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대를 사랑하여 아팠다-39화 (39/59)

제 39화

괴물과 알 수 없는 이야기

기세만으로 공간을 장악한 여인이, 나를 향해 다가온다. 여인과 나의 간격이 가까워질수록, 본능이 찢어지도록 내지르는 비명이 커진다. 비명이 나를 가득 채우고, 그 너머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적개심이 올라온다.

도망치라는 비명과 달려들어 죽이라는 적개심이 뒤섞이지만, 몸이 석상처럼 굳어버려 움직이지 않는다.

굳어버린 몸 때문에,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여인의 간격에 노출되었다. 여인은 손을 뻗어 나의 턱을 잡고는, 나의 눈을 뚫어지도록 쳐다본다. 그 눈빛에, 나의 모든 것이 관통당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위대한 영혼이, 볼품없는 육신으로 태어나셨군요. 그것이 저의 행운이고, 당신의 불행이니, 즐겁습니다.”

여인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과 함께, 나의 턱을 놓는다. 그 순간 나를 짓누르던 기세는 사라지고, 굳어버린 몸에 활력이 돌아왔다.

활력이 돌아오고, 본능의 외침대로 간격을 벌렸다. 간격을 벌렸음에도, 본능의 비명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비명을 무시하며, 이유 모를 적개심에 몸을 맡긴다.

쥐고 있던 메이스를 여인에게 투척한다. 여인을 향해 날아간 메이스가, 여인에게 닫기 전 사라지더니, 여인의 손에서 나타났다. 여인은 그 메이스를 만지작거리며, 입을 열었다.

“메이스라. 오랜만에 들어보는군요. 이걸로 많은 자들의 머리를 부쉈는데, 그립네요.”

살인의 기억을 그립다고 하는 말에, 역겨움이 올라온다. 여인은 그런 나를 보며, 섬뜩한 미소를 짓는다. 그 섬뜩한 미소와 함께 메이스가 사라졌다.

“뭘 그렇게 혐오스럽게 보십니까. 그 자리에 당신도 있으셨는데, 너무하시는군요.”

오늘 처음 본 여인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무시하고, 검을 뽑아 든다.

“아, 기억 못 하시겠네요. 그러게 왜 반신의 격을 거부하시고, 죽음의 굴레에 몸을 맡기셨습니까.”

또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내뱉는 여인을 향해, 검을 내지른다. 검 끝이 여인의 손아귀에 잡혔다.

“다시 태어났음에도, 여전히 과묵하시네요. 아니면, 말조차 섞고 싶지 않으신 겁니까?”

손아귀에 잡힌 검을 버리고, 주먹을 내지른다. 주먹은 여인의 손끝에 막혔다.

“그렇다고 하여도, 한마디 정도는 했으면 좋겠습니다.”

막힌 주먹을 회수하고, 다리를 휘둘러 여인의 발목을 노렸다. 발이 여인의 발목에 닿는 순간, 이질적인 기운이 나를 침범한다. 이질적인 기운은 발부터 시작하여, 나의 몸을 훑고 사라졌다. 그리고 굳어 버렸던 마나가 돌아왔다.

“공평하지 않아서, 저주는 풀어드렸습니다.”

여인은 그리 말하며, 아까 잡아챘던 검을 가볍게 던졌다. 여인이 던진 검을 붙잡고, 검에 오러를 두르고 반월 모양으로 휘두른다.

오러를 머금은 검과 여인의 손끝이 충돌하고, 검이 산산이 부러졌다. 부러진 검을 던지고, 마나를 머금은 손을 뻗는다. 여인과 나의 손이 닿는 순간, 마나를 응축시키고 터트렸다. 푸른 폭발과 함께, 아릿한 통증이 밀려온다.

아릿한 통증이 느껴지는 순간, 흰 손이 폭발을 뚫고 나의 목을 잡아챘다.

“아무리 볼품없는 육신으로 태어났다지만, 너무 기대 이하라 실망했습니다. 그리니, 다른 방법으로 기대를 충족하겠습니다.”

여인은 그리 말하며, 손을 들어 올렸다. 여인이 손을 들어 올리자, 바닥에 흩뿌려진 피가 허공으로 떠오르고, 가시의 형상이 되어 전사들에게로 날아갔다.

조금 전의 나처럼 굳어버려 움직이지 못하는 전사들은,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붉은 가시에 찔려 피를 토했다.

그 참혹한 광경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저 지금의 상황을 부정하고 싶었다.

“그 표정, 마음에 드네요.”

괴물은 그리 말하며, 역겨운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이 보기 싫어, 눈을 돌렸다.

“장식품들을 전부 망가트린 건 아니니까, 그쪽에 너무 신경 쓰지 마시고, 저에게 집중하세요.”

사람을 장식품으로 취급하는 괴물의 말에, 심장이 탁하게 물든다.

“제가 옛날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괴물의 눈이 휜다.

“옛날의 당신은 참 고결했죠. 불합리한 폭력을 용서하지 않고, 가여운 자들을 지나치지 않았으며, 평화를 위해 헌신하였죠. 그러면서, 그저 자신의 사명을 이행한 것이라고, 그 어떤 보답도 바라지 않으셨죠.

괴물은 내가 알지 못하는 이야기를 주절거렸다.

“모시던 신에게 버림받고, 세상을 증오하게 된 저와 너무 비교되더군요. 그래서, 당신을 증오했습니다. 망가트리고 싶었습니다.”

나의 목을 잡고있는 손아귀의 힘이 강해진다.

“그런데, 나의 주인께서 당신을 점찍었죠. 그 덕분에 제 손으로 당신을 망가트리지 못했습니다. 힘이 부족해서 제 손으로는 어떻게 하지 못했겠지만, 그래도 그것이 아쉬웠습니다.”

손아귀의 힘이 약해진다.

“그 아쉬움을 달래며, 망가져 가는 당신을 지켜봤습니다. 망가져 가던 당신의 눈물과 비명이 너무 달콤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역겨운 괴물은 황홀한 표정을 짓는다.

“그 아름다움을 계속 음미하고 싶었는데, 당신은 슬픔을 이겨내지 못하고 죽음으로 도망치더군요.”

손아귀의 힘이 다시 강해진다.

“저의 주인을 죽이고, 더 이상의 적수도 찾을 수 없던 당신이. 그 누구보다 고결하였던 당신이, 도망쳤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손아귀의 힘이 더 강해진다. 숨이 막혀온다.

“덕분에 한동안 실의에 빠져, 모든 의욕을 잃었습니다.”

손아귀의 힘이 약해진다.

“실의에 빠진 저는, 나를 버린 신을 방해하는 재미없는 나날이 이어졌습니다. 오늘도 그러기 위해 이곳에 찾아왔는데, 당신을 다시 만났습니다.”

역겨운 괴물의 손이 나의 뺨에 닿고, 조금 있다가 떨어진다.

“불가능에 가까운 확률과 너무나 나약한 당신의 기세에, 처음에는 믿지 못했습니다. 그저 반신이었던 자의 환생인 줄 알았습니다.”

손아귀의 힘이 강해진다.

“눈을 통해 당신의 영혼을 확인했을 때, 그 환희를 당신은 짐작하지 못하실 겁니다.”

그런 역겨운 것 따위, 알고 싶지 않다.

“그런데, 당신의 영혼은 여전히 강대한데, 지금의 당신이 너무나도 나약해 흥이 조금 식었습니다.”

손아귀의 힘이 더 강해진다.

“그렇다고 하여도 상관없습니다. 시간은 많고, 음미할 방법은 많으니까요. 그러니, 기대해주세요.”

괴물이 역겨운 미소를 짓고는, 나의 목을 놓았다. 괴물의 손아귀에서 풀려났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 하였으니, 에피타이저를 즐겨볼까요.”

괴물은 또 이상한 소리를 하며, 쓰러져 있는 전사들을 향해 걷는다. 말을 듣지 않는 몸이, 저절로 괴물의 뒤를 따랐다. 괴물과 나의 몸이 한 전사의 앞에서 멈췄다.

“이자부터 시작하죠.”

전사의 옆에 떨어진 검이 떠올라 나의 손에 쥐어진다. 그리고 검이 올라가고, 전사의 목을 향해 내려간다. 그 상황에 저항하고자, 마나를 끌어올린다. 내려간던 검이 멈추고, 몸에 경련이 일어난다. 그리고, 머리를 깨트릴 듯한 통증이 엄습한다.

“저항하면, 많이 아프실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이죽거리는 괴물의 말을 무시하고, 통증을 감내하며 저항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이 심해지고, 몸이 비명을 지른다.

몸이 고통에서 해방되고 싶다며 애원하지만, 무시한다. 한 번이기는 하지만, 같이 싸우며 사선을 넘은 전우를 죽게 만들고 싶지 않다. 젊은 전사의 시신을 보며 다짐했던 일념을 짓밟고 싶지 않다.

그리 생각하기에, 몸과 의지의 드잡이질을 이어 나간다.

시간이 흐르고, 결과가 뻔한 드잡이질의 결말이 다가온다. 나를 부술 듯이 덮쳐오는 통증에 이성이 마비되어 가고, 저항의 원동력인 마나가 고갈되어 간다.

저항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절감하지만, 이를 꽉 깨물고 의지와 마나를 쥐어 짜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 끝이 전사의 목을 향하여 천천히 전진한다.

그 상황에, 계속해서 닫고 있던 입을 열었다.

“제발... 그만둬주세요.”

이것이 의미 없는 말임을 안다. 이것이 저 괴물의 즐거움이 될 것임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곧 일어날 참혹한 결말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 괴물에게 즐거움을 바쳤다.

나의 말이 끝나고, 검이 잠시 멈추었다.

“너무 작아서 못 들었는데, 다시 말해주실래요?”

괴물이 끔찍한 미소를 지으며, 역겨움을 뱉었다.

“제발, 그만둬주세요.”

괴물의 역겨운 미소가 짙어진다.

“제가 그만두면, 뭘 해주실 거죠?”

“... 뭐든지 다 하겠습니다.”

절박함에 거짓을 내뱉었다.

“뭐든지라... 구미가 땡기네요.”

괴물의 턱을 쓰다듬는다.

“구미가 땡기기는 하는데, 당신은 거래할 자격이 없어요.”

괴물은 그리 말하며, 손을 들어 올렸다. 나의 손도 올라가고, 절망이 스멀거린다. 그녀의 손이 천천히 내려가고, 나의 손도 천천히 내려간다. 검 끝이 전사의 목에 살짝 닿는다.

손에 형언할 수 없는 감각이 전달된다. 곧 있을 장면을 보고 싶지 않기에,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시면, 안되죠.”

괴물이 역겨운 말을 뱉자, 나의 눈이 열린다. 전사의 목에서 조금씩 흘러나오는 피가 보인다. 검 끝에서 전사의 호흡이 느껴진다. 그리고, 절망이 나를 집어삼킨다.

괴물의 손이, 떨리는 내 손을 덮는다.

“준비가 다 됐으니, 시작해 볼까요.”

“그 더러운 손 놓아라!”

괴물의 말이 끝나고, 익숙한 여인의 목소리와 함께 푸른빛과 날아온다. 푸른 빛이 괴물을 떨어트린다. 그리고, 푸른 불꽃이 나와 괴물 사이를 가른다. 말을 듣지 않던 몸이 의지를 따르기 시작한다.

몸이 의지를 따르자, 전사의 목에서 검을 치워 버리고 소리의 근원을 향해 돌아본다.

살기 어린 표정을 지은 아이리스와 푸른 불꽃을 몸에 두른 레이첼이 눈에 들어온다. 한심한 나는, 그 광경에 안도하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제 작품을 봐주신 [독자 닉네임 출력]님 감사합니다!

이제부터 매일 저녁 8시에 올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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