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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사랑하여 아팠다-38화 (38/59)

제 38화

습격

젊은 전사의 시신을 나중에 수습하기 위해 숨겨놓고, 그의 검을 챙겨 걸음을 옮긴다.

힘이 빠져 버린 걸음은 비틀거리고 시야는 흔들린다. 귀에는 이명이 들리고, 마나는 여전히 굳은 상태로 운용할 수 없다.

이런 상태로 사지를 돌아다니는 것이 멍청한 일이지만, 비명조차 남기지 않은 젊은 전사의 죽음을 보았기에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미약한 힘이라도 보태어, 한 명이라도 더 살려야 한다는 일념이 나를 붙들기에, 비틀거리는 걸음을 내딛는다.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한참을 걸었을 때, 괴물의 울음소리가 아닌 발걸음 소리가 겹쳐서 들려온다.

그 소리는 점차 가까워지고, 소리의 주인들이 얼굴을 보인다. 열 명 남짓한 무장한 전사들과 대엿 명의 시녀들.

시녀들의 모습은 멀쩡했지만, 전사들의 모습은 처참했다. 금이 가버린 무기와 검은 피가 묻은 갑옷. 그리고 크고 작은 부상을 달고 있는 그들.

그 모습만으로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들도 괴물을 조우했을 것이고, 시녀들을 지키면서 싸웠겠지.

“공자님을 뵙습니다.”

가장 연륜이 많아 보이는 전사가 앞으로 나와 예를 취한다. 나는 그를 보며, 검집째 검을 살짝 들어 올려 북부의 전사식 예를 표하고 입을 열었다.

“괴물을 조우했나 보군.”

“그렇습니다.”

“그럼, 사망자는 있는가?”

“두 명의 사망자가 확인됐습니다.”

그 말에 입안이 써진다. 호위 임무로 따라온 전사가 얼추 30명이니, 이미 10명 중 한 명꼴로 사망자가 발생했다.

“아니, 세 명이다.”

그 말에 분위기가 조금 침울해 진다. 조금 침울해진 분위기 속에, 젊은 전사가 입을 연다.

“혹시 이름이나, 인상착의를 말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갈색 머리에 주근깨가 많은 젊은 전사였다.”

“호세...”

젊은 전사의 입에서 나온 이름을 곱씹는다. 죽음에서 도망치지 않고, 맞서 싸운 전사의 이름을 곱씹으며, 마음에 새긴다. 마음에 묘를 하나 만들고, 입을 연다.

“그대들 중, 보급품 창고 위치를 아는 자가 있는가?”

그들과 나의 상태로는 오래 버틸 수 없기에, 보급품 창고에 있는 포션과 여분의 무기가 필요하다.

“제가 알고 있습니다.”

콧수염을 기른 전사가 앞으로 나온다.

“그곳으로 향하고 있다가, 공자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렇군. 그러면 나도 동행하겠네.”

“알겠습니다.”

콧수염을 기른 전사의 뒤를 따라 이동한다. 이동한 지 얼마 안 되어, 대표로 예를 표했던 전사가 다가왔다.

“공자님, 소가주님과 황녀 전하는 무사하신 겁니까?”

“그건 모른다. 지금 상황을 보고하기 위해 올라가려고 했지만, 여기와 위층 사이에 벽이 생겨서 확인할 수 없었다.”

“그렇군요.”

그 남자의 말을 끝으로 정적이 찾아오고, 우리는 그 정적 속에서 묵묵히 발을 움직인다. 그렇게 걷다 보니, 다른 방들보다 조금 커다란 문이 나타났다. 우리는 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넉넉히 준비된 여분의 창과 검, 메이스와 방패. 그리고 무엇이 들어있는지 모를 상자들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는 여분의 무기를 챙기고, 상자를 열었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부족하지도 않은 하급 포션과 소량의 중급 포션. 넉넉한 양의 붕대와 부목. 그리고 지금 인원을 기준으로 보름치는 될 법한 식량.

나쁘지 않다. 정비하기에 충분한 물자들이다.

우리는 포션을 분배하고, 부상이 심한 자들은 포션을 즉시 복용하고, 경미한 자들은 붕대를 사용했다. 나는 전자에 속하기에 포션을 입에 털어 넣었다.

쓰디쓴 향과 맛이 입과 목을 채우며, 상처 부위에 통증이 찾아온다. 찾아온 통증의 끝에, 행동을 제약하던 상처들이 사라졌다. 상처와 함께 잃어버린 활기가 조금 돌아왔다.

정비는 얼추 끝나가니, 앞으로의 행동을 결정해야 한다. 떨어져 있을 사람들을 찾으러 다닐 것인가. 아니면, 황녀의 방으로 향하는 계단에서 대기할 것인가.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계단에서 대기하는 것이 맞다. 지금쯤이면, 나머지 사람들도 어느 정도 뭉쳤을 것이고, 그들도 계단으로 향하거나 합류하기 위해 돌아다닐 것이다. 그리고 지금 발생한 일과 습격의 주동자와 동일한 집단일 것이니, 황녀를 찾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지만, 나는 권한이 있는 자는 아니기에, 그들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들의 동의를 얻기 위해서, 가장 고참으로 보이는 자에게 다가갔다.

“앞으로 행동에 대해 논하고 싶은데, 괜찮겠는가?”

“편하게 말씀하시지요.”

그자는 그리 말하지만, 표정은 별로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럴만하다. 같은 기사단의 단원도 아니고, 겨우 20살의 애송이가 이리 말하는데 나 같아도 달갑지 않을 것이다. 그저 내가 아이리스의 약혼자이기에, 내 말을 존중해 주는 것임을 알고있다.

“나는 황녀님의 방으로 향하는 계단을 점하고, 대기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경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저도 그리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표정을 보니, 억지로 동조하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생각이 같으니 기쁘군. 그러면, 경에게 이 이야기를 부탁하겠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정비를 마치고, 우리는 황녀 전하의 방으로 향하는 계단을 점하고, 미연의 사태를 대비할 것이다. 이의가 있으면 지금 말해라.”

그의 말이 끝나고, 정적이 찾아왔다.

“그러면, 이의는 없는 거로 알겠다.”

그의 말을 끝으로 정비를 마치고, 걸음을 옮겼다. 제법 걸음을 옮겼을 때, 이질감을 느꼈다. 두 번째 괴물을 조우하고, 그 이후에는 괴물을 만나지 못했다. 마나를 봉인하는 괴물이 버겁기는 하지만, 이 정도의 수로는 황궁을 다시 습격하기에는 너무 허술하다.

그것이 너무 거슬린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연막이거나, 무언가 더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을 품고 걷다 보니 계단에 도착했다. 계단에는 이미 한 무리가 도착해 있었다. 열다섯 명의 전사와 스무 명 정도의 시녀들. 현재 백합 궁에 상주하고 있는 인원의 태반이 여기에 모였다.

전사 서른 명 중 스물다섯 명이 모였고, 사망자가 세 명. 확인되지 않은 두 명은 사망자일 가능성이 높겠지. 그 생각에 또 입안이 써진다.

씁쓸한 기분을 느끼고 있을 때,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그 울음소리는 어딘가 기괴했다. 기괴한 울음소리가 가까워지고, 우리는 무기를 꺼내어 그 울음소리를 기다린다.

기괴한 울음소리가 사라지고, 묵직한 걸음 소리와 함께 울음소리의 주인이 나타났다. 묘하게 사람을 닮은 듯한 늑대의 얼굴에, 생명체처럼 움직이는 검은 가시가 달린 몸. 그 모습이 낯익다. 설원에서 본 괴물과 비슷하게 생겼다. 그 생각에 다급히 입을 열었다.

“모두 조심해라! 저놈은 오러를 사용해도 베이지 않는 놈이다. 그리고 피에 독을 품고 있고, 가시 또한 위협적이니 조심해라! 시녀들은 붉은 벽에 닿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위로 올라가라.”

나의 말이 끝나고, 짐승이 땅을 박차고 달려든다. 우리는 그 괴물의 돌진을 피하며, 넓게 둘러싼다.

“힘이 강한 놈이니, 정면에 있는 자들은 공격을 받아내지 말고 흘려라!”

그리 말하고, 괴물의 옆면에 자리를 잡는다. 미리 꺼내두었던 검을 검집에 수납하고, 아까 챙겨두었던 메이스를 꺼내 들어 휘두른다. 휘두른 메이스 너머로 묵직한 반발력이 전해진다. 벨 수 없는 검 대신 메이스를 택했건만, 큰 의미는 없을 것 같다.

그리 생각하면서도 몸은 쉬지 않는다. 자유분방하게 움직이는 촉수를 힘겹게 쳐내며, 공격을 이어 나간다.

공격을 이어 나갈수록, 괴물의 울음소리가 커졌다. 그에 비례하여, 우리의 함성도 커졌다.

“공격을 흘렸으면, 무리하지 말고 뒤로 빠져라!”

“너무 공격에만 집중하지 말고, 촉수를 의식해라!”

고참들로 보이는 자들의 목소리와 함께, 엉성했던 흐름이 정렬되어 간다. 흐름은 파도와 같이 몰아치고, 빠져나간다. 그 흐름은 점차 빨라지고, 거세진다. 점차 거세지는 흐름에, 괴물의 몸부림이 격렬해졌다.

격렬해진 몸부림에, 흐름에 비는 공간이 생겨나지만, 다른 이들이 빈 곳을 메꾸며 흐름을 이어 나간다.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흐름이 이어지고, 괴물의 움직임이 둔해졌다. 둔해진 움직임은 흐름을 더 거칠고 강하게 만들었다.

점차 강해지는 흐름에 강대한 괴물은 숨을 헐떡이며, 피를 토해냈다. 피에서 피어나는 연기에 흐름이 끊어졌다. 흐름이 끊어졌지만, 괴물은 더 이상 저항할 힘을 잃었기에 상관없었다.

끊어져 버린 흐름에서 또 다른 흐름이 만들어지고, 그 흐름이 괴물의 숨통을 조였다. 괴물은 그 흐름을 이겨내지 못하고 쓰러졌다.

우리는 쓰러진 괴물의 연약한 부위들을 찌르며, 전투의 끝을 고한다. 끝을 고하고 나서야, 거친 호흡과 격하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승리를 쟁취한 우리가 휴식을 취하려 할 때, 피비린내가 흘러내린다. 그 냄새에 위를 쳐다본다. 계단의 위에서 피가 흘러 내려오고, 그 피가 괴물의 사체를 뒤덮는다. 그리고 사방에서 검은 연기가 튀어나와 괴물의 사체를 뒤덮는다.

피와 연기가 뒤엉켜 검붉은 구가 생겨난다. 그 구에서 불길하고 이질적인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

“위대한 스칼렛의 염원을 위하여!”

계단의 위에서 그 소리와 함께, 시녀가 구를 향해 뛰어내렸다. 시녀의 몸이 구에 닿으며, 터져나갔다. 터져나간 피와 살점이 꾸물거리며, 구를 뒤덮는다. 피와 살점에 뒤덮인 구에서 붉은빛이 뿜어져 나왔다.

붉은빛이 이곳을 잠식하고, 구에 금이 생겨났다. 금이 생긴 구가 갈라지며, 한 여인이 나왔다. 피를 머리카락으로 만든 듯한 검붉은 머리와 같은 색의 눈동자. 아르미스교단의 문양이 뒤집힌 채 새겨진 검은 옷. 그리고 이 공간을 찍어 누르는 듯한 기세.

그 모든 것에 본능이 도망치라고 비명을 지른다. 통제를 벗어난 몸이 본능을 따르려고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 기이한 경험을 하고 있을 때, 기세만으로 공간을 장악한 여인이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연다.

“아르미스의 꽃을 꺾으러 왔는데, 더 귀한 분이 있군요.”

여인은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하며, 섬뜩한 미소를 짓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제 작품을 봐주신 [독자 닉네임 출력]남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은 저장을 생활화하세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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