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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사랑하여 아팠다-52화 (52/59)

제 52화

돌아온 기억과 감정 그리고 죄책감

감정과 함께 저번 삶의 기억이 돌아온다.

지금의 삶과 저번 삶이 뒤섞이며, 이해할 수 없던 꿈과 그의 행동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꿈에서 나와 아이들이 그토록 아파하며, 슬퍼한 이유를 이해하였다.

첫 만남에서 어설픈 연기를 하던 이유를 이해했다. 그가 나의 자존심을 박살 낸 이유를 이해하였다.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파혼하자던 그의 행동을 이해했다. 그날 산에서 그토록 슬피 울부짖던 이유를 깨달았다.

나를 보며 당황하고, 밀어내려던 그의 태도를 이해했다. 나를 보며 짓던 심란한 표정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다 나의 잘못 때문이다. 나의 죄 때문이다.

내가 그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의 마음을 무시하여, 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어서다.

그것 때문에, 아이들까지 죄책감에 짓눌리게 만들었다. 그것 때문에, 나의 존재만으로도 그에게 상처가 되어, 그를 힘들게 만들었다.

그 생각들이 전부 죄책감이 되어 나를 짓누르고, 마음을 망가트린다. 망가져 가는 마음에서 오는 아픔 때문에, 손에 든 검을 놓쳐버렸다.

시련이 만들어 낸 그가 땅에 떨어진 검을 주어서 나에게 건네주었다.

건네주는 그의 눈빛이, 저번 생의 그의 눈빛과 똑같아서 나의 죄를 선명하게 만든다. 그리고 눈앞에 그가 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울려 퍼진다.

‘노란 튤립은 헛된 사랑, 짝사랑을 뜻합니다. 저를 위한 꽃입니다.’

그를 만나 첫날밤. 정원에서 그가 들고 있던 꽃이 노란 튤립이다. 노란 튤립을 들고 슬픈 표정을 짓던 그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헛된 사랑. 짝사랑. 아내와 아이들에게 이해받지 못한 그의 삶과 너무나 닮은 꽃을 들고 있던, 그의 표정이 죄책감으로 변하여 나를 짓누른다.

이해하지 못한 기억들이 전부 죄책감으로 변하여 나를 짓누른다. 나는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고 짓눌려 주저앉아 아픔을 토해냈다.

“힘드시다면, 포기하시겠습니까?”

시련이 만들어낸 거짓이 나에게 물었다. 그 물음에 아픔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눈앞의 그가 거짓임을 알아도, 나는 찌를 수 없다. 이미 쌓이고 쌓인 죄조차 감당하지 못하는데, 그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아프고 슬픈데. 어떻게 그의 형상을 찌를 수 있겠는가. 나는 그러지 못한다.

“지금 포기하신다면, 영원히 자격을 잃습니다. 정말 포기하겠습니까?”

또다시 물어오는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시련을 종료하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빛이 나를 집어삼켰다. 나를 집어삼킨 빛이 흩어지고, 시련이 시작되기 전에 보았던 거대한 석상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장소에, 나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는 풍경이 펼쳐졌다.

바닥에 흩뿌려진 피와 살이 뜯겨나가 너덜너덜해진 팔과 다리. 탁해진 눈동자와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한 미약한 호흡. 그것이 내가 사랑하는 이의 상태였다.

죽음이 드리운 그에게 달려가 그의 입에 포션을 물렸다. 그의 목이 움직이지 않는다. 입에 담긴 포션이 사라지지 않는다.

“제발... 삼켜다오. 내게 속죄할 기회를 다오.”

그 외침에도 그의 목은 움직이지 않는다. 마음이 무너져 내린다.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한편으로, 절실함이 덩치를 키웠다.

상반되는 감정 속에서, 삼키기 쉽도록 그의 목을 살짝 들었다. 그제야 그의 목이 움직이며, 포션을 삼켰다.

포션이 그의 목으로 다 흘러 넘어가고, 그의 혼탁한 눈동자에 약간의 빛이 돌아오고, 끊어질 듯한 호흡이 약간 안정되었다.

하지만, 그의 망가진 육신은 회복되지 않았다. 피는 멈추었지만, 살과 가죽이 잘려 나가 너덜너덜해진 팔과 다리는 여전하다. 얼굴색 또한 금방이라도 죽을 사람처럼 창백하다.

그 모습에 그의 옆에 굴러다니고 있는 포션을 주워서, 그의 입에 물렸다. 포션이 그의 입으로 흘러 들어갈 때, 뺨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그의 손이 나의 뺨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닦아주었다. 나의 눈물을 닦아주는 그의 눈빛이 너무나 따사로워 나의 마음을 찔렀다.

어째서... 어째서 그런 눈빛을 하는 것이냐? 나는... 그대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주었는데.

따사로움에 찔린 마음에서 피가 터져 나와 눈으로 흘러내렸다. 피를 하염없이 쏟아 내어도, 그의 따스한 온기가 아파서 멈추지 않는다.

죄에 깊이 때문에 따스함마저 아픔으로 느끼고, 피를 토해내고 있을 때 그의 입이 열렸다.

“왜 그리 슬피 우십니까?”

그의 상냥한 말에서, 그의 마음이 전해져와 나의 죄를 무겁게 만든다. 그 죄에서 오는 아픔 때문에, 그를 끌어안고 울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육신이 보여, 그리할 수 없다. 그저 홀로 죄를 끌어안고 피를 토해냈다.

터져 나온 죄책감이 조금, 아주 조금 옅어졌을 때가 되어서야 입을 열 수 있었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는가? 내가 밉지 않은가?”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 미소마저도 나의 죄책감을 선명하게 만들었다.

“미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대는 왜 그리 바보 같은가. 왜... 그대를 상처입힌 자를 미워하지 않고, 사랑한다고 말하는가. 나는 그럴 자격이 없는 자인데.

“나는... 그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네.”

“저는, 그런 상처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는 거짓을 말하며, 상처를 숨겼다. 그 모습이 싫다. 그 모습이 나를 더 아프게 만들었다.

상처를 숨기고, 홀로 끌어안지 말아다오. 차라리 상처를 나에게 토해다오. 나를 욕하며 화를 내다오.

제발... 그대 혼자 아파하지 말아다오. 나의 죄를 내가 짊어지게 해주게.

그 생각들이 입을 열게 하였다.

“거짓말 말게! 나는 그대의 사랑을 무시하였네. 그대의 노력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대를 가두었네.”

그의 눈빛에 슬픔이 조금 담겼다.

“...기억나셨습니까?”

“그래... 모든 기억났네.”

“그렇군요... 그렇다고 하여도, 미워하지 않습니다.”

그 말이 나를 짓누른다.

“어째서... 어째서 그렇게 말하는가? 나는... 나는 그대에게... ”

그대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는데. 왜 그렇게까지 나에게 상냥한 것인가.

그 생각이 죄책감에 무게를 더하고, 찔리고 찢겨나간 마음이 덧나서 피가 거세게 흘러나왔다.

뺨에 온기가 닿는다. 그 온기가 상처 입은 마음을 위로하면서도, 나의 죄를 선명하게 만들었다.

“당신을 사랑하여 아팠습니다. 죽을 것처럼 아팠습니다. 하지만, 당신을 사랑한 삶이 아프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마음이 담긴 한마디 한마디가 나에게 전해져온다. 그것이 따스하면서도 아프다.

“당신과 검을 맞대던 시간이 행복했습니다. 당신에게 사랑을 표하던 시간이 행복했습니다. 당신이 선물해준 아이들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마십시오. 모든 것이 저주 때문이니...”

너무 따스하여, 나의 죄를 무겁게 만드는 그의 말이 이어지지 않는다. 그의 입이 멈추었다. 그의 말이 끊어지고 마음이 무너져 내린다.

“알릭! 알릭!”

그의 이름을 부르지만, 그의 대답이 들려오지 않는다. 그저 미약한 호흡만이 들려온다.

포션, 포션이 더 필요하다.

그 생각에 가방을 뒤져 그의 입에 흘려 넣고, 상처에도 뿌려 보았지만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다.

“제발... 제발 살아만 다오. 살아만 주면, 그대를 위해서 살겠네. 평생 그대에게 속죄하며 살겠네. 그러니 제발... 살아다오.”

간절한 마음을 내뱉으며, 마지막 포션을 사용했다. 이미 끊어진 그의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다.

그저 미약한 호흡과 미약한 심장 소리만이 들려온다. 그 소리들이 마음을 찢어발기고, 찢겨나간 조각들에서 절박함이 태어났다.

그 절박함이 패닉에 빠진 나를 일으켰다. 그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려, 밖에 있을 레이첼에게 향하였다.

“형제님, 자매님. 이제 나오시는... ”

그녀의 말이 끊어지고, 그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런 것을 고려할 시간이 없다. 그가 죽어가고 있다.

“빨리 포션을.”

“포션으로는 소용없어요.”

그녀의 말이 절박감마저 부숴버렸다.

“그게... 무슨 말이냐?”

“일단은 형제님을 넘겨주세요. 임시방편이라도 해둘게요.”

그녀가 알릭을 안아 들었다. 손에서 온기가 사라지고, 차가움과 아픔이 밀려온다,

그를 안아 든 그녀는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 중얼거림과 함께 그녀의 단검에서 빛이 흘러나왔다. 빛을 뿜어내는 단검의 형상이 흩어지고, 푸른빛이 그를 감쌌다.

푸른빛이 관의 형상이 되어 그를 품었다.

“한동안은 괜찮을 거예요.”

“그러면, 그는 괜찮은 것이냐?”

“아니요. 성물의 힘을 빌려서 형제님의 시간을 멈춰둔 거예요.”

“언제까지 멈춰둘 수 있는가?”

“제힘으로는 한 달 정도가 한계에요.”

“그 정도면 충분하다. 한 달이면 제국으로 돌아가서 황녀 전하께 치료받으면 되니까.”

그런 생각은 그녀의 이어지는 말에 박살 났다.

“아르미스님의 사도여도 불가능할 거예요. 형제님의 상처는 창조신이 만들어낸 제물의 검으로 베어낸 것이라, 못해도 반신의 격을 가진 자의 도움이 필요해요.”

그녀의 말이 희망을 짓누른다.

“일단, 성지로 가요. 대사제님이라면 도움을 주실 수 있을 거예요.”

“그곳에 가는 것만으로도 한 달이 걸리지 않는가?”

“그건 대사제님이 해결해주실 거예요.”

“... 그래, 성지로 가자.”

그 말을 내뱉고, 그를 품은 관을 짊어졌다. 그의 무게를 느끼며, 마음속으로 읊조렸다.

그대에게 사과해야 할 것들이 많고, 감사해야 할 것들이 많네. 그것 말고도 해야 할 말들이 많네. 그러니, 조금만 버텨주게. 그대를 반드시 살리겠네. 나의 구원자여.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리에니에님 3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오늘도 제 작품을 봐주신 [독자 닉네임 출력]님 감사합니다!

tmi) 아이리스는 성지에 방문한 적은 없지만, 수다스러운 레이첼 덕분에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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