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8화
계시의 장소
계시의 기적을 찾으러 모래의 땅에 들어오고 칠 주야 지났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목적지를 코앞에 두었다.
그 사실이 발걸음을 가볍게 하였고, 가벼워진 발걸음을 부지런히 옮겼다.
살짝 기울었던 태양이 땅과 맞닿는 시간이 찾아오고, 우리의 걸음이 멈추어 섰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평소의 풍경과 다를 것 없는 모래의 바다. 그것이 끝이었다. 그 광경을 보고, 우리의 위치와 목적지를 표시해주는 지도를 들여다봤다.
목적지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점. 그 모습에 다시 주변을 둘러보아도, 모래 말고는 보이는 것은 없다.
“형제님,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아무것도 없구나.”
레이첼의 물음에, 힘 빠진 목소리가 입에서 흘러나왔다.
“형제님, 지도랑 필사해오신 책을 보여주실래요?”
그녀의 말에, 지도와 책을 넘겼다. 그녀는 그것들을 받고는 유심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시간이 걸릴 듯한 모습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아이리스를 바라봤다.
조금 창백해 보이는 그녀가 눈에 들어온다. 그 모습에 또 걱정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지만, 사흘 전부터 계속 괜찮다고 말을 했으니 더 물어볼 수 없었다.
그저 말하지 않고, 마음속으로만 걱정을 할 뿐이었다.
그리 생각하며 다시 레이첼을 바라봤을 때, 단검으로 자기의 손목을 그어 피를 뿌리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에 당혹감이 몰려와 그녀의 손을 잡아채려고 손을 뻗은 순간, 세상이 흔들렸다.
세상이 흔들리며, 아래에서 광음이 들려오고 거센 모래바람이 불었다. 거센 모래바람 때문에 시각이 차단되고,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눈을 감고 바람이 멎기를 기다렸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거센 바람이 멎고 시야가 돌아왔다. 돌아온 시야에는 금빛의 거대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그 광경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 레이첼이 약간 거만한 표정을 짓고 다가왔다.
“제가 이 정도 합니다!”
“그래, 잘했다.”
그녀의 거만한 표정과 말투에 기분이 조금 이상해졌지만, 그녀 덕분에 목적지를 찾았기에 순수하게 칭찬을 했다. 그렇게 칭찬을 하니 그녀의 표정이 조금 더 거만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묘하게 기분을 자극하는 그녀의 표정을 뒤로하고, 아이리스가 있는 방향으로 눈을 돌렸다. 머리에 묻은 모래도 털어내지 않고, 우리에게 다가오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저게 목적지인가?”
“그런 거 같습니다.”
“드디어...”
그녀의 마지막 말에서 물기가 조금 느껴졌다. 그것이 나의 마음에도 전해지며, 물들었다.
“형제님, 자매님. 빨리 가요.”
“그래, 그러자꾸나.”
레이첼의 재촉에 우리는 걸음을 옮겼다. 거대한 건물은 앞에 다가서니, 등에 날개가 달린 여인의 석상에 글귀가 적혀 있었다. 세상을 돌아다니며, 모든 문자를 보았다고 생각하였는데. 석상에 적힌 글귀는 처음 보는 문자였다.
“처음 보는 문자군.”
나와 다를 바 없는 아이리스의 반응에, 침묵하고 있는 레이첼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유심히 그 글자를 바라보고는 입을 열었다.
“기적을 찾아 이곳에 온 도전자들이여, 나는 그대들이 누구인지 나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그대들 모두를 환영하고 입장할 자격이 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들어가기 전에 세 가지를 명심하라.”
그녀는 잠시 목을 가다듬고 다시 입을 열었다.
“첫째 한 번 도전한 자는 영원히 도전할 자격을 잃는다. 둘째 기적을 얻기 위해서, 그대들은 시련을 이겨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얻게 될 것이다. 셋째 그대들이 바라는 것이, 정녕 그대들이 진실로 원하는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보아라.”
그것을 끝으로 그녀의 말이 끝이 났고, 나는 궁금증을 내뱉었다.
“레이첼, 이런 것도 읽을 수 있었나?”
“그럼요! 저를 어떻게 보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저 유능한 다크엘프예요.”
거만한 표정으로 가슴에 손을 올리며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괜히 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에 약간 비꼬는 말투가 튀어나왔다.
“그래그래, 대단하다.”
“제가 좀 대단하죠.”
비꼬는 느낌으로 말했음에도, 거만한 표정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짙어졌다. 그 모습에 속이 조금 뒤틀리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튼, 들어가기나 하자.”
“네~.”
우리가 문으로 걸음을 옮겼을 때, 석상이 움직이며 우리의 앞을 막았다. 그리고는 레이첼을 향해서 손을 뻗으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뱉었다.
“레이첼, 석상이 무슨 말을 했나?”
그녀는 시선을 돌리고, 잠깐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게... 저는 자격이 없데요.”
그녀는 그리 말하며 뒤통수를 긁었다. 나는 그 모습에, 입을 열지 못했다.
“아주 옛날에 여기 왔었던 것 같아요. 헤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배시시 웃었다. 그 말과 모습에 어이가 없어졌고, 수많은 의문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아주 옛날이면, 언제?”
“그건 말하기 좀 그래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내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는 다시 눈을 마주치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 질문 너무한 것 같아요! 어떻게 여자한테 나이를 추측할 수 있는 질문을 하세요!”
그 말에 조금 어이가 없었다. 다크엘프랑 엘프들처럼 수백 년은 가뿐하고, 천년이 넘도록 사는 장생 종들은 나이를 신경을 쓰지 않건만. 화를 내는 그녀의 모습에 어이가 없으면서도, 그렇게 말하면 귀찮아질 것이 뻔하기에 마음에도 없는 사과를 했다..
“그래, 미안하다.”
“형제님이라 특별히 봐주는 거예요.”
“그래그래, 고맙다.”
시답지 않은 대화를 하고 있으니, 아이리스가 우리 사이에 들어오고 레이첼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보다 이곳에 왔으면, 석상에 적힌 시련이 무엇인지 알고 있나?”
그녀의 말에 레이첼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알고 있죠. 그런데, 그건 사람마다 달라서 설명해 드릴 수가 없어요.”
“그렇군.”
“아, 그래도 한가지 말해드리자면, 힘들면 그냥 포기하세요. 이건 진심이에요.”
레이첼의 진지한 표정과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입을 열었다.
“시련은 그렇다 치고, 기적이란 건 정말로 있나?”
“그건 직접 본 적은 없지만, 기적을 취한 사람은 봤어요.”
그녀의 직접 본 적 없다는 말이 거슬렸다. 그녀도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고 찾아왔고, 실패했다는 뜻이니 신경 쓰인다.
“형제님. 혹시 제가 실패한 것 가지고, 그런 표정을 지으시는 거예요?”
그녀의 말에 표정을 고치려고 했지만, 잘 고쳐지지 않았다.
“너무 그런 표정 짓지 마세요. 한참 옛날의 이야기니까요. 이제 기억도 잘 안나요”
그녀는 밝게 말했지만, 어째서인지 밝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튼 조심하시고, 감당할 수 없으면 그냥 포기하세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우리의 등을 떠밀었다.
“저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그녀를 보고, 가방을 뒤져 넉넉한 양의 물과 보전식을 그녀에게 건넸다.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지만, 아껴서 먹고 있어라.”
“네!”
힘차게 대답하는 그녀의 모습에, 어째서인지 기시감이 들었다. 그 이유 모를 기시감을 느끼며,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레이첼이 빠지자, 문을 막고 있던 석상이 원래의 위치로 이동했다. 나와 아이리스는 그 석상을 지나쳐, 문으로 손을 뻗었다.
차가운 촉감이 전해져 오고, 문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눈 부신 빛이 우리를 감싸고, 손에 미약한 통증이 밀려왔다.
미약한 통증과 함께 빛이 사라지고, 거대한 공간이 나타났다. 그 거대한 공간에는 월계수 관을 머리에 쓰고 있는, 거대한 남성형 석상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석상의 눈에 빛이 약간 감돌고 고저 없는 음성이 들렸다.
“기적을 찾아 이곳까지 온 도전자들이여, 그대들을 환영한다.”
아까 전의 석상과는 다르게 알아들을 수 있는 말에, 안도하였다.
“도전자들이여, 도전할 준비가 되었다면 나의 앞으로 와라.”
그 말에,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 그녀 또한 나를 보았고, 우리의 눈이 마주쳤다. 마주친 눈에는 흔들림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모습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의 마음을 눈으로 확인한 우리는, 석상의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거대한 석상에 다가가니, 바닥에 구멍이 생기며 받침대 같은 것이 올라왔다.
“준비된 도전자들이여, 그곳에 손을 대라”
석상의 말에 손을 뻗었고, 아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 통증과 함께 손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흘러나온 피는 받침대를 적셨고, 월계수 관에 빛이 맴돌았다. 그리고 석상의 얼굴이 움직여 나를 바라봤다.
“특별한 업을 짊어지고, 끊임없이 업에 도전하는 자여. 그대의 특수한 상황 때문에, 그대의 시련은 더없이 무겁고 잔혹할 것이다. 그리하여도 도전하겠는가?”
석상은 타락한 성녀와 아르미스처럼 이해할 수 없는 명칭으로 나를 칭하였고. 험난할 시련에 대해 경고를 하며, 그만두는 것을 종용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에 본능이 불안감을 느꼈지만, 그녀를 구하기로 맹세하였으니 불안감 때문에 포기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하여도. 나는 도전하겠다.”
“그대의 뜻을 받아들이겠다.”
석상의 말과 함께 눈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며, 우리를 집어삼켰다.
“무운을 빌겠다. 고결한 자여.”
석상의 목소리와 함께 시야가 흩어지고, 익숙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한쪽 구석에 위치한 진열장과 술. 한쪽 벽을 장식하는 검들. 그리고 반대쪽 벽을 장식하고 있는 아이들과 나 그리고 아이리스가 그려진 초상화.
저번 생의 나의 방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제 작품을 봐주신 [독자 닉네임 출력]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