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귀검신(弓鬼劍神)-제1장-'이기어시'도 있다
소문은 오늘도 활과 함께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화살을 시위에 재었다풀었다하기를
수 차례 급기야 마당 한켠의 나무에 화살을 날리기 시작했다.
그 나무의 중간엔 짚으로 둥그런 표적을 만들어 놓았는데 놀랍게 수없이 많은화살을
쏘았음에도 하나의 화살이 빗나가지 않았다. 날아간 대부분의 화살이 매어 놓은표적
정 중앙에 꼿혔다.
소문은 화살을 거두어 들이며 흡족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때였다. 대청마루에비스듬
히 앉으셔서 물끄러미 소문을 보시던 할아버지가 소문에게 다가오셨다.
“소문아”
소문은 화살을 거두다가 들려오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면서 공손하게 대답했다
“예 할아버지”
“너는 활이 왜 쓰인다고 생각하느냐?”
소문은 할아버지의 너무나 당연한 질문에 오히려 더 당황을 했다.
“그야,,,멀리 있는 걸 맞추려고,,,,”
막 산등성이를 넘어가는 노루를 보시던 할아버지는 소문의 대답을 듣고는 버럭화를 내
셨다.
“이넘아.! 누가 그따위 걸 모르느냐? 진정한 도리와 이치에서 활쏘기란 무어냔말이
다”
“그것이...”
대답을 하는 소문의 얼굴엔 불만이 가득했다.
“쯧쯧쯧....그것도 모르는 놈이 활을 가지고 촐싹거리기는,...”
“언제 촐싹 거렸다고 그러신담....젠장 나이 10살에 무슨 도리에 이치는...”
크게 얘기는 못하고 땅에 있는 돌을 툭툭 차며 중얼거리는 순간, 소문의 눈에별이 번
쩍거렸다.
“꽝”
“아고야”
할아버지의 손엔 어느새 곰방대가 들려있었고, 소문의 이마엔 혹이 뽈록 솟아올랐다.
“이놈아! 무엘 그리 쫑알거리는 것이냐?”
할아버지는 가뜩이나 살벌한 눈을 부라리시며 호통을 쳤다. 소문은 그저 찍소리못하
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활이라는 것은 가능한 한 멀리 눈에 보이는 거리를 뛰어넘어 그 뒤에 도사리고있는
생명까지 지배하는 병기다. 뇌전처럼 빠르며 뇌성보다 강하고 독사의 이빨처럼날카로
움을 지닌것이 바로 활인 것이다. 그만큼 활은 무섭고 위력이 강한 병기라고 할 수있
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무기가 생명을 노린다고 가정을 해보거라. 이보다 두려운것이
무엇이 있겠느냐?”
할아버지의 말이 끝나자 소문은 자신의 손에 들려진 활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대나무
를 그럴듯하게 휘고 명주실을 꼬아 시위를 만든 활이로 비록 어른이 쓰는 강궁은아니지
만 제법 구색을 갖춘 활이었다. 더구나 불로 살짝 그슬려서 만들어진 거무튀튀한색이
활을 더욱 그럴듯하게 만들었다.
‘후, 난 그저 사냥이나 하고 단순히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라 생각했는데 그게아니네..
무기란 말이지..그것도 아주 무서운,,,’
자신이 그런 병기를 다룬다는 것에 약간의 두려움이 있기는 하지만 자부심이 더생기는
걸 보고 천성이 사냥꾼이라고 생각하며 피식 웃는 소문이었다.
할아버지는 자신을 아직 어리다고 생각해서 가소롭게 보고 계시지만 소문이생각하기
에 나이 10살에 토끼도 곧잘 잡는 자신은 이미 훌륭한 사수가 되어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활을 가지고 논 것이 꽤 되었네’
소문은 자신의 활을 보다가 회상에 잠겼다.
소문은 할아버지와 단둘이 산다. 부모님은 소문이 아주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할아버
지는 아무 말씀 안 하셨지만 동네 어른들이 하시는 말을 들어보면 도적들이부모님을 죽
였다고 한다.
그때 아버지는 몹시 아프셔서 그 도적들에게 힘없이 돌아가셨다나... 할아버지는때마
침 그 자리에 계시지 않았는데 그걸 자책하고 계신다고 했다. 그렇다면 하나뿐인손자에
게 잘 해주실 만도 한데 이건 완전히 하인 부리듯 하시지 그 말도 영 믿을게 못됐다.
암튼 이런저런 환경으로 소문은 어렸을 때부터 마을(깊은 산이었지만 사냥꾼과약초꾼
이 한데 어울어져 산골치고는 제법 큰 마을이었다)의 다른 아이들과는 달랐다.
물론 살고 있는 곳이 험난하고 신령스럽기로 유명한 장백산의 한자락에 위치하여그다
지 많은 사람이 살지도 않았고 부모님이 아닌 할아버지와 생활한다고 가정을 해도여느
아이와는 다른 점이 있었다.
아장아장 걷기 시작할 때부터 활은 그의 손에 있었다. 다른 아이들이 평범한장난감을
가지고 놀때도 소문은 활을 쏘면 놀았다. 그가 최초로 손에 잡은 활은 두뼘 남짓한길이
의 활이었는데 화살은 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소문은 활시위를 당기면서 하루를보내곤
했다. 활시위에 손가락에 물집이 잡히기도 하고 상처도 났지만 그래도 좋았다.
할아버지가 화살을 처음으로 만들어 준 것은 소문이 다섯 살 나던 해였다. 방청소를 위
해 수수대로 빗자루를 만들곤 하신 할아버지가 그것으로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화살을
만들어주었다. 어린 나이에도 그 동안 활을 가지고 놀면서 뭔가 늘 아쉬움이 남는소문
이었다. 이제서야 그 아쉬움이 뭔가를 알게된 그는 그 이후 아예 하루를 활과시작하
여 끝을 맺을 정도로 정신없이 빠져버리고 말았다. 그런 소문을 보시면서할아버지는 말
리기는커녕 오히려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셨다.
소문이 점점 자랄라치면 그때마다 소문에게 가장 알맞는 활과 화살을준비해주셨다. 화
살은 여전히 수수대로 만들었지만 활은 다양한 재료와 크기의 나무들이 동원되었다.지
금 소문이 가지고 있는 대나무 활은 작년 이맘때 해 주신 거였다.
할아버지는 비록 툭하면 혼내고 화를 내는 괴팍한 성격을 지니고 계셨지만 그래도활쏘
기에서 만큼은 놀랍도록 신경을 써주었다.
‘젠장 평소에 좀 착한 할아버지가 되면 어디가 덧나남...하나밖에 없는 손자를복날 개
잡듯이 하니...’
소문의 생각이 여기까지 이를 때였다. 잠자코 산을 바라보던 할아버지가 소문에게시선
을 돌렸다.
“소문아!”
“예. 할아버지”
무슨 트집이라도 잡힐까 두려워한 소문은 얼른 활을 내려놓고 공손히 대답했다.
“지금 까지 네가 가지고 놀고 있는 활은 단순한 장난감이자 네 운동을 위한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네 나이도 10살이 되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활쏘기를 배워보자꾸나.이제
부터 배울 것은 활을 이용한 무공으로 단순한 활쏘기와는 다름을 알아야한다. 또한지금
처럼 노는 것이 아닌 배움이기에 몹시 힘들 것이다. 너는 할 수 있겠느냐?”
‘얼레 오늘따라 왜그리 점잔을 빼시나...거참 어째 불안하네...’
할아버지의 평소와 다르게 잔잔하고 부드럽게 말하지만 그게 더 불안한소문이었다. 불
안한 마음속에서도 자신이 가장 사랑하고 좋아하는 활을 더 가르쳐주겠다고 하는말에
은근히 끌리는 소문이었다. 소문은 긴장을 하면서도 당당하게 대답했다.
“예 할아버지”
그런 소문을 대견해 하시면서 할아버지는 말씀을 이어가셨다(이건 단지 소문의생각이
었다).
“이제부터 배울 활쏘기는 가문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면서 버릴 것은 버리고취할 것
은 취하면서 발전되어 내려온 상승의 궁도지만 그 이름은 특별히 정해지지 않았다.참
이제부터는 활쏘기라 하지 말고 ‘궁도’라 칭하거라. 배움의 단계를 시작했으니그에 맞
는 명칭으로 불러야 할 것이다. 그건 궁도라는 기예를 어떤 틀속에 가두어 버리면더 이
상의 발전이 없을까 두려워하신 선조들의 염려 때문이다. 그러나 내 단언하건데우리 가
문의 궁도를 따라올 수 있는 무공은 없다. 그 이유는 차차 알게 될 것이다”
굵은 목소리로 진중하게 말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평소에 경박하고 주책없는늙은
이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은은하게 떨려오는 목소리와 격동하는 것에서소문
은 할아버지가 얼마나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궁도라는 것은 보기엔 쉬우나 결코 간단한 공부가 아니다. 첨이야 쉽게활시위를 당
길 수 있고 쏠 수 있어서 우습게 보일지는 모르지만 쏘면 쏠수록 알면 알수록어렵고 힘
든 것이 활쏘기이다. 또한 활이라는 것이 활시위에 화살을 재고 당기면 끝이 나는것으
로 보이지만 이런 단순한 동작에도 수없이 많은 방법과 도리가 숨어있는 것이 또한궁도
니라”
“예.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활쏘기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놀라는 을지소문이었다.자신
이 알기에 활이라는 것은 그저 먼 거리에 있는 목표물을 맞추면 최고인 것이었고지금까
지 그렇게 해왔는데 그 안에 어떤 묘리가 숨어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것이었다. 그
랬기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 할아버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가장 평이하면서도 일반적인 궁도가 '평사'다. 이것은 눈에 보이는 목표물을향해 활시
위를 당기는 것으로 대부분의 사냥꾼이나 관부의 병졸들의 수준으로 볼 수 있다.
다음이 ‘속사’다. 적이 많을 때나 위급한 경우엔 천천히 조준하고 쏠 수 있는여유 따위
가 있을 수 없다. 화살이 시위를 떠나자마자 또 하나의 화살이 시위에 올라야 하며처음
떠난 화살이 목표에 도달하기 전에 두 번째 화살이 시위를 떠나야 한다. 목표는같을 수
도 있고 다를 수도 있겠지만 단순히 빠르다는 것 뿐만 아니라 또한 정확히 목표에명중
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험 많고 노련한 사냥꾼이나 병사들이 대체로 이 정도의실력을
지녔다.
속사처럼 다수의 적을 향해 사용하기에 좋지만 좀더 어려운 기술이 ‘연환사’다.이것은
하나의 화살이 아닌 여러개의 화살을 한번에 날리는 것이다. 누군가는 수개의화살을 한
번에 쏜다고 하지만 그것은 과장되거나 혹여 가능할 지라도 위력이나 정확성에서현저
히 떨어진다.
일반적으로 한번에 쏠 수 있는 화살은 세 개다. 사람은 손가락사이에 정확히 3개의화살
을 끼고 시위를 당길 수 있다. 이것이 하나의 목표를 노릴 수도 또 다른 각각의목표를
노릴 수도 있다. 하지만 속사와 마찬가지로 정확성이 생명임을 알아야 한다. 이정도의
연환사가 가능하다면 그는 상당한 궁도의 소유자라 할 수 있다. 끝으로‘이기어시’가 있
다”
진지하게 경청하던 소문은 ‘이기어시’란 말에 몹시 의아했다. ‘이기어검’이나 ‘이기어
도’ 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이기어시’라니..생전 처음 듣는 말이었다.
“할아버지! ‘이기어시’라뇨? ‘이기어검’이라는 말은 들어봤어두,,,,”
소문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할아버지는 대답을 하셨다.
“대저 ‘이기어검’이 무었이더냐?”
“검이 손을 떠나,,,,,,”
소문이 말을 다 잇지 못하자 할아버지는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검이 손을 떠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데 화살이 그리 못할 이유는 전혀 없지않는
냐....?”
“그래두,,,,”
조용히 말씀하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돌변한건 그때였다.
“이눔의 자식이 내가 그렇다면 그런거지 말이 어찌 이리 말이 많누!!”
‘젠장 그럼 그렇지 그넘의 성격 어디가나 했다,...’
소문은 억지로 입을 막고 죽을죄를 진 듯 고개를 기울였다. 그런 소문의 모습을보며 진
정을 한 할아버지는 소문을 한번 쏘아보며 계속해서 설명을 시작했다.
“이기어검이나 이기어도는 모두가 기로써 검과 도를 움직여 시전자의 의사데로자유
자재로 다루는 기술이다. 당연히 화살 또한 쏘는자의 의지로 그 방향을 자유로이움직
일 수 있지 않겠느냐?
그러나 이러한 상승무공은 누구나가 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 방면에서 일가를이룬
정도의 실력을 지닌 자들만이 시전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피를 토하고 뼈를깍는 노
력을 해야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엄두도 못내는 경지인 것이다.
너 또한 앞으로 수없이 많은 위험과 견디기 힘든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를반드
시 극복해야만 상승의 궁도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알겠느냐?”
“예 할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