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귀검신(弓鬼劍神)-제9장 출행랑(出行狼) 수련(修練)-2
하루만 더 하면 끝이 날 듯 보였던 수련은 하늘의 방해로 칠일을 더 해야만했다.삼장
을 남겨놓고 마지막으로 시도했던 그날 예기치 않은 폭우로 냇가의 물이 급격하게불어
났다. 계곡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물은 그 힘이 실로 대단하여 내공이 금제 당하고있던
(물론 자신은 아직 모르지만) 소문의 힘으로는 견디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버티지
못하고 뭍으로 올라온 소문에게 던진 할아버지의 말은 간단 명료했다.
“도로아미타불....”
물이 다 빠지고 냇가가 안정을 찾자 소문은 다시 처음부터 시작을 했다. 그리고칠일만
에 무사히 목표 지점인 바위 아래에 도착할 수 있었다.
“흠...근 두어 달간 고생이 많았다. 직접 행하는 너도 힘들었겠지만 그걸안타깝게 바
라보는 나 또한 고역이었느니라....”
안타깝게라....소문은 하도 기가 막혀 말도 안나왔다. 그동안 굶은 밥과 얻어먹은욕이
얼만데... 허나...그저 분노의 눈길로 할아버지를 쏘아보았을 뿐이다. 그런 소문의눈초
리를 의식한 듯 할아버지는 연신 헛기침을 해댔다.
“험...험....자...그럼 다음 수련에 앞서 그동안 네가 수련이 어느 정도에이르렀는지 한
번 짚어보고 가도록 하자꾸나...”
할아버지와 소문은 집 뒤 분지로 천천히 걸어갔다. 소문은 자신이 얼마나성장했는지
몹시 궁금했고....할아버지는 할아버지대로 자신의 수련 방법을 의심하는 소문을제이
차 수련에 앞서 그 마음을 약간은 달랠 필요가 있었다.
흐르는 물이다보니 냇가는 아직 얼지는 않았지만 장백산은 이미 한 겨울이었다.산정상
에는 이미 새하얀 눈으로 덮여 있었고, 분지 주변의 나무들도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예전과는 달리 아직 눈이 내리지 않았지만 분지에는 밤새 깔리 서리가하얗
게 덮여 있었다.
“여기서 한번 출행랑을 펼쳐보거라. 이미 그 보로와 기의 운용 방법은 익히알테니 내
따로 언급은 하지 않겠다.”
은근히 긴장이 됐다. 자신이 지금껏 한거라곤 처음엔 할아버지가 만들어 놓은발자국
을 따라가는 것이었고 이후에는 냇가에서 할아버지의 꼬장을 감당한 것뿐이었다.과연
이것들이 얼마나 효용이 있었는지 계속해서 의심을 해온 터에 막상 이렇게 시전을앞두
자 소문이 긴장을 하는 것은 당연했다. 소문은 눈을 감고 크게 심호흡을 했다.그리고는
천천히 발을 움직였다.
막힘은 없었다. 지금껏 해온 것이 보로와 그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기의 흐름아니
었던가... 눈을 감고서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었다. 물속과는 달리 몸 또한마치 새
가 된 듯 가벼웠다. 자신이 의도한 대로 몸이 움직이자 소문은 감았던 눈을 살며시떴
다.
그리고 방원 10여장에서 마음껏 활개치며 움직이는 자신을 볼 수 있었다. 보고서도믿
을 수 없었다. 가장 기본적인 방위를 밟으며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신형은눈으로
가늠 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소문은 그동안 물속에서 거북이보다 느렸던 자신의 움직임에 치를 떨며 눌러왔던울화
를 화산폭발 하듯 뿜어냈다..
이쪽에 있는가 하면 어느새 반대편으로 돌아가고 위에서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숨쉴 틈 없이 움직이며 시전하는 소문의 출행랑은 지난번 할아버지가 보여준 것과비교
해 결코 모자람이 없었다.
내공이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이러하니 소문이 내공이라도 찾는 날에는....
“그만하면 되었다. 제법 훌륭하게 익혔구나..."
한창 신이나서 출행랑을 연습하던 소문에게 들려온 말은 할아버지의 칭찬이었다.
‘칭찬...이라.....’
소문은 자신이 태어난 이후로 할아버지의 칭찬을 들은 적이 있는가 더듬어 보았다.결
단코 없었다.
‘이게 무슨 변이랴....할배가 칭찬을 다해주고....나의 보법이 그리 훌륭했더란말인
가....하하하...이것참,,,,’
생전 처음 들어보는 칭찬에 넋이 나가 혼자 웃고 있을때 그런 소문을 바라보는할아버
지의 입술엔 회심의 미소가 걸려 있었다.
‘흐흐....요넘아...그리 좋아 할 것 없느니라....낚시꾼은 대어를 잡기위해선자신의 손
가락이라도 미끼로 쓰는 법이니....’
“자... 이제 출행랑의 기본적이 요소는 충분히 갗추었으니 앞으로는 기본적인보로에
서 벗어나....응용하는 방법 또한 익히도록 해라....그것은 네 자질과 노력에 달린것이
다....”
“예. 할아버지.....그런데 지난번에 보여주신 그 순간이동은 어떻게 하면 되는것인가
요?”
떡본 김에 제사지내라고 소문은 내심 계속해서 순간이동을 염두한 모양이었다.하지
만 돌아온 대답은 기대에 겨웠던 소문을 얼음물에 던지는 듯 싸늘했다.
"바보냐? 이넘아...지난번에 그 순간이동이라는 것이 단순 도약이 아니라 도약한이후
에도 계속 발을 움직이는 것이고, 발놀림과 몸안에 흐르던 기가 일치되면 그폭발력이
밖으로 표출되는데 표출되는 그 힘이 그렇게 빠른 이동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라고설
명한 적이 있을 것이다....그렇지?"
"그런데요?"
"그런데요?....에라이....네놈은 밥상을 차려줬음 됐지...밥까지 먹여주길바라느냐...염
치없는 넘 같으니라고...기의 흐름을 빨리 하여 도약하는 방법과 힘은 기르면 되는것이
지...어떻게 하는 것이기는....그저 죽어라 연습하면 저절로 되는 것이다....뭘 더바라느
냐? 따라오너라"
할아버지는 말을 마치자 말자 몸을 홱 돌려 분지를 벗어나 산 위로 올라가기시작했
다. 할아버지가 저리 방방 날뛸 때는 그저 가만히, 죽은 듯이, 납작 업드려야한다는 것
을 누구보다 잘 아는 소문이었지만 용기를 냈다(절대 만용이었다).
"그럼 이제 출행랑의 전수는 끝난 것입니까?"
소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할아버지는 10여장의 거리를 점하고 소문의 눈앞에나타
났다.
"끝나다니...가장 중요한 것이 남았지 않았느냐? 흠....또냐? 냉큼 씻고오너라....에그
냄새야..."
할아버지는 못 마땅하다는 듯이 소문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져 코를 막고 있었다.
'젠장...이게 무슨 꼴이람....'
고개를 숙이고 집으로 가는 소문의 가는 발걸음이 영 이상했다. 바지를 움켜쥐고엉거
주춤 걸어가는 폼이 꼭 뭐 묻은 강아지 꼴이었다.
그 것은 순전히 소문의 만용이 빗어낸 결과였다.
'출행랑의 전수는 끝난 것입니까?'라니... 소문의 입장에선 당연한 질문이겠지만할아버
지 입장에서는 죽을죄였다. 그래서 간단하게 응징을 한 것이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출행랑을 시전하면서 살기를 내뿜은 것인데...그 위력은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휴...대단한 넘....살기에 눌려 꼼짝 못하는 상황에서도 빠져나가려고하다니...하마터
면 망신을 당할뻔 했네....'
할아버지가 안도의 숨을 내쉬듯이 소문도 이번은 호락호락 당하진 않았다. 배우면써먹
으라고... 같은 출행랑은 익혔기에 할아버지의 기운을 감지하는 순간, 좌우로신형을 움
직이며 빠져나갈려고 했다. 하지만 아직은 내공과 그 화후에서 할아버지를 감당할수는
없었다. 결국 그 살기에 잡혀 오줌은 물론이고 똥까지 싸는 망신을 톡톡히 당했다.하지
만 소문을 잡기 위해 할아버지가 펼친 출행랑이 구성에 이른다는 것을 알면 그리억울하
지는 않았을 것인데 그런 것에 신경 쓸 여유조차 소문에게는 없었다.
소문이 옷을 갈아입고 산에 오르자 웬 움막 앞에서 소문이 오기를 기다리고있었다. 아
까의 망신스런 기억이 떠올라 쭈뼛거리며 올라오기를 망설이자 그런 소문을 보고할아
버지는 지체없이 호통을 쳤다.
"냉큼 올라오지 못하겠느냐? 해 지겠다....느려 터져서는..."
소문이 움막에 도착하자 그 정경이 한눈에 보였다. 이 움막은 겨울이나 그밖에기후가
안 좋을 때 사냥꾼이 잠시 머무르기 위해서 지어 놓은 것으로, 이곳은 원래 곰이살던 동
굴이 있는 곳인데 소문의 선조들이 곰을 쫓고 사냥꾼을 동굴옆에 움막을 만들었다고하
기도 했다.
움막에는 다른 특별한 구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간다한 취사도구와 잠자리가마련
되어 있을 뿐이었다. 움막 앞에는 제법 평평하고 넓은 마당이 있었는데 이는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만든 것처럼 보였다.
암튼 이런 움막이 수련과는 무슨 관계가 있다고 여기까지 올라왔는지는 짐작이 안갔
다.
"지금부터 당분간은 여기서 지내면서 출행랑을 익히도록 해라. 내가 이미 지낼동안
먹을 음식과 이불은 준비를 해두웠다. 나도 당분간은 이곳에서 지내며 밥이며빨래며
네 모든 수발을 들어줄 것이니 걱정은 하지 말고 수련에 힘쓰도록해라...알았는냐?"
"옛? 예..할아버지..."
얼떨결에 대답은 했지만 도통 무슨 영문인지 몰랐다. 일곱 살 때부터 해오던빨래며 밥
을 해주겠다니....기쁘기에 앞서 걱정이 들었다.
'얼마나 힘들기에 안 하던 짓을 하신댜....'
"따라오너라"
할아버지가 소문을 이끌고 데려간 곳은 움막안이 아니라 그 옆의 동굴이었다.옜날에
곰이 살았다고 했던가.,..동굴치고는 상당히 넓었다.
길이는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으나 넓이로 따지자면 움막 앞의 마당보다도 더넓어
보였다. 움막은 와 봤으나 이곳은 첨인지라 신기한 듯 이곳저곳 살펴보던 소문이좀더
깊이 동굴 속으로 들어갈 때였다.
"으악,...!"
갑자기 비명을 지른 소문은 할아버지 곁으로 뒷걸음 질 쳤다.
"느...늑대예요,...."
소문이 떨리는 목소리로 지적한 곳에는 과연 잿빛 늑대 한 마리가 묶여 있었다.
"호들갑 떨지 마라...앞으로 네 수련에 도움을 줄 녀석이다. 친해지도록노력해보거
라...."
할아버지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소문에겐 결코 대수롭지 않은 말이었다.
"예....그게 무슨 말인지....수련은 저 혼자서도 할 수 있는데요..."
소문이 영 내켜하지 않았지만 할아버지는 요지부동이었다. 잠시후 할아버지는입구쪽
으로 몸을 돌리셨다. 이때만을 기다려온 소문은 재빨리 동굴을 벗어나려 하였다.하지
만 막 동굴을 벗어나던 소문은 뭔가 찝찝한 기분에 뒤를 바라보았다. 소문의 행동에어
이가 없어 부들부들 떨고 있는 할아버지가 소문을 노려보고 있었다. 꼬리를 말고다시
동굴 안으로 들어가 할아버지 앞에선 소문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흠....너는 당분간 예서 지내게 될 것이다. 저기 이불보따리도 미리 가져다놓았고 먹
을 양식과 물은 매일 같이 내가 넣어주마..."
"예? 아예 여기서 나오지 말라는 것인가...요?"
"그래 당분간 '포두이술'의 연마는 접어두고 '출행랑'의 수련에 힘을쏟거라...여기가
제법 넓으니 보법을 펼치는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럼....저....늑....대느...은요...?"
설마 했다. 그 설마가 소문을 잡았다.
"물론 같이 있게될 것이다. 늑대가 비록 사납고 빠르다지만 네게는 출행랑이있지 않
으냐?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실전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실전과 연습은엄청난 차
이가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
말을 듣고 보니 딴에는 그럴 듯 했다.
"그럼.... 언제까지 여기.... 있게 되나요?"
"네가 출행랑의 완성을 보는 날이 될 것이다. 그날은 네 스스로 알게 될것이다."
"그럼 난 이만 나가야 겠다. 이놈아 너무 그리 걱정하지 말아라...겨우 늑대 한마리 아
니냐....한!마!리!.....그래도 이빨은 무섭더라만....".
풀이 죽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소문을 보며 할아버지는 격려 같지도 않은 격려를하고
는 뒤도 안 돌아보고 두꺼운 나무로 된 문을 걸어 잠갔다. 물론 손자를 위해 묶여있는
늑대의 줄에 일지(一指)를 날리는 수고는 기꺼이 감수를 했다.
"끼기긱..."
육중한 뭄이 잠기자 마자 소문은 한가지 간과한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까는 문이열려
있어 밝진 않아도 어느 정도는 동굴안을 살필수 있었지만 문이 닫힌 지금은 상황이전
혀 달랐다. 빛이 차단된 동굴은 소문이 손을 뻗어 자신의 손바닥을 봐도 식별 할 수없
을 정도로 어두웠고, 그 적막감은 이제 겨우 열 한살이 되어가는 소문이 견디기엔너무
나 공포스러웠다.
"꽝꽝꽝!!..할아버지....할아버지..."
닫힌 문을 두드리는 소문의 볼에는 눈물이 흘러내리고...할아버지를 부르는 소문의울
먹이는 목소리는 어느새 절규로 바뀌고 있었다. 하지만 그토록 원하는 할아버지의대답
은 들려오지 않았다.
소문이 그렇게 울며 문을 두드리고 있을 때 할아버진 동굴 바로 밖에서서 소문의절규
를 무표정한 얼굴로 듣고 있었다. 그러나 애써 담담한 얼굴과는 달리 문을 가로지르고
있는 손은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힘들 것이다. 하지만 견디어야 한다. 네 아비도 그랬고...나도 그랬다... 같은장소는 아
니지만 출행랑을 익히려면 누구나 한번은 겪는 시련이니.... 허나...네가 거길나오는 날
이면 선조들이 이리 해왔던 진정한 의도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허....첫눈이로구나....이런 날 술 한잔이 없을 수 없지.... "
하늘에서는 소문의 앞날에 염려와 축복을 해주는 듯 탐스러운 눈발이 날리고있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