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장 투(鬪)-2
소문이 우민산에 도착했을때는 선봉인 우군뿐 아니라 어느새 좌군도 도착해 진영을구
축하느라고 정신이 없을때였다. 나무를 잘라 목책을 세우고 땅을 판뒤 작살을심었다.
혹시 모를 적의 기습에 대비해 산 아래에도 수십명의 척후병을 내 보냈다. 그들은적의
기습을 살피는 것 뿐아니라 적진 깊숙이 침투하여 적의 동태도 살펴 보고를 하는임무
도 띠고 있었다.
토타우가 중군을 이끌고 우민산에 온 것은 해가 지고나서 였다. 우민산에도착하자마
자 토타우는 장수들을 한데 불러모았다.
“그래..적군의 움직임은 어떠하오?”
“예..적들은 맞은편에 있는 미타산에 저희와 마찬가지로 진영을 구축했습니다.가끔
몇몇 기병이 이곳으로 다가와서 정탐을 하고 가기는 하지만 특별한 움직임은 보이지않
고 있습니다.”
마라난타가 토타우의 질문에 간단하게 대답했다.
“적들을 어찌 공격할지는 생각해 보았소?”
“계속 정탐을 하고 있지만 서로간에 척후병이 사방에 뿌려져 있어 기습은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흠...그렇다면 결국 정면 승부 밖에 없다는 것인데...가능하겠소?”
“물론입니다...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마라난타는 강한 자신감을 보였지만 토타우는 그렇지 못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솔직히 수가 너무 부족하다고 느끼오...”
“예...보병이 삼천 부족한 것은 그다지 상관이 없지만 문제는 기병입니다. 만약저희들
의 기병이 밀린다면 적들의 기병이 우리의 보병을 유린하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허
나 잠시동안만이라도 기병을 붙잡아 둘 수 있다면 승리하는데 어려움이 없을것입니다”
대답을 한 우띠 장군도 마라난타만큼이나 자신감을 보이기는 했다. 하지만 적의기병
을 막기엔 아군의 기병수가 너무 적었다.
“족장님 너무심려하지 마십시오...비록 저희 기병의 수가 적다고는 하지만 아예없는
것은 아닙니다. 목숨을 버릴 각오로 싸운다면 그까짓 적은 막아낼 수 있습니다”
이제까지 조용히 말을 듣던 아고르가 결의에 찬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허나토타우의
굳은 안색은 펴지질 않았다.
“흠...전면전 보다 방어에 치중을 하면 어떠하겠는가?”
한참을 침묵하던 토타우가 조심스럽게 말을 했지만 돌아오는 장수들의 반응은격했다.
“말도 안됩니다. 비록 열세이기는 하지만 싸워야 합니다. 집안으로 쳐들어온도적에
게 마당을 내주고 방고리만 잡고 있으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됩니다. 죽을때죽더라도 싸
워야 합니다”
"계속해서 수비만 하다보면 주변의 작은 부족들이 그들에게 붙을까도염려됩니다..선
택의 여지는 없습니다. 싸우다 저들이 죽던, 우리가 죽던..."
밤을 세워가며 회의를 거듭했지만 결국 결론은 하나였다. 전면전이었다.
한편 미타산에 진을 치고 있는 바이허족도 회의를 거듭했다. 이들은야우커우족과는 반
대의 문제로 고심을 하고 있었다.
"비록 보병의 수가 삼천이 많다고는 하나 그건 대부분이 이곳으로 오며 점령한마을이
나 부족의 병사들입니다. 실질적인 바이허족의 용사는 이천에 불과합니다. 저희가밑을
것은 순수 바이허족으로 이루어진 기병뿐입니다. 최대한 저들의 기병을 빨리 뚫고보병
을 지원하지 않으면 오히려 보병의 지원을 받은 적들의 기병에게 밀릴 수가있습니다"
바이허족의 기병을 맡고 있는 장군 포장유의 설명이 끝나자 호피가 둘려 있는의자에
깊이 몸을 묻었던 아비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결국...이번 싸움은 기병이 얼마나 빨리 적들의 기병을 제압하느냐에있군...물론 저
들은 최대한 버티는데 있겠고...역시 부족의 모든 병사를 동원 했어야했나....아니야....
이정도면 충분할 것이야...난 우리 병사들을 믿는다."
"그렇습니다. 족장님..."
"그런데...저들이 과연 전면전을 하려 할지 의심스럽습니다..."
포장유의 옆에 앉아 있던 테레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했다. 아비타는 그런테레
곤을 보며 싱긋 웃었다.
"족장 단독이라면 모를까 다른 장수들이 절대적으로 전면전을 주장할게야...특히대장
군 마라난타는....아무리 족장이라도 장수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는 없지...조만간반응
이 오겠지..."
바이허족의 족장 아비타의 확신은 정확했다. 다음날 야우커우족은 모든 병력을이끌고
우민산과 미타산 사이에 있는 평원으로 내려왔다.
"훗....역시....그렇다면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전군은 이동을실시한다...저
들을 맞을 준비를 하라..."
야우커우족이 평원으로 내려왔다는 소식을 들은 아비타는 먹고 있던 아침을 치우고보
고 부장에게 령을 내렸다.
마침내 오십여장의 거리를 두고 두 부족의 병사들이 마주보게 되었다. 양측의주력인
기병은 모두 일반 병사뒤에서 호시탐탐 적의 허점을 엿보고 있었다.
움직임은 바이허족에서 먼저 시작됐다. 전투개시를 알리기전에 바이허족의선봉장군
인 테레곤이 병사들을 격려했다.
“병사들이여,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기회가 찾아 왔다. 숫적으로 불리한적들이
이제 너희들의 손에 있다. 지금까지 많은 전투에서 족장님에게 용맹을 보여주었듯이,
내 앞에서도 그런 용맹함을 보여 달라. 우리의 위대한 족장님은 비록 여기에는안계시지
만 우리의 바로 뒤에서 모든 것을 보고 계신다. 자... 가자. 전군 진격하라!!”
“와...아!!”
바이허족의 병사들은 테레곤의 명령이 떨어지자 일제히 공격을 시작했다. 무기도제각
각이라 창이며 검이며 심지어는 도끼를 무기로 들고 나선 이도 있었다. 그런 적들을보
는 마라난타의 눈은 냉정하게 빛났다.
“우리는 비록 적보다 그 수에서 부족하기는 하지만 저들은 다 오합지졸이다.너희 자
신을 믿어라. 죽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살것이다. 살아서 만나자....전군!!공격하
라....!”
마라난타의 말이 끝나자 야우커우족의 병사들도 일제히 무기를 들고 적을 향해달려갔
다. 하지만 그들은 바이허족처럼 무질서 하진 않았다. 병사들의 맨 앞렬에는 주로검이
나 도를 든 병사들이 나섰고 그 뒤를 창을 든 병사들이 따랐다. 또한 뒤에서는궁수들이
활을 쏘며 지원사격을 하였다. 바이허족의 예봉은 여지없이 꺽이고 말았다. 잠시동안
이루어진 접전에서 그 우위는 확연하게 드러났다. 바이허족의 병사들은 속절없이밀리
고 있었다.
그것을 보는 야우커우족 본진의 장수와 병사들은 크게 함성을 지르며 기세를올렸다.
“역시 보병은 힘들군....포장유...?”
“여기 있습니다. 족장님”
“가서 쓸어버려라...그리 할수 있겠지?”
“맡겨 주십시오...”
“지켜보겠다....”
아비타의 명령을 받은 포장유는 오천의 기병을 이끌고 전장을 향했다.
“오는군....아고르...우리의 목숨이 장군손에 달렸소...최선을다해주시오...”
바이허족에서 기병들이 쏟아져 나오자 토타우는 보병들의 전투를 지켜보던기병대장
아고르에게 선전을 당부했다.
“조그만 버텨주면 보병들이 곧 지원을 갈 수 있을 것이요. 그때까지만 버티면우리는
이기오....장군....믿겠소이다”
“염려 마십시오. 죽음으로 막아내겠습니다”
자신의 투구를 챙겨주며 당부하는 노장군 우띠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토타우에게
군례를 취한 아고르는 자신을 기다리는 기병에게 달려갔다.
“우리는 오늘 여기에서 죽는다. 하지만 우리는 승리한다. 명예로운 죽음이다.영광으
로 생각하자....전군 나를 따르라...”
그런 아고르와 기병들을 보던 우띠는 토타우에게 군례를 취하며 말했다.
“그럼 소장도 나가 보겠습니다.”
“부디 몸 조심하시구려...”
자신을 염려하는 토타우를 뒤로하고 우띠는 출병의 명령을 내렸다.
“지금 적의 기병이 나타났다. 우리의 기병은 양쪽을 막아주지는 못한다. 하지만우리
가 한쪽 기병을 막는다. 허면 곧 우리를 도우러 병사들이 올 것이다. 최선을다하라...”
결국 전면전을 택할 수 밖에 없었던 야우커우족의 작전은 간단했다. 중앙은마라난타
를 수장으로 하는 우군과 좌군이 맡고, 좌측으로 돌아오는 기병은 기병대장아고르가...
우측으로 돌아오는 기병은 우띠 장군이 특별히 편성한 장창부대가 막기로 했다.그리고
토타우가 이끄는 중군은 그 뒤를 받치기로 되어 있었다.
비록 장창부대가 막는 곳이 약하기는 하지만 조금만 시간을 끌어준다면 틀림없이성공
할 수 있는 작전이었다. 비록 수는 적지만 압도적인 전투력을 자랑하는 보병이있기에
가능한 작전이었다.
하지만 이런 그들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바이허족의 기병은 양쪽이 아닌좌측으
로만 기병을 집중시켰다. 삼천대 천의 전투가 벌어졌다.
“아뿔싸...당했다...장창부대는 나를 따르라...”
우띠 장군이 급히 병력을 몰아 좌측으로 이동을 시키려구 하였지만 그 거리가만만치
않았다. 어느새 야우커우족의 기병은 바이허족의 기병에 포위가 되는 형국이되버렸다.
“당황하지 마라...정신을 차리고 적을 보라...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중앙으로
모여 전열을 정비하라...”
아고르는 자신들에게 집중되는 기병의 수에 당황을 했지만 재빨리 정신을 수습하고병
사들을 진정시키고자 이리저리 뛰며 부산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압도적인 병력에기가
꺽인 야우커우족의 기병들은 어찌 손쓸 틈도 없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그것을바라
보는 토타우나 다른 장수들은 안타까움에 가슴을 쳤다. 특히 적을 거의다 섬멸하고있
던 대장군 마라난타의 마음은 더욱 그러했다.
‘장군...조금...조금만 버텨주시구려....장군이 무너지면 끝이오...’
“빨리 적을 전멸시켜라...승리가 눈앞이다”
마라난타는 병사들을 더욱 독려했다. 하지만 자신들의 기병이 몰리는 상황을 보자보병
의 사기도 많이 떨어져 적을 베어가는 속도가 현저히 느려지고 말았다. 상황은절망적이
었다. 이제 잠시뒤면 적의 기병에 의해 보병마저 유린당할 최대의 위기가 다가왔다.
하지만 하나의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었다.
“화살....”
소문은 모사드가 전해주는 화살을 철궁의 시위에 걸었다.
‘살인 만큼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이렇게 해서...나도 강호인이라는게 되는것인
가...’
소문은 쓴 웃음을 짓고는 목표를 찾았다. 뱀을 잡더라도 머리부터 잡는법..당연히 적
의 장수부터 치는 것이 기본이었다.
‘저놈...’
소문의 눈에 백마를 타고 장창을 휘두르는 장수가 보였다. 일견하여 도 적의장수임에
틀림없었다.
“핑”
“화살...”
“핑...”
“화살”
소문의 손이 점차 빨라지기 시작했다. 모사드는 아예 소문의 옆에서 품에 하나가득 화
살을 들고 서 있었다. 지금 모사드는 기적을 보고 있었다.
‘헐...어찌 인간이 이리도 화살을 빨리 날린다는 것인가...’
화살을 날리는 소문의 팔 동작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빨랐다.
화살은 소리없이 100여장을 날아가 목표에 적중하기 시작했다.
“하하하 조그만 더 힘을 내거라...적은 이미 우리안에 갇힌 돼지꼴이 되고말았다. 족
장님이 보고 계신다....크헉!!”
한쪽으로 기병을 집중한 자신의 의도가 정확하게 맞아 들어가자 의기양양하여병사들
을 독려하던 포장유는 갑자기 자신의 목에서 터져 나오는 아픔에 정신을 차릴수없었다.
“이...거...시...”
하지만 이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 했다.
“크헉!”
“억!”
동시다발적으로 비명이 울리고 삽시간에 십여명의 기병이 말에서 굴러떨어졌다.하나
같이 자신의 부대를 지휘하는 장수급 이하 부장들이었다. 순식간에 장수들을 잠재운화
살이 이번에는 일반 병사에게 까지 날아왔다. 소리도 없이 빠르게 날아오는 화살에병사
들은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했다.
“지원군이 왔다....힘을내라...공격!!!”
어찌된 영문인지는 몰랐지만 적들의 진영에서 갑자기 동요가 일어나자 아고르는병사
들에게 소리쳤다. 상황은 급변했다. 숫적으러 압도하던 바이허족의 기병은 지휘자를잃
고 또한 어디서 날아오는지도 모르는 화살에 속속 쓰러지자 크게 당황했다. 게다가포위
되어 일방적으로 살육당하던 야우커우족이 힘을 내며 공격을 하자 바이허족의기병은
급격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저저저저.....!”
본진에서 이를 지켜보던 아비타는 조금전까지의 여유를 잃어버리고 자리에서 벌떡일
어났다.
“저놈은 누구냐?”
화살을 날리는 소문에 대해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때 뒤에서 한 장수가아비타
앞으로 나오더니 조심스레 말을 했다.
“지난번 적의 소족장을 놓칠때 신에게 부상을 입힌 청년 같습니다.”
타루였다. 소문에게 두 대의 화살을 어깨에 맡고 기절했던 수송부대의 책임자타루였
다.
“허...저런 활솜씨를 가진 자가 세상에 있다니..눈으로 보면서도 도무지믿기지가 않는
구나....”
“족장님 감탄만 하실때가 아닙니다. 이러다가 기병들이 전멸이라도한다면....”
타루는 다급하게 말을 했지만 아비타는 그런 그를 보며 힘없이 말했다.
“이 전쟁은 이미 끝났다...한번 사기가 꺽이면 걷잡을 수 없는 법이거늘...적은저 궁사
로 인해 그 사기를 다시 살렸지만 우리는 방법이 없으니...이미 진 전쟁이다.철군한
다....하지만 정말 무섭군....단 한명의 궁사가 전쟁의 승패를 바꾸다니....”
“전군 퇴각하라...!!”
본진에서 퇴각의 나팔이 울리고 각 부장들이 뛰어다니며 퇴각을 명령했다. 이미전의
를 상실한 바이허족은 허겁지겁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야우커운족은 조금도 사정을봐
주지 않았다. 그때부터 일방적인 도살이 시작됐다.
“허허...이런 치욕을...”
물러나는 아비타의 입에서 절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아비타는 소문을 잠시쳐다보고
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소문은 더 이상의 활살을 쏘지 않고 있었다.
전쟁은 야우커우족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공격했던 바이허족은 보병은 거의전멸하고
기병만 500여기 살아서 돌아갔다. 하지만 야우커우족도 만만치 않은 피해를 입었다.약
2000의 보병과 1200여명의 기병을 잃었다. 보병은 적의 피해를 감안한다면 그다지큰 피
해를 본 것은 아니지만 1500을 헤아리던 기병중 살아남은 병사의 수가 고작300이었다.
거의 궤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나마 소문의 도움이 없었다면 절대살아남지 못
했을 병사였지만....
“가자...”
“예 형님...”
장수들과 병사들이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을때 소문은 천천히 몸을 돌려자신의 천
막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런 그를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가 있었다.
“형님!!”
소문이 고개를 살짝 돌려보니 구유크가 말을 몰고 자신에게 급히 달려 오고있었다.
“무사했구나...”
“형님!...형님 덕에 살았습니다...”
“난 또...”
구유크의 말에 살짝 미소를 짓는 소문이었다.
“형님 저쪽으로 가시지요....아버님과 여러 장수들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구유크는 소문의 팔소매를 붙잡고 그를 이끌며 말을 했다. 하지만 소문은 이번에도담
담하게 웃을뿐이었다.
“나중에....지금은 피곤하구나...”
“그래도....”
“나중에 보도록하자...난 간다...”
구유크는 잔뜩 아쉬운 어굴을 했지만 더 이상 소문을 붙잡지는 않았다. 대신 떠날준비
를 하는 모사드에게 한마디를 했다.
“형님 잘모시고 가라...너두 수고했다.”
모사드는 대답대신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가자...”
“네 형님...”
소문과 모사드는 올때와는 다르게 천천히 걸어갔다. 소문은 자신이야그렇다쳐도모사
드까지 말을 타지 않는게 이상해서 물어보았다.
“왜 안타는 것이냐?”
“그냥요....”
“미친넘...”
소문의 물음에 모사드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 모사드를 보며 소문도같이웃어주
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소문과 모사드가 전장터를 벗어난지 채 한시진이안되서깨
지고 말았다.
자신들이 이곳으로 올때만해도 멀정했던 마을이 지금은 마을에 큰 불이났는지연기가
치솟고 사람들이 어수선하게 움직였다. 소문과 모사드는 이상한 생각에재빨리마을로
뛰어갔다. 마을은 불타고 있었고 사람들은 울부짖으며 뛰어다녔다. 그런데 그런마을사
람들을 쫓아가며 포박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저것들이....”
소문이 그런 모습에 화를 내여 달려가려 하자 모사드는 소문의 손을 급히잡았다.소문
이 그런 모사드를 의아하다는 듯이 쳐다보자 모사드는 잡았던 손을 놓고조용히말했
다.
“야우커우족 병사입니다.”
“뭐야? 병사들이 무슨 이유로 마을에 불을 지르고 사람들을 잡아가는 것이지?
소문의 언성이 점점 높아갔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저들 중에 바이허족에게 협조를 한 사람이 있는듯합니다. 아
마도 이 근처의 마을은 거의 똑같은 상황일 겁니다”
“그럼 그사람만 잡아가면 되지...마을을 불태우고 사람들은 전부다잡아갈필요는 없
잖아....만약....저들 중에서 바이허족에게 협조한 사람을 찾지 못하면 저들은어찌되는
거냐?”
“아마...모르긴 몰라도 다 죽이거나...노예로 부릴겁니다...”
대답을 하는 모사드는 갑자기 몸에서 한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 이유는 금방알수 있
었다. 소문의 몸에서 엄청난 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모사드는 숨을 쉴수가없었
다.
“빨리 가자...”
소문이 살기를 거두고 달려가자 그제서야 살기의 압박에서 벗어난 모사드는크게심호
흡을 하고 말에 올라탔다. 어느새 소문의 신형은 모사드의 시야에서사라지고있었다.
본진으로 돌아온 소문이 제일 먼저 발견한 것은 이미 죽어 시체가 되어있는100여명의
사람들과 앞으로 시체가 될 200여명의 마을 주민들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겁에질려
울부짖고 있었으며 병사들은 칼을 들고 기세등등하게 서 있었다. 특히 마을의젊은여자
들은 따로이 끌려 가는 것을 보니 죽이지는 않더라도 흉한 꼴을 당할 것이분명했다.
소문은 마을 사람들이 죽어가는 공터 바로 위에 차려진 술자리를 발견하고그리로발걸
음을 옮겼다. 병사들은 그런 소문을 보고 제지하기는커녕 크게 반기며 인사를했다.소
문이 그곳에 도착했을때는 벌써부터 얼굴들이 벌건 장수가 꽤 있었는데소문은그들을
보고 꽤 오래 전부터 술자리가 벌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오....어서오시오....을지소협”
제일먼저 소문을 발견한 우띠가 반가이 맞으며 자리를 권했다. 그제서야 소문을본여
러 장수들과 족장 토타우는 크게 반색을 하며 아는체를 했다.
“자네가 아니었으면 꼼짝없이 죽을뻔 했네그려....어서앉게...뭣들하시오...어서 을지
공자를 자리에 모시지 않고...”
토타우는 특히나 소문을 반겼다. 처음에는 자신의 아들을 구하더니 이번에는자신과야
우커우족을 구한 은인이 아니던가....허나...소문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서있을뿐이었
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은 토타우는 은근하게 말을 걸었다.
“왜 그러는가? 이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가?..아님 무슨 문제라도....”
“밖에 있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제서야 토타우는 소문이 왜 저리 경직되어 있는지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들 중에는 바이허족에게 협조를 한 사람이 있네...”
“하지만 그것이 마을 사람 전부가 죽을 이유는 되지는 안습니다..설령몇몇이그런 일
을 했다하더라도 이미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까? 저들을 풀어주시지요”
그런 소문을 보고 있는 토타우는 마속으로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후후 귓신 같은 활솜씨를 지녔다지만 마음은 여리구만...하하하“
토타우는 이미 소문의 말을 들어주리라 마음먹었다. 어차피 전쟁은 끝났고,마을사람들
을 살려달라는 청을 하는 사람이 다름아닌 소문이었다. 만약 소문이없었다면자신들이
저 꼴이 되었으리라...하지만 한 부족의 족장이 말 한마디에 명령을철회하기란머하고
해서 두어번 더 청을 듣고 소문의 말을 승낙하기로 결심했다.
“흠....자네의 심정은 이해를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일세..자 이리와서술이나한잔 하
게...”
“부탁드립니다....마을 사람들을 풀어주십시오....”
소문은 토타우에게 다시 한번 간청을 했다. 그런 소문을 보는 토타우의얼굴엔희미하
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제 한번만 더....‘
토타우를 오랫동안 모셔온 마라난타와 우띠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있었다.서로
마주보며 눈짓을 주고 받는데...허나...모든 일이 사람의 의도대로 되는것은아니었다.
일은 엉뚱한 곳에서 터져버렸다.
“무엄하다...감히 뉘앞이라고....”
“..............”
소문은 마라난타의 옆에서 술을 마시던 이만주가 자신에게 호통을 치자아무말도하지
않고 슬며시 눈길을 돌렸다.
“어허...그래도....네가 아무리 공이 크다지만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줄알고강짜를 부
리는 것이냐...썩 물러 가거라...”
토타우는 크게 당황했다. 이건 자기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해서 얼른만류를했다.
“그만하게 되었네...”
“아닙니다. 저놈이 지금 감히 족장님을 무시하고 있지 않습니까?어디서굴러먹던 놈
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알량한 활솜씨를 믿고 너무 설치지 말아라....”
“.......”
소문은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인내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과거같으면일단 저
지르고 보겠지만 그동안 소문의 성격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소문이 두주먹을쥐고자
신을 달래고 있을때 이만주는 다시한번 실수를 하고 말았다.
“병사들은 무엇을 하느냐? 어서 저놈을 끌어내지 못하고...”
이만주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런 이만주를 보는 토타우의 심정은 착잡했다.비록소
문이 큰 공을 세웠다지만 이만주는 평생 자신을 따라다닌 충신 이었다.여기서소문의
편을 든다면 그건 여지껏 자신을 따라온 이만주의 체면에 크게 손상을 입히는결과를가
져오게 된다. 게다가 지금은 자신뿐만아니라 일반 병사들까지 다 쳐다보고있었다.그래
서 고민끝에 입을 다물고 말았는데....이런 토타우를 보고 마라난타와 우띠는그저얼굴
을 찌푸리고 있을 뿐이었다.
병사들이 이만주의 명령에 따라 소문에게 달려들었다.
“비켜....”
소문의 나직한 말에 달려들던 병사들은 감히 소문에게 접근하지 못했다.그런병사들
의 모습이 마침내 이만주의 이성을 잃게 했다. 이만주는 자신의 허리춤에걸린단도를
빼들고는 소문에게 말을 했다.
“흐흐흐...네놈이 활을 잘쏘면 나는 단도를 잘쓴다...받아보아랏!”
토타우나 여러 장수들이 깜짝 놀라 만류하려 하였지만 이미 때는 늦고말았다.이만주
의 단도는 정확하게 소문을 향해 날아갔다.
“위험합니다...윽!”
“이런....정신차려라....이녀석아....”
소문은 자신의 앞을 막아서는 모사드를 보고 재빨리 단도를 막으려했지만 그단도는이
미 모사드의 가슴을 꽤뚫어 버렸다.
“이놈아...왜 시키지도 않는 짓을 하느냐...”
“헤헤헤....형님이...무사하실 줄은 뻔히알았지만..순간적으로....몸..이..움직...여
서.......”
모사드는 힘이 드는지 말에 힘이 떨어지고 있었다. 소문은 가슴이 아팠다.모사드는자
신이 이곳으로 와서 구유크와 마찬가지로 처음 사귄 친구라고 할 수 있었다.그런모사
드가 자신의 품에 안겨 죽어가고 있었다.
“형님...그렇게..슬픈표정..하지...말아요,..형님은...웃을때가...제..일멋있답...니
다....”
“그래 알았다. 이제 항상 웃으마....약속한다...”
“헤..헤...그동안 즐거...워...쓰..니....다.......”
“이놈아....이....”
소문의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버렸다. 소문은 그렇게 죽은 모사드의 귀에조용하게속삭
였다.
“절대....혼자...보내지는 않는다.....”
“히히힝!”
소문의 변화를 제일먼저 눈치챈 것은 주변의 말들이었다. 사람 보다 몇배의감각을지
닌 말들은 갑자기 쏟아져 오는 살기에 미쳐 날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살기는곧사람들
에게도 쏘아져 갔다.
“감히...내 동생을 죽였다...이거지....다시 한번 던져봐라... ”
그들이 느끼기에 소문은 이미 사람이 아니었다. 온 몸에서 쏟아져나오는살기...출행랑
을 익히며 얻은 살기가 모사드의 죽음으로 폭발하고 말았다.
“저저....막아라...족장님을 보호하라”
그나마 정신을 차린 노장군 우띠가 병사들에게 말을 했지만 병사들은 소문의살기에압
도되어 꼼짝할 수 없었다. 소문은 모사드의 몸에 박혀 있는 단도를 뽑았다.피가튀어올
라 소문의 얼굴을 덮어버렸다.
소문은 단도를 들고 이만주에게 걸어갔다. 어느새 단도는 소문이 내뿜는 기로인해일
장 가까이나 그 검기를 형상화 시키고 있었다. 소문이 다가오지만 이만주가 할수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비명도 없었다. 소문이 한번 휘드른 단도에 이만주의 몸은 머리에서발끝까지깨끗하
게 절단되어 버렸다.
“야우커우족....오늘 내가 이곳에서 지워버린다.....”
소문은 단도를 하늘 높이 쳐들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기수식이었다.주변의장수들
과 병사들은 그런 소문을 그저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소문은 내공을끌어올리며나지
막하게 읇조렸다.
”절대삼검(絶對三劍) 제3초 천지개벽(天地開闢)....“
오! 절대삼검이라니....소문의 선조가 20여 년을 폐관수련하여 만든 최고의검법이시전
되려는 순간이었다.
“형님!!!!!”
“.......그래...네가 있었구나....”
소문은 자신을 부르짖으며 달려오는 구유크를 볼 수 있었다. 일이 영 심상치않게돌아
가자 우띠 장군이 사람을 시켜 재빨리 구유크를 부른 것이다. 잠시 술자리를피해있던
구유크는 우띠 장군의 연락을 받고급히 달려오는 길이었다. 헌데 술자리 근처에막도착
한 구유크가 본 것은 소문이 머리위로 단도를 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구유크는그런소
문의 자세에서 문득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해서 일단소문을부른것인데....구유크가 만
약 조금이라도 늦게 왔다면 그가 본 모습은 흔적도 남지 않은 폐허 였을 것이다.
소문은 머리 위의 단도를 천천히 내리더니 땅에 던져버렸다.
“형님 어찌 된 일입니까? 아니...모사드는 왜 저리...?”
“.......”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모사드를 발견한 구유크가 놀라 물었다. 하지만소문은아무말
도 하지 않았다.
“여기선 어떻게 하는지는 몰라도 내가 살던 곳에서는 사람이 죽으면장례를치러주고
땅에 묻는다. 모사드도 그리 해줬으면 좋겠구나...이제 이곳은 내가 있을 곳이못되는구
나...아직 중원말을 할지는 모르지만 여행을 하는데 큰 문제는 없을것이다....이제그만
떠나야 겠다. 그동안 고마웠다....너와 모사드는 절대 못잊을것이다...잘있어라...”
소문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 하는 구유크에게 말을 하더니 몸을돌려걸어가
기 시작했다.
“혀...”
소문을 부르려는 구유크의 행동은 토타우의 저지로 무산되었다. 토타우는구유크의팔
을 붙잡고 한숨을 내쉬며 살며시 고개를 흔들었다. 무슨 일이 있었음이 틀림없었다.
‘빌어먹을....빌어먹을....’
구유크의 눈에선 어느새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소문을보낼수는없었
다.
“형님...저를 잊지 마십시오...언제가 찾아주리라 믿습니다...꼭입니다...꼭찾아주십
시오....형님!!”
소문을 부르는 구유크의 외침은 어느새 절규로 바뀌고 있었다.
‘그래....언젠가는.....’
본진을 벗어난 소문은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천천히발걸음을옮겼다.서쪽.....자신을 기
다리는 중원을 향해서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