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21장 남궁세가(南宮世家)-1 (1) (24/32)

궁귀검신(弓鬼劍神)제21장 남궁세가(南宮世家)-1 (1)

호남성 장사부(長沙府)에서 약 백오십여리 떨어진 곳에는

중원의 이대 호수로 불리어지는 동정호(洞庭湖)가 있는데 이

곳은 중원의 유람객, 시인, 가객들의 발길로 항상 들끊었다.

남궁세가는 이런 동정호로부터 서남방으로 칠십리 정도 떨어

진 유가촌(柳家村)에 자리잡고 있었다. 남궁세가는 그 둘레에

처진 장벽만도 오리에 달했는데 남궁세가란 편액이 걸려있는

정문을 지나면 사방 백장에 이르는 엄청난 크기의 연무장(鍊

武場)이 나오고 연무장을 지나 조금 더 둘어가면 세가의 가

주가 기거하는 세심각(洗心閣)을 중심으로 좌우에 세워진 전

각과 가옥이 눈에 들어오는데 그 수만 수십 여 개에 달하고

그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수가 무려 천에 달하는 하나의

작은 성을 방불케 했다. 남궁세가의 직계라면 남녀노소 검을

모르는 이가 없었고, 직계가 아닌 단순한 가솔이라도 남자아

이라면 어릴적부터 검을 잡았기 때문에 사실상 몇몇을 제외

한 남궁세가의 모든 사람들은 무인이라 보는 게 옳았다.

시조인 남궁치세(南宮治世)가 이곳에 세가를 세운지 벌써

오백여 년, 남궁세가는 수많은 위기와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그때마다 사람들의 가슴을 서늘케하는 뛰어난 검법으로 극복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이러한 뛰어난 검공을 앞세워 항상

협(俠)과 의(義)를 중시하며 소수의 약자와 중원을 위해 애를

쓰는바 사람들은 남궁세가를 중원의 오대세가 중 으뜸으로

치켜세우는데 서슴치 않았다. 또한 그것은 다른 모든 문파에

서도 마찬가지로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런 남궁세가의 자존심은 항상 열어놓는 정문에서도 나타

났는데 도전하는 자는 당당하게 맞서주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었다. 남궁세가는 오늘도 오연히 정문을 활짝 열고 그 위세

를 드러내고 있었다.

남궁세가의 북쪽에는 사방으로 넓게 펼쳐진 대나무 숲이

있었다. 세가가 처음 세워질 때부터 가꾸어온 대나무들인지

라 매우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자라고 있는 대나무마다

그 크기와 길이가 쉽게 접할 수 없는 훌륭한 것들이었다. 그

런 대나무 위에 이제 갓 약관을 넘어선 청년이 보기에도 날

카로운 검을 들고 검법수련에 한참이었다. 청년이 밟고 있는

대마무는 크게 휘어져 흔들리고 있었지만 청년은 아무런 영

향을 받지 않는 듯 차분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창궁무애검법(蒼穹無涯劍法) 제1초 창궁약연(蒼穹躍鳶)"

청년은 자신이 밟고 있는 대나무를 힘껏 차고 올라 검을

움직였다.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좌우를 가리지 않고

움직이는 검은 일견 산만해 보이기까지 했지만 군더더기 없

이 빠르게 움직이는 몸이며 자세와 함께 검에서 뿜어져 나오

는 예기는 그것이 상당한 위력을 지닌 검법임을 짐작케 했

다. 한번의 도약으로 수십 번의 칼질을 하고 떨어지던 청년

은 다시 한번 대나무를 힘껏 박차고 뛰어올랐다.

"창궁무애검법(蒼穹無涯劍法) 제2초 창궁무한(蒼穹無限)"

이번엔 아까 와는 다르게 빠른 몸짓을 보여주진 않았다.

하지만 어지럽게 움직이는 검의 모양을 보고 있노라면 그것

이 한번의 끊어짐도 없이 커다란 강줄기가 대해로 흘러가듯

그렇게 유연히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공중

에 떠 있기를 얼마간 다시 대나무를 밟고선 사내는 최후의

초식을 펼치려는 듯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다. 두 번의 호흡

이 끝나자 그는 다시 한번 하늘로 뛰어올랐다.

"창궁무애검법(蒼穹無涯劍法) 제3초 창궁조화(蒼穹調和)"

마지막 초식인 듯 했다. 하지만 그는 그 초식을 끝까지 이

어가지 못하고 천천히 땅으로 내려왔다. 이마에 땀방울이 맺

히고 가쁜 숨을 내리쉬는 것을 보니 상당한 진력이 소모된

모양이었다.

"허허, 진아야 마음대로 안 되는 모양이구나..."

이마에 흐른 땀을 닦고 있는 남궁진(南宮眞)은 자신을 부르

는 부드러운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오셨습니까"

숨을 고르던 남궁진은 황급히 뒤를 돌아 허리를 숙이며 공

손하게 인사를 했다.

강남잠룡(江南潛龍) 남궁진

남궁세가의 현 가주인 강남일룡(江南一龍) 남궁검(南宮劍)

의 큰아들이자 다음대의 가주 자리를 이어 받을 남궁세가에

서 가장 귀하게 여겨지는 청년이었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남

궁세가의 어른들로부터 벌모세수(伐毛洗髓)를 받고 각종 영

약을 주식처럼 먹으며 자라났다. 또한 그를 사랑하는 어른들

로부터 각종 기예(技藝)들과 신공절학(神功絶學)을 배워 어린

나이에도 상당한 실력을 지니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미 그

명성을 사해에 떨치고 있는 그의 아버지 강남일룡 남궁검과

더불어 그에게는 강남잠룡이라는 별호를 붙이고 남궁가의 쌍

룡(雙龍)이라 부르고 있었다.

남궁진을 부른 노인은 머리를 단정하게 뒤로 넘기고 가슴

에까지 내려오는 은빛수염을 기르고 있었는데 안색이 붉고

나이에 비해 상당한 동안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얼굴엔

하나 가득 인자함이 넘치고 있었다.

"허허, 이마에 땀하며, 숨이 고르지 못한 걸 보니 중간에

진기가 이어지지 않은 모양이로구나?"

"예, 할아버지"

남궁진은 고개를 숙이며 몹시 부끄러워 했다. 그 모양을

보고 있던 할아버지는 껄걸 웃었다.

"인석아. 나나 네 아비나 네 나이 때에는 지금 네가 연마

하고 있는 창궁무애검법의 성취가 너 보다 못했다.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말거라. 그 정도만 해도 아주 뛰어난 것이

니..."

"하지만 저는 빨리 할아버님의 제왕검법(帝王劍法)을 익히

고 싶습니다."

"예끼 이 녀석아 니 아비조차 아직 흉내만 내고 있는 것을

벌써 익히겠다고 하는 것이냐...."

자신이 창안한 제왕검법을 익히겠다고 하는 손자를 질책하

는 할아버지의 얼굴에는 노여움은커녕 흐뭇한 웃음으로 가득

했다. 제왕검법이 무엇이던가, 자신이 강호를 종횡하며 얻은

검성이라는 명예를 뒤로하고 이곳 죽림에서 무려 십여 년을

연구한 끝에 세가의 검법 중 그중 뛰어난 위력을 지닌 검법

을 한데 모아 만들어낸 검법으로 강호에는 아직 알려지지 않

은 남궁세가의 새로운 절기가 아니던가. 지금까지 강호에 알

려진 남궁세가의 가장 대표적인 무공은 남궁진이 방금 전에

시전한 창궁무애검법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만든 제왕검법은

위력 면에서 창궁무애검법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뛰어났

다. 그만큼 난해하고 어려운 검법이었는데 그걸 하루라도 빨

리 배우겠다는 든든한 손자가 있으니 어찌 대견하지 않겠는

가,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우선은 창궁무애검법을 완전히 익히도록 해라. 연후엔 네

가 싫다고 해도 억지로라도 가르칠 테니까....허허허"

"헌데 할아버지 요즘엔 아무리 애를 써도 도통 진전이 있

질 않습니다"

검성은 자신을 바라보며 걱정하는 말투로 얘기하는 손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흠, 어느새 이 녀석이 이처럼 성장했군....'

남궁세가는 근래에 들어와서 상당한 고민거리가 있었다.

자고로 나라든 가문이든 쇠약해지지 않고 번성을 하기 위해

서는 몇 가지 요소가 필수적인 법인데 특히 후대를 잇는 후

손들이 많아야 함은 무엇보다 손꼽히는 중요한 요소였다. 헌

데 최근 들어 남궁세가는 직계 가족의 손이 매우 귀했다. 지

금 인사를 하고 있는 남궁진을 포함하여 직계는 모두 다섯뿐

이었는데 특히나 남자후손은 그와 그 동생인 남궁석(南宮石)

단 둘 뿐이었다. 남궁가의 어른들은 크게 우려를 했지만 이

런 걱정들은 남궁진이 커가면서 점점 사라지게 되었다. 어렸

을 때부터 싹수가 보이던 무공실력은 둘째치고 그 말투며 행

동하나 하나가 남궁가를 이어받기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었

다. 비록 형제가 적지만 저만하면 남궁세가를 이끌어 가는

것은 물론이고 능히 그 이름을 천하에 떨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 남궁진이 요즘 통 무공의 진전이 없었는데, 그

것은 지금까지의 수준에서 그 틀을 깨고 한 단계 더 발전하

려는 진통임을 검성은 잘 알고 있었다.

"네가 지금 겪고 있는 것은 절정(絶頂)의 경지에 이르기 위

한 고통이니라"

"절정이요?"

"처음 무공을 익힌 사람들은 그 수준이 형편없으니 그저

힘껏 칼을 휘두를 뿐이다. 이를 삼류라 하고 삼류를 벗어나

초식의 길을 어느 정도 알게 되는 수준을 이류라 한다. 이류

를 벗어난 초식을 펼치고 걷음에 막힘이 없고 그 초식을 자

신에게 맞추어 응용시킬 수 있는 경지에 이른 사람을 일류라

한다. 일류에 이르러야 비로서 고수라는 소리를 듣게 되는

법이지. 허나 흔히 세인들이 말하는 고수라는 것은 알고 보

면 다 형편없는 실력을 지닌 자들이 그리 불리고 있을 뿐,

실로 고수라 불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실정이다. 그리

고 그 일류고수의 수준을 넘어선 실력을 절정이라 한다. 일

문의 장로는 되어야 이 정도의 수준에 올랐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하지만 각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항상

고비가 있는 법, 그것을 잘 넘겨야 만이 더 높은 경지를 바

라볼 수 있지. 너도 지금의 시련을 잘 견디어 낸다면 곧 절

정의 경지에 이르게 될 것이다."

남궁진은 할아버지의 말을 세심히 새겨들었다. 자신이 벌

써 그 정도의 수준에 이르렀다니... 자부심이 생겼다. 그러다

가 문득 궁금한 것이 생겼다.

"그렇다면 절정의 위에는 무슨 단계가 있습니까?"

"절정의 위에는 초 절정이라는 말을 쓰는데 특별히 구별되

는 경지는 아니다. 다만 내공이나 초식, 경험의 깊이에 따라

실력이 조금 앞서나가는 사람을 말할 뿐이지. 진정한 절정의

다음 단계는 화경(化境)이라 하여 보통 신화경(神化境)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것은 말 그대로 입신의 경지에 이르렸다는

말로 대변되는데 이 정도의 수준이 되어야 비로서 이기어검

(以氣馭劍)을 펼칠 수 있다."

"이...기어검이요?"

가만히 듣고 있던 남궁진은 깜짝 놀라 반문했다. 이기어검

이라니, 전설속에서나 나오는 경지가 아니던가...

"그렇지 이기어검, 하지만 이기어검에도 그 경지가 있는

법, 화경의 고수들이 펼치는 이기어검은 그저 손으로 조종할

수 있는 정도의 거리를 나아가니 이를 수어검(手馭劍)이라

하고 눈에 보이는 대로 조종할 수 있는 경지를 목어검(目馭

劍)이라 한다. 이 정도의 무공을 시전하려면 화경의 경지를

뛰어넘은 현경(玄境)의 고수 정도는 되어야 한다."

"할아버지는 어느 정도의 수준까지 오르셨나요?"

남궁진은 강호인들이 검성이라 부르는 할아버지의 수준이

궁금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곧 바로 대답을 하지 않고 그

런 그를 보며 웃을 뿐이었다.

"그게 궁금하냐?"

"예"

"네가 창궁무애검법을 십이성 완성하면 화경의 초입에 이

르었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수준을

물을 것이지 자신이 어찌 될 것인지를 물은 것은 아니지 않

은가? 할아버지는 어리둥절하는 남궁진의 모습에 파안대소

하였다.

"하하하, 창궁무애검법을 익히면 화경의 초입에 들어서니

진정한 화경의 경지에 들어 설려면 제왕검법을 익히면 될 것

이야...."

"아. 그럼 할아버지도 이미 화경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말

씀이군요."

"그렇다고 볼 수 있지. 하지만 중원에서 나만한 경지에 이

른 사람들은 여렷이 있다. 그 중에서는 현경에 오른 자들도

있으니 아마도 패천성의 궁주인 구양풍이나 그를 꺾은 소림

의 고수도 다 현경의 수준에 이른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그럼 현경 위에는 더 이상의 경지는 없는 것입니까?"

남궁진의 거듭되는 질문에 할아버지는 잠시 뜸을 들였다.

"흠, 현경을 뛰어넘으면 뜻이 있는 곳에 이미 형체가 나타

날 것이고, 마음만으로도 사람을 해할 수 있다는 경지가 있

다. 이러한 경지를 세인들은 생사경(生死境)이라 이름은 지었

지만 아직 까지 그 누구도 이루지 못했다. 인간으로썬 불가

능한 것이리라 여겨지는구나. 어떠냐? 네가 한번 도전해 봄

이"

"예?."

남궁진은 할아버지의 갑작스런 말에 깜짝 놀라 대답을 하

지 못하고 있었다.

"제왕검법을 내 아직 다 익히지 못했지만 그것을 십이성

대성하면 현경에 이를 자신이 있다. 할애비가 현경까지의 길

을 닦아놓았으니 네가 그 뒤를 이어 생사경에 도전하면 되지

않겠느냐? 허허허"

"하하하! 물론입니다. 제가 그 경지에 꼭 오르겠습니다. 하

하하하"

남궁세가의 전대 가주 검성 남궁상인과 그의 손자 남궁진

의 웃음이 죽림의 하늘에 퍼져 나가고 있을 때 이곳의 화기

애애한 분위기와는 달리 남궁세가의 가주가 기거하는 세심각

에는 지금 상당히 심각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저들의 움직임이 예상과는 다르게 너무 조용합니다. 움직

였어두 한참 전에 움직였어야 할 저들이 아닙니까?"

"그러니까 더 이상합니다. 움직였어야 할 자들이 침묵을

지킨다... 저들이 백도를 무서워한다는 것은 지나가는 개도

안 믿을 말이니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듯 합니다"

"........."

남궁검은 두 동생의 말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저 가

만히 턱을 괴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을 뿐이었다.

"형님!"

남궁호명(南宮豪明)은 다시 한번 자신의 형이자 남궁세가의

현 가주인 남궁검을 나즈막히 불렀다. 남궁검은 천천히 눈을

뜨더니 여지껏 말없이 앉아 있는 막내동생인 남궁우(南宮羽)

에게 시선을 돌렸다.

"막내는 어찌 생각하느냐?"

남궁검의 시선을 받은 남궁우는 차분한 어조로 입을 열었

다.

"틀림없이 무슨 움직임이 있었을 것입니다. 다만 우리들의

눈과 귀가 막혀 있거나 아님 저들의 행사가 그 만큼 은밀해

서 눈치를 채지 못했거나 둘 중의 하나 일 것입니다. 저들이

벌써 이곳을 쳐들어 온다고 해도 하나 이상할 것이 없을 것

입니다. 하니 적이 코앞에 있다고 생각하고 방비를 튼튼히

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다른 곳은 둘째 치더라도 호남성

에 있는 백도의 세력이나마 하나로 모아야 합니다. 이대로

있다가 저들이 불시에 쳐들어 오는 날에는 우리 또한 막기

힘듭니다"

"흠... 나의 생각과 막내의 생각이 일치하는구나. 둘째는 지

금 즉시 호남성의 각 백도 문파들에게 연락을 더욱 긴밀히

하고 유사시에 대비토록 하고 본 세가의 식솔들에게 긴장의

끈을 놓치지 말라 이르도록 해라."

"예, 형님"

남궁호명은 즉시 대답했다. 남궁호명의 대답을 들은 남궁

검은 다시 셋째인 남궁수민(南宮秀敏)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래 우리를 돕기 위해 친구들이 오고 있다고?"

"예, 형님 강북의 황보세가, 하북팽가가 일찌감치 제갈세가

와 합세하여 이미 장강을 넘었다고 합니다. 또한 사천당가에

서도 전임 가주이신 당천호 어르신이 직접 당가의 정예를 이

끌고 오신다고 합니다."

"허, 당숙부님이? 아버님이 아시면 반가우시겠구나... 그래

지금 어디까지 오셨다고 하더냐?"

"어제 막 호남성에 도달했다는 기별이 왔으니 수삼일 내에

도착하실 겁니다."

"허허. 고마운 사람들이다. 우리의 어려움을 모른 채 하지

않고 힘을 보태려고 그 먼길을 달려오다니..."

남궁검은 진실로 고마워 하는 눈빛이었다. 그때 남궁우가

질문을 했다.

"구대문파의 움직임은 어떻습니까?"

그러자 지금껏 밝은 얼굴이었던 남궁수민의 얼굴이 가볍게

찌푸려졌다.

"나도 모르겠다. 그 사람들이 하는 일은 알다가도 모르겠

으니... 도무지 뭐가 급하고 우선 인지 알기나 하는지 원..."

"하하, 그들이야 항상 그랬는걸 뭘 그리 역정을 내나. 그저

그러려니 해야지...기대할 사람들에게 기대를 하게"

남궁호명이 껄걸 웃으며 남궁수민의 어깨를 가볍게 치며

말을 받았다. 가주인 남궁검마저 살며시 미소를 지을 정도였

다. 하지만 막내인 남궁우는 웃음은커녕 긴장된 얼굴로 말을

했다.

"하지만 우리가 살려면 반드시 그들의 힘이 있어야 합니

다."

"그게 무슨 소리냐?"

남궁호명이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그 연유를 물었다. 그러

자 남궁우는 차분하게 그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리 남궁세가가 비록 단일 세력으로는 그 어떤 세력에도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기는 하지만 그 상대가 패천궁이라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패천궁을 단독으로 맞서 싸울 세력은 이

미 전무합니다. 사실 흑도는 이미 패천궁이라는 이름으로 통

일되었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입니다. 패천궁이라는 이름 아

래 모여든 흑도의 문파가 흑도의 대부분에 이르고 여전히 자

신들의 문파를 내세우고 있는 다른 흑도의 문파도 패천궁을

은연중 흑도의 우두머리라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움직

인다는 것은 말 그대로 흑도 전체가 움직이는 것으로 보면

맞을 것입니다. 그러니 호남성의 백도나 나머지 사대세가가

저희를 돕는다해도 이미 그 힘이라는 것은 그들의 힘에 비하

면 모자람이 있습니다. 다만 며칠을 버텨내는 정도라고나 할

까요...."

남궁우의 침착한 설명을 듣는 세 사람은 모두가 침울한 표

정을 지었다. 자신들이 은연중 서로 피해왔던 문제를 막내가

너무 냉철하게 지적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너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느냐?"

"솔직히 저는 하루라도 빨리 남궁가의 식솔을 이끌고 강북

으로 자리를 피했으면 합니다만...."

남궁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궁호명과 남궁수민은 버럭

화를 냈다.

"허허, 무슨 말을...."

"죽으면 죽었지 그런 치욕을 어찌 감당하려고 그러는 것이

냐?"

"그만. 막내의 말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계속해라"

남궁검은 두 동생을 진정시키고 남궁우의 말을 재촉했다.

"당연히 세분 형님이나 아버님, 집안 어르신들은 결단코

그리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허니 그것은 이미 생각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암. 당연하지"

"그렇다면 저희가 할 수 있는 것은 구파일방을 비롯하여

강북의 백도들이 우리를 도와주러 올 때까지 버티는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저들도 이미 저희 세가나 호남성이 차지하

는 비중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정무맹이

라는 것이 만들어졌다고 하니 그들은 우리를 도우러 각파의

고수들을 파견할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과연 그들이 이곳

에 도착할 때까지 버틸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흠, 막내 네 말대로라면 시간이 우리 세가의 운명을 좌우

하겠구나?"

"예, 형님 하지만 나머지 세가들이 돕는다면 그 가능성이

더 커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흠"

남궁검은 잠시 말을 멈추고 눈을 감더니 깊은 생각에 잠겼

다. 굳게 감았던 남궁검이 눈을 뜬것은 남궁세가의 총관을

맡고 있는 백리효(白里曉)가 방으로 뛰어들면서 였다.

"가...가주! 가주!"

비록 그는 무공이나 지략이 뛰어난 사람은 아니지만 사람

이 공명정대(公明正大)하고 매사에 차분하게 일을 처리하여

전대 가주인 남궁상인때부터 큰 신임을 받던 인물이었다. 그

런 그가 저리도 급하게 서두르는 것을 보니 무슨 사단이 일

어나도 난 모양이었다. 노크도 없이 문을 여는 백리효를 보

며 깜짝 놀란 남궁검은 여전히 숨을 할딱이고 있는 그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크...큰일 났습니다. 가주!"

"도대체 무슨일이 난 것입니까?"

남궁명호가 참지 못하고 거듭 물었다.

"패천궁이 드디어 도발을 했다고 합니다"

"흠, 역시 시작이 된었군. 이미 예상은 하고 있었소이다."

남궁검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태평스럽게 말을 했다. 하지

만 이어지는 백리효의 말은 그런 남궁검 뿐만아니라 방안에

있던 모든 이들을 경악케 만들었다.

"그...그것뿐이 아닙니다. 이미 그들은 복건성은 물론이고

광동, 강서, 절강의 모든 대소문파를 굴복시키고 어느새 이곳

호남성의 남단으로 질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뭣이! 지금 무엇이라 하였소?"

"저들이 이미 강남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이곳으로 몰려 오

고 있다고 합니다."

"허허, 이럴 수가... 그래 그 사실은 누가 알려왔소?"

"개방의 남창분타(南昌分舵)에 있던 한 제자가 이곳으로 달

려와서 알려준 사실입니다"

"어서, 어서 그 사람을 이리 데려 오시오"

남궁검은 마음이 급했다. 아직 저들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

아서 경계를 하면서도 적이 안심을 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벌

써 남궁세가를 목적으로 쳐들어 온다하니 어찌 급하지 않겠

는가... 나머지 형제들 또한 남궁검과 같은 심정으로 앉아 있

었다. 잠시 후 밖으로 나갔던 백리효는 온몸에 붕대를 감고

있는 한 사내를 방으로 데리고 왔다.

"이곳에 올 때 상처가 너무 심해 상처부터 돌보게 하였습

니다."

"오, 잘했소. 어서 이곳에 앉게"

붕대의 사내는 자리를 권하는 남궁검을 보고 우선 자신의

소개를 했다.

"저는 개방의 남창분타에 있는 염비(捻匪)라 합니다"

"그래, 고생 많았네. 어찌된 사연인가? 느닷없이 공격이라

니..."

"그것이...저희도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습니다. 복건성에

서 그들을 감시하던 우리 방도들에게서 날아오던 전서구에는

계속해서 아무런 이상징후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틀

전 밤에 갑자기 공격을 당해서 분타주님을 비롯하여 대부분

의 방도가 죽거나 뿔뿔히 흩어졌습니다. 분타주님이 돌아가

시기 전에 몇몇은 무당파로 보내고 저는 이곳으로 보내셨습

니다."

"허허, 이럴수가...."

남궁검은 일순 할말을 잃고 그를 멍하니 쳐다보았는데 그

런 그에게 염비는 더욱더 충격적인 말을 했다.

"오다가 이곳저곳에서 소식을 들으니 거의 강남의 크고 작

은 거의 모든 백도문파들이 하룻밤만에 모조리 몰살을 당하

거나 굴복했다고 합니다"

"......."

남궁검은 이런 상황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하지만 모든 상황을 생각하고 있던 남궁우

는 달랐다. 그는 남궁검을 대신해 자신이 의문시하던 것을

재빠르게 물었다.

"공격을 당한 것이 이틀전이라 하였나?"

"예"

"그들이 이곳을 온다고...?"

"틀림없이 호남성을 향하고 있다 들었습니다."

"흠....그렇단 말이지...."

남궁우는 침묵을 지키고 있는 남궁검에게 말을 했다.

"형님, 지금이라도 당장 호남성의 모든 백도문파에 연락하

여 이곳으로 모이라고 하십시오. 작은 문차들은 힘도 써보지

못하고 당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문파라 하더라도 이곳에

모여 함께 대응한다면 틀림없이 큰 힘이 될 것입니다."

"막내 말이 옳기는 하지만 이미 저들은 이곳으로 출발했다

하지 않느냐? 이틀이라면 이미 호남성의 남쪽은 이미 끝장이

났다고 보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 저들은 호남성을 본격적으로 공략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남궁우는 단언하듯 말을 했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남궁수민이 의아하다는 듯이 말을 했다.

"아니 이틀이 지났는데 그 무슨 소리냐?"

"저들이 그렇게 갑자기 기습을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들의 움직임에 대한 정보가 전혀 잡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에는 가장 먼저 화를 당한 곳이 패천궁에 근접해 있

는 개방의 분타라고 생각이 드는 군요. 그들이 아무리 은밀

하게 행동을 하더라도 한계가 있는 법인데 개방에서 그것을

모를 리가 없지요. 저라도 당연히 개방을 먼저 치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계속 잘못된 정보를 전 중원에 흘리고 일시에

기습을 하여 백도의 문파들을 굴복시켰을 것입니다."

"허면 이곳은 왜 오지 않은 것이지?"

남궁명호의 말에 남궁우는 살짝 웃음을 보였다.

"우리는 그리 약하지 않습니다. 또한 호남은 개방보다는

우리의 정보망이 더 빠릅니다."

"하긴..."

"암튼 일시에 호남성을 제외한 강남의 모든 곳을 제압한

그들의 다음 목표가 우리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지금까

지 고만고만한 문파를 상대한 전력으로 우리를 치는 우를 범

하진 않을 것입니다. 게다가 저들이 준동한 것은 더 이상 비

밀이 아닙니다. 아니 저들이 비밀로 만들려는 시도를 안 했

다고 보는 것이 맞겠군요."

"그건 또 무슨 소리지"

"만약 그들이 마음만 먹었다면 여기 이 친구는 물론이고

남창의 모든 개방방도들은 살아남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

만 세간의 소문이라는 것을 막을 수도 없고 이제는 그들이

원했던 것을 다 얻었기 때문에 도망치는 자들까지 쫓을 필요

까지는 없었을 것입니다."

남궁우가 여기 까지 말을 했을 때 방안으로 두 사람의 신

형이 보였다. 조금전까지 죽림에 있었던 남궁상인과 남궁진

이었다. 어느새 총관인 백리효가 가서 사안의 위급함을 알린

것이다. 남궁상인이 들어서자 좌중에 앉아있던 형제들이 분

분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서오십시오. 아버님"

"내 얘기는 총관에게 대충 들었다. 원했던 것을 얻다니? 막

내는 하던 얘기를 마저 해 보거라"

남궁상인은 남궁검이 내준 상석에 앉으며 남궁우의 말을

재촉했다.

"예, 아버님, 저들은 우선 시간을 벌자고 했던 것입니다"

"시간?"

"예, 저들이 비밀리에 호남을 제외한 다른 성을 제압하고

이곳으로 온다면 미쳐 예상을 하지 못한 강북의 백도문파들

이 부랴부랴 이곳으로 각파의 제자들을 파견한다고 해도 이

미 우리를 비롯하여 호남성, 아니 강남의 전 세력이 그들 손

에 넘어간다고 보시면 됩니다. 강을 두고 그들과 대치하는

것과 우리가 살아남은 것은 그 위치로 보아 천지차이가 될

것입니다. 만약 저들이 공공연히 움직였다면 벌써 강북의 백

도에서 지원한 고수들이 이곳에 진을 치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에서야 그들의 움직임이 파악된 것을 감안하면

아무리 빨라도 오일 안에는 지원군이 오기는 힘들 것입니다.

가까운 곳에 무당이 있지만 그들은 절대로 혼자서는 움직이

지 않습니다. 만약에 혼자 움직여서 그들의 정예가 피해를

본다면 바로 다음이 그들 차례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다

른 사람들과 행동을 같이 할 것입니다. 그러니 오일 안에 지

원군이 온다는 것은 아예 생각을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들은 바로 쳐들어 올 것이 아니냐?"

남궁명호가 다시 한번 질문을 했다. 남궁우는 혀를 들어

입술에 살짝 물기를 묻히더니 다시금 말을 이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우리 가문은 약하지 않습니다. 저들

이 섣불리 우리에게 덤비려 한다면 그들도 상당한 피해를 감

수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이들을 주도하는 패천궁에서는 그

들의 피해를 최소로 줄이려 할 것입니다. 당연히 저들은 강

서와 광동을 쳤던 병력들을 대기시키고 절강성을 치러갔던

병력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다 합쳐지는 날 그

날이 바로 모아진 여러 흑도의 병력을 앞세우고 패천궁이 호

남성으로 들어오는 날이 될 것입니다. 이미 시간은 확보를

했고 전력이 최고조에 오르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흠, 과연 막내의 생각에 일리는 있구나. 그래 우리는 어찌

해야 하느냐?"

남궁상인은 막내아들인 남궁우의 말에 공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그런 남궁상인의 말에 남궁우는 별다른 대비책을 말

하지는 못했다.

"시간입니다. 저희가 오일을 버텨낸다면 우리는 살 수 있

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다면 저희는 이곳에서 죽게될 것입니

다. 사실 이러한 가정도 패천궁에서 훗날 있을 강북의 구파

일방을 비롯한 백도세의 싸움을 염려하여 최선을 다하지 않

는다는 가정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만일 저들이 어느 정도

의 희생을 감수하고 이곳에 힘을 집중한다면 지원군이 와

도... 필...패입니다."

"그렇겠지..."

예상은 했다는 듯이 남궁상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하지

만 그는 곧 안색을 고치고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단호

한 어조로 말을 했다.

"여기서 우리 가문이 끝난다 해도 피하지 않는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가문의 명예를 지킨다. 우선 호남성의 백도세

를 이곳으로 모으고 구파일방에도 전서구를 띄어라. 늦은 감

이 있지만 그래도 그들의 도움이 절실하니.... 우리를 도와주

기 위해 오는 사대세가들은 언제 이곳에 당도하느냐?"

"늦어도 내일 밤이면 당도할 것입니다."

"흠.. 그들이라면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대접에 소홀

함이 없도록 해라."

"예, 아버님"

'후... 내 대에서 이런 시련이 올 줄이야....허나...'

남궁상인의 꽉다문 입에서 검성이라 일컬어지는 그의 굳은

의지를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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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드네요...겨우 감기가 사그러드는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여전히 기침과...고열이 ...

감기 조심하세요....쿨럭

"흠, 남궁가의 무인들이 약 삼백명이고 팽가와 황보가의

인원이 도합 백칠십, 그리고 당문에서도 삼십이 온다고 하니

우리 오대세가의 인원은 총 오백입니다. 그리고 이곳으로 집

결한 백도의 무인이 삼백, 이렇게 해서 현재 우리의 병력은

총 팔백명 정도가 됩니다."

남궁검은 우선 현재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병력을 헤아려

알려줬다. 사실 호남성의 백도무인들의 수는 이보다 몇 배에

달했지만 대부분이 겁을 먹고 도망을 쳤고 그나마 몇몇 의기

가 있는 문파에서 이곳으로 왔기에 겨우 맞출 수 있는 숫자

였다.

"하지만 저들의 수는 그 세배가 넘는다고 합니다."

청룡문(靑龍門)의 문주 상방충(祥方春)이 침울한 어조로 말

을 했다. 그러자 조용히 대답을 하는 중년인이 있었다.

"그 수가 많다고 싸움에서 항상 이기는 법은 아닙니다. 적

은 수로도 얼마든지 많은 적을 막을 수도, 이길 수도 있습니

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중인들의 시선이 그에게 모여졌다. 중년인은 하얀 백삼을

입고 머리에 문사건(文士巾)을 쓴 제갈세가의 가주인 제갈공

(諸葛孔)이었다.

지금 세심각에는 어제 밤과는 다르게 많은 인물들이 모여

있었다. 어제 밤에 급히 호남성의 각 백도의 문파에 전갈을

보낸 이후 남궁세가로 몇몇 백도문파의 인물들이 몰려왔고,

마침내 오후 늦게 강북에서 출발한 삼대세가의 정예들이 남

궁세가로 들어왔다. 그 면면을 살펴보면 황보세가에서 가주

황보천악과 그의 자녀들인 소패왕(小覇王) 황보장(皇甫掌)과

벽력권(霹靂拳) 황보권(皇甫拳), 장중보옥(掌中寶玉)인 황보영

(皇甫永)을 비롯하여 세가의 정예 백 여명을 이끌고 왔고, 하

북팽가에서는 가주인 팽덕신(彭德信)의 아우인 팽언문(彭彦

文)이 가주를 대신하여 가주의 세 아들 중 몸이 약한 둘째

팽윤(彭倫)울 제외하고 첫째인 팽만호((彭滿瑚)와 막내인 팽

후(彭候) 그리고 자신의 아들인 팽도정(彭道正)과 딸이 팽조

윤(彭照潤)을 비롯하여 팽가의 무인 칠십 여명을 이끌고 왔

다. 옛날부터 무(武)보다는 문(文)에 뛰어난 능력을 보였던 제

갈세가에서는 가주인 제갈공과 몇몇 가신이 따라왔다. 패천

궁의 갑작스런 움직임에 적지 않게 당황하고 있던 남궁세가

와 남궁세가에 모여든 호남성의 백도인들은 이들의 합세에

천군만마를 얻은 듯 기뻐했다.

그리고 지금 밤 늦은 시각까지도 각 문파를 대표하는 사람

들이 이곳 세심각에 모여 향후 앞날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럼 좋은 방도가 있겠습니까?"

회의를 주관하던 남궁검은 제갈세가의 가주가 말을 꺼내자

반색을 하며 말을 했다. 제갈세가 하면 각종 병법(兵法)이나

진법(陣法)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곳, 뭔가 좋은 방법이

있을 듯 싶었다.

"일단 저들이 더 이상 은밀하게 행동하지 않고 공공연히

이곳으로 모여든다고 하지만 관부의 눈을 의식해서 한꺼번에

이동은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모이기 전에

그 길목을 지켰다가 각개격파(各個擊破)를 해야 할 것입니

다."

"흠, 각개격파라..."

"하지만 우리의 병력을 분산시키는 것도 위험한 일이 아닙

니까?"

당문우가 은근히 반대의 의견을 내놓았다. 하지만 제갈공

의 말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많은 수를 이용해 그들을 치자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소

수로도 그들을 압도 할 수 있는 고수들로만 두어 조를 만들

어 적의 혼란을 이끌자는 것입니다. 이 방법으로 적에게 큰

타격을 입힐 수는 없겠지만 그 동안 승리만 해왔던 저들의

사기를 약간이라도 꺾을 수 있다면 큰 성과라 하겠지요. 그

렇게 저들의 사기를 조금씩 꺾은 연후에 비로소 진정한 싸움

은 바로 이곳에서 있을 것입니다."

"흠..."

제갈공의 말이 과히 나쁘지 않기에 중인들은 대체로 수긍

하는 눈치를 보였다.

"그렇다면 누구를 보내면 좋겠소이까? 나라도 좋다면 나서

보겠소."

오호문(五虎門)의 문주인 사공도(仕公道)가 벌떡 일어나 호

기롭게 외쳤다. 하지만 남궁검은 그런 그를 제지하고 나섰다.

"하하, 사공 문주의 의기는 익히 알지만 그런 일에까지 나

서야 체면이 안서지요. 문주께서는 이곳에 남아 많은 백도의

제자들을 책임지셔야 하는 막중한 책임이 있지 않습니까?"

"험, 제가 무슨 실력이 있다고... 하지만 가주께서 그리 말

씀하시니...."

사공도는 아쉽다는 듯이 자리에 앉았다. 그런 모습을 보며

빙긋이 웃던 제갈공이 다시 말을 이었다.

"우선 다른 어떤 무공실력보다는 경공실력이 뛰어나야 할

것입니다. 이번 작전은 적을 괴롭히자는 것이지 그들과 맞부

쳐 그로 인해 우리가 피해를 보자는 것이 아닙니다. 다소

무공이 떨어지더라도 경공이 훌륭한 사람을 뽑아야 할 것입

니다."

"그렇다면 우리 영아를 추천하겠오. 비록 계집아이 이기는

하지만 그 오빠들 보다 경공이 탁월하고 검법에도 나름대로

조예가 있으니 쓸모가 있을 게요."

황보세가의 가주인 황보천악이 그 특유의 우렁찬 목소리로

자신의 딸인 황보영을 거명했다. 하북팽가를 이끌고 온 팽언

문도 지지 않고 자신의 두 조카를 추천했다. 그러자 방안에

있던 사람들은 너도나도 자신과 관계된 사문의 제자를 추천

하고 나섰다. 기습을 맡게될 습격조의 선발에 대한 말이 많

아지자 좌중은 상당히 소란스러웠다. 그때 남궁세가의 총관

을 맡고 있는 백리효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가주님, 정문을 지키는 자들이 사천(四川)에서 출발한 당

문의 무인들이 막 도착했음을 알려왔습니다"

"오, 알았네. 내 금방 나감세"

남궁검은 허겁지겁 정문으로 뛰어갔다. 당문이라면 자신의

아버지와 절친한 친구인 당천호가 직접 식솔을 이끌고 온다

고 하지 않았던가? 감히 무례를 범할 수가 없었다. 남궁검이

막 연무장에 접어들 때 일단의 무리들이 남궁가의 무인들의

안내를 받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그중 무리의 한 가운데에서

걸어오는 초로의 노인이 있었다. 이 노인이 그다지 크지 않

은 키에 자그마한 체구를 보고 그저 그런 노인으로 취급했다

가는 감히 살아남을 자가 없다고 하는 암기의 제왕 당천호였

다. 마중을 나가던 일행은 모두가 허리를 굽히고 인사를 했

다. 그중 남궁검은 재빨리 앞으로 나가 인사를 하며 당문의

일행을 반겼다.

"어서 오십시오. 당숙부님. 먼길에 고생 많으셨습니다"

"허허, 고생은 무슨, 그래 자네가 마음 고생이 심하겠네 그

려...."

"아닙니다. 숙부님과 당문의 친구들이 이리 와주시니 소질,

천군만마를 얻은 듯 합니다"

"하하, 어디 우리뿐인가. 내 예상대로 삼대세가에서도 왔구

만. 그래, 자들 지냈는가?"

"예, 어르신. 평안(平安) 하셨는지요"

당천호가 남궁검의 뒤에 서 있는 삼대세가의 사람들에게

아는 체를 하자 그들 또한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 그들의 인

사를 웃으면서 받던 당천호는 고개를 돌려 남궁검을 바라보

았다.

"흠, 그건 그렇고 자네 부친은 어디 있는가? 이 친구가 먼

곳에서 온 나를 괄시하는 것은 아닐 테고...."

당천호가 짐짓 노여운 어투로 말을 하자마자 연무장 한켠

에서 커다란 음성이 들려왔다.

"하하하. 누가 자네를 무시한다고 그러시나. 나는 여기 이

미 나와 있었다네..."

남궁상인은 어느새 일행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

자 당천호의 뒤에 서 있던 당문성이 인사를 했다.

"소질이 백부님께 인사를 드립니다"

"아, 문성이 자네도 왔는가?"

"예, 백부님"

당문성과 남궁상인이 반갑게 인사를 하고 있는데 그 모양

을 보는 당천호는 무엇이 못 마땅한지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

다. 그러더니 자신의 아들을 돌아보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

다.

"내가 자식을 잘못 키웠어...."

"옛! 아버님 그... 무슨 말씀 이신지..."

당문성은 일순 자신이 무슨 실수를 저지른 것은 아닌지 긴

장을 했다. 그런 당문성을 보며 당천호는 천연덕스럽게 말을

이었다.

"이 녀석아! 저기 남궁세가의 가주는 나보고 당숙부라고

부르고 네가 저 친구를 백부라고 부른다면 졸지에 내가 저

친구의 아래가 되는 것이 아니더냐. 너도 당연히 남궁백부가

아니라 숙부라 불러야 하지 않더냐. 그 덕에 나만 졸지에 저

친구의 아랫자리가 되 버리지 않았느냐?"

".........."

당문성은 하도 황당해서 그저 입맛만 다시고 있었다.

"하하하, 이보게 아우, 인사는 그쯤 했으면 됐고 이제 이곳

은 자식들에게 맡기고 자네는 나와 저리 가세. 자네가 온다

고 하여 내가 특별히 소흥가반주(紹興加飯酒)를 준비해 뒀다

네. 오랜만에 한잔함이 어떠한가?."

"흥, 아우는 무슨... 소흥가반주라... 좋지. 가세나"

가장 어른인 당천호와 남궁상인이 사라지자 사람들은 그제

서야 당문의 나머지 일행들과 반가이 인사를 했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이런저런 환담을 나누다가 당문의 무사들은 따

로 전각을 배정 받아 여장을 풀었고 당문성은 곧장 세심각으

로 들어가 그간의 진행 상황을 설명 받았다.

"호, 좋은 생각입니다. 그런 역할이라면 우리 당가의 사람

들이 빠질 수 없지요. 어찌 보면 우리에게 가장 알맞은 역할

아니겠습니까?"

"하하, 그리 말씀해주시니 한결 마음이 가볍소이다."

"자. 그럼 누구를 습격조에 포함시킬지 결정을 하도록 합

시다"

호남성에는 중원에서 알아주는 유명한 명물이 두 개가 있

으니 하나는 동정호요 다른 하나는 악양루(岳陽樓)였다. 동정

호는 중국에서 두 번째로 넓은 담수호로 호수의 면적은 계절

에 따라 큰 차이가 날 정도로 수량의 변화가 많다. 춘추(春

秋) 전국시대(戰國時代) 이래 역대의 개간과 수리공사로 해서

커다란 호수가 되었는데, 호남성내의 농수(濃水), 상강(湘江),

원수(沅水), 자수(資水)의 4대 하천이 흘러들었다가 양자강으

로 흘러 나간다. 그러나 엄격히 이야기하자면 호수가 아니라

장강의 줄기라고 할 수 있는데 장강이 물이 들어오고 나가고

있으며 단지 그 형태가 호수처럼 보일 뿐이다. 동정호 안에

는 군산(君山)이라 부르는 조그만 섬이 떠 있어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평상시라면 수 없이 많은 사람들로 붐벼야 하는 호반이었

지만 최근 들어 사람의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었다. 패

천궁의 공격이 임박했다는 것은 무인들뿐 아니라 세간에도

잘 알려져 있다. 무인들이 일반 백성을 공격할 리는 없었지

만 혹시나 하는 두려움은 남궁세가가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

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을 이곳에서 멀어지게 만

드는 원인이 되었다. 그런데 한산하기만 했던 동정호 주변에

새벽부터 몇 명의 무인들이 모습을 보였다.

"이야... 멋지구나...사람들이 동정호, 동정호 하는 이유가

있었구만 그래...."

그들은 무리를 지어 이동을 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유

난히 덩치가 커서 어디를 가든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사내

가 연신 고개를 움직이며 감탄사를 내뱉고 있었다. 그러자

옆에 걸어가던 또 다른 사내가 대뜸 핀잔을 주었는데 그 사

내 역시 만만찮은 덩치를 지니고 있었다.

"하참, 형님 그만 좀 두리번거리쇼. 동정호에 처음 온 것이

뭐 자랑이라고 그렇게 티를 내시는거요. 창피한 줄도 모르

고..."

"하하하. 그러는 너는 마치 와본 것처럼 말을 하는 구나.

이 녀석아. 남자란 모름지기 자기의 생각을 확실하게 표현할

줄 알아야 하는 법이다. 배우지 않은 것도 아니고 안 와봐서

모르는 게 뭐가 창피하단 말이냐...."

사내는 동생인 듯한 사내의 등짝을 솥뚜껑 만한 손으로 내

리치며 껄껄 웃었다. 그러자 등에서 오는 통증에 인상을 찌

푸리던 사내는 못 말리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좀 그만해요. 하북팽가란 이름에 걸 맞는 행동을

좀 보입시다."

"에라이 이놈아. 팽가하면 딱 떠오르는 게 무어냐, 의리와

뚝심 아니더냐. 그런걸 지니고 있는 자는 그런 자잘한 것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러니 너도 저 경치나 구경하거

라. 얼마나 멋지냐? 우리 하북에서는 이만한 경치를 구경하

기 힘들지 않더냐?"

"에휴, 난 잘 모르겠수. 형님이나 실컷 구경 하시구랴"

"사내자식이 꿍시렁 거리기는... 아무튼 오늘은 나 팽만호

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동정호도 구경하고... 눈 호강을 하는

구나. 하하하"

"내 미치고 말지..."

결국 말리는 것을 포기했는지 사내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

들고 말았다.

"호호, 막내가 아예 포기해. 큰 오라버니의 무대포를 누가

말려"

이들의 다툼을 지켜보던 황보세가의 여식인 황보영이 깔깔

대며 다가왔다. 나이는 이제 갓 스물이 된 듯 보였는데 황색

경장을 차려입고 등에는 검을 매고 있는 모습이 제법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황보세가나 하북팽가는 그 거리도 가까운데

다가 가주들이 성정이 비슷하고 연배가 비슷하여 서로 호형

호제(呼兄呼弟)하는 사이였다. 당연히 그들의 자녀들 또한 잘

알고 지내며 한 형제처럼 친하게 지냈다. 특히 장차 팽가의

뒤를 이을 팽문호와 황보영은 이미 장래를 약속했다는 소리

가 나오고 있었다. 그런 황보영이 나타나자 팽만호의 낯빛이

달라졌다.

"누님, 어서 큰 형님 좀 말려봐요. 큰 형님이 그래도 말을

듣는 사람은 아버님하고 누님뿐이지 않소?"

"호호, 나둬. 보기 좋은데 뭘, 나도 동정호를 처음 보는데...

정말 소문 대로네."

"하하하. 거봐라. 네가 너무 과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라

니까!"

"헐.......누가...천생연분(天生緣分)아니랄까봐....벌써부터..."

"천생연분이라기보다는 고래심줄같은 인연이라고 보는게

옳을 게다."

지나가는 말투로 황보장이 한 마디 더 거들었다. 팽후는

황보영마저 자신의 예상과는 다르게 엉뚱한 반응을 보이자

이제는 정말 포기하고 말았다. 그런 세사람의 아웅다웅하는

모습을 보는 당가의 무인들과 남궁진은 그저 키득키득 웃을

뿐이었다. 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도무지 싸움을 하러

온 사람들이 아니라 어디 유람을 나오는 사람들처럼 한가하

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앞으로 있을 싸움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잘 알아서 탈이었다. 그

들은 어쩌면 이곳을 살아서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이 없을 지

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중원에서 손꼽

히는 가문의 인물들, 중원의 오대세가라는 이름이 그들로 하

여금 이토록 여유 있는 모습을 하게 만들었다. 과연 허명(虛

名)은 없었다.

일곱명의 사내와 한 명의 여자. 그들은 당소기, 소명, 소걸

형제들 세명과 팽가의 팽문호, 후 형제. 황보세가의 대공자

인 황보장과 황보영 이었다. 그리고 이들을 이끌고 앞장서서

가는 인물은 남궁가의 적자인 남궁진 이었다. 습격조는 남궁

세가로 밀려오는 적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그렇게 아침 일찍

동정호를 우회하여 길을 떠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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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나깨나 감기 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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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여. 이소설 퍼오는 라니안 소설담당 '쎄쎄쎄'라고 합니다.

일부 독자분들이 제가 작가님인줄 알고 메일을 보내시는데 전 소설을

그저 퍼오는 사람일뿐... 작가님이 아닙니다. 메일 보내지 마세여.

작가님 메일 주소는 [email protected] 요겁니다.

앞으로 궁귀검신에 대해서 물어볼것이 있다면 저리로 메일 보내세염^^

감사합니다. (뭐가 감사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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