가 두툼한 주머니를
건네주었다. 안에는 제법 많은 은자가 들어 있었다. 소문은
허리를 숙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렇게 천리표국의
사람들에게 환송(還送)을 받으며 떠나는 소문에게 문제가 전
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새 따라붙은 을지 노인의 등에
도 하나의 배낭이 매어져 있었다.
"허허, 잘들 계시오. 내 비록 몇 분 만나 뵙지는 못했지만
아쉬운 마음은 금할 길이 없구료...."
마치 자신이 먼길을 떠나는 듯한 차림이었다. 소문은 의아
하다는 듯이 그에게 다가가 조용히 말을 건넸다.
"아니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뭐하기는 자네를 따라 가려는 것이지.."
"몸도 성하지 않으면서 그 먼길을 어찌 따라오려고, 그리
고 이제는 몸을 움직일 수 있으니 각자의 길을 가야지요..."
"허허, 나는 자네의 친척이 아니던가. 자네와 같이 떠나는
것은 당연하지. 뭐 하는가 사람들이 자네를 부르고 있지 않
나. 내 여기서 기다림세. 어서 인사를 마치고 오게나..."
"끄으...."
요리조리 말을 돌려가며 꼬리를 잡고 늘어지는데 당할 재
간이 없었다. 소문은 또 한번 노인에게 지고 말았다. 결국 같
이 길을 떠나게 되었는데 앞서 밝힌 바와 같이 몸의 상처가
덧났다며 배짱을 부리는 통에 소문은 천리표국을 나서자마자
노인을 업는 신세가 되었다.
이렇게 길을 떠난 두 사람이 숭산을 향하게 된 이유는 따
로 있었다. 길을 나선 그들에게 가장 먼저 들어온 말이 패천
궁과 백도가 곧 큰 싸움을 벌인다는 것이었고, 그 싸움은 호
남성의 남궁세가에서 전면적으로 시작될 것이라는 말들이 세
간에 퍼져 있었다. 하지만 소문은 그런 소문에 전혀 귀를 기
울이지 않고 그저 자신의 길을 가려고 하는데 노인이 딴지를
걸었다.
"흠, 보아하니 조만간 큰 싸움이 있을 것 같구만"
"있건 말건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요."
"허허, 답답한 친구하고는 왜 상관이 없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