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대를 사랑하여 아팠다-49화 (49/59)

제 49화

그토록 바라던 삶과 시련

나의 아픔이자 행복이 스며든 장소가 펼쳐지고, 마음이 요동친다.

갑자기 펼쳐진, 꿈이 되어버린 미래의 광경에 대한 당혹감. 잊을 수 없는 광경에, 흉터에서 올라오는 아픈 감정. 초상화에 보이는 아이들의 모습에 그리움이 밀려오고, 그 감정들이 뒤섞여 요동친다.

그 감정들 속에서 혼란에 빠져 있을 때,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잊을 수 없는 목소리들이 들렸다.

“아빠, 오늘은 이거 읽어주세요!”

“오빠, 오늘은 내 차례야.”

나의 삶의 원동력이자, 행복이었던 아이들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 눈을 돌리니, 가슴팍에도 닿지 않는 아이들이, 잠옷 차림으로 책을 들고 온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다시는 보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던 광경에, 묻어 두었던 감정들이 올라와 나를 잠식한다. 그 무거운 감정들이 이성을 마비시키고, 나를 움직이게 하였다.

아이들에게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었다. 손에서 느껴지는, 아이들의 부드러운 머릿결과 온기. 그 감촉들이 마음의 파문을 더 크게 일으켰다.

크게 일렁이는 파문 때문에, 몸이 떨려온다. 떨려오는 몸은 무릎을 굽히고, 아이들을 끌어안았다. 품에서 온기가 전해져오고, 그것이 지금의 순간이 거짓이 아니라고 속삭였다.

그 속삭임이 거짓인지 아닌지는 신경 쓰이지 않았다. 아니,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하였다. 그저 이 온기에 빠져있고 싶어서,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아빠, 숨 막혀요.”

귓가에 들리는 엘리의 말에, 아이들을 품에서 놓아주었다. 그제야 이성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돌아온 이성은 지금의 광경을 부정하고, 이것조차 시련일 것이라며 속삭였다. 그 속삭임이 너무나 잔인하게 들렸다.

그 잔인함 속삭임이 끝나고, 마음이 속삭였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볼 수 있겠냐? 그냥 지금을 즐겨라.’

그 속삭임이 너무 달콤하여, 거부할 수 없었다.

“둘 다 읽어줄 테니, 다투지 말거라.”

그리 말하며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니, 웃음이 피어났다. 그 모습이 더없이 사랑스러움에도, 마음 한구석에서 울적함이 밀려왔다.

행복하면서도 울적한 그 기이한 감정을 느끼며, 아이들의 손을 잡고 침대로 갔다. 따스하고 부드러운 아이들의 손을 놓고, 아이들이 가져온 책을 읽어주었다.

책을 읽어나가며 터져 나오는 아이들의 웃음과 반응이 옛 기억과 감정을 자극하여, 나를 과거로 끌어들였다.

과거에 흠뻑 빠져든 나는 그 순간을 즐겼고, 행복한 시간을 곱씹다 보니 아이들이 잠들었다. 잠든 아이들의 머리를 쓸어 넘긴다. 손에서 느껴지는 따스함에, 마음과 머리가 복잡해진다.

‘무슨 시련을 내리려고, 나에게 이런 광경을 보여준단 말인가?’

답을 찾을 수 없는 물음이, 속에서 공허하게 울리고 흩어졌다. 그 물음이 흩어지고, 이상한 기분이 나를 덮친다.

그 이상한 기분이 몽롱함을 만들고, 몽롱함이 이성과 기억을 흐릿하게 만들었다. 이성과 기억이 흐릿한 세상 속에서, 감정만이 선명하다. 그런 기이한 상태에서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은 온전히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었고, 그 시간이 복잡한 감정들을 지우고 따스함만을 채워 넣었다.

복잡함이 사라진 마음은, 오로지 그 시간을 즐기게 만들었고. 내가 꿈꾸었던 이상이 이루어졌다.

아침에 아이들의 얼굴을 보며 일어나고, 웃으며 인사하는 삶.

아이들이 먹을 음식을 만들고, 음식을 먹기 좋게 잘라서 아이들의 그릇에 놓아주는 삶.

아이들을 무릎에 앉히고 책을 읽어주는 삶.

꽃이 핀 정원에서 아이들과 산책하며, 꽃의 이름과 꽃말을 알려주는 삶.

아이들의 손을 잡고, 여행을 다니는 삶.

졸려 하는 아이들에게 무릎을 베개로 내어주는 삶.

잠들기 전 아이들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좋은 꿈을 꾸라고 인사하는 삶.

하루하루 커가는 아이들과의 시간을 기록하는 삶.

특별하지 않고 평범하지만, 그토록 갈망하던 시간이 흐르고 아이들이 훌쩍 커버렸다.

이제는 나의 품을 떠나도 될 정도로 커버린 아이들은, 나의 눈을 가린 상태로 나의 손을 붙잡았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걸었다. 걸음이 멈추고, 아이들이 안대를 벗겨 주었다. 자유를 얻은 눈에 담긴 광경은, 나의 마음을 적셨다.

아이들이 직접 만든 듯한 음식과 아이들의 글씨체로 적힌 「아버지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적힌 커다란 문구. 그리고 아이들의 손에 들린 편지와 상자. 아이들은 잠시 그것들을 내려놓고, 나를 끌어안았다.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나 누구도 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습니다. 언제나 저희를 생각해주는 아버지의 덕분에, 저희는 이렇게 클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제 삶의 가장 큰 축복이고 행복입니다. 다음 삶이 있다면, 또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나고 싶습니다.”

“저도 아빠의 딸로 태어나 누구보다 행복한 삶을 살았어요. 매일매일 저희를 위해 헌신해주신 아버지 덕분에, 이렇게 자랄 수 있었어요. 아빠 정말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다음 삶에서도 또 저희의 아빠가 되어주세요.”

아이들의 온기와 함께 전해지는 그 말에,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 상처들이 씻겨 내려가고 사라졌다. 그 자리에 아이들이 들어와 나의 마음을 적시고, 따스한 마음이 흘러넘쳤다. 흘러넘치는 마음은 눈으로 흘러내렸다.

흘러넘칠 정도로 주체할 수 없는 마음에, 떨려오는 입을 열었다.

“나도... 너희가 나의 아이들이라 행복하구나. 내가 부족하고 못난 아비였지만, 너희들은 무엇 하나 투정 부리지 않고 웃어주었지. 그런 너희가 있었기에, 내 삶이 이토록 행복할 수 있었단다. 에반아, 엘리야. 정말 사랑한단다. 다음 생에서도 나의 아이들로 태어나다오.”

아이들 덕분에, 그동안 말로는 표현하지 못한 감정을 전할 수 있었다.

그 감정을 전하고, 이토록 행복한 삶을 만들어준 아이들을 꽉 끌어안았다. 놓고 싶지 않은 온기를 품에 품고, 아직도 넘쳐흐르는 감정을 흘려보냈다. 그 감정이 조금 진정될 때, 아이들이 입을 열었다.

“아버지, 이제 음식 식겠어요.”

“맞아요. 이거 만든다고 엄청 고생했는데, 식어서 맛없어지면 슬플 거 같아요.”

“그래그래, 빨리 먹자꾸나.”

아이들의 정성이 담긴 음식은, 나의 삶에서 가장 따스하고 감미로웠다. 먹는 것조차 아까운 음식들이, 전부 우리의 입으로 들어가고 아이들이 일어섰다. 일어선 아이들은 작은 상자를 들고 와서 나에게 내밀었다.

“아빠, 저희가 준비한 선물을 받아주세요.”

“아버지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그 말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단다.”

나의 솔직한 감정이 담긴 말에, 아이들이 미소를 지었다.

“아빠는 낯 뜨거운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세요.”

그리 말하는 엘리와 동감하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에반을 보며, 그저 미소를 지었다.

“아빠 그보다 빨리 열어보세요! 오빠랑 그거 고른다고 엄청 고생했어요.”

“그런 거 일일이 말하면 멋이 없잖아.”

“오빠는 그런 걸 너무 따져서 문제야.”

“네가 너무 안 따지는 거다.”

투닥거리는 아이들의 모습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 웃음을 진정시키고 상자를 열었다. 작은 상자에서, 아름다운 문양이 새겨진 예식용 단검이 들어있었다.

눈길을 절로 빼앗는 단검을 들어보니, 손에 착 달라붙으며 큰 만족감을 선사해 주었다.

이리도 아름답고, 귀해 보이는 단검을 구해온 아이들의 정성과 노력이 보여, 마음이 젖어 들었다.

“정말 고맙구나. 내 삶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검이구나.”

나의 말에 아이들이 웃음을 지으며, 또 상자를 들이밀었다.

“또 있니?”

“그럼요! 오늘을 위해서, 단단히 준비했어요.”

“아까도 말했지만, 그런 말은 안 하는 편이 멋이 산다니까.”

“오빠는 그런 것 좀 그만 따져!”

“어휴, 멋도 모르는 동생놈.”

또 투닥거리는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아무튼 빨리 열어보세요. 이번 것도 마음에 드실 거예요.”

엘리의 재촉에 상자를 열어보니, 황금빛을 머금은 장식용 잔이 나왔다. 그 잔에도 단검에서 보았던 아름다운 문양이 새겨져 있어, 실로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잔이구나.”

“아름답기도 하지만, 재밌는 기능도 있어요.”

엘리는 그렇게 말하며, 잔을 가져가 땅에 내려놓고 잔을 문질렀다. 문질러진 잔은 크기가 커지더니, 잔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크기가 되었다.

“신기하긴 한데, 이 정도 크기면 잔으로 쓰기에는 무리겠구나.”

“단검이랑 세트여서, 의식용으로 사용된 물건들이라 그렇데요.”

“그렇구나. 이런 건 귀할 텐데 어떻게 구해왔니?”

“그런 건 비밀이에요.”

엘리는 그렇게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다. 그저 아이들의 정성이 고마울 뿐이다.

“에반에, 엘리야 고맙구나. 너희 선물들 전부 마음에 든단다.”

“그렇게 말해주시니, 고생한 보람이 있습니다.”

“맞아요. 고생한 보람이 있어요!”

아이들의 얼굴에 맴도는 미소에, 이미 가득 찬 마음이 또 채워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거 읽어주세요.”

엘리가 내미는 편지를 받아, 그 자리에서 읽었다.

「도전자여, 시련의 시간이 되었다. 그대에게 주어진 검으로, 한 사람의 피와 살로 잔을 가득 채우게. 그것이 그대에게 주어진 시련이네.」

그 편지의 내용과 함께, 흐릿하다 못해 잊어버렸던 기억들이 돌아왔다. 돌아온 기억과 채워진 마음이 만나서,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기억과 편지가 채워진 마음을 찢어발기고, 채워진 마음은 현실을 부정하였다. 그 반응들과 함께 구역감이 몰려온다.

“아버지 누구를 택하시겠습니까?”

“아빠 누구를 택하실 거예요?”

아이들은 그 말과 함께, 잠시 내려놓았던 단검을 들이밀었다. 그것이 나를 찢어발겼다. 그리고 레이첼의 말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다.

‘아, 그래도 한가지 말해드리자면, 힘들면 그냥 포기하세요. 이건 진심이에요.’

그 말이 최악의 형태로 절감하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제 작품을 봐주신 [독자 닉네임 출력]님 감사합니다.

TIP) 허리는 굉장히 소중한 부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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