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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사랑하여 아팠다-46화 (46/59)

제 46화

사막과 걱정, 요동치는 심장

아이리스를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한 날로부터 한 달이 흘렀다. 그동안 황녀가 건네주었던 계시의 내용 일부를 아이리스와 레이첼, 전 장인어른에게 공유하고, 계시의 장소를 알아내는 데 성공하였다.

동쪽에 위치한 한 줌의 물조차 찾아보기 힘든 모래의 땅, 그곳에 잠들어 있는 기적.

모래의 땅을 특정하는 것은 쉬웠다. 동쪽에 위치한 모래의 땅이라고 해봤자, 뉴델 왕국에 있는 사막 말고는 없으니.

하지만, 기적의 위치를 특정하는 과정은 조금 힘겨웠다. 공작가의 정보력을 총동원하고, 국교의 상징이 된 황녀의 도움을 받았음에도, 그 장소를 특정할 수 없었다.

그렇게 막막한 시간이 흐르던 도중, 마녀의 거처를 수색하던 수색팀이 발견한 서적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창조신의 흔적들」 이라고 적혀있는 서적에, 모래의 바다에 있는 창조신의 장난이자 자비라는 기록이 서술되어 있었다. 나는 그 부분과 서적을 몇 번이나 탐독하며, 필요한 내용들을 정리하고 필사하였다.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는 그 장소를 찾아갈 계획을 세우며 준비하였다. 그리고 오늘 한 줌의 물조차 찾을 수 없는 땅에 발을 내디뎠다.

그런 우리를 환영하는 환경은 조금 잔혹하였다.

부지런히 내딛는 걸음은 푹푹 빠지며, 체력을 야금야금 갉아먹었고, 열기를 머금은 건조한 바람이 불어온다. 그 바람은 자신의 흔적이라도 남기는 것처럼 달궈진 모래를 남기고 떠나간다.

뜨거움과 함께 피부를 자극하는 바람의 흔적을 털어내니, 옷이 가려주던 햇볕이 피부를 찌르며 따가움을 선사하였다. 그리고 그 따가움을 선사하는 햇볕과 열기는 입안을 타들어가게 만들며, 체력을 갉아먹었다.

세상이 얼어붙는 계절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환경은, 무척이나 낯설고 불편하였다. 그 불편함을 감내하며, 길을 알려주는 마법이 걸린 지도를 틈틈이 확인하면서,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형제님, 물 좀 주세요.”

자기도 기적을 확인해 보고 싶다며, 따라온 레이첼에게 수통을 건네주며, 당부하기 위해서 입을 열었다.

“아껴 마셔라.”

“네~.”

레이첼은 말꼬리를 늘리며 답하며, 수통을 빼앗듯이 받아 가고는 벌컥벌컥 들이켰다. 물을 넉넉히 가져오기는 했지만, 방금 한 당부를 무시하는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을 내쉬고 잔소리를 하기 위해서 그녀를 바라보니, 상쾌한 표정으로 입가를 닦는 그녀의 모습에, 잔소리를 할 기운도 나지 않았다. 사람 기 빨리게 하는 레이첼의 모습에서 눈을 떼고, 가장 뒤에 있는 아이리스 바라봤다.

조금 멍한 그녀의 표정이 눈에 들어온다. 며칠째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가 신경 쓰인다. 그 감정이 입을 부추겨, 움직이게 만들었다.

“아이리스, 괜찮으십니까?”

“... 어, 괜찮네.”

한 박자 느린 반응과 힘없는 목소리 때문에,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습니다.”

“... 정말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게.”

그녀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괜찮은 척을 하기에, 더 신경 쓰이게 만들었다. 그 감정에, 그녀를 붙잡고 대화를 나누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밤이 되기 전에 휴식을 취할만한 곳에 서둘러 도착해야 하기에, 잠시 그 생각을 뒤로 하고 앞을 바라보았다.

뜨거운 열기와 모래만이 펼쳐진 세상에서, 걱정이 가득한 발걸음을 옮겼다. 수다스러운 레이첼의 심심하다는 투정 말고는 특별한 일없이 시간이 흐르고, 날이 저물기 전에 첫날 휴식처인 유적에 도착하였다.

힘겹게 찾아온 휴식처가 다 쓰러져 가기는 무가치한 유적이기는 하지만, 온통 모래투성이인 세상과 달리, 고정된 발판과 바람을 막아줄 벽이 있기에 휴식을 취할 정도는 되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짐을 내려놓고, 곧 찾아올 밤을 준비하였다.

가장 튼튼해 보이는 벽이 위치한 곳에 텐트를 치고, 혹시 모를 위협을 확인하기 위해 잠시 주변을 확인해 보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다 쓰러져 가는 유적에 위협은 고사하고, 삭아가는 유적의 잔해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허전한 유적의 주변을 다 확인하였을 때, 어둠이 조금씩 깔리며, 햇볕에 달구어졌던 공기가 빠르게 식어가기 시작했다.

빠르게 식어가는 공기에, 미리 준비한 두꺼운 옷으로 갈아입고 불을 피웠다. 불을 피우고, 넉넉히 준비해온 물과 식재료로 저녁을 준비하고 있으니, 차츰차츰 깔리던 어둠이 세상을 뒤덮었다.

어둠이 깔린 세상에,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으, 조금 전만 해도 더웠는데, 금방 추워지네요.”

“그러게, 말이다. 문헌으로는 확인하기는 했는데, 경험해보니 신기하군.”

호들갑 떨듯이 팔을 쓸면서 이야기하는 레이첼의 말에 맞장구쳐주며, 다 조리된 스튜를 레이첼과 아이리스에게 건네주었다.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활기찬 목소리와 힘이 빠진 목소리가 뒤섞여 울리고, 정적이 찾아왔다. 정적 속에서 스튜를 대충 넘기며, 아이리스의 상태를 확인하였다.

여전히 멍한 표정과 느릿하게 스튜를 넘기는 모습이 너무나도 신경 쓰여, 입안을 스쳐 지나가는 스튜의 맛조차 제대로 느낄 수 없었다.

“형제님, 더 주세요.”

“그래.”

레이첼의 그릇에 스튜를 더 덜어주고, 아이리스에게 말을 걸었다.

“더 드시겠습니까?”

“... 괜찮네. 나는 이 정도로 충분하네.”

평소의 식사량에 반도 먹지 않고는 충분하다고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신경 쓰임이 걱정과 불안감으로 변하였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걸어야 하니, 체력을 위해서라도 더 드셔야 합니다.”

“... 그러면, 조금만 더 주게.”

그녀의 그릇을 받아들고, 가득 채워 넣었다.

“조금만이라고 했는데...”

“조금만 드린 겁니다.”

그녀는 힘없이 그릇을 받아 들고는, 느릿한 속도로 비워나갔다. 느릿한 속도로 힘겹게 비워내는 그녀의 모습에, 걱정과 불안감은 작아지지 않고 몸집을 키워나갔다.

“다 먹었네.”

그녀의 말과 함께 식사가 끝이 났다. 나는 뒷정리를 하고, 그녀를 찾아갔다.

텐트 안에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그녀는, 내가 가까이 다가왔음에도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아이리스.”

“아, 언제 왔는가?”

“방금 왔습니다.”

그녀를 부르고 나서야 알아차리는 모습과 힘없는 목소리가, 자꾸만 내 마음을 긁어낸다.

“아이리스, 솔직하게 대답해 주십시오. 정말 괜찮으신 거 맞습니까?”

“... ”

그녀는 나의 물음에 대답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그것이 또한 대답이기도 하였다.

“대답으로는 충분합니다. 아이리스, 당신이 답하기 힘든 질문을 더 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힘들다면 언제나 말해주십시오.”

“... 그러겠네.”

그녀의 힘없는 대답에, 불안감이 몸집을 더 키웠다. 너무나 커져 버린 불안감에, 그녀의 손을 잡고 눈을 마주한 상태로 재차 입을 열었다.

“아이리스, 기적이 잠든 곳으로 가는 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당신보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희에게는 아직 시간이 많고...”

“아닐세!”

그녀는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나의 말을 끊어버렸다. 그녀의 얼굴에 심란한 표정이 스쳐 지나가고, 당혹스러운 표정이 자리를 잡았다.

“갑자기 소리쳐서 미안하네.”

“아뇨, 괜찮습니다.”

당혹스러운 마음을 옆으로 치우고, 평온한 목소리로 그녀의 사과에 대답했다. 나의 대답에도 그녀의 표정은 풀리지 않고, 복잡해 보이는 감정들이 그녀의 눈에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녀의 입이 열렸다가 닫히기를 잠시 반복하였다. 나는 차분히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시간이 잠깐 흐르고,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대에게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으니 솔직하게 말하겠네. 괜찮은 상태는 아니네.”

그녀의 솔직한 말에 안도감을 느끼는 동시에, 불안감을 느꼈다.

“하지만, 지금 여정을 포기할 정도로 안 좋은 것은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말게.”

그리 말하고는, 나의 손을 잡으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그대가 나를 신경 써주는 것을 느끼니, 조금 괜찮아지는군.”

“그리 말해주시니 다행이군요.”

손에 들어온 온기를 느끼며, 미소를 지었다. 잠시 그 시간이 흐르고, 온기가 빠져나갔다. 나의 손에서 빠져나간 온기가 꼼지락거리고, 그녀의 입이 열렸다.

“저번에 해주었던 말 아직 유효한가?”

조금 두서없는 말이지만, 그녀가 슬피 울던 날의 약속을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언제나 유효합니다.”

“그러면, 잠깐만 눈을 감고 가만히 있게.”

그녀의 말에 눈을 감으니, 향긋한 향기와 나의 품에 전해져오는 온기가 느껴졌다. 그 온기는 품에서 꾸물거리고, 잠시 후 뺨에 부드러운 촉감과 함께 온기가 전해졌다.

그 촉감이 나의 사고를 느려지게 만들고, 심장을 자극하여 요동치게 만들었다.

그 감각들 때문에 저절로 눈이 떠졌고, 그녀의 손이 나의 눈을 덮었다.

“아직 눈을 떠도 된다고 말하지 않았네. 아주 잠깐만 더 눈을 감고 있게.”

약간 떨리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그녀의 손가락사이로 붉어진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에, 심장의 요동침이 더 강렬해졌다.

“오늘 불침번은 내가 먼저 서고, 그대는 마지막에 서게.”

아무것도 없는 사막이기에 불침번이 필요 없다는 사실을 망각한 그녀는, 그리 말하며 급한 걸음으로 나의 시야에서 도망쳤다.

나는 빠르게 사라지는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며, 뺨에 남아있는 여운에 잠겨 들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다음 편은 아이리스의 시점으로 진행될 예정이며, 내일 저녁에 올라올 것입니다. 내일은 분량을 늘리거나, 연참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아미노산285번님 2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오늘도 제 소설을 봐주신 [독자 닉네임 출력]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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