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대를 사랑하여 아팠다-51화 (51/59)

제 51화

아이리스의 시련

마음의 색채가 얼마 남지 않은 날. 목적지에 도착하고, 시련에 도전하였다.

손에서 느껴지는 통증과 함께 세상이 빛에 삼켜졌다. 그 빛과 함께 삶과 기억이 흩어졌다.

세상을 삼킨 빛이 흩어지고, 색채를 잃은 세상이 나타났다. 그런 세상에서, 유일하게 색채를 가진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자신을 알릭 노르먼이라고 소개했다. 그 이름을 들이니, 그가 나의 약혼자라는 사실이 떠오른다.

나는 그 사실이 떠오르고, 그에게 검을 던졌다.

“대화는 검으로 충분하다.”

그가 웃으며 검을 뽑아 들었다. 그의 진중한 눈빛이 나를 향한다. 그리고 투박하지만 올곧은 검술이 펼쳐지고, 색채가 퍼져나갔다.

색채를 퍼져나가는 세상이 아름다웠다. 색채를 담은 그의 미소가 마음에 들었다.

그가 마음에 들었다.

그에게 손을 뻗었다. 투박한 그의 손과 닿고, 세상에 색채가 퍼져나갔다. 그 광경이 아름다웠다.

그 광경과 그가 마음에 들었는데도, 입은 솔직하지 못하였다.

“나쁘지 않았다.”

그 말에 그가 웃었다. 그 미소가 나에게 색을 덧입혔다.

시간이 되어 그와 헤어지고, 덧입혀진 색은 사라지지 않고 내 마음에 머물렀다. 그것이 신경 쓰이면서도, 나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다시 그를 만났다. 다시 만난 그의 색채는 더 아름다워져 있었다. 그런 그가 나에게 꽃을 내밀었다.

분홍색 튤립. 그는 그것을 내밀며, 쑥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제가 좋아하는 꽃입니다. 공녀님께 어울릴 거 같아서 가져왔습니다.”

“고맙네.”

나는 그리 말하고, 손을 뻗어 꽃을 받았다. 꽃이 받아드니, 꽃의 색이 나를 덧칠하였다.

그 꽃을 받아들고, 그와 정원을 거닐었다. 색을 잃어버린 정원에, 그의 손길이 닿고 색채가 살아났다.

색이 살아난 정원에, 다채로운 색의 꽃들이 화사하게 피어나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운 정원에서 그와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꽃을 하나하나 가리키며, 이름과 꽃말을 알려주었다.

그런 것들은 무가치하다고 생각했는데, 어째서인지 그 시간이 싫지 않았다. 나쁘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 문뜩 그가 준 꽃의 뜻이 궁금해졌다.

“그럼 그대가 준 꽃의 꽃말은 무엇인가?”

그의 얼굴이 붉어지고, 입을 여러 번 열렸다가 닫혔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그의 입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배려, 애정, 사랑의 시작입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 색채를 만들고, 나를 덧칠하였다. 그것이 나쁘지 않았다.

“그런가. 그것이 그대의 마음인가?”

그의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나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그와 헤어졌다.

영지로 돌아오고 그가 내어준 꽃에 마법을 걸었다. 시들지 않는 꽃이 나의 방 한구석을 차지했다. 색을 잃어버린 방에, 색이 생겨났다.

시간이 흐르고 여름과 가을이 뒤섞일 무렵, 그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대는 이제 브란트의 이름을 짊어질 사람이니, 이곳으로 와서 의무를 이행하게.」

짧고 딱딱한 말이 편지가 되어 날아갔고, 며칠이 지나서 편지가 왔다.

「그리하겠습니다.」

한마디만 적힌 답장이지만, 나쁘지 않았다.

수확제 전날 그가 도착했다. 도착한 그의 손에 또 꽃이 들려 있었다. 이번에는 붉은색 튤립이다.

나는 그 꽃을 받아들고, 꽃의 색이 나를 덧칠하였다. 그 색을 음미하며 그에게 물었다.

“이 꽃은 무슨 뜻을 가지고 있나?”

“사랑의 표현을 뜻합니다.”

약간 붉어진 그의 얼굴과 그의 말이 나쁘지 않았다.

그의 방에 안내해주고, 꽃에 마법을 걸어 방에 장식하였다. 색이 늘어났다.

시간이 조금 흘러 저녁 시간이 되었다. 집무실에서 살다시피 하시던 아버님이 찾아오셨다. 아버님의 손에 술이 들려 있었고, 술은 그에게로 향했다.

그와 아버님 사이에 술이 오가고, 그의 색채가 아버님에게 퍼져나갔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매일 같이 슬퍼하시던 아버님의 얼굴에 웃음이 피어났다.

“그래, 남자가 이 정도는 마셔야지.”

아버님은 호탕하게 웃으시면서,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 모습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

술의 향이 가득한 시간이 흐르고, 다음날 낮이 되었다. 술의 잔향이 남은 그를 끌고, 거리로 향하였다.

무색의 거리가 덧칠되었다.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색을 얻은 거리를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내었다.

시간이 흘러 해가 저물었다. 의무를 행할 시간이 되었다.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의무를 행할 시간이네.”

그는 미소로 대답을 하였다.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와 함께 의식을 행하고, 마지막 순서가 다가왔다. 노래가 울려 퍼지고,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한 곡 추겠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내 손을 잡았다. 온기가 퍼져나가고, 그 온기를 따라 색이 퍼져나갔다.

그 따스한 시간이 흘러 의식이 끝났다. 온기가 떠났음에도, 색은 남아서 나의 마음을 물들였다.

시간이 흐르고 그가 돌아갔다. 그가 돌아갔음에도, 그의 색이 남아 이곳을 물들였다.

시간이 흘러 겨울이 되어 나의 생일날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가 찾아왔다.

그의 손에 주황색 튤립과 상자가 들려 있었다. 꽃과 상자가 나의 손에 들어오고, 꽃의 색이 나를 덧칠하였다.

“이번에는 무슨 뜻인가?”

그의 얼굴이 또 붉어졌다.

“고백 그리고 매력적인 사랑을 뜻합니다.”

그 말이 마음에 들어, 웃음 새어 나왔다. 오랜만에 웃으며, 그가 준 상자를 열어보았다. 은색의 목걸이가 눈에 들어오고, 그에게 넘겨주었다.

“그대가 해주게.”

그의 얼굴이 더 붉어지고, 온기가 닿았다. 목걸이의 색이 나를 덧칠했다.

“고맙네. 마음에 드는군.”

“그렇게 말해주시니 다행입니다.”

그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지고, 그것이 좋았다.

무미건조하던 생일이 그의 색채에 물들어 아름다웠다.

그 시간이 야속하리만큼 빠르게 흐르고, 그가 떠났다.

어느덧 그의 색채로 물든 세상에, 그가 다시 찾아왔다.

그가 보라색 튤립과 반지를 내밀며 입을 열었다.

“아이리스. 저와 결혼해 주십시오.”

그의 말이 빛나는 색이 되어 나를 물들였다. 그 색이 나를 물들이고, 나를 움직이게 하였다. 그에게 손을 내밀고 입을 열었다.

“내 손에 끼워주게.”

그의 미소가 색채와 함께 퍼져나갔다. 그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투명한 보석이 박힌 반지가 나의 손에 끼워지고, 그의 온기가 나의 손등에 퍼져나갔다. 그 온기를 느끼며, 꽃을 받아들었다. 색이 덧칠되었다.

“이번 꽃의 꽃말은 무엇인가?”

“영원한 사랑입니다.”

그 말이 좋았다. 그의 진지한 눈빛이 좋았다. 그의 붉어진 얼굴이 좋았다. 그가 좋았다.

“그 말 지켜야 하네.”

“그리하겠습니다.”

그의 색채가 나에게 완전히 스며들고, 시간이 흘렀다.

어느덧 그와 나를 닮은 아이들이 태어나고, 세상의 색채가 더 진해졌다.

이제는 색채가 없는 곳이 없고, 모든 것들이 색채를 가졌다.

그 덕분이다. 그가 세상과 나를 물들였고, 행복을 알 수 있었다.

이제는 그가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없다.

그리 생각하고 있을 때, 그가 나를 불렀다.

“아이리스, 잠깐만 따라와 줄래?”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그를 따라갔다. 그를 따라가니, 그가 만든 듯한 음식과 그의 글씨체로 적힌 「생일 축하해!」라는 크게 적혀진 문구, 그리고 상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리스, 생일 축하해.”

“고마워.”

그를 끌어안고 잠시 시간을 보내었다. 그의 온기가 떠나가고, 그가 상자를 내밀었다.

“이것부터 열어봐.”

상자를 열어보니 노란색 튤립이 나왔다.

“이번에는 무슨 뜻이야?”

“그건 마지막에 설명해줄게.”

그는 그렇게 말하며, 상자를 내밀었다. 그 상자를 열어보니, 아름다운 문양이 새겨진 예식용 단검이 들어있었다.

“당신, 이거 구하느라 고생 좀 했겠네.”

“당신을 위한 거니까.”

그는 그렇게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낯 뜨거운 말을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그런 점도 사랑한다.

마지막 상자를 그가 내밀었다. 그 상자를 여니, 단검과 똑같은 문양이 새겨진 아름다운 잔이 나왔다.

“단검이랑 세트인가 보네.”

“응. 그리고 재밌는 기능도 있어.”

그가 잔을 문지르니, 잔이 크기를 키웠다.

“신기하기는 한데, 실용성은 없네.”

“그건 좀 아쉽지만, 이쁘기는 하잖아.”

“그렇지. 정말 고마워.”

그의 품에 다시 안겨, 그의 온기를 음미했다. 그의 온기를 음미하고, 그의 품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편지를 읽었다.

「도전자여, 시련의 시간이 되었다. 그대에게 주어진 검으로, 한 사람의 피와 살로 잔을 가득 채우게. 그것이 그대에게 주어진 시련이네.」

그 편지의 말과 함께, 흩어졌던 삶과 기억이 돌아왔다. 그리고 잠깐 사라졌던 저주가 돌아와 세상의 색채가 옅어졌다.

모든 것이 돌아왔을 때, 그가 노란색 튤립을 가져가며 입을 열었다.

“노란 튤립은 헛된 사랑, 짝사랑을 뜻합니다. 저를 위한 꽃입니다.”

그의 말에 뜻을 두지 않았다. 시련이 만들어낸 가짜니까. 이 모든 것이 가짜니까.

그리 생각하며, 검을 들어 올렸다. 그 순간 그와의 추억과 감정들이 스쳐 지나가며, 나를 방해하였다.

나는 그것들을 바라보며, 전부 시련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외쳤지만, 마음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감정은 거짓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것이 방해된다. 방해되어 감정을 도려내었다. 마음을 도려내었다. 퍼져가는 저주에 발버둥 치지 않았다. 저주에서 풀려나기 위해, 저주에 의지하였다.

저항이 사라지고, 저주가 나를 집어삼킨다. 만들어진 그와 감정이 빛바랜다. 현실에서 만들었던 그와의 추억과 감정도 빛바래며, 가치를 상실하였다.

준비가 끝났다.

그리 생각하고 검을 들어 올렸을 때, 예전부터 들리던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즐거운 시간이 끝이 났구나. 가장 즐거운 것이 끝나지만, 아직 남아있는 것이 있으니 나쁘지 않구나.」

그 목소리와 함께 머리가 아파온다.

「작별 선물을 주마.」

그 말이 끝나고 광기 어린 웃음소리가 퍼져나가고 흩어졌다. 세상의 색채가 돌아왔다. 빛바랜 추억과 감정이 돌아왔다.

그리고, 삶이 흘러들어왔다. 아니, 기억났다. 나의 죄악이 기억났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나뭇가지시럽님 1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가출청년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PIA1651394841816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다음 편은 써지는 데로 바로 올리겠습니다. 한 12시나 그것보다 조금 넘어서 올라갈 것 같습니다.

+여주 저주가 풀리기는 했지만, 완결각 잡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처음 작품을 쓰는 것이라 감이 잘 안 오지만, 지금 쓴 편수 보다는 많이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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