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0장-반야심경도해(般若心經圖解) (12/32)

궁귀검신(弓鬼劍神)제10장-반야심경도해(般若心經圖解)

소문이 입은 상처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부러진 왼쪽 팔은제외하고도이곳저

곳 너무 많은 상처를 입었고, 상처를 입은 몸으로 무리하게 싸우다보니 원기가많이상

해 치료하기가 곤란할 정도였다.   소문이 자리를 털고 일어난 것은 병석에누운지정확

하게 칠일이 지나서였다. 왼쪽 팔은 여전히 붕대에 감겨있었지만 부러진 뼈를맞추고꾸

준히 치료를 해서인지 고통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방에서 나온 소문은 예전의 소문이 될 수 없었다. 생긴거며 걸친 옷등은예전

과 다를 바 없었지만 그 풍기는 기도가 달랐다. 아직도 붉게 충혈된 눈과긴장된몸에선

살기가 뿜어져 나왔고 그것이 철면피로 하여금 소문에게 선뜻 다가가지 못하게하는이

유가 되었다.

소문은 그런 면피를 보고 그저 쓴웃음만 지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도 이살기를없애 보

고자 애를 썼지만, 그것이 무려 100여 일이나 죽고 죽이는 사투 속에서자연스레몸에 베

인 것이라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마당에서는 할아버지가 쪼그리고 앉아서 연일 탕약을 달이고 있었다. 소문은그모습

을 보고 자신이 철면피의 탕약을 달이던 것이 생각났다.

   "탕약은 정성이라던데....내 몸이 이리 더디 낫는 것을 보면 정성이 영...."

소문이 할아버지 옆을 지나가며 한마디를 툭 던지자 반응은 바로 나타났다.

   "뭬야? 정성? 하....나참...니놈이 고생 같지도 않은 고생을 했다고 하여내불쌍히 여

겨 약을 달이고, 쳐 먹이고 있는데 정성이 부족해? 에라이....."

   "그게 아니라...할아버지의 정성이 부족하다는 것이 아니라....말이그렇다는것이지

요...말이...."

   "니놈은 동굴에서 뻔뻔함만 배워왔느냐?....에잉 고얀놈...."

소문은 기분이 좋았다. 요 며칠 동안은 할아버지가 자신에게 말도 제대로못하고눈치

를 보고 있었다. 아무리 막나가던 할아버지라도 손자를 늑대굴에 집어넣은것이조금은

미안했는지 영 서먹서먹했다. 하지만 소문은 그게 더 싫었다. 그건 어쩔 수없는수련이

었고, 자신도 살아 나왔으니 예전의 할아버지로 돌아갔음 했다. 비록 꼬장도심하고,고

집도 심하고, 자기를 잘 두들겨 패긴 했지만....

그래서 이런 농을 했는데 할아버지도 소문의 의도를 잘 아는 듯 했다.

   "그나저나... 이놈의 살기를 없애는 방법은 없나요? 영...께림직해서...."

   "흥, 요놈아 그게 그리 쉬운 건지 아느냐? 그리고 애써 만든 건데 그걸왜없애?"

   "예?"

소문은 영문을 몰랐다. 애써 만들다니...

   "내 그럴 줄 알았다. 미련하기가 곰보다 더하니...."

말을 마치자마자 할아버지는 예의 그 순간 이동을 통해서 소문에게 다가오셨다.

할아버지가 소문에게 다가오는 것을 소문은 똑똑히 보고 있었다. 옜날에는꼼짝도못하

던 기운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어라...지금 저한테 시합을 하자는 것입니까?"

소문은 능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할아버지는 소문을 잡지 못했다.

   "힘들 겁니다...제가 쫌 익혔지요...카카카"

할아버지는 그런 소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방금 자신이 살기를내보이며접근하자

순간 소문의 몸에서도 자연스레 엄청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다가오면공포요.....도망

갈땐 쫓아가기가 두렵게 만드는 그 기운...소문은 출행랑을 대성한 것이었다.

   '허...무섭구나....원래 그런 것인지 알고는 있었지만....내가 순간공포를느끼게 될 줄

이야....제대로된 출행랑이로다....제대로된...그렇다면,...'

   "이놈아..그 과정을 거치면 개나 소나 다 하는 것이다...네가 개나 소도아닌데그 정도

도 못한다면 말이 안 되는 것 아니더냐...."

   '꼭..비교를 해도....'

   "그나저나 그렇게 살기를 풀풀 날리면서 살수는 없으니 이제 그 살기를지우도록하자

꾸나..."

   "예? 아까하고 말이 틀리잖아요..."

   "................................"

소문의 물음에 할아버지는 기도 안 찬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왜요?"

   "너...무공 익히는 놈 맞냐?"

   "........"

   "내 말인 즉슨 그 살기를 안에 갈무리하여 필요할 때써먹자....하는것인데...이렇게

까지 설명을 해야 알아듣느냐?

   "................"

소문은 속으로 욕을 바가지로 해댔지만 할아버지의 말이 딴은 맞는지라조용히입다물

고 있었다.

   "지난번의 출행랑수련과 같이 두 가지의 길이 있다. 첫 번째는 폭포위냇가에서수련

하는 것이고....."

   "두 번째로 하겠습니다"

물이라면 이가 갈리는 소문인지라  폭포라는 말에 들을 것도 없이 두 번째안을선택했

다.

   "두 번째라....후회 안 하겠느냐?

   "물론입니다.."

   "정말 후회 안 할 자신이 있는 것이더냐?

   "당..연히.."

   "마지막으로 물어보자...진정 후회가 없으렸다....나중에 딴소리를 하면아니된다...."

   "그게....저..."

   '어라...이상한데....두 번째가 무엇이 길래 저리 뜸을 들인다....'

소문의 마음속에 불안감이 무럭무럭 싹트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왕 선택한것끝까지

밀고 나가기로 했다.

   "두 번째 것으로 하지요!!!"

   "흠...그래 네가 정 그렇다면....두 번째는 폭포아래에서 수련하는 것이다."

   '지.....미...내 이럴 줄 알았다....'

  소문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할아버지를 노려보았으나 할아버지는 뭐가그리좋

은지 싱글벙글 이었다.

소문이 동굴에서 나왔을 때는 이미 해가 바뀌어도 한찬 바뀌어 있었다.3월이면여느 곳

에서는 봄 맞이 준비가 한창이겠지만 이곳은 여전히 추운 겨울이었다. 웅장한소리를내

며 물을 떨어뜨리던 폭포도 장백산의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꽁꽁 얼어있었다.소문은

그런 폭포를 보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런...폭포가 얼어있네요..어쩐다..이래서는 수련이 힘들텐데..."

말은 아쉬워하는 듯 했으나 표정은 절대 그렇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그런소문을힐끗

쳐다보았다.

    "그리 염려 할 것 없다. 따라오너라..."

할아버지가 소문을 데리고 간 곳은 물줄기가 얼어있는 폭포의 뒷편  이었다.비록폭포

의 위는 얼어있었지만 그 아래는 약간이기는 하나 물줄기가 떨어지고 있었다.그것을

본 소문의 실망으로 얼글이 일그러졌다.

   "오늘부터 여기서 내공심법을 익히거라..."

   "내공심법이라뇨...?"

   "네가 단순 호흡법이라 생각했던 그것말이다.반야심경도해(般若心經圖解)....떨어지

는 물줄기를 맞으며 이것을 익히다보면 저절로 살기가 제어될 것이다"

   "그냥 나가서 익히면 안될까요? 꼭 폭포아래서 익힐 필요는..."

   "나나 네 선조분들은 살기를 제어하기 위해서 무려 석 달을 폭포아래서수련했다.또

한 하루수련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복날 개 패듯 두들겨 맞았다. 너도맞을래?네놈은

운이 좋은 줄 알아라...지금은 반야심경도해가 있어 두들겨 맞지는 않으니...."

석 달을 두들겨 맞았다는 말에 불만이 쏙 들어갔다. 할아버지의 눈치를보아하니소문

이 그 방법을 택하기를 은근히 기대하는 모습이 아닌가....

   "하죠...한다구요...."

소문은 투덜거리며 폭포 아래로 몸을 움직였다.

   "내가 무위공(無爲功)과 삼초의 검법을 접해 보지 못해서 뭐라 말은하지못하지만 이

번이 네가 무공을 익히는데 가장 큰 고비가 될 것이다. 네게 말은 안 했지만어쩌면여기

서 너의 인생이 끝이 날수도 있음이니...힘을 내거라... 네 아비처럼여기서무너져서는

안된다....."

폭포 아래로 다가가는 소문을 바라보며 할아버지는 나직이 중얼거렸다하지만떨어지

는 물소리에 가려 소문에게까지 들리지는 않았다.

   "으...으흐흐흐...."

추었다. 이빨이 딱딱 부딪치고 온몸이 떨려왔다. 예상은 했지만 이리추울줄이야...소

문이 한겨울에도 집 앞 냇가에서 목욕을 한다지만 차원이 달랐다. 게다가위에서떨어지

는 물의 압력은 상상을 불허했다.

   "무엇하는게냐? 그대로 얼어죽고 싶은게냐? 어서 빨리 정신을 차리고운기를하거

라...."

추위에 떨며 제대로 안지도 못하는 소문을 보고 답답하다는 듯이할아버지가외쳐댔

다. 소문은 재빨리 주저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할아버지의 말이 맞았다.어차피나가지

않을 것이라면 한시라도 빨리 호흡법을 시행하는 게 중요했다. 하지만 자신이익힌것이

라고는 그저 앉아서 숨을 쉬는 것인데 과연 도움이 될는지 의심이 갔다.

   "잘 듣거라...그 동안 너는 반야심경도해를 알면서도 그 운용법을 제대로익힌적은 없

을 것이다. 하지만 출행랑을 익히는 과정에서 기의 흐름을 이끄는 방법은깨달았을터

억지로 기를 움직이려 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기가 움직이는 대로몸을맡기거라...추호

도 의심을 하지 말고 반야심경도해의 위력을 믿어라...네 몸은 충분히 보호해주고도남

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소문의 귀에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필사적으로 참고있었다.머리에

서부터 쏟아지는 물과 그 물의 냉기에 이미 온몸의 감각이 사라지고있었다.평상시처

럼 호흡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기적이라 느껴질 만큼 소문의 상태는 안 좋았다.

   '이대로 끝인가?'

소문이 동굴에서와 마찬가지로 두 번째로 죽음을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소문의몸안

에서 자신도 모르는 힘이 꿈틀거렸다. 그 기운이 최초로 준동한 곳은 배꼽 바로밑의배

(丹田)에서 였다. 처음엔 미약했던 그 기운이 점차 커지더니 몸 안의 다른곳으로이동

을 시작했다.

기운이 처음으로 이동한 곳은 엉덩이아래(會陰)로 이곳에서 잠시 멈추는가싶더니곧

이동을 시작했다. 엉덩이에서 등(命門)을 지나고 그 움직임이 잠시느려졌다가목(天柱)

을 지나 마침내는 머리(百匯)에 도착했다. 머리에 도착한 그 기운은 한참을머무르다다

시 아래로 내려 왔는데 아까와는 달리 얼굴(太陽), 가슴(期門)을 지나 배꼽아래로내려

왔다.

이렇게 그 기운이 한번 온몸을 돌자 소문은 이전과는 다르게 약간은편안해지는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게 무엇이지....흠....반야심경도해가 만든현상인가....아무튼살았구나....어디 다

시 한번....'

하지만 소문이 의식하고 기를 움직이려 하자 잠시 물러갔던 추위는 다시몰려오고그

기운은 어디로 갖는 지 자취를 찾을 수 없었다. 소문은 당황했다. 그런소문을바라보는

할아버지 또한 소문 못지 않게 당황했다. 할아버지는 소문이 이미 어떤상황인지를알

고 있었다.

   "이놈아...정신차리거라...믿고 맡기라 하지 않았더냐....네가 아니라기의흐름에 너

를 맡기라 하지 않았느냐..."

할아버지는 과거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소문의 아버지였던 을지광(乙支光)도여기서무

너졌다. 그는 소문보다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뛰어난 자질을 지니고 있었기에그기대가

사뭇 컸다.

하지만 그는 출행랑을 익히고 살기를 다스리다 주화입마(走火入魔)에 걸려겨우목숨만

을 건질 수 있었다. 그 충격에 을지광의 조부는 얼마 못가 돌아가시고 자신만이남아백

방으로 노력하여 비록 무공은 익히지 못하지만 살아가는 데는 크게 이상이없는몸으로

까지 겨우 회복을 시켰다. 결국 소문을 낳은지 얼마 되지 않아 도적들에게죽임을당했

지만....평생 가슴에 묻어야 할 아픔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한번의 실수가 되풀이되려하고 있었다.

   '아뿔싸....이런 실수를...'

할아버지는 땅을 치며 후회를 하고 있었다. 살기와 싸우는 과정에서극정(極正)인반야

심경도해로 만들어진 내공은 살기를 압도하다 못해 크게 넘쳐버렸다. 상극의기운이만

났으니 힘들이 폭주하는 것은 당연했다. 소문의 아버지는 그 넘치는 기운을다스리지못

하여 주화입마를 당하고 말았는데....소문의 아버지가 비록 반야심경도해를 익혀그힘

은 넘쳤지만 아직 기운을 다스리는 운용법이 미숙했다. 해서소문에겐반야심경도해의

기운이 넘치지 못하도록 아예 금제를 해 놓았다. 그리고 살기를 다스리기에 앞서그운

용법을 깨닫게 하려고 하였건만 살기와 싸워보기는커녕 추위에 목숨을잃을판이었다.

할아버지가 이점을 깨닫고 소문을 구해보려고 했으나 이미 때는 늦어버렸다.구했다하

더라도 몸이 망가지는 것은 필연이었다. 자신의 어리석음을 탄식하고 있는데그때갑자

기 소문이 얼굴이 편안해지는 것이 아닌가? 또한 찬물이 닿는 몸에서는김이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는 틀림없이 내공이 운용되어 추위를 이겨내는모습이었다.할아

버지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런 안도도 잠시 다시 소문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졌다.할아버지는대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해서 소문에게 소리를 친 것이었다.

소문은 할아버지의 외침을 듣고 깨달아지는 바가 있었다. 방금 전에 일어난기운은자

신이 알고 있는 기운이 아니었다. 당연히 어디에서 시작되고 움직이는지알지도못했는

데 무리하게 움직이려 하다보니 아예 사라져 버린 것이다. 소문은 재빨리정신을가다듬

었다. 그 기운을 의식하려 하는 마음을 버리고 예전에 하듯이 천천히호흡을가다듬었

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아까의 기운보다 더 큰 무엇인가가 또다시느껴졌다.

   '왔구나....'

소문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 기를 다시 어찌 해보겠다는 마음은 아예버렸다.그

기운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소문의 몸을 돌았다. 그 기운이 지나가는 곳마다한기가물러

나고 따뜻한 온기가 가득 찼다.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소문의 몸을 한바퀴돈기는

다시 소문의 몸을 돌았다. 한번...두번...그 기운이 계속해서 자신의 몸을돌자아까의 추

위는 어디로 갔는지 자취를 감추었고, 소문은 몸도 마음도 편안해짐을 느낄수있었다.

  소문이 더 이상의 추위가 느껴지지 않아 연공 끝내고 폭포 밖으로 걸어 나왔을땐해

는 이미 서산 너머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아고야...."

소문은 난데없는 충격에 머리를 감쏴고 비명을 질렀다. 역시 고통의원인은할아버지였

다. 할아버지는 곰방대를 높이 치켜들고 무시무시한 얼굴로 소문을노려보고있었다.

   "저기......무슨..일로...그러시는지..."

소문은 영문은 몰랐지만 기가 팍 죽어 기어가는 목소리로 물어봤다.

   "몰라서 묻느냐? 이놈아 내 그냥 믿고 기의 흐름에 몸을 맡기라 하지않았더냐?네놈

의 어리석음 때문에 우리 가문의 대가 끊길뻔 했는데....무슨 일로? 아무일도아니다 이

놈아..."

할아버지는 곰방대로 소문의 몸을 마구 후려쳤다. 출행랑을 펼쳐 도망가고싶은마음

은 굴뚝같았지만 그 후한이 두려워 차마 그러지 못하고 그저 몸만 요리조리돌려충격

을 최소화 하고 있었다. 폭포에 젖은 소문의 옷이 다 마를 때까지곰방대를휘두르시던

할아버지는 숨이 차는지 매질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갔다.

   "제길 늑대한테 물린 것은 버틸만 했는데 이눔의 공방대는 진짜아프단말이야....."

  그러나 투덜투덜 따라가는 모습과는 달리 별다른 고통이 느껴지지않는얼굴이었다.

소문은 며칠동안 폭포에서 추위와 싸웠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열번을 죽어도이상할것

이 없는 상황이었지만 살을 에는 듯한 냉기도 머리 위로 떨어지는폭포수의압력조차도

소문을 어찌하지는 못했다. 비록 금제를 당하고는 있지만 과연반야심경도해의효용은

무궁무진했다.    다만 소문이 반야심경도해로 인해 얻어진 기를 제대로다스리는방법

을 모르고 있어 그 위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소문도 약간의 기를 모으고 있었고 활용도 했었다. 지금까지 출행랑에쓰였던힘(소문

이 단순 호흡법이라 생각한 것에 의해 만들어진힘)은 할아버지가 해놓은금제를벗어난

반야심경도해의 힘이었다. 미약하나마 약간의 힘이 기를 형성하고, 소문은사지에흩어

져 있는 그 기를 잠시 동안 한곳으로 모아 활용하는 방법을 터득했었다. 하지만힘의원

천은 반야심경도해였지만 기를 모으는 방법이나 기의 흐름도 다른...진정한의미에서

반야심경도해의 내공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요 며칠 소문이 수련하는 것은 반야심경도해로 얻은 내공의 운용방법이었다.할아버

지 말로는 소문이 지닌 살기를 제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내공으론 어림도 없고금제되

어 있는 모든 내공을 풀어야 살기를 제어하고 다시 '포두이술'을 연마할 수있다고하였

다. 해서 벌써 며칠째 폭포 밑에 앉아 수련하고 있는데 그게 그리 말처럼 쉽게되지않았

다. 아무런 생각 없이 평소대로 호흡을 하면 기가 모이지만 그 기를 의식하게되면다시

사라졌다.

소문은 짜증이 났다. 하루이틀이지...잡힐 듯 잡히지 않는 것이 도통진전이없었다. 물

론 어떤 의미에서는 진전이 있었다고 할 수도 있는 것이 처음엔 미약하게시작했던움직

임이 지금은 소문이 놀랄 정도로 그 기운이 커져 소문의 몸 이곳 저곳을들쑤시고다녔

다. 비록 그 기를 의식하면 다시 사라지지만 기가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지못할소문은

아니었다.

   "휴우...오늘도 안되는 건가..."

소문은 한숨을 내쉬었다. 할아버지는 그런 소문을 보고 조용히 웃었다.

   '추위는 막아주지만 그 기운을 제대로 움직이지는 못할 것이다...허나약간이나마스

스로 깨우치면 그 받아들임이 빠른법...며칠 고생을 한 후에 이 할애비가그운용법을 알

려주마...'

폭포에서 막 몸을 일으키는 소문은 방금까지 냉기와 싸웠다는 것이 믿겨지지않을정도

로 평온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안색은 그리 좋지 못했다. 도무지 이해가가질않았다. 지

금 자신의 아랫배에는 약간의 기가 구슬처럼 뭉쳐있었다. 그나마 그 동안의고생으로이

만큼이나 만들어놨는데....쓰질 못하다니...

낙담하여 집으로 돌아오는 소문에게 할아버지는 반야심경도해의 역사에 대해말을하

기 시작했다.

   "반야심경도해는 혜능조사가 만든 신공이다. 혜능조사는 선종의 6대조종으로초기엔

그리 순탄치만은 않은 생을 사셨다. 훗날 사람들이 이분의 위대함을달마대사와비교까

지 하였지만, 이분은 무공은커녕 글도 깨우치지 못한 분이었다. 그런데어느날그분이

말씀하시기를 '많은 불문 무공이 있으나 그 대부분이 편협하고 살기가짙구나...역근경

(易筋經)이나 세수경(洗髓經)을 익히면 좋으련만 비전으로보호하고있음에야...'라고

말씀하시더니 이후 누구나 볼 수 있고 수련할 수 있는 내공심법을 만드셨는데그게바

로 반야심경도해다.

혜능께서 이 무공을 만드실 때 염두해둔 사람들은 무승이 아니라 일반나약한스님이었

다. 경전과 진정한 불교의 진리를 깨우치고자 정진하는 스님들의 건강을염려하여심신

을 단련하라는 요량으로 만드셨다. 헌데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으니...이 무공을익힌무

승은 별다른 성취를 얻지 못했으나 평생 반야심경도해를 익혀온 한 스님이자신도모르

게 무공을 펼치신 바 그 위력이 실로 뛰어났다. 이에 놀라 후인들이역근경이나세수경

처럼 비전으로 보호하고 말았다....어리석은 후인들이 큰 스님의 뜻을 이해하지못한우

를 범하고 말은 것이다"

   "이상하네요...무공을 익히는 스님보다 경전만 읽으신 분이 대성을하다니...."

소문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무공을 지닌 사람이 내공심법을 익히는데그성취

가 더 떨어지다니...이해가 되질 않았다.

   "일견 생각하기엔 네 질문이 당연하나...그건 반야심경도해를 잘 모르는말이다.반야

심경도해는 혜능께서 '무념(無念), 무상(無想), 무욕(無慾)'에 기초를 두고만드신것인

데, 무승들은 무공에 대한 욕심이 있었으니 그 끝을 볼 수 없음이 당연했다.하지만평

생 진리를 추구하던 스님들은 위의 세 가지 화두를 끝임 없이 찾고 행하니애써익히지

않아도 그 성취가 남다름은 필연일 것이다.

내가 너에게 반야심경도해를 어릴적부터 익히게 한 것은 네가 세상을 알아갖가지상념

들이 뇌리에 박히기 전에 어느 정도 성취를 이루라는 뜻이었다. 헌데 그성취를앞두고

잡념과 욕심에 빠져 허우적 거리고 있으니 참으로한심하구나.,..무념(無念),무상(無

想), 무욕(無慾)을 알지 못하고는 절대 깨달을 수 없으니 우선잡념들을버리거라...."

   "예...할아버지...."

소문은 부끄러웠다. 자신 또한 어리석은 무승들처럼 무공이란 욕심에 푹빠져있었던

것이다.

다음날부터 소문은 더욱더 수련에 정진했다. 이제 기를움직이니...모으니...하는것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평상시 하던 데로 운기를 하고 있으면 언젠가는 이룰수있겠

지... 하는 심정으로 기가 움직이거나 말거나 아예 무시를 했다.

소문이 이렇게 수련을 한지 벌써 한달 소문의 배에는 이미 거대해질정도로거대해진

기의 덩어리가 그 탈출구를 찾으려고 은근히 소문을 압박하였다. 처음수련할때만해도

구슬처럼 미약하던 것이 어느새 아랫배를 꽉 채우고 남음이 있었다. 하지만소문은이

를 애써 무시했다. '나는 가만히 있을 것이니 알아서 움직여'하는 식이었다.

사실 소문의 몸에 가해졌던 금제는 이미 풀려 있었다. 소문이 할아버지의 말을들은이

후 제대로 된 자세로 수련에 임하자 은근슬쩍 금제를 풀었는데 수년동안 소문의몸에억

눌려 있던 기들은 재빠르게 한곳으로 모여 들었다. 해서 실로 엄청난 기운이소문의아

랫배, 즉 단전에 모였다. 그런데 소문이 이를 이끌어 주지는 않고 계속해서다른기들을

쌓고 만 있으니....

마침내 참지 못한 기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윽....이게 머야....'

처음에 폭포에서 느꼈던 기가 움직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엉덩이를 통해등으로머리

로...그리고 다시 아랫배로(一周天)로 돌았다. 한번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기는소문의

몸을 무려 12번을 돌고 나서야 비로서 잠시 멈추는 듯 했다.

   '휴,,,이제 끝인가 보구만....'

소문은 절로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 기운들이 움직일 때마다 엄청난고통이느껴졌다.

하지만 운공 중에 무리하게 움직이면 안 된다는 것은 소문도 알고 있었다. 입술을꽉깨

물고 평상심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애초에 기를 움직인 것도 자신이 아니고또움직일

자신도 없기에 그저 빨리 멈춰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빌어먹을....이건 또 머야....'

소문이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아랫배에 잠시 멈추어 있던 기들이 또다시준동을시작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까와는 다른 방향으로 기가 움직이고 있었다.한쪽으로만움직

이던 기가 두 개로 나뉘더니 하나는 몸 뒤로 하나는 몸 앞쪽으로 맹렬하게달려가는것

이다. 소문은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빨리 끝나기를 빌고또빌었

다.

   '꽝'

머리를 울리는 큰 충격에 소문은 정신을 잃은 뻔했다. 끊어질 듯한 정신을붙잡고있는

것은 소문의 자존심이었다.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자신에 대한 반성과 이에대한오기로

끝까지 정신을 잃지는 않았다.

몇 번의 충격을 주고는 다시 한번 제자리로 돌아온 빌어먹을넘(소문에게는악귀보다

무서웠다)들은 잠시의 시간도 주지 않고 또다시 소문을 괴롭혔다.

   '미치겠네....이번엔 또 어디로 가는거야....'

잠시 휴식을 취하던 기들은 또다시 맹렬하게 움직였다. 이번엔 어디로움직이는지소문

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 방향이 하나가 아니었다. 수십 수백 갈래로 나뉜기의가

닥은 소문의 몸 구석구석을 뚫고 다녔다. 그 고통이란 좀전과 비교가 되지않았다.

  '빌어먹을...빌어먹을....빌어먹을.....'

소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욕뿐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소문은 문득 자신을 괴롭히던 그놈들이 사라지고없음을느

낄 수 있었다. 하지만 몸을 움직일 수는 없었다. 온몸이 나른했다. 소문은다시정신을

차리고 호흡법을 강행했다. 평소에 하는 운기와 다름이 없었지만 그 결과는달랐다.소

문이 운기를 시작하자마자 아랫배엔 어김없이 그 기 덩어리가 만들어졌다.하지만아까

와는 달리 혼자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소문이 원하는 이끄는 흐름대로순순히따라왔

다. 신이 난 소문은 기가 스스로 움직이던 방향에 따라 기를 움직였다.고통은없었다.

오히려 편안함과 새로운 힘이 그 기를 통해 사지로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편하군....편해....'

오랜 싸움으로 지친 소문은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비록 자신들을이끌어줄주인

은 정신을 잃었지만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나 있는 듯기들은계속해서

소문의 몸을 돌고 있었다.

   "저....저건...."

소문은 정신을 잃고 있었지만 그런 소문을 바라보는 할아버지는 기겁을하고있었다.

자신이 잠시 집에 다녀온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오늘쯤 해서기의운용법

을 아려주려 했건만,...

할아버지가 바라보는 소문은 폭포아래에서 정좌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소문의머리위

에는 세 개의 고리가 떠 있었다.

   "삼...화....취정(三花聚頂)!!! 삼화취정이라니....도대체가..."

삼화취정이 어떤 것인가...생사현관이 타동 되어야만 하는 지고한경지가아니던가.....

그것이 소문에게서 나타나는 것이었다.

   "헛....설마....."

소문을 바라보던 할아버지의 눈이 다시 놀람으로 부릅떠졌다.

   "오기조원(五氣造元)?....오기조원까지...."

소문의 머리위 에는 어느새 세 개였던 고리가 다섯 개로 늘어나 있었다.

   "오기조원이라면...생사현관뿐만 아니라 임독맥(任督脈) 까지도뚫었단말인가....허허

허허.....허허허허"

할아버지의 얼굴은 놀람과 기쁨으로 가득 찼다. 아들은 실패하여 폐인이되었지만손자

는, 이제 겨우 열 한살인 어린 손자가 꿈의 경지를 이루어 낸 것이다.어느새눈시울이

젖어드는 것을 느꼈다.

   '광(光)아...보고 있느냐? 니 아들놈을 말이다...허허허'

소문은 그 자세에서 무려 세시진이나 지난 다음에야 눈을 떴다. 날은 이미어두워져있

었다. 소문은 자신 앞에 할아버지가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소문을보

고 나직하게 말하였다.

   "수고했다. 따라오너라..."

   '어라...웬일이랴....수고라니....흠흠...'

소문은 종종 걸음으로 할아버지를 따라갔다. 자리를 잡고 앉은 할아버지는아주가끔

보이는 진지한 자세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호흡수련은 천지자연(天地自然)의 힘을 조금씩으로 흡수하는 훈련이다.이는아무나

할 수 있는 매우 간단한 훈련이다. 인간의 중심축은 소위'단전(丹田)'이라는곳으로, 이

곳에 힘(氣)이 충만하여야 오장육부가 제자리에 서고, 기의 순환이 잘되는것이다.

배꼽아래로 기해(氣海), 석문(石門), 관원(關元)이라는 혈이 있는데, 단전은관원혈부

위의 뱃속으로, 등과 가운데쯤 위치한다. 관원혈은 배꼽에서 아래쪽으로 자기손가락

네 마디의 거리다.

하지만 단전을 딱히 규정짓기는 애매하다. 작용을 하기는 하지만 인체의장기처럼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단전은 오랜 세월 꾸준히 수련하여 만들어지는기관이다.말하자

면 뱃속에다 인위적으로 기의 집을 짓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단전에다 기를 불어넣는 방법으로 만들어 진 것들이 소위 말하는 내공심법이라는것들

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단전에 쌓여 얻어진 기를 내공(內攻)이라 함은 너도알것이다.

단전에 쌓인 내공은 계속된 내공수련을 통해 그 힘이 강해지고 몸 구석구석에힘을보내

준다.

내공 즉, 기라는 것이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것은 아니다. 인체에는 이런기의통행로가

있으니 이를 기경팔맥(奇經八脈) 한다. 기라는 것은 이 기경팔맥을 통해들어와쌓이고

나아가 쓰인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기경팔맥이 막힘 없이 뚫려있지만 세속의 곡기와 탁한기운으로불

순한 찌꺼기가 쌓여 점차 막혀버린다. 하지만 무공을 익힌 사람들은 내공심법등을통

해 인위적으로 기경팔맥을 뚫어줌으로써 기의 흐름을 원활히 해왔다. 특히독맥과임맥

은 기경팔맥의 핵심을 이루는 것으로 상승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막힘이없

이 뚫려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일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무리해서뚫는다고뚫어지

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해침을 당하기 일쑤다."

소문은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알 수가 없었다. 그 동안 할아버지가가르쳐준호흡법, 아

니 반야심경도해를 익힐 때도 이런 말은 하지 않았다. 그냥 숨을 쉬다 보면마음이편해

지고 때때로 기라는 것도 만들어져서 신기해 한 적은 있었다. 물론 최근에 이르러이기

를 다스리는 수련에 몰두해 있었지만 아직 그 원리나 참 뜻을 알지는 못하고있었다.소

문이 의아해 하고 있을 때도 할아버지의 말은 계속 되고 있었다.

   ".......해서 그만큼 운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너에게 기를 쌓는방법은가르쳐 주

고 운용하는 것을 가르쳐 주지 않은 이유도 그와 같다. 폭포아래서 네 스스로약간의깨

달음을 얻은 연후에 본격적인 수련을 시작할 생각이었건만.....허허허...이제는아무소

용이 없어졌으니.."

할아버지의 말을 들은 소문은 소름이 끼쳤다. 소용이 없어지다니..틀림없이아까잠시

정신을 잃은 동안 무슨 일이 나도 난 것이 분명했다. 이제까지의 노력이허사가되다

니....억울했다.

   "소용이 없다니요? 그럼 이제 내공이라는 것을 익힐 수 없나요?"

질문을 하는 소문의 음성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허허...네가 나의 말을 오해했구나...."

   "그럼...?"

   "내말은 내가 가르쳐 줄 필요도 없이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네게무슨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르긴 몰라도 생사현관과 임독양맥이 모두 막힘 없이뚫린

것 같으니....다른 사람이면 평생을 수련해도 얻기 힘든것을얻어버렸구나,....허허허....

그래 아까 무슨일이 있었는지 말해보거라...."

소문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아까 자신의 몸속에서 일어난 일을 자세하게말하기시

작했다.

   "허....네말을 들으니 온몸의 세맥까지 타동이 되었구나....이런 기적이..."

뭔지는 몰라도 할아버지가 저리 놀라는 걸 보니 엄청난 것을 이룬 듯 했다.뿌듯한기

분...하늘을 날아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리 와보거라...흠...역시...."

할아버지는 소문의 몸을 만져보더니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네가 기경팔맥이 뚤리고 세맥까지 막힘이 없고, 엄청난 내공을 얻기는했지만아직

그 힘을 받아들이기에는 부족함이 있구나...."

   "예?...."

소문이 약간 실망하는 말투로 반문을 했다.

   "허나 실망하지 말아라...그 기가 사라진 것은 아니고 네 몸 속에 흩어져있을뿐이니

네가 계속해서 반야심경도해를 수련한다면 그 기운이 하나로 흡수될것이다...너는이

미 그 방법을 스스로 터득하지 않았느냐...그러니 게을리 하지 말고꾸준히수련하도록

해라..."

   "예 할아버지...참.. 그런데..제 몸의 살기는 어떻게 하지요?"

소문은 약간 걱정이 된다는 듯이 말을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할아버지의커다란웃음소

리였다.

   "허허...생사현관을 뚫고 임독양맥을 뚫었는데 무슨 걱정을...그깟 살기는이미제어

가 되어 갈무리 되었느니라...참 이상도 하다...생각하는 것은여전히미련한데....어떻

게 그리 되었을꼬....흠흠..."

결코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는 할아버지였다. 소문은 마지막 말이 영 마음에들지않았

지만 오늘은 좋은날...한번만 참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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