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귀검신(弓鬼劍神)-제5장-'포두이술(捕頭以術)' 초연(初演)-3
“에고 힘들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하루하루가 힘드는고만...”
헐떡거리며 분지에 올라온 소문의 얼굴에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위에 업혀오는할아버
지의 말은 그런 소문의 속을 충분히 뒤집어 놓았다.
‘업고 온건 나인데 힘들다니....’
집을 나서자마자 다리가 쑤시니 허리가 아프네 하며 땅에 주저앉고 마는할아버지였
다. 평소 같으면 주저앉거나 말거나 신경쓰지 않을 소문이지만 지금은 목마른 놈이우물
을 판다고... 울며 겨자 먹기로 할아버지를 업고 고생고생해서 간신히 여기까지올라올
수 있었다. 그런데 고생했다는 말은 고사하고 늙었다고 신세한탄이나 하고있다니....
“그래 무얼 익히고 이리 난리인 것이냐?
“예 이제는 제법 하늘 높이 화살을 날릴 수 있습니다. 바람땜에 처음엔힘들었지만 다
극복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수직에서 점차 벗어나 활을 쏘고 싶습니다.”
“호오 그래? 니 말대로라면 활의 각도를 변화시키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근데바람을
극복했다는 말이 정말이더냐?”
“물론입니다. 제가 그 말을 입증하겠습니다. 바람이 전혀 없다면 제 자리에떨어지겠지
만 지금은 바람이 제법 부니 저걸 맞추어 보겠습니다.”
소문은 약5장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표적을 가르켰다.
“그래? 그리 자신이 있더냐?”
“예. 처음엔 몰랐지만 우선 바람의 미세한 차이를 느껴 이를 극복하고 활에싣는 힘을
변화시켜 그 거리를 조정하며 또한 쓰이는 화살을 통일하여 목표물에 대한 오차를없앨
수 있었습니다.”
소문은 자신만만했다. 그 동안 자신이 기울인 노력이 얼마이던가? 이제 그 노력의결실
을 매번 자신을 무시하던 할아버지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기쁨에 흥분되는 마음을진정
시키기가 어려웠다. 뽄때를 보여주리라 마음 먹었다.
“잠시만 기달리거라”
할아버지는 활을 드는 소문에게 말을 하더니 표적 앞으로 걸어나갔다. 표적 옆에나란
히 선 할아버지는 소문을 향해 손짓을 했다.
“쏴라”
‘드디어 노망이 난 것이다. 나를 그렇게 괴롭히더니만 결국엔 노망이 난것이다.’
소문은 할아버지의 행동을 노망으로 단정지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날 맞춰봅세’하는
식으로 표적 옆에 설 이유가 없었다.
“왜 그러느냐? 자신이 없는게냐?”
머뭇거리는 소문을 향해 할아버지는 호통을 쳤다.
“제가 비록 뛰어난 활솜씨를 지니긴 하였고.... 물론 맞출 수도 있지만혹여라도 모르
니 비켜서시지요.”
“자신이 있는 놈이 무얼 망설이느냐? 이 정도의 거리에서 날 피하지 못한다면그건 활
솜씨라고 할 가치도 없는 것이다. 자신이 없다면 없다고 해라 이놈아”
정중히 부탁드렸거만 들려오는 소린,,,,소문은 할아버지의 말에 반사적으로 활을들어
올렸다. 자신감에 살고 죽는 소문에게 자신감이 없다는 말은 욕보다 더한 수치였다.
‘흥, 저따위 하나 못 맞출까? 내가 그 동안 연습한게 얼마인데. 근데 연습은연습인
데...’
생각과는 달리 선뜻 화살을 날리기엔 목표가 너무 작았고 옆에 선 할아버지는너무나
컸다. 소문의 입술은 바싹바싹 타들어갔다. 반대로 이마에서는 땀방울이 맺혔다.
‘쏴라 쏴. 이보다 훨씬 심한 바람에서도 훨씬 더 작은 표적도 맞추지 않았느냐?넌 할
수 있다. 을지소문 넌 할 수 있다.’
소문은 필사적으로 자신을 채찍질했다. 하지만 결국엔 활을 내려 놓고야 말았다.
“에라이.. 못난 놈아. 남자 놈의 배짱이 밴댕이 소갈딱지 같아서야...에잉”
할아버지의 질책에 소문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러나 너무 억울했다. 할아버지땜에
차마 쏘지 못한 것이지... 자신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소문의 맘을 알기나하듯 할
아버지는 표적에서 벗어나며 말하였다.
“네놈의 표정을 보니 나로 인해 쏘지 못했다는 말도 안되는 표정이구나.그렇다면 내
가 비켜설테니 하번 쏴보거라.”
소문은 묵묵히 활을 들어 올렸다. 할아버지의 말이 맞다는 무언의 시위였다. 오래재고
할 것도 없었다.
‘이 정도의 바람에 이 정도의 거리, 최대다’
“퉁”
경쾌한 소리를 내며 화살은 하늘로 솟구쳤다. 끝없이 올라가던 화살은 잠시후 자유낙
하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걸 보는 소문의 얼굴엔 당혹감이 서려있었다.
‘헛.. 이게 아닌데...왜 저리 멀리 가지?’
화살은 목표에서 한참을 빗나가 떨어졌다.
“이럴 리가 없습니다”
소문은 결과를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말은 들을 필요도 없이 다시한번
화살을 날렸다. 하지만 결과는 아까보다 더 비참했다. 똑 같이 쏜 화살은 오히려목표보
다 가까이 떨어졌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결과였다.
소문이 몇 번을 더 쏘아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한발의 화살도 명중을 하지못하
였다. 결국 활을 땅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소문은 망연자실했다. 자신에 대한자책과 지
난날의 노력에 대한 결과가 너무나 허망하자 왈칵 눈물을 쏟고 말았다.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 부모가 없어 놀림을 받은 이후 처음으로 우는 것이었다.다시는
울지 않는다고 놀린 놈을 두들겨 패며 결심한 소문이었다.
“흑흑”
좀처럼 울지 않는 소문이지만 한번 울음을 터뜨리자 봇물 터지듯 눈물이 쏟아졌다.
할아버지는 그런 소문을 잠시 바라보다가 활을 들었다. 그리도는 화살을 재었다.
“보거라”
할아버지의 말에 여전히 눈물을 흘리면서도 고개를 든 소문이 본 것은 하늘높이날아
간 화살과 그 화살이 정확하게 표적에 떨어지는 것이었다.
“다시 보거라”
이번에도 화살은 정확히 표적에 떨어졌다.
“또 보거라”
이제는 울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소문은 눈을 부릅뜨고 할아버지를살펴보았다.
화살은 또 한번 정확하게 표적에 떨어졌다.
“알겠느냐?”
소문은 고갤 저었다. 할아버지는 이후 몇 차례 더 화살을 날렸다. 화살은 여지없이목표
를 꽤뚫었다. 할아버지가 몇 번의 화살을 날리는 동안 약간씩 힘 조절을 한다는 것이외
에는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이 더 이상했다. 자신이 느끼기에 바람은일정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아 이는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뭔가 다른 것이 있는 것인가? 하지만 이미 필요한 조건은 다 갖추었다고생각했는
데...’
소문이 뭔가를 골몰이 생각하자 할아버지는 활쏘기를 그만두고 옆에 박혀있는커다란
바위에 가서 걸터 앉았다.
“알겠느냐?”
할아버지는 자신의 질문에 기가 죽어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가로지르는 손자를보자 마
음이 답답했다. 비록 자신이 두들겨 패고 욕을 하며 조금 엄(?)하게 키우고는있지만 어
찌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랴. 그러한 행동 모두 사랑(?)에서 우러러 나오는것을....물론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확신을 하지는 못하지만....
.
“네가 준비한 것은 모두가 정확한 것이었다. 바람의 미세한 차이를 느끼는 것도제법
이었고 힘에 강약을 주는 것도 제법이었다. 하지만 너는 하나를 빼먹었다”
“그게 무엇이지요?”
뭔가를 빼먹었다는 말에 고개를 반짝 든 소문이 물었다.
“너는 흐르는 냇물의 속도가 모두 같다고 느끼느냐?”
“예?”
“흐르는 냇물은 지형마다 그 흐르는 속도가 모두다 다르다, 가파른 계곡에서는빠르
게 흐르면 평평한 평지에서는 그 흐름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느리게 흐른다. 같은이치
다. 바람은 지형마다, 날씨마다 바뀐다. 그것이 오래 지속 될 수도 있고 수시로변할 수
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느낄 수 있는데요. 그리고 이곳의 바람은 아까부터 변화가전혀
없는데요?”
“네 말이 맞다. 하지만 하나 간과한 것이 있다 하지 않았느냐?”
“간과한 것이라니요?”
“냇물의 물 흐름이 다르다는 것은 바람 또한 항상 같지 않다고 하는 말과통하지만 위
에서 부는 바람과 아래에서 부는 바람 또한 같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의미한다.”
“아!”
확연히 떠오르는게 있었다.
‘그렇구나 왜 밑에서 부는 바람과 위에서 부는 바람이 항상 같다고 생각했을까?아니
지 아예 생각을 하지 못했구나....그런데 왜 그것을 간파하지 못했지?’
뭔가 이상한 느낌이 있었다.
“그런데 제가 그 동안 어찌 그것을 느끼지 못했지요? 수없이 많은 화살을날렸음에
도?”
“내가 그 동안 네가 연습하는 것을 몇 번 보았는데 연습 과정에서 몇 가지의문제점이
보였다.”
“문제점이라니요?”
연습자체가 문제가 있다니 이것은 큰 문제였다. 소문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보건데 넌 항상 이 자리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않는 표적에 활을쏘더구나”
그건 사실이었다. 어차피 바람을 느끼고 힘 조절을 하는 연습이지 멀리 있는 곳에날리
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쏜 화살을 쉽게 줏을 수 있다는 점도 작용을 했지만...
“바람이 거의 없는 맑은 날은 힘을 많이 실어 하늘높이 날렸지만 이런 날은대체적으
로 하늘의 공기가 안정되어 위아래의 바람차이가 별로 없다.
하지만 위아래 바람차이가 심한 날, 즉 바람이 강하게 부는 날은 네 스스로 힘을약하
게 하여 위와 라레의 바람차이가 확연히 느껴질 높이만큼 화살을 날리지 못했다.당연
히 그 차이를 느끼지 못할 수 밖에....”
이제서야 모든 것이 명확해지는 소문이었다. 자신이 스스로 만족한 수련법에그러한 문
제가 있었다니.,..부끄러웠다.
“또한 하나의 문제가 더 있다”
“네?”
“넌 칼이나 창을 두고 활을 쓰는 이유가 어디 있다고 생각하느냐?”
“그것이....”
소문이 말을 미쳐 잇기도 전에 할아버지는 말을 잘랐다,
“지난번에 이미 밝혔듯이 활이란 가능한 한 멀리 눈에 보이는 거리를 뛰어넘어그 뒤
에 도사리고 있는 생명까지 지배하는 병기다. 빠르고 강한 뇌전과 독사의이빨처럼 날
카로움을 지닌것이 바로 활인 것이다. 하지만 네 화살은 어떠냐? 바람을 의식해가까이
있는 목표에 힘 조절을 한답시고 그리 약하게 쏴서는 그것에 목숨을 잃을 것이무에고
두려워 할 자가 무가 있단 말이냐?
나중에야 화살에 내공을 실으면 된다지만 지금은 아니지 않느냐?
50여장을올라간 화살과 10여장을 올라간 화살은 그 위력에서 하늘과 땅차이가 있는것
이다. 넌 바람을 극복했다지만 내가 보기엔 바람이 널 극복한 것 같구나”
“그럼 어찌 해야 되는지요?”
“짧게 보지 말고 멀리 보거라. 지금 당장 맞추는 것에 신경을 쓰다보니 그리 된것이
다”
“하지만 바람이 강할 때 가까이에 은폐하여 숨어 있는 적을 맞추려면은...”
“그리 하고도 깨닫지 못하다니.... 잊은게로구나. 누가 화살을 수직으로만쏘라더냐?
그에 따라 활의 각도를 조금씩 변화시키면 되는 것을”
“그럼?”
“오냐, 며칠 후부터는 활의 위치를 조금씩 변화시켜 연습을 해보거라. 하지만명심할
것은 위아래의 바람의 차이를 염두해야 한다, 허나 아는 것만으로는 소용없다.정확하
게 느끼고 이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네가 비록 활을 익히는 것이살상이
목적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걸 무시할 수 없으니 살상의 범위에서 힘 조절을 하거라.
또한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 법이다. 화살의 차이 또한 극복해야 한다. 심지어울퉁불
퉁한 나뭇가지를 쓴다해도 여는 화살과 같아야 할 정도로 다루어야 비로서 활을쏜다고
불릴 수 있을 것이다.”
소문은 자신이 언제 울었느냐는 듯 활짝 웃었다. 그리고는 땅에 떨어져 있는 활을힘껏
움켜 잡았다.
“예 할아버지. 명심하겠습니다”
‘그래 모든 것은 지금부터다. 다시 시작하자’
소문이 마음을 다잡아먹고 곧바로 연습할 태세를 하자 할아버지는 이를 만류하셨다.그
리곤 부드럽게 말씀하셨다.
“아니다. 며칠 후부터 연습을 하거라”
“예? 아닙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해서 하루라도 빨리경지에 이
르고 싶습니다.”
“허허 하루라도 빨리 경지에 이르고 싶다는 말은 참으로 맘에 드는구나. 하지만소문
아....”
여지껏 상심해 하던 손자를 어루만지시며 가르침을 주시던 인자한 할아버지의표상이
었던 모습은 사라지고 있었다. 안색이 점차 변해갔고 말 또한 거칠어지기 시작한것은
순식간이었다.
“니놈이, 우화등선의 이치를 깨닫는 순간 눈앞의 신선지경을 발로 차버리고알량한 활
솜씨를 자랑한다던 니놈이, 화살을 날리기는커녕 아니지 쏘기는 쐈구나. 쏘는 족족어림
없는 곳에 떨어지긴 했다만.... 암튼 제대로 쏘지도 못하더니만 그리고는 메가잘났다고
질질 짜기까지 한 니놈이 밥을 먹을 자격이나 있다는 것이냐?
3일간 금식은 물론이고 마침 땔감도 떨어졌으니 땔감이나 해 오거라. 기왕 하는거곧 겨
울이 오니 겨울날 땔감을 미리 마련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어차피 니놈이 해야하는 것
이지만.....
에잉.. 니놈 때문에 신경쓴걸 생각해선 이보다 더한 벌을 내릴 것이나 내 특별히봐주
는 것이니 불만은 없으리라 믿는다”
‘믿는다’에 유독히 강조를 하는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가 사라지자 소문은 땅에주저앉
고 말았다.
‘금식이라니 또,,,, 빌어먹을 할배 같으니라고 어쩐지 그리 자상하게설명하더니만....
밥이야 굶는게 다반사니 그렇다 치더라도 그 많은 땔감은 어찌한다....젠장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