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2화
(외전) 죄인의 넋두리
나의 삶이 어긋났다는 사실을, 아버지의 시신 앞에서 깨달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감정이 서서히 메말라 갈 때 아니면, 태어났을 때부터?
모르겠다. 알아봤자, 아버지는 돌아오시지 않는다. 그저 죄인의 뒤늦은 넋두리일 뿐이다. 그래서 더 죄스럽다.
이런 우리의 마음을 보시기라도 하셨는지, 아버지는 자신을 가엽게 여기지 말라고, 미안함을 느끼지 말라고 유언을 남기셨다.
어떻게 가엽게 여기지 말라고 하신 겁니까, 어째서 미안함을 느끼지 말라고 하신 겁니까? 아버지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이리도 아파오는데... 어찌 그러시는 겁니까?
죄송합니다. 아버지의 유언을 들어드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불효자는 아버지의 시신 앞에서, 죄를 고합니다. 그리고 그 죗값인 이 아픔을 달게 받겠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잊어버리고, 아버지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한 죄인은 그리 생각하며, 아버지의 시신 앞에서 죄를 짓습니다.
그 죄악이 물과 함께 아버지의 시신을 적십니다. 그러면서, 현실을 부정합니다.
아버지... 아버지 여기서 누워 계시면 안 됩니다. 방이 차니 일어나셔서, 다른 곳으로 가셔야 합니다. 그것에는 그토록 바라시던, 감정을 되찾은 어머니와 딸이 있으니, 일어나 주소서.
그 덧없는 넋두리를, 아버지는 듣지 못하셨다. 혹시, 듣지 못하셨을까 봐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일어나지 않으셨다.
그 사실이 현실을 부정하던 마음을 찢어발기고, 현실을 들이밀었다. 그럼에도 현실을 보고 싶지 않아, 눈을 감고 싶었다. 눈을 감으니, 아버지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언제나 환하게 웃어주시던 다정하신 아버지의 모습, 때로는 엄하게 혼내시면서도 홀로 우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언제나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도 우리를 찾아와주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떠올라 시리도록 아프다.
선명한 추억이 깨지고, 그 파편이 나의 마음을 찌른다. 그 파편은 너무나도 깊숙이 박혀, 뽑아낼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냥 두었다. 그리고 상처 입은 마음에서 흐르는 피가 눈으로 흘러내렸다.
흘러내린 피가, 바닥을 흥건히 적시고도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다. 그저, 아버지의 유언이 곱씹으며 참아낼 뿐... 마음은 병들고, 썩어 문드러졌다.
“아빠... 내가 잘못했어, 그러니까 제발 일어나줘.”
그것은 나만의 감정이 아닌지, 동생도 바닥이 젖도록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를 부르짖었다.
나와 똑같이 아버지를 부르짖는 동생의 모습에, 우리의 어긋남... 아니, 죄가 더 선명해졌다. 우리가 불효자이며,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아버지에게 입힌 죄인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선명하였다.
선명해지는 죄가 눈앞에 어른거린다. 그리고 어디선가 웃는 소리가 들려온다. 듣기 싫은 웃음소리에, 귀를 막아도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웃음소리는 선명해졌다.
악마의 비웃음 소리인가, 아니면 죄인을 보는 천사의 조롱인가... 나는 모르겠다.
알 수 없는 웃음소리 속에서, 주저앉아 흐느끼는 동생의 어깨를 붙잡아 일으켰다.
“시간이... 끝났다.”
동생은 대답하지 않고, 흐느끼기만 했다. 예법상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끝났기에, 흘러내릴 듯한 피를 삼키며, 동생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
밖에는 수척해지신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자리를 비켰다. 어머니가 들어가신 지 얼마 되지 않고, 흐느낌 소리가 퍼져나갔다.
그 흐느낌 소리에, 간신히 진정하였던 동생의 눈물샘이 다시 터져 나왔다. 양쪽에서 흘러나오는 흐느낌에, 나도 다 포기하고 주저앉아 울고 싶었다.
그렇지만, 아버지가... 아버지가 슬퍼하지 말라 했으니까... 참아야 한다.
손을 꽉 쥐고 입술을 쥐어뜯으며 참아보려 했지만, 마음은 내 생각을 따라 주지 않았다. 눈앞이 뿌예지며, 슬픔이 흘러나왔다. 그럼에도,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고 싶어, 이를 꽉 깨물고 숨을 죽였다.
소리 없이 흐르던 눈물이 말라버리고, 아버지를 떠나보내어야 할 시간이 되었다. 무거운 발걸음을 흐느끼는 어머니에게 향하고, 그토록 냉정하고 차가우셨던 어머니의 망가진 모습을 보았다.
그 모습에 목이 떨려와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한참을 그곳에 서 있고서야, 입을 열 수 있었다.
“어머니... 시간이 됐습니다.”
어머니는 조용히 눈물을 훔치시고, 아버지를 조심스럽게 안아 드셨다. 차가워지신 아버지와 우리는 침묵 속에서 걸음을 옮겼다.
걸음은 아버지가... 우리가 좋아했던 정원으로 향하였고, 정원에는 눈이 내렸다. 눈이 내리는 정원에서, 아버지를 떠나보내기 위해 관에 아버지를 놓아드렸다.
사제의 기도 소리와 함께, 노란 불길이 올라와 관을 집어삼켰다. 타닥, 타닥 타들어 가는 소리에, 나의 마음도 같이 타들어 갔다.
마음이 반쯤 불탔을 때, 어머니가 갑자기 앞으로 나가셨다. 그 모습이 너무 애처롭고 위험해 보여, 붙잡았다.
“놔라.”
그 단호한 말에, 목이 멨다.
“어머니...”
“놓으란 말이다! 그가 불타고 있지 않으냐, 구해야 한단 말이다!”
누구보다 차갑고, 냉정하셨던 어머니의 망가진 모습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그저 붙잡은 손을 놓지 못하고, 침묵하였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였건만, 동생은 어머니에게 다가와 끌어안고 슬픔을 받쳐주었다. 그 모습에, 나도 주체할 수 없는 마음에 어머니와 동생을 끌어안고, 슬픔을 흘려보내었다.
계속해서 슬픔을 흘려보내었음에도, 슬픔은 줄어들지 않고 커져만 갔다. 커져가는 우리의 슬픔에, 모인 이들 또한 같이 슬픔을 토해내었다. 정원은 슬픔에 가득 찼고, 떠나간 아버지의 흔적은 완전히 타버렸다.
그 모습에, 또다시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입술을 물어뜯었다. 죄 없는 입술이 피를 토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마지막 흔적을 품에 안으셨고, 아버지의 유언을 행하러 어머니의 뒤를 따랐다.
아버지의 흔적마저 남지 않은 꽃밭에서, 우리는 아버지를 떠나보내기 위해 항아리를 열었다. 한 줌의 재가 되어버린 아버지의 모습에, 손이 떨렸다.
그 감정을 똑같이 느끼셨는지, 어머니의 손도 떨렸다. 떨리는 손이 애처로워, 손을 뻗어 붙잡았다. 나의 손 위에, 동생이 덮이고 우리의 떨림이 점차 사라져갔다.
떨림이 멎은 손에, 아버지의 마지막 한 줌이 담겼다. 그 한 줌을 놓고 싶지 않았다. 그 따스함을 놓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버지의 유언이기에 손을 놓았다. 바람이 불고, 아버지의 흔적이 바람을 타고 우리를 떠나갔다.
아버지가 떠나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눈을 뗐을 때는, 눈이 그치고, 정상에 떠올랐던 해가 기울었을 때였다.
그럼에도, 미련은 만족하지 못하여, 자리를 뜨는 걸음이 무거웠다. 그 무거운 발걸음과 답답한 마음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버지의 흔적을 쫓고 있었다.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정원에서, 추억을 회상하였다. 웃으시며 꽃의 이름과 꽃말을 알려주시던 아버지. 어렸던 우리와 놀아주시며 환하게 웃어 주셨던 아버지. 뛰어놀다 넘어지고 우는 우리를 달래주시던 아버지...
그 추억을 마음에 품고 다음 장소로 걸음을 옮겼다.
아버지가 살다시피 하셨던 연무장에서 검을 매만지며, 검술을 가르쳐주시던 엄한 아버지의 모습과 우리가 다쳤을 때는, 바로 달려와 주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모습들을 품고, 걸음을 옮겼다.
본채에 있는 아버지의 방. 가족의 초상화가 한쪽 벽의 반을 차지하는 방에서, 책들이 눈에 들어온다. 손때 묻은 낡은 책들. 우리가 잠들 때마다 읽어 주셨던 책들. 그 책들을 하나하나 펼쳐 보았다. 그리고 책들에 적혀져 있던, 메모들이 나를 울렸다.
「에반이 좋아하는 책. 엘리가 좋아하는 책. 에반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책. 엘리가 무섭다고 눈물을 터트렸던 책...」
우리의 반응을 하나하나 적혀있는, 아버지의 메모에 숨이 쉬어지지 않아 도망쳤다.
아버지의 마음을 보고 도망쳤음에도, 발걸음은 여전히 아버지 흔적을 쫓고 있었다. 도망친 발걸음은 아버지의 임종 장소인, 별채의 외로운 방에서 멈춰섰다.
선객이 있었는지, 바닥이 눈물 자국으로 엉망이었다. 엉망인 된 방에는, 볼품없는 펜던트가 떨어져 있었다.
그 펜던트를 주워들어 보니, 흐릿한 기억 속에서 아버지의 말이 스쳐 지나간다.
“소원을 들어주는 펜던트라는데, 한번 사용해 보겠니?”
“그런 거, 관심 없어요. 쓸데없는 짓 좀 하지 마세요.”
아버지의 말이 끝나고, 들려오는 냉랭한 나의 목소리에 구역감이 몰려왔다. 그리고 구역감 너머에서, 참을 수 없는 죄책감이 몰려왔다.
그 죄책감 속에서, 아픔을 토해냈다.
“오빠...”
동생의 목소리와 함께, 어깨에 온기가 느껴졌다.
“엘리야...”
그저 우리는 서로를 부르고,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고 침묵하였다. 무거운 침묵 속에서, 입을 열었다.
“이 펜던트 기억해?”
“응...”
가라앉은 목소리와 촉촉해지는 눈을 보니, 나와 같은 반응을 했을 것이 보여 입안이 쓰다.
“... 같이 소원을 빌자.”
아이 같고, 덧없는 말이었지만, 그저 그러고 싶었다.
“응.”
눈을 꽉 채우고 넘치는 눈물을 닦은 동생은 눈을 감았다. 나도 눈을 감아 소원을 빌었다.
‘다음 삶이 있다면, 아버지가 행복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나의 행복이었고, 나의 삶에 가장 큰 부분이었던 아버지의 행복을 빌었다.
“오빠, 무슨 소원 빌었어?”
“아버지의 행복을 빌었어.”
“난, 다음 삶에서도 아버지 딸로 태어나고 싶다고 빌었어.”
“소원을 또 빌어야겠네.”
“나도.”
우리는 다신 눈을 감고, 덧없음을 알고도 소원을 빌었다. 그저 죄인들의 공허한 넋두리가 닿기를 바라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 본편 1편과 외전 1편이 올라갔으니, 내일은 본편 2편이 올라갈 예정입니다.
tmi) 지금 시점의 아이들은 20대 후반이지만, 막혀있던 감정이 터져 나오는 것이라, 나이보다 어린 느낌이 나는 것입니다.
오늘도 제 작품을 봐주신 [독자 닉네임 출력]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