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9장- 출행랑(出行狼) 수련(修練)-3 (11/32)

궁귀검신(弓鬼劍神)-제9장- 출행랑(出行狼) 수련(修練)-3

  "빌어먹을 염강탱이....어떻게 수련이라는 방법들이 다 이모양이지.......앞으로무얼

더 시킬지 겁난다...겁나....흥...그나저나 하나도 안보여서야...이런데서 무슨수련을 하

라고...."

.

문 위에 조그마하게 뚫려 구멍을 통해 희미한 빛이나마 들어오고(문이 처음 닫힐때는

적응이 되지 않아서 그저 깜깜하기만 했지만) 시간이 좀 지나자 어둠에도 제법익숙해졌

다. 게다가...한참을 그리 울고 나자 마음이 조금은 진정되는 듯 했다. 이해를못하는 것

은 아니지만 막상 이렇게 갇히고 보니 할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물밀 듯이 몰려왔다.

   '어차피 갇힌 몸,.. 하루 빨리 수련을 마치고 나가야 되는 데....어쩐다...'

소문이 수련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에 머리를 굴릴 때였다.

   '어라....왜 이리 기분이 찝찝하지....마치 할배가 뒤에 서서 노려보는 것 같네그려....'

우느라고 미처 느끼지 못했지만 아까부터 은근히 밀려오는 살기...음산함을이제서야

눈치를 채고 천천히 몸을 돌려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막 몸을 돌리던 소문이 그자리

에서 문직임을 멈춘 것은 공중에서 활활 불타고 있는 두 개의 불꽃을 본 후 였다.

   '헉...이게 왜 여깄어?....이런....제기....할배!!!!!!!!'

할아버지가 동굴을 나가며 소문 몰래 풀어준 늑대가 어느새 소문의 일장 뒤에까지접근

하여 소문을 시퍼런 안광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늑대가 소문에게 접근한 것은 이미오

래 되었지만 소문이 하도 발광을 떨어 제 딴에는 은근히 경계를 하는 바람에아직까지

공격을 하지 못하고 있을 뿐 언제라도 뛰어오를 수 있도록 몸을 있는데로 잔뜩웅크리

고 길다란 송곳니를 내 보이고 있었다. 이런 늑대의 모습을 소문이 막발견하였으니...

숨은 꽉꽉 막혀오고 손가락 한 개도 까딱할 수가 없었다. 잠시동안 이런 소문과늑대의

기묘한 대치는 계속 되었다. 하지만 소문이 몸에 이상이 생기면서 상황은 묘하게흘러갔

다. 미처 다 돌리지 못하고 중간에서 뒤틀려있었던 허리에서 경련이 일어났기때문이

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여기서 결단을 내려야 했다. 조금의시간이라도 더

지체했다가는 도망도 못 가보고 그대로 늑대의 저녁거리가 되기에 딱 좋았다.

    '미치겠네...어찌한다...조금만 움직여도 덤빌 것 같은데...그렇다고 이대로있음 일각

도 못 가고 주저 않을 것 같은데....'

소문의 머리는 이런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빠른 속도로 돌아갔다. 하지만 뾰족한수가

나올 리 만무했다. 자신이 비록 무공을 익혔다지만 그것은 권이나, 도검이 아닌궁...게

다가 지금은 그것마저 없는 상황이니....

   '제길 활만 있었어도 문제도 아닌데...'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결국 지금 소문이 믿을 만한 무공은 '출행랑'뿐이었다.

할아버지가 늑대를 풀어준 의도도 그런 것이리라...

소문은 자신을 여기에 가둔 할아버지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암만 그렇다고 해도 하나뿐인 손주에게 늑대를 던져두고 가는 할배가 세상천지어디

있다냐...그래도 출행랑이면....'

  소문은 발가락을 살며시 움직여 보았다. 아직은 견딜만 했다. 하지만허리에서부터 시

작한 경련이 거의 허벅지에 이르르자 더 이상 지체할 여유도 시간도 없었다.

   '간다...'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늑대가 눈치채지 못하게 심호흡을 했다. 기의 흐름은 아직까지

는 원활했다.

   "하앗..."

   "컹"

소문이 기합과 동시에 뒤로 물러나자 웅크리고 있던 늑대도 재빨리 소문에게덤벼들었

다. 다행이 간발의 차로 날카로운 이빨을 피한 소문은 뒤로 물러나던 탄력으로동굴의

문을 박차고 늑대를 단숨에 뛰어넘어 반대로 넘어갔다. 늑대 또한 재빨리 몸을 돌려재

차 소문을 공격해 왔다.

동굴의 중앙은 제법 넓었다. 어두워서 뭐가 뭔지는 알 수 없지만 출행랑을펼치는데 어

둠은 아무런 장애가 되지 못했다. 또한 지금 이곳에서 자신의 생명을 지켜줄것이라곤

출행랑뿐이었다. 보로에 따라 신형을 움직였다. 한 순간의 실수가 목숨과연결되는지라

소문은 한발 한발을 신중히 움직이고 싶었다.

그러나 늑대는 그런 소문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좀처럼 여유를 주지 않았다.전후좌

우를 바람같이 움직이는 소문을 결정적으로 잡지는 못했지만 이미 소문의 몸 곳곳에크

고 작은 상처를 입혔다. 소문이 비록 출행랑에 익숙하고 실수 없이 시전하고있었지만

본능적으로 사냥감을 쫓아오는 늑대의 감각은 소문의 능력을 상회했다. 게다가몸놀림

이 어찌나 빠른지 좀처럼 늑대의 사정거리에서서 벗어나지 못했다.

   '큰일이다. 이러다 잡히겠는데.... 어떤 방법을 구하지 않는다면.,...'

잠시도 쉬지 않고 무려 한 시진이나 쫓고 쫓기는 실강이를 계속하자 소문은 지칠대로

지쳤다. 몸은 무겁고 다친 상처의 고통도 그를 자극했다. 발걸음은 발걸음대로무뎌지

기 시작했다. 이런 소문이 그나마 버티는 것은 출행랑의 효용도 효용이지만다행히도 늑

대의 발걸음 또한 처음보다 많이 느려졌기 때문이다.

소문은 결심을 했다. 비록 활밖에 배운 적은 없었지만 나름대로 내공을 익혔으니권장

의 위력도 제법 있으리라....그래서 더 이상의 도망보다는 공격을 통해 늑대를물리쳐 보

리라 마음을 먹었다. 평소의 소문이라면 어림도 없는 생각이지만 더 이상 버티는것이

무리였던 소문에게 남은 것은 악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공격을 하진않았다.

   '허점을 찾아야 해...허점을....'

  날카로운 눈으로 늑대의 허점을 찾았지만 집요하리 만큼 계속되는 늑대에게서약점을

찾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옳지....이때다...'

마침내 참고 참던 소문에게 기회가 왔다. 좌측에서 우측으로 몸을 움직이던 소문의어

깨를 노리며 달려드는 늑대의 허연 아랫배가 소문의 눈에 잡혔다. 소문은 있는 힘을다

해 주먹을 날렸다.

   "악!"

하지만 소문의 주먹보다는 늑대의 이빨이 먼저 적중을 했다. 엄청난 고통이 왼쪽어깨

에서 느껴졌다. 소문은 이를 악물고 주먹을 뻗었다. 그러나 이미 그 주먹은 힘의태반을

잃은 별 위력이 없는 주먹이었다.

   '제기랄...끝이군....'

자신도 믿지 못할 주먹의 위력에 자신의 최후를 느꼈다.

   '며칠후면 열 한 살인데...고작....여기서...'

문득 지금까지의 짧은 생애가 작별을 고하듯 머리를 스쳤다. 좋은 것은 생각나지않고

맨날 할배한테 구박 받던 것만 떠올랐다.

   '제길 죽는 마당에까지....'

소문이 이렇게 삶을 포기하고 있을 때 생각지도 못한 기적이 일어났다.

   "컹!...."

소문의 연약한 주먹이 어디에 적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소문의 어깨를 물고 있던늑대

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 뒤로 물러섰다. 사는 것을 포기하고 있었는데 늑대가물러나다

니...이렇게 되자 놀랜 것은 오히려 소문이었다. 늑대가 왜 물러났는지 도무지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이유는 곧 밝혀졌다. 소문을 물었던 늑대가 뒤로 천천히물러

가는데 그 자세가 영 엉거주춤 한 것이다. 문득 깨달아지는 바가 있었다.

   "오라...요놈의 늑대새끼....어떠냐? 아프지...다시 한번 덤벼보거라...다시는오줌도

못 싸게 해주마...카카카"

늑대는 수컷이었다. 소문이 엉겁결에 뻗은 주먹이 우연히도 늑대의 급소를때렸고...일

순 힘이 빠진 늑대는 눈물을 머금고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약한 충격에도 물러서야하

는 수컷의 비애....그건 사람이나 동물이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만약암컷이었다면...

소문이 저리 웃지는 못할 것이다.

늑대의 처음 공격은 어찌하여 막아냈지만 결코 안심할 수는 없었다. 곳곳의상처들...특

히 마지막에 물렸던 어깬 살이 한 웅큼이나 떨어져 나가는 큰 상처를 입었다.게다가 몸

은 지칠대로 지쳐 움직일 힘도 없었다.

늑대가 물러나자 그 자리에서 주저앉은 소문은 운기를 시작했다. 이건 모험이었다.비

록 늑대가 물러나긴 했지만 이렇게 무방비로 운기를 하다니...만약 이때 늑대가공격을

한다면 소문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소문도 이점을 잘 알고 있었다.그러

나 어차피 다시 공격을 받는다해도 막아낼 힘이 없었다. 운기라도 해서 체력을기르지

않는다면.,... 그래서 목숨을 걸고 모험을 하고 있는 것인데, 늑대도 많이 지친것인지 소

문의 운기가 끝날 때까지 그런 소문을 노려만 볼 뿐 한쪽 구석에서 움직이지않았다. 늑

대에겐 불행한 일이었으나 소문에게는 하늘이 도운 결과였다.

소문과 늑대의 요상한 동거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서로가 기력을 찾을 때마다죽어라

공격하고 도망다니는(소문은 어깨를 한번 물린 이후로는 반격이란 어설픈 짓을 하지않

았다) 동굴 안의 풍경은 천하에 보기 힘든 괴사였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동굴의상황

에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처음 위태롭게 쫓겨만 다니던 소문이 이제는 제법쫓아오는

늑대에게 욕도 하며 여유롭게 피하고 있었던 것이다.

   "흥...혼자 쳐먹으니까 맛있냐? 이 그지 같은 넘아...그래 배터지게 먹고디져라.....나

쁜넘의 시키...."

고래고래 욕을 하는 소문의 모습은 어딘지 이상했다(내용도 이상하고...). 소문이원래

가 살이 안찌고 마른 체질이지만 지금 보니 동굴에 온지 나흘밖에 되지 않았는데눈은

쾡하고 들어가 붉게 충혈 되어 있었고, 온몸이 삐쩍 말라 거의 가죽만 남았다. 누가보

면 무덤에서 튀어나온 시체로 착각할 만큼 괴상망칙했다. 그 이유는 어쩌면당연했다.

동굴에 들어와 잠은커녕 휴식을 취할 때도 소문의 시선은 항상 늑대에게 고정되어있었

다. 게다가 이놈의 늑대가 시도 때도 없이 공격을 해대는 통해 이를 피하다 보니살이 빠

지는 것은 당연지사였는데, 보다 큰 문제는 소문이 동굴에 들어와 먹은 것이라고는동

굴 천장에서 흘러 내려오는 약간의 물에 불과하다 라는 것이었다.

원래 매일 같이 식량을 넣어 주기로 했던 할아버지가 약속을 어긴 것은 아니었다.하지

만 그것을 주는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 동굴의 문을 열고 소문에게 직접 주는 것이아니

고 문 위에 조그만 구멍을 통해 안에다 집어던지는 것이었다. 당연히 피하느라고정신

이 없는 소문보다는 는대가 그 음식을 차지하는 것은 당연했다. 이렇게 번번히들어오

는 음식을 빼앗기자 소문의 눈에는 불똥이 튀었다. 하지만 아직은 방법이 없었다.그저

자신의 출행랑이 하루빨리 저 늑대의 속도를 압도하는걸 기대 하는 것 뿐....또다시며칠

이 흘렀다.

   "카카카....요놈아...어림도 없다...네놈에겐 돌아갈 건 내가 먹고 버리는부스러기뿐이

다...."

막 들어온 식량을 챙긴 것은 늑대였지만 그것을 먹기도 전에 다시 빼앗아 온 건은소문

이었다. 요 며칠 소문의 출행랑은 많은 발전이 있었다. 이미 늑대의 위협으로부터안전

을 지킨 것은 물론이고 하루에 한번 들어오는 식량도 대부분이 소문이 차지했다.지금처

럼 늑대가 차지 한 것도 빼앗아 와버리니 늑대와 소문의 위치가 완전히 반대가되어버렸

다...

    "흠...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 진 모양이구나...하지만 진짜는이제부터다...준비를 서

둘러야겠구나..."

문 밖에서 소문의 외침을 듣던 할아버지는 뜻 모를 소릴 하더니 동굴 앞에서빠르게 사

라졌다. 예의 그 출행랑으로....

    "아..잘잤다...."

기지개를 펴며 일어나는 소문의 얼굴엔 만족감이 서려 있었다. 그런데 소문이일어난

자리엔 어제까지만 해도 소문과 먹이를 다투던 늑대가 길게 누워 있었다. 앞발과뒷다리

가 모두 꽁꽁 묶여 있었고, 입엔 재갈이 물려 있었다.

   "따뜻하니 좋고만....카카카"

며칠 동안 먹지도 못하고 소문만 쫓아 다녔던 늑대가 쓰러진 건 어제 밤이었다. 그동

안 늑대 때문에 고생한 걸 생각하면 죽도록 그냥 나 두고 싶었지만 이제는 별루위협도

되지 않았고...늑대가 사라지면 심심도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움직이지 못하게 묶어놓

고 먹이를 준 다음 자신의 베개 삼아서 하룻밤을 보냈다. 소문은 누워 있는 늑대에발길

질을 했다.

   "얌마...일어나...언제까지 퍼질러 잘꺼야...?"

지금은 비록 힘이 없었지만 혹시 몰라서 엉덩이를 쭈욱 빼고 언제든지 도망갈자세를

취하고 결박했던 끈들을 풀어주었다. 소문이 끈을 풀고 멀찍이 물러서자 그제서야천천

히 몸을 일으킨 늑대는 동굴 한구석으로 걸어가더니 다시 몸을 뉘었다.

   "엥...저놈이 왜 그러지...나한테 잡힌게 쪽팔렸나...."

늑대의 반응에 공격을 대비해 긴장하고 있던 소문은 맥이 탁 풀렸다.

   "그럼 인제 뭘 하지...혼자 수련하는 건 별 재미없는데...."

소문이 영 싱겁다는 투로 말을 할 때였다.

   "끼이익...."

굳게 닫혀있던 문이 열리고 할아버지가 들어왔다. 하지만 할아버지를 발견한소문은 고

개를 냅다 돌려 버렸다.

   "흥..."

   "허,..이놈아...할애비를 봤으면 인사를 해야 될 것 아니냐?"

토라지는 소문을 보고 할아버지는 기가 차다는 듯이 말을 했다.

   "뭐라고요? 할아버지...? 세상 어느 할아버지가 늑대굴에 손주를 밀어 넣어요?나참....

어이가 없어서..."

   "이놈아...그게 다 수련 아니냐?"

   "수련요? 내가 잘났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음 오래 전에 늑대놈에게 잡혀먹었을

걸요...."

   "에라이.. 미련한놈아...할아버지가 너처럼 미련 한 줄 아느냐? 내 너를 여기집어넣을

땐 다 생각이 있어서 였다. 네가 충분히 극복하리라 의심도 않았고....암튼결과적으로

너는 살아있고 오히려 좋은 수련이 되지 않았느냐?"

미안해하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큰소리를 치는 할아버지를 보는 소문은 어이가없었다.

   "관두자구요....암튼 수련이 끝났으니 나가고 되죠?"

대답도 듣기 전에 어른 동굴을 빠져나가려는 소문의 의도는 할아버지가 꺼낸곰방대에

의해 가로 막혔다.

   "끝나다니? 벌써? 이제 시작인데...."

   "에이....인제 저런 늑대는 무섭지도 않고요...저놈이 날 따라오지도못해요...."

   "허...나..참... 저 늑대는 나이가 들어 제대로 뛰지도 못하는놈이거늘...벌써부터 기고

만장해서야...,..."

   "예? 늙었다고요?"

늑대가 늙었다는 말에 깜짝 놀라 반문을 했다.

   "내가 첨엔 네 수준을 보고 늙고 약한 늑대를 준비했다. 하지만 이제 실력이 꽤늘은

것 같으니 여느 늑대를 상대해도 괜찮겠구나..."

소문은 그저 못마땅한 얼굴로 서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잘 들어라...네게 이런 수련을 시키는 것은 출행랑을 능숙하게 시전하는능력

을 키우는 것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네게 살기를 심어 넣기 위함이다"

   "살기라니요...."

   "이미 너는 출행랑을 다 익힌 것이나 진배없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기(技)를익힌 것

이지, 심(心)을 익히지는 못했다"

   "......"

소문은 할아버지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출행랑이면출행랑이지....

기는 뭐고 심은 뭔지....

   "그리 어렵게 생각할 것은 없다. 다만 기(技)는 지금까지 네가 익혀온보로(步路)나 기

의 흐름을 능숙하게 다루는 것을 말함이고, 심(心)이란 지난번 내가 너에게 보여준것처

럼 상대방의 전의를 상실케하는 투기(鬪氣)를 의미한다. 지금 네게 절대적으로부족한

것이 바로 투기이다. 너는 이곳에서 늑대와 생활하며 그 부족한 투기를 키워야 할것이

다"

   "제가 이미 늑대와 며칠을 보냈지만 그다지 큰 변화가 있지는 않았는데요...."

소문이 이상하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자신이 생각하기엔 비록 늙은 늑대지만상당히

강했고 빨랐다. 처음엔 상처도 많이 입었고 심지어 목숨을 잃는다는 생각을 하기도했

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투기라든가...뭐...이런 것이 생겨났다고는 생각하지않았다. 그

래서 할아버지의 말에 의아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건 네 마음속에 아직도 여유가 있었다는 것을 뜻하며 또한, 네가  진정한의미에서

의 공포와 두려움을 알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내가 말한 투기라는 것은 위의모든

것과 싸워나가며 극복해야 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내 말을 무슨 말인지알아듣겠느

냐?"

   "예...."

대답을 하기는 했지만 아직 구체적인 것이 뇌리에 와 닫지는 않았다.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목숨을 걸 수도 있음에야...."

전혀 어울리지 않게 행동하는 할아버지가 약간은 이상하게 보였다.

   "한번 해 보지요...."

   "앞으로 동굴에서 함께 지내게 될 늑대는 한 마리가 아니다. 또한 지난번처럼늙고 약

한 놈도 아니다. 늑대의 수는 매일 한 마리씩 늘어정확히 100일이 계속될 것인 즉,동굴

안에 들어가는 늑대수는 모두 100마리가 될 것이다. 너는 기회가 닿는데로 늑대를죽여

야만 한다. 네가 만약 손에 인정을 두어 늑대가 한두 마리씩 살아 남는다면종래에는 동

굴이 온통 늑대로 뒤덮여 목숨을 보존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또한 이제부터는식량도

넣지 않을 것이니 스스로 먹을 것을 구해야 한다. 그것은 늑대도 마찬가지....너를잡기

위해 사력을 다할 것이니 특히 주의하여라"

할아버지의 말은 한마디로 늑대와 소문의 생존 경쟁이었다. 소문이 죽든지 늑대가죽든

지....

   "네가 이 모든 과정을 이겨낸다면 출행랑의 완성을 볼 수 있을 것이다"

   "........."

오기가 넘치고 자존심이 유난히 강한 소문이었지만 천성적으로 착한 소문이었다.무공

수련을 위해서라지만 많은 살생은 솔직히 내키지 않았다. 물론 자신이 죽을 수도있는

것이지만....

   "그 동안 힘들었을 것이니 오늘은 움막에서 푹 쉬고 수련은 내일부터 하도록하자꾸

나..."

앞으로의 생활이 얼마나 험할지는 소문보다 할아버지가 더 잘 알았다. 자신도 이미50

여년 전에 소문이 걸어온 길을 걸어 왔음에야...

하지만 조용히 대답하는 소문의 말은 그게 아니었다.

   "오늘부터 하지요....들어가겠습니다"

   ".........."

할아버지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소문에게 조그만 칼 하나를 내어주었다. 무언의승

낙을 받은 소문은 그 칼을 받아 품에 넣고는 천천히 동굴로 들어갔다. 동굴 앞에서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천지사방이 온통 새 하얗게 변해 있었다.

   '눈이 왔었구나....'

  어쩌면 다시 못 볼지도 모르는 풍경을 뒤로하고 소문의 조그마한 몸은 동굴의어둠 속

으로 서서히 사라져갔다.

처음 들어온 늑대는 소문에게 아무런 적의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낯선 환경에먼저

자리잡고 있는 소문이 두려운 듯 멀찌감치 자리를 잡고 조용히 누워 있을 뿐이었다.

두 번째, 세 번째에 들어온 늑대의 행동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만 자신의동료가 하

나둘 늘어가면 행동반경이 점차 넓어지고 있었다 때로는 자신들끼리 약간의 다툼이있

었는데 마치 우두머리를 뽑는 듯 했다.

하지만 소문은 이것이 폭풍전의 적막임을 느끼고 있었다. 사흘을 굶은 자신도 배가고

픔을 느끼건만 늑대야 오죽하랴...처음 들어온 늑대의 눈은 이미 충혈 되어 있었다.

동굴 안에서 처음으로 전투가 벌어진 날은 첫 늑대가 들어오고 꼭 5일이지난날이었다.

배고픔을 견디지 못한 늑대들이 첨으로 공격한 상대는 참으로 의외였다. 소문이아니

라...소문에게도, 새로 들어오는 늑대에게도 다가가지 못하던 늙은 늑대였다.전투는 너

무 싱거웠다. 이미 죽을 날을 기다리던 늙은 늑대는 반항도 못하고 쓰러지고 형체도알

아보지 못하게 갈갈이 찢겨 다른 늑대의 허기를 채워주게 되었다.

  여지껏 가만히 앉아 있던 소문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가장 먼저 늙은 늑대에게덤볐

던 놈이 찢겨 흘러내리는 내장에 주둥이를 가져 갈 때였다.

   "더러운 놈들.....아무리 미물이지만 어찌 자신의 종족을 잡아먹는다는말이냐...."

  문득 그 늑대가 쓰러지며 쳐다본 것이 자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알고 지낸지며

칠 되지 않았고 그나마 사이도 좋지 않았지만, 미운정이라도 쌓인 것일까? 소문은자신

을 바라보는 늑대의 얼굴에서 웃음을 보았다. 아니 그렇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소문이

움직인 것은 늙은 늑대의 복수를 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소문은 자신도 어쩌면 저리 될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량도 없고 늑대의수는 계

속 늘어날 것인데 자신을 대신해 죽어줄 다른 어떤 것도 동굴 안에는 존재하지않았다.

이대로 죽을 것인가....싸우기라도 할 것인가...소문은 선택을 해야 했다. 결국자신의 힘

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 늑대의 수를 줄이고 또 운이 좋다면 허기진 배를 채울수도

있는 쪽을 택하기로 했다.

   "크르르르르...."

소문의 움직임을 감지 한 것일까? 늙은 늑대의 몸을 정신없이 탐닉하던 다섯마리의 늑

대들의 행동이 일순 멈추고 서서히 소문을 바라보았다. 소문이 다가오자 일순행동을 멈

추었던 늑대들이 긴 이빨을 보이며 으르렁 거렸다. 소문은 할아버지가 준 단검을단단

히 움켜쥐고 천천히 발을 놀렸다. 동작은 느렸지만 이미 출행랑의 보법은시작되었다.

   "카...오오"

잿빛의 몸통에 검은 줄기가 섞인 늑대가 허연 이를 들어내고 달려들었다. 역시할아버

지의 말대로 늙은 늑대와는 차원이 다른 속도였다. 또한 달려오면서 뿜어내는살기란....

소문의 몸이 자신도 모르게 잠시 움찔거렸다.

   '이건가...그 투기라는 것이....'

생각할 여유도 주지 않는 공격이었다. 소문이 늑대를 피해 신형을 급히 좌측으로틀었

을 때는 날카로운 이빨이 어깨 죽지를 한번 핥고 지나간 뒤였다. 단지 옷 위를 스친것이

었음에도 단번에 피가 쏟아졌다.

   '아차....생명이 경각인데...딴 생각을...'

소문의 자신의 경솔함을 질책했다. 하지만 후회는 항상 늦는 법. 자기들 종족의피를 보

고, 다시 한번 소문의 피까지 보게되자 늑대들은 이성을 잃었다.

이놈 저놈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로 달려들었다. 공격은 꿈도 꾸지 못하고 소문은그저

있는 힘을 다해 발을 놀릴 뿐이었다. 세상에 나가보지도 못하고 여기서 죽기엔너무나

억울했지만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크흑...."

소문의 등에서 또 한번 피가 솟구쳤다. 소문은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더 이상피하는

것도 힘들었고 피도 너무 많이 흘려 정신마저 혼미해왔다. 그런 소문을 비웃기라도하듯

이 늑대들의 공격은 그 강도가 많이 약해졌다. 마치 사냥이 끝난 먹이를 눈앞에 둔듯한

모습이었다.

공격을 잠시 멈추고 탐욕에 번들거리는 눈으로 소문의 주위를 맴도는늑대들...일순 늑

대들의 눈동자를 본 순간 소문은 오기가 생겼다.

   '빌어먹을 놈들...끝났다... 이건가....오냐...하지만 내가 한놈만이라도 같이나와 같

은 꼴을 만들어 주리라....'

소문은 단검을 쥔 손에 힘을 실었다. 무수한 공격을 당하면서도 용케도 놓치지않은 단

검에 마지막 힘을 싣고 목표물을 점찍었다. 처음 자신을 공격한 검은 줄무늬가 있는늑

대였다.

   "하앗....!"

소문의 몸은 마치 화살이 시위를 떠나듯 빠르게 튕겨져 나갔고 어느새 단검은 그늑대

의 목을 찌르고 있었다.

   "크.....르....르..."

정확하게 목 줄기를 찔렀는지 늑대는 잠시 으르렁거리다가 이내 쓰러져 버렸다.소문

또한 마지막 남은 힘을 썼는지라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이젠 죽는 일만 남은 것인가....크크크'

조용했다. 소문이 죽음을 각오하고 눈을 감고 있었지만 늑대들은 좀처럼 소문에게다가

오지 않았다. 이상한 생각에 감았던 눈을 조용히 떠보았다. 늑대들은 어느새 뒤로물러

나 아까 죽였던 늙은 늑대의 몸뚱이를 먹고 있었다.

   '흠...일단은 살았다는 것인가....일단은...좋다 네놈들이 나에게 시간을 준다면내 다

시 살아나주지....'

소문이 늑대들이 물러 난 것을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늑대의 입장에서 보면 소문은언

제든지 죽일 수 있는 존재였다. 하지만 이미 먹이도 있고 의외의 발악으로 동료도죽임

을 당하자 자기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서로가 움찔거리며 움직이지 않았다. 만약이

늑대들을 이끌 우두머리가 있었다면 결과는 달라졌겠지만 그 우두머리는 이미소문의

칼에 죽임을 당해버렸다. 그래서 잠시 뒤로 물러나 배를 채우면 사태의 추이를살피는

것이었다.

   '살아주지....살아....'

소문은 다시 한번 단도를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자기 앞에 놓인 늑대의 다리를잘랐다.

그 모습을 본 늑대들은 잠시 적의를 보였을뿐 다른 행동은 하지 않았다. 다리하나를 자

른 소문은 미련 없이 그 자리를 벗어났다. 몸은 힘들고 지쳤지만 넓은 곳에 있다가포위

공격을 당하면 소문만 위험해지기 때문에 최대한 자신이 유리한 곳으로 이동을했다.

자리를 잡은 소문은 다리에 천천히 입을 가져갔다.

   "욱....우웩"

엄청난 노린내와 피비린내가 풍겨져왔다. 하지만 먹어야 살 수 있었다. 늑대들을쳐다

보았다. 태연하게 자신의 종족을  먹고 있었다. 소문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곤 다시입

을 가져갔다. 참기 힘든 노린내와 피비린내가 그를 되롭혔지만 살고자 하는 의지가더

강했다.

소문이 동굴에 들어와 먹은 첫 번째 음식이 자신이 죽인 늑대가 돼버린순간이었다.

우두머리를 잃은 늑대들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하루가 지나고 다시 늑대 한마리

가 들어왔다. 이제는 소문의 마음이 급해지고 있었다. 어제는 운이 좋아서 한마리를 죽

이고 자신도 살 수 있었지만 다시 다섯 마리...자신은 계속 지쳐가기만 하는데늑대들은

매일 같이 쌩쌩한 놈이 들어오고 있었으니....좀더 시간을 주면 도무지 감당할자신이 없

었다.

   '수가 늘어나는 것을 방치하면 안돼....기회가 닿는데로 죽이라고 했던가....'

그제서야 할아버지가 동굴에 들어오기 전에 해준 말이 생각났다. 늑대들이 모이는것만

은 반드시 막아야 했다. 소문은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해 보았다. 이곳저곳이아프고 쑤

셨지만 어제의 전투를 생각하면 상당히 양호한 몸 상태였다. 처음의 늙은 늑대에게물

린 어깨의 상처가 워낙 깊어 은근히 걱정도 되었지만 지금은 제법 살이 돋아있었다.

요령은 같았다. 한놈을 정한 후 재빨리 다가가서 지난번처럼 해치우기로 마음을먹은

소문은 무리에서 약간은 떨어져 누워 있는 놈을 선택했다. 그리고는 바람같이다가갔

다.

   "컹...."

그놈 또한 어제의 늑대처럼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나가 떨어졌다. 그제서야 사태를파

악한 늑대들이 반격을 시작했다. 하지만 소문도 어제처럼 일방적으로 당하지는않았다.

하루가 다르게 심오해지는 출행랑과 단검의 날카로움을 무기 삼아 몸에는 다시 많은상

처를 입었지만 그럭저럭 버텨냈다. 늑대들이 미친 듯이 달려들었지만 늑대들도소문의

단검에 조금씩 상처를 입자 상당히 경계를 하는 눈치였다.

시간이 점점 지나도 소문과 늑대들의 생활은 매일같이 이런 양상이었다. 소문이어떤

수를 쓰던지 매일 같이 한 마리의 늑대를 죽이니 늑대들의 수는 처음과 마찬가지로계

속 네 마리가 유지되었다. 소문이 한 마리를 선택해 죽이면 달려들어 싸움이시작되고

그만두기를 하루에도 수차례...

늑대들은 소문에게 눈을 떼지 못했고, 소문은 소문대로 긴장의 끊을 절대 놓지않았다.

벌써 잠을 자지 못한 날이 며칠인지 몰랐다. 다만 싸움이 잠시 진정되거나 자신이죽인

늑대를 다른 늑대들이 먹어치울 때, 그 짧은 시간 그때마다 조금씩 휴식을 취할뿐이었

다.

벌써 소문이 죽인 늑대수가 90여마리에 이르렀다. 매일 같이 상처를 온 몸에도배를 했

지만 절대 치명상은 입지 않았다. 그것이 소문이 지금까지 버텨올 수 있었던결정적인

이유였다. 그리고 소문은 이 시간동안 몇 가지의 큰 소득을 얻을 수 있었다.

첫 번째는 그 동안 기본적인 보로에만 묶여있던 출행랑이 이제는 그때의 상황에맞추

어 최적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응용력을 키웠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순간이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하루에 한 마리를없애야

하는 소문이 택한 방법은 늑대가 미쳐 손을 쓰기도 전에 다가가 단검을 목에 박는것이

다. 그러기 위해서는 폭발적인 도약력과 그에 상응하는 기의 흐름이 필요했다. 만약평

범하게 수련을 했다면 그것을 이리 빠르게 익히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어나 자신의목숨

이 걸린 일이다보니 겉으로 들어난 힘은 물론 잠재력까지 힘이란 힘은 다 끌어다썼다.

그 진보가 빠름은 당연했다.

세 번째는 이렇게 늑대와 생활하며 목숨의 위협을 받고 싸우며 늑대를 죽이는생활이

반복되다보니 소문 자신도 모르는 살기가 은연중에 드러나게 되었다. 특히나순간적인

이동을 통해 늑대에게 달려 갈 때 지니는 필살(必殺)의 기도는 소문의 살기를 더욱강하

게 해 주는 역할을 하였다.

이미 그 살기를 통해 소문이 늑대에게 달려 갈 때에는 표적이 된 늑대가 겁에 질려움직

이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것을 알지 못하는 소문이기에 다른 늑대와싸

울 때는 아직 그 효용을 다 쓰지 못하고 있었다.

   "질겅.. 질겅...이놈은 좀 질기군...."

자신이 막 죽인 늑대의 허벅지를 뜯는 소문은 예전의 소문이 아니었다. 눈은늑대와 마

찬가지로 살기로 번들거리고 온몸은 이미 말라 굳은 피와 새로 묻은 늑대의 피로범벅

이 되어있었다. 살을 씹는 소문의 입에서도 핏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누군가보았다면

지옥의 악귀를 본 듯 비명을 지를 것이다.

    '악귀...'

할아버지한테 불만도 많고 속으로 욕도 잘하긴 했지만 순수하고 착하던 소문은어느새

사라지고 그저 죽이고 싸우는 것만을 갈구하는 악귀의 모습으로 점점 변해갔다.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변했는지 여기 들 어 온지 며칠이 되었는지...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다만 소문이 불만인 것은 며칠 전부터는 더 이상의 늑대가 동굴 안으로 들어오지않는

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놈을 목표로 하여 다가갔지만 지금 남아있는 다섯 마리의늑

대는 이미 산전수전 다 겪고 지금까지 살아남은 늑대들이라 소문도 도저히 잡을 수없었

다.

늑대가 더 이상 들어오지 않은 것을 보니 자신이 나갈 때가 된 것을 느꼈다.나가기 전

에 꼭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소문은 단검을 들고 한구석에 모여 있는 늑대들에게 다가갔다. 늑대들은 털을곤두세우

고 경계를 했다. 여지껏 소문이 이렇게 행동한 적은 없었다. 늑대들도 이제는결판을 낼

때라고 생각이 들었는지 소문을 포위했다. 엄청난 살기를 뿜고 으르렁거리는 다섯마리

의 늑대...그 런 늑대에게 포위되어 동굴 한 가운데에 단검을 들고 있는소문...그러나 소

문이 뿜고 있는 살기는 늑대들의 살기를 압도하고도 남았다.

이런 대치가 꽤 지났음에도 서로가 좀처럼 움직이지 못했다. 어설픈 움직임은 바로목

숨과 직결되기 때문이었다. 결국 먼저 움직인 것은 늑대였다.

   "크...엉..."

두 번째로 동굴에 들어온 늑대였다. 다른 놈은 몰라도 이놈만은 기억했다. 자신의등줄

기에 길다란 흉터를 남겨 준 놈이니까...소문의 숨통을 단번에 끊으려는지 정면에서목

줄기를 노리며 달려들었다. 뒤와 좌우에 있던 놈들도 각각 소문의 몸을 노리고달려들었

다. 하지만 소문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달려오는 늑대들이 아니었다. 정면으로달려오

는 늑대의 뒤에서 잔뜩 몸을 낯추고 있는 늑대였다.

온몸이 붉은털로 덮여 있는 이 늑대를 끝으로 더 이상의 늑대가 동굴에 들어오지않았

다. 붉은 빛의 늑대는 마지막에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들어오자마자 무리의우두머리

가 되어 버렸다. 또한 이놈이 들어온 이후 소문은 더 이상 늑대들을 죽일 수도없었다.

이놈은 소문이 조금만 움직여도 어느새 경계를 하며 이를 들어내었다. 그리고싸움에 있

어서도 다른 늑대들과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무작정 덤비는 것이 아니라 다른늑대의 뒤

에 숨어서 소문의 허점을 집요하게 노렸다. 이놈이 들어 온지 며칠 되진 않았지만이놈

에게 목숨을 빼앗길 뻔한 것이 지금까지의 지내온 날에서 처한 것보다 더 많았다.당연

히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지금의 공격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소문의 발이 부산하게 움직였다.정면에서

다가오는 늑대의 이빨을 고개를 틀어 피하고 그대로 몸을 전진시키며 늑대의 배를어깨

로 받아버렸다. 비록 큰 타격을 입히지는 못하지만 한 몸 빼내기엔 충분했다.소문이 앞

으로 나아가자 순간 목표를 잃었던 늑대들 또한 재빠르게 쫓아왔다. 공격하고피하기를

잠시동안, 문득 소문은 여지껏 자신을 노려보던 붉은 색 늑대가 사라진 것을깨달았다.

   '아뿔싸,...실수다...'

소문이 땅을 치며 후회를 했지만 한번 시야에서 사라진 그 늑대를 발견하기란좀처럼

싶지 않았다. 그때 또 한번 공격이 있었다. 자신의 신형이 좌측으로 움직이고있는데 정

면으로 달려오는 늑대가 보였다. 소문은 슬쩍 몸을 피하며 단검으로 그 늑대의목줄기

를 찔렀다.

   "컹...."

정확하게 목줄기를 찔린 늑대는 펄쩍 뛰며 뒤로 물러났다.

   '한놈'

소문이 회심의 미소를 지을 때였다.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엄청난 살기가 소문을엄

습했다. 순간 당황한 소문은 잽싸게 주위를 살펴보았다. 남은 세 마리의 늑대가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놈들이 아냐....붉은놈,...그놈을 찾아야 하는데....빌어먹을...'

아무리 주위를 기울여도 그놈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소문은 다급했다.

  "윽...!"

결국 주위가 분산된 소문은 오른쪽 다리를 물리고 말았다.

  "이놈이..."

뼈속까지 파고드는 고통을 참으며 다리를 물고 있는 늑대의 정수리를 단검으로내리쳤

다.

  "캥...."

다리를 물었던 늑대도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소문의 위기가끝

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소문은 자신을 노리는 살기의 주인을 찾을 수 있었다.어느새 자

신의 머리 위까지 접근했단 말인가...

붉은색의 늑대는 소문의 정신이 흩어진 틈을 타 벽을 타고 천장에 매달렸다.그리고 한

번의 기회...단 한번으로 소문을 즉사시킬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결국 기회는왔다. 다

리를 물린 소문이 흥분하여 자신을 문 늑대를 죽이고 있을 때  붉은색의 늑대는공격을

결심했다.

   '젠장... 늦었다...'

소문이 자신의 노리고 위에서 번개와 같이 내려오는 그 늑대를 발견한 것은 그놈의이

빨이 자신의 머리에 거의 도달하고 있을 때였다. 일단 막고는 봐야 했다. 생각할것도 없

이 왼손을 들어 머리를 보호했다.

   "으악...."

소문의 입에서는 처절한 비명이 나왔고 엄청난 덩치를 이기지 못해 뒤로 넘어지고말았

다. 위기였다. 팔에서 오는 고통도 고통이지만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넘어져서는보법

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소문의 머리는 빠르게 움직였다. 우선 다른늑대들이 자

신을 제대로 공격하지 못하도록 붉은색 늑대와 한데 뒤엉켰다. 그리고 단검을 들어마

구 찌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세도 불안했고 흥분도 하였던 터라.. 정확한 칼질이이루

어지기 만무했다. 게다가 상처를 입은 늑대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소문을 물고 있는이빨

에 더욱더 힘을 가했다.

   "크...으윽..."

소문의 입에서는 절로 신음성이 튀어나왔다. 왼쪽 다리와 허리에서도 고통이느껴졌

다. 소문은 발악적으로 칼을 휘둘렀다. 우연인지 마구잡이로 휘두른 칼이 붉은색늑대

의 눈을 찔렀다. 소문은 그 칼을 마구 휘돌렸다.

   "크아...아앙"

  짧은 칼이지만 눈을 뚫고 들어가 뇌까지 흔들어 놓기엔 조금도 부족하지 않았다.결국

고통을 참지 못한 붉은색 늑대는 소문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꺼져라...."

   "퍽..퍽..퍽!"

  소문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듯 자신의 다리를 물고 있는 늑대의 머리를 단도로내리

쳤다. 허릴 물었던 놈으 벌써 달아났다.

   "죽인다...."

자신을 물고 있던 늑대가 죽고 몸이 자유로와 지자 소문은 천천히 일어났다. 이제두 마

리...우두머리인 붉은색 늑대와 허리를 물었던 놈...

붉은색 늑대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큰 상처를 입었고 멀쩡한 늑대는 단지 한 마리가남

았을 뿐이다. 소문의 몸에서 엄청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극한의 고통을 느끼고생명

의 위협을 벗어난 소문의 기도는 상상을 불허했다. 벌써부터 허리를 물었던 늑대는소문

을 피해 뒷걸음을 치고 있었고, 붉은 색의 늑대만이 남아 소문을 노려보고 있었다.하지

만 그 늑대도 버티는 것이 고작일뿐 반항 따위를 하지는 못했다.

   "넌 강했다. 하지만 내가 더 강하다..."

소문은 붉은색 늑대를 인정했다. 그래서 단숨에 숨을 끊어버렸다. 고통을 주기는싫었

다. 붉은색 늑대는 외마디 신음을 내뱉고는 곧 숨을 거뒀다. 하지만 도망가서꼼짝하지

못하던 늑대는 잔인하게 난자한 후에 죽여버렸다.

   "이제... 끝난 것인가...."

소문은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가장 심하게 물린 왼쪽 팔은 뼈가 부서졌는지중심

을 찾지 못하고 덜렁거리고 있었고, 다리와 허리에도 살이 뭉텅 잘려나간 것이보였다.

소문은 그런 자신 모습을 보고는 피식 웃고 말았다. 허탈했다.

   "나도 꽤 질기군...."

소문은 한쪽 다리를 질질 끌며 동굴 입구로 천천히 걸어갔다. 자신의 감각이틀리지 않

는다면 동굴밖에는 틀림없이 할아버지가 서 있을 것이다. 소문은 할아버지가 벌써며칠

째 입구에서 서성이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빌어먹을 영감탱이.. 그리 걱정되면 집어넣지를 말던가....'

문 앞에 도착한 소문은 동굴을 막고 있는 커다란 문을 힘없이 두들겼다.

   "할아버지....문...여세요...."

   "끼기깅..."

눈이 부셨다. 소문은 잠시 동안 눈을 뜰 수 없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흐릿하

게 보이던 사물들이 제대로 들어왔다. 온 세상이 자신이 동굴에 들어올 때와마찬가지

로 새하얀 눈으로 덮여 있었다.

   '살은 것인가....'

그제서야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소문이 감상에 젖어 있을 때 문득자신

을 안고 있는 할아버지의 몸을 느낄 수 있었다.

   "고생했다...."

할아버지가 소문에게 한 말은 이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소문은 자신의 얼굴에떨어지

는 물방울이 눈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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