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귀검신(弓鬼劍神)-제4장-'포두이술(捕頭以術)' 초연(初演)-2
“ 제가 멍청해서 미처 몰랐습니다. 그럼 앞으로 어찌 공부를 해야 하는지일러주십시
오. 비록 모자라는 몸이지만 최선을 다하겠습
니다”
반발심이 솟구쳐 오르는 소문이었지만 ‘포두이술’에 대한 욕심은 그의 이러한맘을 내
리 눌렀다.
평생 태어나서 이처럼 정중하게 말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말을 한 소문 자신도온몸에
소름이 끼치니 할아버지인들 어떠랴...할아버지는 때가 잔뜩 낀 손톱으로 팔뚝을박박
긁으며 말했다.
“어린놈이 어디서 아부하는 것은 배워 가지고....징그럽다. 이놈아. 암튼 우리가문에
절대 불행이지만 어쩔수 없이 네가 가문을 이어야 하니 지금부터 ‘포두이술’을익히는 수
련법에 대해서 간단히 말해주겠다.
앞서 말하지만 네 선조님들은 한분도 같은 방법으로 연습을 하신 분은 없고 조금씩차
이가 난다. 각각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방법을 선택하시고 스스로 만들어수련하셨다.
다만 이 모든 것이 바람과 싸운다는 것! 그것만 명심하거라. 알겠느냐?
“예”
“알긴 쥐뿔이 멀아냐 이놈아! 대답만 번지르르 해서....”
‘포두이술! 포두이술! 이것만 생각하자 ’
아니꼽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소문은 참고 또 참았다.
“포두이술은 수없이 많은 상황에 대한 가정 속에서 출발한다. 지난번에 상황도그 중
하나이다.
같은 거리의 목표라 할지라도 바람의 세기에 따라 시위를 당기는 힘과 활의 위치즉, 활
이 지면과 이루는 각에 차이를 두면 언제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목표를 맞출 수있다. 그
것이 포두이술의 기본 요체를 이룬다
넌 그것을 해내야 한다. 그럴려면 끝없는 연습이 필요하다. 하나의 목표에 대한상황의
변수는 무궁무진 하다. 미풍일 때, 미풍보다 조금쎌 때, 조금 약할 때 등등 바람의세기
를 수로 규정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지면이 약간 낮을 때나 높을 때, 평평하거나 불규칙 할 때 등 그 조건은 실로헤아
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있다. 네가 이러한 모든 조건들을 극복하고 화살을 날릴때마다
목표에 적중시킨다면 그때 비로서 가문의 비기를 얻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빨리 얻을 수 있을 것이고 평생이 걸려도 채 얻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과거의
사례를 보건데 자질이 출중하신 선조님보다는 끈기 있게 노력하신 분들이 성취가 더뛰
어났음을 알아야 한다. 네놈은 자질도 극히 떨어지니 죽어라 연습해야 할 것이다.
참고로 먼 훗날 수많은 이 땅의 젊은이들이 활쏘기의 도(弓道) 알고자 밤낮으로매달리
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중 도를 이룬 최고수에게 명예로운 이름이 붙을 것이니 그이
름 ‘금관’이요 그에 버금 가는 10명의 고수에게는 ‘은관’이라는 칭호가 붙을것이다.”
막판에 덧 붙인 말이 먼 소린지 전혀 모르겠지만, 암튼 참으로 드물게 진지한할아버지
의 설명이 끝났다. 설명을 듣고 보니 가문의 비기라는 것이 한마디로 ‘죽어라 활을쏘다
보면 다 맞출 수 있는 경지에 이른다’ 였다. 그 죽어라 연습이 얼마에 이를지 미처깨닫
지 못한 소문은 자신만만했다.
“걱정 마십시오. 연습이야 제 전문 아닙니까? 가문의 비기인 ‘포두이술’은제가 접수하
도록 하죠. 카카카”
‘요넘아 고게 그리 만만한지 아나본데 두고보거라, 피똥을 싸게 될 것이니...’
소문이 가장 먼저 시도한 것은 활의 각도가 땅과 정확히 수직을 이루는 자세였다.조금
의 차이도 없이 같은 자리에서 같은 각도로 화살을 날리는 것은 매우 힘들었지만소문
을 정말 힘들게 한 것은 바람이었다.
거의 느껴지지 않는 바람의 차이에도 화살은 전혀 엉뚱한데로 떨어지기 일쑤였으며혹
여 각도마저 흩트러지면 도저히 예상할 수 없는 위치에 화살이 떨어져 할아버지의호통
과 비웃음을 사야 했다.
결국 하루 하루를 활과 함께 보내며 가장 신경을 쓴 것은 바람인데어릴적부터단련해
온 몸이라 같은 자세로 균형을 잡는 일은 그다지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래서 화살하나
하나를 쏠때마다 바람을 생각하고 바람에 따라 화살이 어디까지 도달하고 이르는지세
심히 살필 수 있었다.
이러한 소문의 피는 안나는 노력은 차차 결실을 맺어갔다. 이제는 제법 바람의미세한
차이를 감지 할 뿐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바람에 맞추어 화살을 쏘기도 했다.그러나 여
전히 정확도에서만큼은 소문에게 크게 만족을 주지 못했다.
“쓰발. 또,,,,”
소문은 화살을 주으며 연신 욕을 해댔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금 자신이쏘
는 위치와 바람을 고려할 때 화살이 떨어질 곳은 여기가 아니라 일장 앞에서였다.
관군에서 쓴다는 화포에서나 쓰임이 있는 것이지 화살이 목표와 이리 떨어진다면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것이 되고 만다.
“도대체 뭐가 잘못이지? 바람도 위치도 아까와 동일했는데...설마 약간의차이가 있었
는데 내가 놓친 것인가?”
자신에게 반문을 하던 소문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아니야 정확했어. 이제 몸에 와닿는 바람의 차이는 정확하게 느낄수있어....그럼 도대
체 뭔가 문제이지?’
떨어진 화살을 손가락에 끼고 도리면 생각을 하던 소문의 머리에 언뜻 스치는 것이있
었다.
“가만, 화살의 재질에 따라 다른 것인가? 오라 그렇구나 화살이 문제였어화살이..’
자신이 쓰고 있는 화살이 크기나 무게가 비슷은 하지만 약간씩 차이가 있었음을여태
껏 간과하고 있었다는 생각에 이르자 모든 것은 명확해 졌다.
“하하하 그렇구나 화살이었어!!!”
소문은 산이 떠나가라 웃어 제꼈다. 스스로가 생각해도 너무나 명쾌한 답이었다.그렇다
면 답은 간단했다.
자신이 지금 연습하는 모든 화살을 통일하는 것이다. 화살 자체의 길이와 무게는물론
촉까지 통일된 화살을 사용한다면 이 모든 문제는 해결 될거란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에도 이러한 고민에 휩싸였었다. 하지만 그때는 화살이 아닌 힘 조절로극복이
가능하리라 생각하여 활에 싣는 힘을 최대에서 조금씩 줄여 나가면서 그 감을익혔었
다. 그리고 그런 의도는 적중했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또 하나의 문제를 해결했으니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난 것이다.소문
은 의기양양했다.
하지만 그런 소문을 바라보는 못마땅한 눈초리가 있었으니....
‘어리석은 놈. 제법이다만 아직 멀었다 요놈아. 좀더 고생을 해야 그 이유를알게 될 것
이다. 좀더 고생을,,,,,’
소문이 통일된 화살을 만들기 위해서 온갖 정성을 기울였지만 생각과는 달리 그일은
의외로 어려웠다. 화살에 쓰이는 재료를 구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하나하나 일일이손이
가는 것이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화살들만 완성되면 가문비기인‘포두이
술’중 하나의 경지를 이룰수 있다는 생각에 부지런히 준비했다.
꼬박 하루를 투자하여 얻은 화살은 정확하게 50발이었다.
“됐다. 이제는 쏘는 일만 남았구나”
소문은 새로 준비한 화살을 공중에 쏘았다, 화살은 약 10여장을 올라가더니정확하게
목표에 명중하였다.
“성공이다 성공! 하하하”
소문은 득달같이 집으로 달려가 할아버지를 찾았다. 자신이 하나의 경지를 이룰때마
다 검증을 받기로 약조를 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에그 할배하고는.. 칠칠치 못하게시리....’
할아버지는 대청마루의 기둥에 기대어 낮잠을 자고 있었다. 요즘엔 틈만 나면 잠을자
곤했는데 특히나 햇빛이 따뜻한 점심나절이면 예외 없이 저 모습이었다.
기둥에 비스듬히 기댄 얼굴에서는 만족한 미소가 흐르고 때떄로 얼굴이며 팔에붙는 파
리를 쫓고 나서 벅벅 긁어대는 모습은 영락없는 시골영감의 모습이었다.
‘하나뿐인 손자는 잠도 설쳐가며 무공에 힘쓰는데 할배라고 맨날 밥이나 차리라하질
않나, 욕을 하지 않나...잠시 안보이면 잠이나 자고....’
극도의 불만을 가진 소문이었으나 어찌 내색할 수 있으랴..조심스럽게 할아버지를깨웠
다.
“할아버지. 소문입니다. 잠시 일어나 보시지요”
소문은 답답했다. 계속해서 불러보았지만 대답 없는 메아리였다. 할아버지는 그자세에
서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잠시라도 빨리 자신의 모습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뿐인데 그걸 검증해줄 할아버지가미
동도 하지 않으니 짜증이 솟구쳤다.
“젠장. 나이 먹으면 느는게 잠하고 고집하고 꼬장이라더니 딱이네 딱!”
할아버지가 눈을 뜬건 바로 그때였다.
“머라했느냐?”
‘켁! 지미 욕하는건 기가 막히게 알아가지고는...’
소문의 표정은 지나가다 개똥을 밟은 것처럼 이글어졌지만 마음만은 편안했다. 한두
번 경험하는 것도 아니거 이미 이런한 것에는 단련이 될 데로 되어 있었다. 소문은시치
미를 딱 뗐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좋은 말이 생각나서읇조렸습니다”
“꼬장 어쩌고 하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네 예로부터 격조 높은 선비들은 잠 잘때도 꼬장꼬장한 모습을 잃지 않는다고했습니
다. 할아버님이 주무시는 것이 마치 그와 같아서....”
대답을 해놓고도 자신의 빈틈없는 말에 감탄에 감탄을 하는 소문이었다. 하지만할아버
지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듯이 소문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래 무었 때문에 깨운 것이냐?”
“예 제가 한가지 수련을 완성하였습니다. 그래서 검증을 받고자 할아버님을깨운 것입
니다.”
“딱”
“악”
소문이 비명을 지르며 손을 머리위로 가지고 갔을때는 할아버지의 곰방대가 자신의머
릴 강타하고 난 뒤였다.
“이놈아. 그따위 일로 명상에 잠긴 날 깨운 것이더냐? 네놈 덕에 다잡은우화등선의 이
치를 놓치고 말았으니. 이를 어찌 책임을 질테냐?
네놈 같으면 백년이 아니라 천년이 지나도 이르지 못하는 경지를 한순간에 날려버리다
니 빌어먹을놈 같으니라고”
할아버지는 고래고래 소릴 질렀지만 너무나 어이가 없는 소문은 꿀먹은 벙어리가되어
버렸다.
‘침흘리며 잠자는게 명상이라니...지나가던 개가 웃겠네. 그렇게 해서 우화등선한다
면 조선의 영감 중 우화등선하지 못하는 영감이 하나두 없겠다. 나참 어이가없어서....’
“제가 어리석어 그런 이치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그래도 힘없는 자가 죄인이라고 소문은 고개를 숙여 잘못을 빌었다.
그런 소문을 한참 동안이나 노려보시던 할아버지는 소문의 머리를 한 대 더때라고는
대청마루에서 내려왔다.
“니놈이 무얼 알겠느냐마는 잘못을 알았다면 한번은 용서해 준다만 다음엔이러한 일
이 없어야 할 것이다. 암튼 하나의 수련에 성공을 했다니 가보자”
‘내 저눔의 곰방대를 가만 나두면 사람이 아니다’
무덤의 봉분처럼 나란히 솟아 오른 두 개의 혹을 쓰다듬으며 다짐을 하는소문이었다.
할아버지는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소문의 수련장을 찾았다. 소문의 수련장은 집뒤의 분
지에 위치했다. 험준한 산에는 어울리지 않게 방원 100여장의 넓은 분지가 자리하고있
었다.
할아버지의 말에 의하면 15대 선조가 돌아가시기 전날 가문 유일의 검법을 펼쳐서그
리 되었다는... 말도 안되는 허풍을 늘어놓은 곳이기도 한데 활쏘기 연습하기로이보다
좋은 곳이 없었다.
소문은 집에 있을 땐 집앞의 나무에 화살을 쏘았지만 사실 소문이 대부분의 시간을보내
는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분지 곳곳에는 소문이 만든 표적이 놓여있었는데 그표적의
크기가 각각 달랐고 거리 또한 달라서 다양한 활쏘기를 가능케 하였다. 소문은 이장소
를 끔찍히 아꼈다.
작년 봄에 할아버지가 밭을 만든다고 할 때 장장 보름을 단식하여 지켜내기도했다. 할
아버지에게 거둔 처음이자 마지막 승리였는데 대가 끊기는 죄를 할아버지대에서지을
수는 없다나(허구헌날 금식이나 시키면서).
단식이 끝나자 몸보신하라고 보약까지 지어온 할아버지를 보며 약간은 미안하기도했
다. 사실, 어린나이에 무슨 단식을 보름이나 할 수 있으랴? 몰래 몰래 미리비축해둔 육
포로 체력을 비축한 소문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지켜온 장소이니 만큼 정성을 기울였고 손질도 잘되어있었다. 분지주변
에는 각종 과수나무와 꽃들로 둘러 쌓여서 봄에는 온갖 꽃들이 만발하고 여름에는잎이
무성하여 휴식처로 제격이었다. 또한 가을에는 풍성한 과실을 얻을 수도 있는곳이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