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9장 (23/32)

'하늘도 무심하시지... 난 왜 만나는 영감마다 이리 지독한

사람들만 걸리는 것 이라냐? 하긴 친 할배부터 그러니...젠

장...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다고....'

구양풍을 업고 정주로 돌아가고 있는 소문은 자신의 처지

가 너무도 한심했다. 끝까지 달라붙는 영감을 종내 물리치지

못한 자신의 모질지 못한 마음을 탓하며 한숨만 푹푹 쉬었

다. 벌써 이틀째였다.

숭산에 올 때는 간간히 경공을 써가며 반나절만에 도착했

건만 동료들이 있는 정주로 돌아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두시진 마다 노인의 내상치료를 도와야 했고, 다시 길을 떠

날라 치면 배째라는 식으로 누워버리는 노인을 항상 등에 업

고 가야 했다. 자신이 보기엔 틀림없이 걸을 정도로 상태가

좋아졌건만(사실 상처를 심하게 입긴 했지만) 노인은 악착같

이 소문의 등에 올라타려고 하는 것이다.

"아직 멀었나?"

"........."

"흠, 그리 천천히 가니 더 늦어지는 것이 아닌가? 길을 재

촉 하세나"

이건 완전히 주객(主客)이 바뀐 상황이었다. 애초에 이 영

감을 구하는 게 아니었다. 소문은 이틀 전 일만 생각하면 울

화통이 터졌다.

"난 구양풍이라 한다네. 자네 이름은 무엇인가?"

"을지소문이라고 합니다."

"을지소문이라 보아하니 자넨 중원인이 아니구만"

"예?"

"허허, 아닐세"

노인은 대뜸 소문이 중원인이 아님을 알아보았다.

'이상하단 말야... 만나는 사람마다 내가 중원인이 아닌걸

용케도 알아보네...'

소문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노인의 입장

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이미 실력을 보았으니 소문

이 무공을 익힌 무림인이 틀림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순간 본인임을 믿지는 못 하더라도 최소한의

반응은 와야 했다. 구양풍이라는 이름은 다른 곳은 몰라도

중원에서 특히 무림에서 그 정도의 영향력은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소문은 생전 처음 들어본다는 듯 전혀 반응이 없었

다.

"예 조선에서 왔습니다."

"오, 조선! 어쩐지 자네 활솜씨가 보통이 아니더만... 옛부

터 그 지방의 사람들이 활을 잘 쏘기로 유명했지"

"그래,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차차 나아지겠지. 이게 금방 쾌유될 만큼 가벼운 상처가

아니라서...매일 같이 운기조식(運氣調息)을 한다해도 족히 반

년은 고생해야 무공을 되찾을 듯 싶으이"

"그런데 어쩌다가 수하들에게 배반을 당하셨습니까?"

소문은 조심스럽게 자신이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았다. 노

인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다.

"아무리 착한 개라도 오랫동안 묶어 놓으면 자유롭게 움직

이고자 사나워 진다는 생각을 못한 나의 불찰이지... 다 내

잘못 이라네..."

"그렇군요. 허면 인제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어디 주무

실 곳이라도 있으시면 제가 어찌 힘을 써보지요"

"잠잘 곳이야 당장 여기서 누워서 자도 되는 것 아닌가?"

'에그 며칠동안 잠잠하다 했다'

소문은 또다시 헛나온 자신의 말을 탓하며 급히 정정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어디 따로 가실 곳이 있느냐.. 이말 입

니다."

"흠, 그게 그런 뜻이었나? 당장 내가 거처할 곳은 마땅치가

않네 그려... 내상도 치료하려면 누군가의 도움도 필요하고..."

노인은 대답을 하면서 슬쩍 소문을 쳐다보았다. 뭔가 간절

히 바라는 눈빛, 그런 노인의 눈빛에서 소문은 문득 불안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해서 재빨리 선수를 쳤다.

"아, 저라도 노인을 도와드렸으면 좋겠지만 저는 그저 표

국에 매여 있는 쟁자수라...안타까울 뿐입니다."

"오 그랬나. 그럼 나도 그곳에서 잠시 일을 하면 되겠구먼.

그 정도의 일이면 지금이라도 할 수 있지. 그리고 내가 이래

뵈도 중원의 지리는 손바닥 보듯이 한다네. 표국의 국주가

누구인지 몰라도 틀림없이 고용해 줄 것이야.."

"예?"

'아니 뭐 이리 황당한 영감탱이가 있어. 표국이 순 자기 편

의를 위해 있는 줄 아나...'

소문은 기도 안찼다. 코웃음을 치며 말을 했다. 하지만 말

로 노인을 당할 순 없었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표국에서는 아무나 고용하지 않

습니다"

"아니 왜 아무나인가? 자네가 있지 않은가?"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소문은 순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이 뭘 어쩐다고...

"자네가 나를 데리고 가면 다 해결 될 것이 아닌가? 나의

신분을 자네가 보장해 준다면...음 그래 먼 친척이라 하면 되

겠구만...."

결국 자신의 불길한 생각이 맞아 들어갔다. 정말 어처구니

없는 영감이었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혼자서 북치

고 장구치며 자신을 얼러대는 것이 아닌가?

"그건 안됩니다. 저는 곧 사천으로 떠나야 합니다. 영감님

을 도와주시고 싶지만 도와 드릴 수가 없는 입장입니다."

"도와주실 필요가 있지... 자네는 나를 도와 주셔야 하네"

"...무슨..."

노인은 소문의 어리숙한 말투를 흉내내며 영문을 몰라하는

소문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내 비록 지금은 이런 꼴이 됐지만 한때는 천하가 좁다고

세상을 내려다보며 살던 사람이었다네. 헌데 자네가 알다시

피 생명의 위협을 받고 목숨을 포기하는 상황까지 이르었네.

나는 나름대로 멋지게 죽고 싶었지. 비굴하지 않고 끝까지

나 자신의 모습을 지키며 당당하게... 하지만 자네가 나를 구

함으로써 이런 나의 의지는 다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네. 지

금 자네의 도움을 받아 내상을 치유하지 않으면 비록 목숨은

구한다 하더라도 평생 수련해온 무공을 잃고 평범한 노인으

로 돌아갈 것이네. 이제껏 살아오면서 남의 도움이란 것을

모르고 홀로 고고하게 버텨온 나를 이리 구차하게 만든 것은

자네이니 자네는 내가 예전의 모습을 찾도록 도와줄 의무가

있는 것이네. 만약 그리하기 싫다면 자네가 지금 나를 이 자

리에서 죽여주던지 아님 도망간 저들을 불러 와서 나를 죽이

라고 하게. 그 길만이 나의 명예를 지키는 길이니..."

"....."

사람이 너무 황당하면 말이 안나오는 법이다. 지금 소문의

심정이 그랬다.

'당당(堂堂)? 고고(孤高)? 좋아하네... 말이나 못하면......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었더니 보따리 내 놓으라는 말이 있다더

니...애초에 물에 빠졌을 때 발로 밟아 못나오게 해야 되는

건데...'

열 번을 죽었다 깨어나더라도 노인을 데리고 가고 싶은 마

음은 눈꼽 만큼도 없었다. 생각만 아무리 그러면 무엇을 하

는가. 결국 소문은 노인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같이 가

기 싫으면 자기를 죽여 달라는데... 무에 할 말이 있겠는가...

하지만 소문도 믿는 구석이 있었다. 아무리 노인이 따라오고

싶어도 표국에서 고용을 안하면 무슨 수로 자신을 따라 오겠

는가? 더구나 사람을 고용하는게 까다롭기로 유명한 천리표

국이었다. 이렇게 해서 노인과 소문의 동행은 시작되었는데

그때부터 소문의 고생문은 훤히 열린 것이다.

그렇게 반나절을 노인과 더 씨름을 하고서야 간신히 동료

들이 기다리고 있는 태화전장(太和錢莊)에 도착 할 수 있었

다. 소문은 가장 먼저 강량을 찾아가 인사를 했다. 강량은 소

문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다녀왔습니다. 오는 길에 잠시 일이 생겨 조금 지체했습

니다"

"아니네. 제 시간에 제대로 왔네. 표행단이 모레 떠나기로

했으니 아직 시간의 여유는 있는 셈이지...그래 볼일은 무사

히 마쳤는가?"

"예, 어르신 덕에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강량은 소문의 말에 여유 있는 웃음을 지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옆에 서 있는 노인을 보고는 누구인지

궁금하다는 듯이 소문을 쳐다보았다.

"옆에 서 계신 분은 누구신가?"

"그게, 저..."

소문이 머뭇거리며 말을 하려했지만 그런 소문에 앞서 노

인은 재빨리 강량에게 인사를 했다.

"노부는 을지굉(乙支宏)이라 하오이다. 여기 있는 소문의

먼 친척 할아버지뻘이 되는데 오래 전부터 정주 근처에서 살

고 있었지요. 헌데 어제 소문이 저를 찾아와서 이렇게 만나

게 되었소이다. 어찌나 반갑던지...허허허"

"아, 그러시군요. 저는 강량이라고 소문과 같이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반갑소이다. 내 소문에게서 노인의 말을 많이 들었는데

우리 소문이게 무척 잘해주셨다지요? 고마울 뿐입니다."

"무슨 말씀을요, 제가 해준게 무엇이 있다고... 그런데 어찌

이곳까지 오셨는지...?"

강량은 노인이 이곳까지 따라온 이유가 궁금했다.

"후.... 중원에 혈혈단신(孑孑單身)으로 넘어와 지금까지 외

롭게 혼자 살았소이다. 하지만 짐승도 죽을때가 되면 고향을

그린다고 하는 법이라..(首邱初心) 나이가 들면 고향도 생각

나는 법이고, 자연히 핏줄도 그리워지는 법이 아니겠소. 해서

이참에 소문을 따라 고향에 한번 다녀올까 하여 이리 길을

나섰소이다."

노인은 강량의 질문에 어두운 얼굴을 하고 대답을 했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인 강량은 노인의 말이 십분 이해가 갔

다.

"허, 물론 그 심정을 제가 이해하지 못하지는 않지만, 그러

나 소문은 우선 이곳 일을 마쳐야..."

강량은 난처하다는 듯이 말을 했다. 하지만 노인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을 받았다.

"허허, 그거야 당연하지요. 장부(丈夫)가 한번 일을 시작했

으면 그 끝을 봐야 하는 법. 당연히 지금까지 소문이 하던

일을 모두 마치고 나서 돌아가는 것이 옳겠지요. 노부는 다

만 그런 소문을 옆에서 지켜보며 돌보겠다는 것이외다. 알다

시피 저 녀석이 아직도 이곳에 익숙치가 않아 보여 영 마음

에 걸리기도 하고 해서..."

노인은 천역덕스럽게 거짓말을 했다. 어찌나 자연스럽게

말이 나오는지 옆에서 듣고 있는 소문마저도 진짜가 아닐까

의심이 갈 정도였다. 그러니 그 속사정을 알길 없는 강량은

이미 그 속임수에 넘어간지 오래였다.

'나참, 기가 막히는구나...둘러대는 것도 유분수지...이러다가

꼼짝없이 할아버지 한 명 생기겠구나...'

소문은 하두 어이가 없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멍청히

서 있었다. 사실 그가 여기서 아니라고 해봤자 노인은 물론

자기마저 이상한 놈이 되 버리기 때문에 애초에 입을 다물고

그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을 뿐이었다.

"흠, 소문의 할아버님이 그리 말하시면 제가 드릴 말씀이

없군요. 하지만 이것은 제 소관 밖이니 우리 표행단을 이끄

는 표두께 전후 사정을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허허, 고마운 일이외다. 잘 부탁드리오"

소문의 기대와는 달리 안으로 들어갔던 강량은 환한 얼굴

로 나오더니 노인의 손을 잡았다.

"잘되었습니다. 표두께서도 기꺼이 허락을 하셨습니다. 지

난번 소문의 공이 컸지만 해줄 것이 없었는데 잘됐다고 하십

니다. 허허, 저도 제 연배의 길동무가 생겨서 기분이 좋습니

다."

"하하, 이리 고마울 데가..."

'.....참으로 고맙기도 하겠다.....나는 어쩌라고...'

이틀이 지나고 표행단은 다시 북경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수레에 하나 가득 짐을 실어서 올 때와는 달리 빈 손으로 떠

나는 길인지라 부담도 덜 했고, 하루에 이동하는 거리 또한

빨랐다. 자칭 을지광은 어느새 표행단의 한 사람으로 자리잡

아 가고 있었다. 표두와 인사를 나눌 때만 해도 그저 소문의

할아버지의 위치로 손님 대접을 받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서 뛰어난 언변과 재치로 쟁자수는 물론 표사들의 인심도 후

하게 얻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을지노인의 모습이 가증스럽

기만 했다. 지금도 한참 강량과 어울려 환담(歡談)을 나누고

있는데 소문이 그곳을 바라보자 아는체를 했다. 소문은 자신

을 바라보며 눈을 찡긋거리는 자칭 을지굉이라는 노인이 그

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다.

지금 실패라고 했는가? 냉악!"

"죄송합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방해자가 있어서.... 책임을

물어주십시오"

냉악은 지금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바닥에 깊게 쳐박고는 죄

를 청하고 이었다. 그런 냉악의 정면에는 온화한 얼굴을 하

고 있는 중년인이 태사의에 깊게 몸을 누이고 깊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실패라... 예상은 했지만 역시 사부는 대단해. 그 상황에

서... 하하하"

"....?"

부복하고 있던 냉악은 슬며시 고개를 들어 자신이 새로 섬

긴 주인, 그러니까 자신의 사부를 밀어내고 새로운 패천성의

지배자로 등장한 구양풍의 대제자 관패(關覇)를 슬며시 바라

보았다. 무서운 질책과 함께 엄한 책임을 물으리라 생각했는

데.... 호통은 들리지 않고 웃음 소리가 나니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그런 냉악을 보며 관패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여

자처럼 양볼에 보조개가 생기고, 입꼬리가 살짝올라가는 보

기만 해도 기분 좋아질 그런 미소였다. 하지만 그 웃음 속에

감추어진 관패의 무서움을 냉악을 익히 알고 있었다.

"사부를 놓쳤다는데 웃으니 이상한 모양이군?"

"그.... 그것이. 속하는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하하하. 그럴만도 하지. 허나 사부는 나를 가르친 사람이

자 이 시대의 절대자임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사실이네.

그런 사부가 쉽게 잡힌대서야 말이 안 되지. 사실 자네도 알

다시피 자네와 혈참마대 이외에도 다른 자를 추적대로 보냈

었지만 생각을 바꿨다네. 나를 이만큼이나 가르치고 키워주

신 사부인데 나 또한 사부에게 한번의 기회를 주는 것이야

당연하지. 안 그런가?"

그제서야 자신들과 함께 천라지망(天羅地網)을 구축했던 다

른 친구들이 보이지 않았던 까닭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궁주님이 살아 계시면 훗날 패천궁에 남아있는

궁주의 추종자들이 혹여라도 배반을..."

"하하, 자네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군"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패천궁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사부의 절대적인 강함에 매

료됐던 자들이 스스로 수하를 자처하면서였지. 하지만 그들

은 이미 늙었고, 지금 남아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가진 힘을

보여주기를 원하는 사람이 절대 다수라네. 여지껏 억눌러왔

던 모든 것들이 폭발하기 시작했다는 말이네. 물론 몇몇 장

로들의 반발이 있겠지만 이미 수레바퀴는 돌기 시작했으니

그들이 아무리 막고 싶어도 막지 못할 것이네."

"그렇다면은.."

"그래, 우리 패천궁의 중원제패의 시도는 사부가 살아 있

든 그렇지 않든 사전에 준비된 계획되로 시작 될 것이네. 아

니 이미 시작이 되었다고 보는 게 옳겠지.... 그것은 아무도

막지 못하지. 아무도..."

관패의 음성은 잔잔하게 울렸지만 거기에서 느껴지는 그의

의지와 힘을 느끼지 못할 냉악이 아니었다.

냉악이 관패와 대면하는 사이 중원에는 실로 엄청난 소문

이 돌고 있었다.

구양풍의 죽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나이 삼십에 흑도를 통

일하고 단신으로 소림에 도전했던 패천궁의 절대자가 죽다

니.... 어디 될법한 이야기던가. 사람들은 도저히 그 말을 믿

을 수 없었다. 특히나 그를 신처럼 떠받들던 흑도의 무림인

들은 더더구나 믿지를 못했다. 하지만 소문은 날이 갈수록

부풀어졌고, 그 가능성이 심각하게 대두되었다. 그러자 사람

들의 생각은 다른 쪽으로 모아졌다.

누구냐?

구양풍이 죽었다면 그 이유가 있을 것이고, 죽인자나 세력

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도대체 누가 감히 그에게 칼을 들

이댔는지 궁금했다. 이 시대의 절대자이자 중원 무림에서 가

장 막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너도 나도 이런

저런 생각과 측측을 해보곤 했지만 누구하나 제대로 말을 하

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들의 의혹은 패천궁이 모든 흑도의 무림인에게 전달한

출사표(出師表)에 의해서 정확하게 밝혀졌다.

[궁주께서 돌아가셨다. 믿기 힘들고 싫은 일이지만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돌아온 혈참마대의

대주 냉악에 의하면 궁주님이 돌아가신 곳은 숭산이라 한다.

또한 궁주님과 궁주님을 모시던 혈참마대를 공격한 것은 일

단의 복면이었다고 한다. 그들의 정체는 모른다. 하지만 그들

이 사용한 무공들이 하나같이 보기 힘든 백도문파의 절기임

을 혈참마대의 시신에서 알아낼 수 있었다. 결국 우리의 궁

주님은 간악한 백도의 무리들이 연합하여 해한 것이라 결론

을 내렸다. 우리가 그 동안 백도와의 마찰을 줄인 것은 두려

워서가 아니다. 힘이 없어서도 아니다. 단지 궁주님께서 무림

이 피에 젖어드는 것을 저어하여 참고 또 참으며 공생의 길

을 가려 했을 뿐이다. 헌데 저들은 그런 궁주님의 은혜를 무

시하고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제 우리는 그 복수를

하려 한다. 지금 이 순간부터 우리 패천궁은 궁주님의 복수

를 마칠때까지 최후의 한사람까지 싸울 것이다. 나 관패가

피로써 맹세하는 바이다.]

패천궁의 부궁주이자 구양풍의 대제자인 관패의 이름으로

전 흑도에 전해진 출사표가 무림에 알려지자 엄청난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그것은 곧 소문으로만 떠돌던 구양풍의 죽음

을 사실로 인정한 것이고, 이제 곧 흑도와 백도간의 정면적

인 충돌을 예고한 것이었다. 흑도의 무림인들은 하나둘 패천

궁으로 몰려와 힘을 실어 주고 있었으며 백도의 지도자들도

연일 회동을 하며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었다.

출사표를 던진 후 며칠 동안 패천궁은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이 곧 닥쳐올 피의 전주

곡(前奏曲)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며칠이 더 흘렀다.

숭산의 밤은 낙엽 떨어지는 소리 하나 없이 적막했다. 하

지만 소림사의 가장 깊은 곳에서는 밤새 불을 켜고 중원의

앞날에 대해 논의하는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도대체 누구란 말이오? 여기 계신 분 들 중 이번 일과 관

계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이곳은 소림의 방장실, 패천궁이 궁주의 복수를 천명하고

나서자 정도 문파의 수장들은 급히 소림으로 몰려들어 한창

대책마련에 힘을 쏟고 있었다.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미 저들은 우리에게 선전

포고를 했고, 싸움은 이미 기정사실 되었습니다. 그들을 막아

낼 방법을 찾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됩니다"

안타깝다는 듯이 말을 하는 무당파(武當派)의 대표로온 운

검자(雲劍子))의 말에 탁자의 맨 귀퉁이에 앉아 있던 장년의

사내가 말을 받았다. 그는 백색의 무복을 단정히 차려입었는

데 소매자락 끝에 몇 개의 매화(梅花)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보아 화산파(華山派)의 인물인 듯 싶었다.

"노화자(老化子)도 석장문인의 생각이 옳다고 보오. 어떤

이유로도 싸움은 피할 수 없는 것이 되 버렸으니 대책이나

세우는 게 낫지...암!"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백도, 그 중에서도 구파의 사람들이

모인 자리였다. 그 거리가 멀어 아직 곤륜파(崑崙派)에서 출

발한 사람들은 이곳까지 당도하지는 못했지만 곤륜을 제외한

팔파의 대표들이 이미 이곳 숭산에 모여 있었다. 방금 전에

말한 화산파의 장년인은 나이 사십에 장문인이 된 곽무웅(郭

武雄)으로 나이 서른에 화산파의 대표적인 무공인 자하신공

(紫霞神功)과 매화삼십육검(梅花三十六劍)을 극성까지 익혀

그 실력을 인정받은 사람이었다. 냉막한 인상과는 달리 항상

관대하고 온후한 성격으로 사람을 대하는지라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군자검(君子劍)이라 불렀다.

또한 곽무웅의 말을 지지한 사람은 숭산에서 얼마 떨어지

지 않은 개봉부(開封府)에 총타(總舵)를 두고 있는 개방( 幇)

의 방주 추혼신개(追魂神 ) 황충(黃忠)이었다.

"무량수불, 노도도 알고는 있지만 너무 이상하지 않습니

까? 패천궁은 이곳에서 수만리 떨어진 구양풍의 고향인 복건

성(福建省)에 있는데 어찌하여 그가 하필 숭산에서 죽는단

말입니까?"

"맞습니다. 사실 그가 죽었는지 조차 의심스럽습니다. 도대

체 누가 있어 그를 죽일 수 있단 말입니까? 창피한 말이지만

이곳에 계신 분들이라 해도 그의 무공에 많이 모자람이 있지

않습니까?"

운검자의 말에 강한 동조를 하고 나선 사람은 청성파(靑城

派)의 장로(長老) 석부성(錫孚星)이었다. 그의 말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사람의 무인으로 상대방 보다

약하다는 말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그들이었지만 그들의 무공

이 감히 구양풍에 비견된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아미타불, 소승도 그리 생각합니다만 이곳 숭산에서 일단

의 무리들이 싸움을 벌인 것은 조사결과 사실로 들어 났고,

두 개의 무덤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 무덤은 이미 파헤쳐

있었지만 누군가를 묻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 아니겠습니

까? 이렇게 싸움이 있던 사실이 명확한 이상 우리가 아무리

결백을 주장하더라도 패천궁에선 어떻게 하든지 싸움을 걸어

올 것입니다. 그 동안 구양궁주가 그들의 거친 성정을 잘 막

아 왔지만 그가 사라진 이상 그들은 그의 죽음과 상관없이

중원제패의 야욕을 불태우려 할 것입니다."

"복수라는 미명하에서 말입니다."

이 회의의 주재자인 소림의 장문인인 영오대사가 말을 꺼

내자 화산파의 장문인인 곽무웅이 그의 주먹을 불끈 쥐며 말

을 이었다. 방장실에 모인 사람들은 잠시 아무 말을 하지 못

했다. 잠시 후 종남파(終南派)의 장문인 목인영(木仁英)은 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이렇게 모인 것이 아닙니까? 이대로 그들에게 중

원을 내주어야 되겠습니까?"

"무슨 말씀을요. 절대로 아니 되지요. 목숨을 걸고서라도

저들의 야욕을 막아야 합니다."

목인영의 말에 한 목소리로 결전의 의지를 보여주었다.

"그래 어떤 방안이 있으십니까? 각자의 의견을 교환해 보

도록 합시다."

영오대사의 말에 가장 먼저 말한 것은 곽무웅이었다.

"백도문파가 전 중원에 흩어져 있지만 그 중 이름이 있는

문파들은 대개가 강북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강남에 있는 백

도의 큰 문파는 오대세가(五大世家) 중 하나인 호남성(湖南

省)의 남궁세가(南宮世家)가 거의 유일하다 하겠습니다. 저들

또한 흑도의 여러 문파가 산재해 있지만 그들의 주력은 대부

분이 복건성에 위치한 패천궁을 위시하여 강남에 모여 있습

니다. 결국 이번 싸움은 장강(長江)을 사이로 하여 전개될 것

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저들은 강북에 이렇다할 흑도 문파가

없는 반면에 우리 백도는 오백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검객(劍

客)들의 가문인 낭궁세가가 강남에 위치하고 있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우리측에서는 강남에 교두보를 확보하는 차원에서

라도 반드시 남궁세가를 보호해야 합니다. 강북으로 올라오

는 길목에 남궁세가가 버티고 있는 한 그들은 함부로 북진을

할 수가 없습니다."

"흠, 과연 일리가 있는 말이외다. 허나 저들도 이미 그 사

실을 알고 있을 터 온 힘을 다해 남궁세가를 치려 할텐데 그

렇다면 제아무리 남궁세가라해도 버티기 힘들 것이오"

목인영은 곽무웅의 말에 수긍을 하면서도 염려의 말을 늘

어 놓았다.

"물론입니다. 해서 우리가 그들을 도와야 할 것입니다. 여

기서 호남까지 가는 길은 그들이 호남으로 밀고 오는 시간보

다 아무리 빨리 간다 하더라도 족히 이틀은 더 걸립니다. 빨

리 지원군을 파견해야 할 것입니다."

곽무웅은 당장에라도 각 문파들의 제자를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의 말은 곧 반박에 부딪쳐야 했다.

"곽장문의 말에도 일리가 있지만 아직 저들은 움직이지 않

고 있소이다. 생각하건데 저들이 비록 궁주의 복수를 빙자하

여 중원을 도모하려는 망상을 천명했지만 어떤 문파라도 그

문파의 수장이 죽으면 항상 문제가 발생하기 나름이오. 특히

나 패천성 같이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진 곳일수록 그

문제가 심각하게 나타나는 법이지요. 모르긴 몰라도 저들은

지금 패천궁의 주인자리를 놓고 서로 힘 싸움을 하고 있을

것이오. 허니 그리 서두를게 아니라 좀 더 긴 안목에서 바라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또한, 남궁세가와 친분이 돈독한 나머지 사대세가에서 이

미 그 대책을 논의하고 있을 것이니 그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난 연후에도 늦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무당파의 대표로 온 운검자는 천천히 자신의 의견을 피력

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곽장문의 말에도 일리가 있지만 운검

자의 말에 더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곽무웅은 이

대로 물러설 수 없었다. 다시 한번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운검진인의 말도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만 만약 그들이 누

군가를 중심으로 이미 힘의 집중이 끝났다면 우리의 대응이

너무 늦는 것이 아닐런지요?"

충분히 가능했다. 만약 그들이 이미 권력의 승계가 끝났다

면 그들도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그걸 알아낼

방도가 없었다. 중인들의 시선은 당연히 중원 최고의 정보망

을 자랑하는 개방의 방주인 황충에게 쏠렸다. 황충은 자신에

게 쏟아지는 시선을 의식한 듯 헛기침을 한번 한 후에 천천

히 말을 시작했다.

"여기에 참석하기 전에 이미 강남에 산재해 있는 여러 분

타(分舵)에서 전서구(傳書鳩)가 올라오고 있었소이다."

"그래 어떤 내용이었습니까?"

석부성이 대뜸 물어왔다.

"그들이 복수를 천명한 순간부터 이미 우리의 시선은 그곳

에 쏠려 있었소. 헌데 이상한 것은 그들이 말로는 복수를 한

다고 하면서도 이렇다할 움직임을 보여주지 않고 있습니다.

이상하리 만큼 조용하다는 것이지요. 계속해서 많은 흑도의

무림인들이 패천궁안으로 들어가고는 있지만 나오는 이가 없

다고 합니다. 물론 간혹 가다 그들이 공격을 시작했다는 전

서구가 올라오고 있지만 그 진위는 알길이 없었소. 또한 우

리 방도들이 수없이 패천궁에 잠입하여 그 이유를 알아보고

자 하였으나 많은 희생만이 있었을 뿐 성과는 없었다는구

료."

"아미타불, 중원의 평화를 위해 개방의 동도들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습니다"

영오대사는 합장을 하면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아무튼 그들의 행동은 이상하

리 만큼 조용하다는 것을 보면, 아마도 무슨 흉계를 꾸미고

있든지 아니면 운검진인의 말씀대로 내부에 문제가 생겼음이

틀림없다고 여겨지오."

"음..."

중인들은 짧은 신음성을 내뱉었다. 싸움에서 상대방이 의

도를 안다는 것은 매우 중요했다. 지피지기(知彼知己) 백전백

승(百戰百勝)이라 했는데 도무지 그들의 어찌 행동할 지 알

수가 없으니 몹시 불안했다. 그러나 그들의 속내를 알 수 없

다고 마냥 기다릴 수많은 없었다. 어찌하든지 결론을 내려야

했다.

"결국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결정을 내려야 겠

습니다. 곽장문인의 말씀대로 지금 즉시 제자들을 파견하든

지 아니며 나머지 사대세가의 의견을 들어보면서 천천히 싸

움에 대비를 할 지 말이오. 더 좋은 의견이 없다면 다수의

결정을 따르도록 합시다."

영오대사의 말대로 중인들이 제자들의 즉시 파견에 대한

가부(可否)는 다수결 결정되었다. 드러난 결과는 좀더 추이를

지켜보자는 것이었다.

'허허, 이리 상황판단들이 느려서야... 큰일이로구나...'

곽무웅은 여전히 상황에 비관적이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

은 아랑곳없이 회의는 계속 되었다.

"우선은 제자들을 파견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이 났지만 곧

큰 싸움이 일어나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사실입니

다. 이에 우리가 어찌 대처를 해야 하는지 말씀들 해보시지

요."

"저쪽은 패천궁이라는 하나의 구심점이 있는 반면 우리들

의 세력은 너무 흩어져 있습니다. 우선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허면..?"

"예, 우리도 패천궁처럼 힘을 하나로 모을 필요가 있습니

다. 해서 백도문파의 연계를 위한 정도맹(正道盟)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지금처럼 뿔뿔히 흩어져서는 그들에게

대항 할 수가 없습니다."

운검자는 정도맹의 결성을 강하게 주장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의견에 회의에 참석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조하고 있

었다. 그의 의견이 반영되는 것은 당연했다.

'이럴 시간이 없는데, 뭣들 하는 건지...'

약간의 논의 끝에 곤륜파가 빠진 팔파일방의 수뇌부 회의

에서는 정도맹의 결성이 결정되었다. 지금 그들은 맹주를 누

가 하네, 장로는 누가 하네, 인원을 몇으로 하네 등 자기 문

파의 밥그릇 싸움에 정신이 없었다. 곽무웅은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의 의견은 이미

무시를 당하고 있었다. 결국 그는 그들이 하는 꼴이 하두 보

기 싫어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방장실을 나와 버렸다.

그의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안에서는 여전히 소란스

런 말들이 오고 갔다.

다음날 곤륜의 대표가 도착한 직후 구파일방(九派一幇)의

이름으로 다음과 같은 발표가 있었다.

[이번 패천궁의 궁주의 죽음을 빌미로 하여 중원제패의 야

욕을 가지고 있는 패천궁에 대응하기 의하여 구파일방은 다

음과 같은 결의한다.

첫째, 패천궁을 상대하기 위해 정도맹의 결성한다. 그것은

단지 패천궁만을 상대하기 위한 임시기구로 싸움이 끝나면

자연 해체한다.

둘째, 정도맹의 총단은 소림으로 하고, 소림의 장문인인 영

오대사가 정도맹의 맹주직을 맡기로 하며 각파의 장문인과

명망있는 명숙들이 장로의 역할을 한다.

셋째, 각파에서는 일정한 수의 제자를 선발하여 정도맹에

파견한다.

넷째, 이후 각파는 정도맹의 결정에 절대 복종한다.]

그들은 이런 발표문과 더불어 백도의 여러 군소문파에 정

도맹의 결성에 힘을 실어 주기를 일방적으로 요청했다. 이들

의 청을 받은 많은 군소의 문파들과 몇몇 기인들은 구파일방

의 이런 독단적인 행태가 불만스러웠지만 힘이 없었다. 그들

은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이 이들에게 동조하는 수밖에 없

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구파일방이 이런 움직임을 보이고 있을 때 백도의 다른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오대세가에서는 이미 일련의 행동들이

시작되고 있었는데, 구파일방이 소림에서 대책을 논의하고

있던 그 시간에 남세가를 제외한 나머지 사대세가에서는 남

궁세가를 돕기 위한 가솔들의 파견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버님 차라리 제가 가겠습니다. 너무 위험합니다"

"됐다. 가주인 네가 가문을 지키는 것이지 가긴 어딜 간다

구 그러는 것이냐? 나는 이제 할 일도 없고 하니 옛 친구나

보러 갈련다."

"아버님!"

"허허, 내가 가겠다는데 자꾸 고집을 부리려느냐?"

당문천(唐文泉)은 답답했다. 지금 그의 아버지인 당천호(唐

天虎)가 가려는 남궁세가에서는 조만간 틀림없이 큰 싸움이

있을 것이다. 남궁세가가 그 명성이 뛰어나고 그의 아버지

또한 암왕(暗王)이란 이름을 사해에 떨쳤지만 상대는 패천궁,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해서 자신이 가문의 몇몇 고수

들을 이끌고 가겠다고 했는데, 기어이 당천호 본인이 가겠다

고 고집을 부리는 것이었다. 물론 그의 아버지인 당천호가

왜 그리 고집을 부리는지 당문천은 잘 알고 있었다.

당천호가 가려는 남궁세가의 전대 가주 검성(劍聖) 남궁상

인(南宮尙仁)은 당천호의 둘도 없는 친우(親友)였다. 비록 몸

이 멀리 떨어져 있어 자주 만나거나 연락은 주고받진 못하지

만 항상 마음속에 서로를 흠모하며 존경하고 있었다. 그런

친우의 가문이, 친우가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처지에 놓였다

는데 나서지 않을 당천호가 아니었다.

당문천은 결국 아버지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후.. 알겠습니다. 아버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허면 언제

떠나시렵니까?"

"심정이야 지금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지만 혼자 가는 것도

아니고 또한 먼길이니 준비를 하려면 제법 시간이 걸릴 것이

다. 내일 아침에 떠나도록 하마."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아침에 맞추어 출발 준비를 시키

겠습니다"

"오냐."

말을 마치고 방을 나선 당문천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

버지도 아버지지만 이번 싸움은 몹시 힘든 싸움이 될 것이

다. 그 만큼 위험도 크고 생명을 장담 못하는 상황이 많이

닥칠 것이다. 당장 내일 누구를 보낼 것인가가 걱정이었다.

가문의 특징상 가문의 모든 무인들이 다른 문파와는 달리 거

의 다가 당가의 피가 섞여 있는 일족들이었다. 누구하나 아

끼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당문천이 자신의 방에서 한참을 근심을 하고 있을 때 그의

아우인 당문영과(唐文永) 당문성(唐文成)이 들어왔다.

"형님 결국 아버님 뜻대로 하시기로 하셨다면서요?"

"후, 말도 말게. 아무리 말씀드려도 도무지 고집을 꺾지 않

으신 다네. 어디 자네라도 한번 더 가서 만류를 해보시게"

"하하, 형님도 어림도 없다는 것을 잘 아시면서 그러십니

다."

"내 하도 답답해서 그러는 것 아닌가? 근데 셋째는 왜 말

도 없이 무얼 그리 생각하는가?"

당문영과 말을 주고 받던 당문천은 방안에 들어온 이후 아

무말도 안하고 있는 당문성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예? 아, 이번에 누구를 보내야 하는지 생각하고 있었습니

다."

"그래, 나도 계속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도통 누구를 보내

야 할지 모르겠네. 자네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일단 남궁세가와 저희 가문과의 인연을 생각해서라도 확

실한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더구나 아버님께서 가신다니 아

버님의 안전도 생각을 해야하고....하니"

"하니... 그래서 누구를?"

당문성은 잠시 뜸을 들이고는 말을 이어갔다.

"우선 제가 소걸(昭傑)이와 함께 아버님을 모시고 가겠습니

다. 그리고 소기(昭氣)는 가문을 이어야 하니 조금 위험하긴

해도 참여하여 견문을 넓혀야 할 것입니다. 결과만 좋다면야

아주 좋은 경험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래, 나도 그리 생각하고 있었네. 소문(昭門)이는 너무 어

리니 안되겠지...."

"흠, 내 아들놈은 왜 빼나? 소명(昭明)이도 데리고 가게."

가만히 듣고 있던 당문영이 옆에서 한 소릴 거들었다.

"물론입니다. 형님. 그리고 그 외에도 한 삼십명 정도면 적

당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삼십이라...후... 알겠네. 그럼 자네가 갈 사람을 추려보게"

"그리하지요"

당문천의 부탁어린 명령에 당문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참, 그런데 형님. 우리는 이렇게 준비를 하고 있다지만 다

른 세가에서는 어찌 행동을 할까요? 뭐 구파일방이야 뻔히

탁상공론(卓上空論)이나 벌일 것이고..."

"글세, 우리가 멀리 떨어져 있어서 연락하기가 쉽지 않았

겠지만 나머지 세가들도 이미 대책을 마련하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드네만...."

당문천의 예상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패천궁의 출사

표가 알려지자마자 하북팽가(河北彭家)에서는 수십명의 무인

들이 자신들의 무기를 들고 남쪽으로 내려갔고, 산동(山東)의

황보세가(皇甫世家)에서는 가주인 황보천악(皇甫天岳)이 직접

무리를 이끌고 세가를 나섰다.

그들이 향한 곳은 호북성(湖北省)의 무창(武昌)에 자리잡고

있는 제갈세가(諸葛世家)였다. 반나절의 차이를 두고 도착한

그들은 다음날 다시 길을 떠났다. 그들의 최후의 목적지는

남궁세가였고 이번 행렬에는 제갈세가의 인원도 몇몇 더해졌

다.

그들이 막 제갈세가를 벗어나던 그때가, 숭산에서 정도맹

의 결성을 발표하는 구파일방의 전서구가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었을 때였다

"저는 요즘 너무 무섭습니다. 패왕궁이 저리 복수를 다짐

하고 있는데, 언제 우리레게 쳐들어 올지 모르는 것 아니겠

어요?"

"하하, 부인 너무 걱정하지 마시구려. 저들이 지금은 체면

상 저리 외쳐대고 있지만 감히 전 중원의 백도를 적으로 삼

지는 않을 것이오. 자기들이 아무리 강한 세력을 지니고 있

다고는 하지만 백도에는 전통의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건재

하오이다. 너무 염려 하지마시구려"

"하지만 세간에서는 곧 큰 싸움이 일어난다고 하던데...."

"아, 글쎄 걱정하지 마시래두요. 그리고 쳐들어 올려면 오

라지. 광동성에서 차지하고 있는 우리의 힘 또한 무시 못할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면 되지 않겠소..."

"...."

광동성(廣東省)에서 가장 큰 백도 문파이자 단창(短槍)으로

유명한 태천문(太天門)의 문주인 사붕명(司鵬明)은 무공을 전

혀 모르는 자신의 여린 부인을 안심시키고 있었다. 그는 어

려서부터 중원을 떠돌며 많은 창술(槍術)을 익히다가 나이

서른 다섯에 이곳 광동성 남쪽의 고주부(高州府)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그 동안의 익힌 창술을 바탕으로 태천문이라는

문파를 만들고 제자들을 받아들였다. 장창을 쓰는 일반 창술

과는 달리 태산파는 보통 창의 절반의 길이에 불과한 단창을

사용했는데 기존 창술이 원거리에서 적을 공격하며 접근전에

는 약한 모습을 보여준 반면 이들은 오히려 수비에 더 강한

면모를 보여줬다. 태산파는 많은 제자를 받아들이고 그 세를

넓혀갔다. 비록 그 역사는 이십여 년 밖에 안된 신흥문파였

지만 지금은 광동성에서 가장 큰 세력을 지닌 백도의 문파로

당당히 자리잡고 있었다. 거기에는 문파와 제자들을 위해 헌

신한 사붕명의 노력이 실로 컸다.

"헌데, 승아는 어디 갔소. 웬만하면 밖에 나가지 말라고 그

랬거늘...."

"제 방에 있지요. 아무리 말을 안 듣기로서니 요즘 같은

때 함부로 나다니지는 않는 답니다"

사붕명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들을 감싸고 두둔하고

있는 부인이었다. 하지만 사붕명은 자신의 하나뿐인 아들인

사정승(司鄭乘)이 이미 밖에 나갔다가 좀 전에 들어온 것을

알고 있었다. 그저 부인의 마음을 딴 곳으로 돌리기에 한번

해본 말이었다.

'휴, 자식만큼은 어찌 못한다더니....내가 그 꼴이 아닌가?'

사붕명이 생각은 그리 하면서도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었

다. 그런 모습을 보니 그다지 걱정하는 눈치는 아닌 듯 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밖에서 아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리며 피

투성이가 된 사정승이 뛰어들어왔다.

"아...아버님....살...려..."

방으로 들어온 사정승이 말을 다 잇기도 전에 뒤에서 번쩍

인 한줄기 빛은 그의 머리를 사붕명의 발 아래로 구르게 만

들었다. 장난끼가 많았지만 항상 명랑하여 부모를 기쁘게 했

던 아이였다. 자신과는 다르게 머리가 뛰어나 어린 나이에도

상당한 학식을 쌓아 은근히 기대를 했던 아이였다. 부르기만

하면 당장 웃으며 달려올 것 같은 아들이 몸뚱이는 문지방에

놓아둔 채 겁에 질려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 얼굴만 부모의

곁으로 다가왔다.

"아...안돼. 승아야!"

사붕명의 부인은 눈앞에서 자식을 잃은 고통에 그 자리에

서 정신을 잃고 잃어버렸다. 하지만 사붕명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끌어오르는 분노를 차분히 가라앉히고 차가운 목소리로

자신의 아들의 목을 날린 사내를 보고 있었다.

"누군가?"

방안으로 들어선 냉막한 얼굴의 사나이는 사뭇 의외라는

듯이 사붕명을 쳐다보더니 대꾸를 했다.

"호, 역시 대단하군. 자신의 아들이 발 아래에 죽어있는 것

을 보고도 그리 냉정을 유지 할 수 있다니..."

"누구냐고 물었다."

사붕명은 다시 한번 물었다. 말속에 들어있는 살기만으로

도 사람을 죽일 수 있을 정도로 싸늘했다. 사내는 웃음을 지

우고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패천궁"

"패....패천궁!!"

"......"

"패천궁이라면 아직 움직이지 않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사붕명이 패천궁이라는 말에 당혹해하자 사내는 비웃음을

흘렸다.

"훗, 너희 백도에서는 우리가 그저 말로만 궁주님의 복수

를 다짐한 줄 아나본데 복수는 이미 시작됐다. 여기는 그 중

하나의 목표일이지...."

"흥, 그리 쉽게는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 태천문을 너무

우습게 보지 마라"

"흠, 태천문이라면 그 정도의 자부심을 지닐 만하지. 해서

우리도 다른 곳과는 달리 이곳에는 혈영대(血影隊)가 직접

투입되었다."

발작적으로 소리를 지르던 사붕명은 사내의 입에서 혈영대

라는 말이 나오자 순간 아득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그만

큼 혈영대라는 말이 심어주는 공포는 지독했다.

패천궁에는 여러 기구가 있지만 대외적으로 가장 잘 알려

진 것은 네 개의 무력단체였다. 그것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패천수호대(覇天守護隊)로 그들의 주된 임무는 패천

궁의 궁주를 보호하고 성내의 불순한 움직임을 감찰하는 역

할을 한다. 네 개의 단중 개개인의 무공수위는 가장 높다.

둘쩨, 혈참마대(血斬魔隊)는 패천궁의 주력부대로 패천궁의

젊은 무인으로만 이루어진 단체로 패천궁에 반역을 하거나

백도와의 분쟁이 있을 시 투입되는 집단이었다.

셋째, 혈영대(血影隊)는 말 그대로 피빛 그림자란 이름으로

불리는 패천궁의 해결사 역할을 했다. 그 인원은 가장 적지

만 개개인이 일류 살수로 불리는 만큼 세인들에겐 공포의 대

상이었다.

넷째, 비혈대(秘血隊)는 패천궁의 눈과 귀를 담당하는 첩보

조직이었다.

"그...그렇다면 설마?"

혈영대라는 말에 사붕명의 목소리가 급격히 떨렸다. 사내

는 사붕명이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는 듯 했

다.

"예상대로다. 우리는 밤의 지배자. 지금 태천문에서 살아

있는 자는 당신과 부인뿐인지. 물론 금방 사라질 목숨이지만.

당신은 그래도 일문의 문주, 해서 기회를 주고자 내가 나선

것이다."

사붕명은 가슴에 피눈물이 흘렀다. 태천문은 자신이 평생

을 일궈온 삶의 터전이자 꿈이었다. 헌데 그것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어 버리다니, 아니 그것은 어찌 되던지 상관이

없었다. 자신의 아들, 그리고 자신을 믿고 따라주었던 제자들

과 가솔들 그들이 하루아침에 목숨을 잃고 말다니...

사붕명은 천천히 자신의 침상으로 걸어갔다. 그리곤 침상

위에 걸어놓은 자신의 애병인 짧은 단창을 집어들었다. 남들

이 흔히 말하는 신병(神兵)은 아니었지만 자신을 비웃고 있

는 사내의 목숨을 빼앗는 데에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무기

였다. 사붕명은 흥분했던 마음이 단창을 잡는 순간 차분히

가라앉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에겐 눈앞의 사내와 싸우

기 전에 우선 할 일이 있었다.

'미안하오. 이때까지 해준 것 없이 고생만 시켰구려. 잠시

먼저 가 있으시오. 내 곳 뒤 따라 가리다.'

사붕명은 아직까지 혼절해 있는 아내의 심장에 단창을 박

아버렸다. 단창은 너무 쉽게 그러나 가녀린 한 여자의 목숨

은 빼앗을 정도로 깊게 박혔다. 사붕명의 부인은 그저 한순

간의 떨림을 끝으로 자신의 아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떠나버

렸다. 그런 사붕명을 보며 지금까지 조소를 하고 있던 사내

의 표정이 변했다.

'대단한 자다. 왜 대주가 수하를 시키지 말고 나보고 직접

그를 상대하라고 했는지 이해가 가는군'

혈영대의 부대주인 사혼자(死魂子) 하문도(夏文道)는 수하

의 희생을 줄이려면 사붕명은 직접 상대하라는 혈영대의 대

주 백검마(魄劍魔) 안당(鮟螳)의 말을 이제서야 이해 할 수

있었다. 짧은 단창을 들고 서 있는 사내는 지금껏 자신이 보

아온 그 어떤 무인보다 더 강한 기세를 내보이고 있었다.

"말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것 같소. 오시오"

하문도는 자신의 검을 잡으며 여전히 부인에게 시선을 떨

구고 있는 사붕명에게 말하였다. 사붕명은 천천히 고개를 돌

렸다.

"......"

하문도를 쏘아보는 사붕명의 눈에는 검은 눈동자가 보이지

않았다. 온통 피빛으로 변한 눈에서 무서운 살기가 쏟아져

나왔다.

'무서운 눈빛! 하지만 그것에 겁먹을 내가 아니지'

"하앗!"

잠시 노려보던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외마디 기합과

함께 서로에게 달려갔다. 하문도의 검은 쾌검(快劍)을 바탕으

로 하는 자객의 검으로 화려함보다는 적과의 거리와 가장 짧

은 선을 따라 공격을 해 들어가는 검으로 지금도 사붕명의

요소 요소를 노리며 집요하게 약점을 파고들고 있었다. 하지

만 사붕명은 그때마다 간발의 차이로 잘 막아내며 버티고 있

었다.

"윽!"

사붕명의 입에서 짧은 신음성이 나왔다. 결국 왼쪽 허벅지

를 심하게 찔리고 말았다. 여지껏 그랬지만 왼쪽에 허벅지에

상처를 입은 사붕명은 더욱 몰리게 되었다. 계속 되는 통증

에 보법마저도 흔들리고 있었다.

'젠장, 이대로 물러서면 먼저간 제자들과 가족을 볼 면목이

없는데.... 그렇다면...'

"하압!"

숨고를 사이도 없이 하문도의 검이 사붕명의 심장을 노리

고 날아왔다. 사붕명은 이미 결심이 선 듯 지체없이 왼쪽 팔

을 내밀었다. 검은 깊숙하게 사붕명의 팔에 박혀 쉽게 빠지

지 않았다. 사붕명은 한쪽 팔을 희생하여 검을 막은 후 자신

의 반응에 당황하고 있는 하문도의 목에 최후의 공격을 감행

했다.

"헉! 크윽!"

깜짝 놀란 하문도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지만 날아오는 창

날을 다 피할 수는 없었다. 창날이 왼쪽 목 언저리를 뚫고

지나갔는지 엄청난 고통이 느껴졌다. 하지만 머뭇거릴 수는

없었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의 목에 상처를 주고 지나

간 창은 다시 한번 방향을 바꾸어 자신을 공격했다. 아까의

공격이 앞에서 찌르기였다면 지금은 앞으로 지나갔던 창날이

당겨지면서 목을 노리고 있었다. 하문도는 할 수 없이 여전

히 사붕명의 팔에 박혀 있는 자신의 검을 버리고 뒤로 물러

설 수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하문도는 무기를 잃고 목에 심

각한 부상을 당했다. 그러나 사붕명도 좋은 형편은 아니었다.

왼쪽 팔을 희생했고, 물러서던 하문도가 날린 일장에 갈비뼈

가 몇 개 부러지는 상처를 입었다.

둘은 떨어져서 잠시동안 말없이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던

사붕명은 자신의 팔에 박혀 있는 검을 안색하나 바꾸지 않고

뽑아 내더니 여전히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하문도에게 던져

주었다.

"아까는 아니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난 무인이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하문도는 날아오는 검을

잡더니 호기롭게 외쳤다.

"당신은 진정한 무인이오. 나 또한 무인이라 자부하는 몸,

멋지게 승부를 가려 봅시다"

사실 이미 승부는 결정이 난 상태였다. 비록 하문도가 목

에 심한 상처를 입었다지만 사붕명의 상처에는 비할 바가 아

니었다. 사붕명에겐 무엇보다 다리에 입은 상처가 치명적이

었다.

오랜만에 진정한 무인을 만났다는 생각에 하문도는 그 에

게 예의를 갖추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는 자신도 모

르게 그를 경시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문도는 자신의 검을 고쳐 잡았다. 자신이 지닌 최고의 무

공인 광폭섬(廣幅閃)을 시전 할 생각이었다. 하문도의 기세가

일순 변하자 사붕명은 최후를 예감했다. 그러나 사붕명 또한

왼팔은 비록 쓰지 못하더라도 아직 남겨둔 비장의 절초가 있

었다.

먼저 움직인 것은 사붕명이었다. 사붕명은 자신이 끌어올

릴 수 있는 최대의 내공을 모으더니 갑자기 하문도를 향해

단창을 던졌다. 단창은 엄청난 파공음을 내며 하문도에게 쏘

아져 갔다. 하지만 하문도는 호락호락 당하지 않았다. 재빨리

몸을 뒤로 젖혀 창을 피한 그는 궁신탄영(弓身彈影)의 신법

으로 사붕명에게 다가갔다.

"광폭섬!"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사붕명은 다만 하얀 검날이 자신의

몸을 양단하는 것은 그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땡그렁!"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깜짝 놀란 하문도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방금 자신이 피한 단창이 땅에 떨어져

있었다. 소름이 끼쳤다. 만약 자신의 반격이 조금만 늦었어두

쓰러진 것은 사붕명이 아니라 자신이었으리라. 상대가 설마

회선창(回線創)을 구사할 줄이야... 하문도는 거듭 놀라는 얼

굴로 천천히 무너져 내리는 사붕명을 바라보았다.

"당신은 정말 대단하오. 그 누구도 당신의 진면목을 모르

고 있었구료. 아까 내게 검이 없을 때 이것을 사용했다면 틀

림없이 당신이 승리 할 수 있었을 것을... 내가...졌...소"

생명의 빛이 거의 사그라 들고있는 사붕명은 하문도가 한

마지막 말을 들은 듯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그려지는 것 같

았다.

그렇게 광동성의 남쪽에 위치한 태천문이 사붕명의 죽음과

함께 무너지고 있을 때 패천궁이 있는 복건성은 물론이고 광

서성(廣西壯族自治區-광서장족자치구), 강서성(江西省), 절강

성(浙江省)에 있는 모든 백도의 문파들도 야음을 틈타 일제

히 공격을 받고 있었다.

"모든 준비는 끝났습니다. 이곳 복건성과 인접한 강서, 광

동, 절강의 모든 백도문파의 접수가 끝났습니다."

"흠, 그래?"

"예, 하지만 강북에 있는 백도문파들은 여전히 그 사실을

모를 것입니다."

"...?"

보고를 받고 있던 관패는 계속 말해보라는 듯이 고개를 들

어 관심을 보였다. 지금 관패가 앉아 있는 의자 앞에는 중원

과 똑 같은 모형의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패천궁의 군사(軍師) 귀곡자(鬼谷子)가 공손하게 시립하고 있

었다. 귀곡자는 계속해서 설명을 했다.

"우선 가장 먼저 백도의 눈과 발인 개방을 철저하게 괴멸

시켰습니다. 전서구에는 이미 다른 내용을 적어서 보냈으니

그들이 알리 없습니다. 혹, 살아남은 개방의 방도가 있어 소

식을 알린다고 해도 수십 마리의 전서구가 알린 내용과 혼선

을 빚기에 그것을 조사하는데 또한 며칠이 걸릴 것입니다."

"그래...서?"

"저들이 느긋해 하고 있는 동안 강남은 이미 저희 패천궁

의 수준에 들어왔습니다."

"아직은 아니지....호남엔 호랑이가 버티고 있어...."

관패는 느릿느릿 말을 했다. 모든 것이 귀찮다는 말투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귀곡자의 말을 하나도 빠짐없이 새겨 듣

고 있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호남도 곧 저희 수중에 들어올 것

입니다. 물론 그 안의 호랑이와 함께 말입니다."

귀곡자는 자신만만하게 말을 했다.

"그것도 좋겠지...어떻든 이번 강남의 백도문파에 대한 모

든 권한은 자네에게 주었네. 계획에서 시행까지... 나는 그저

지켜만 볼 것이네..."

"알겠습니다. 제가 세운 백도멸살지계(白道滅殺之計)는 지

금까지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제 나머지 세가

들의 정예가 호랑이를 도우려 오면 그들 또한 우리에 갇히게

될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백도멸살지계의 성과를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백도멸살지계라... 하하. 과연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두고

사뭇 기대가 되는군"

관패의 기분좋은 목소리가 패천궁에서도 가장 엄중한 경계

를 받는 지존각(至尊閣)에 울려퍼지고 있을 때 제갈세가를

떠난 삼대세가의 인물들은 막 장강을 넘고 있었고, 사천땅을

떠난 당가의 정예 또한 장강의 물줄기를 따라 호남성에 들어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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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다섯분(ㅡㅡ;)이나 메일을 주시며 글을 독촉하시는 관계로

우선 써 놓은 것을 올립니다. 참고로 제가 요 며칠간아주지독한

감기로 인하야 항상 약에 취해 있는 상태입니다. 글도 단순하게

쓰여진 것 같고 말도 안되는 이상한 것글이 많이 있을 줄 압니다.

수정 못하고 올리니 양해 해 주시기 바랍니다.

피에쑤, 그리고 조만간 소문의 말투가 아주...정상으로돌아옵니다

전에 썼던 설정을 약간 바꿀 생각입니다. ㅡㅡ;(역시 어설퍼서)

제가 소문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다 표현을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요. 앞의 설정은 표국에서 몇갈간 지낸소문이

제법 말을 잘 익힌다로 바뀔듯 합니다. 다시한번 양해를구합니다.

그럼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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