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7화
습격
붉은빛이 세상을 집어삼키고, 모든 감각들이 사라진다. 호흡이 느껴지지 않고, 눈은 빛을 담아내지 못한다. 피부는 무엇하나 느끼지 못하며, 심장은 살아있음을 외치지 않는다.
죽음과는 또 다른 감각 속에서 세상을 인지하지 못한다. 나를 인지하지 못한다.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세상에서, 비명만을 인지한다.
삶의 갈망이 외치는 비명이 들린다. 사지에 들어왔으니 도망치라는, 본능의 찢어지는 비명만이 선명히 인지된다.
그 비명을 듣고 몸을 움직이려고 했지만, 움직임을 상실했다. 그저 사지에 서 있는 산 송장이 되었다.
죽음에 가까운 시간이 흐르고, 몸이 세상과 나를 인지하기 시작한다.
폐는 호흡을 느끼고, 눈은 세상을 담아낸다. 피부는 저릿한 살기를 느끼고, 심장은 살아있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돌아온 감각들은 끔찍한 상황을 알려준다. 지독한 살기와 나를 삼키려는 정체 모를 것의 입안.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생각할 여유조차 없이 몸을 구른다. 찢겨나가는 공기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갑작스럽게 덮쳐오는 사선에, 생각을 버리고 본능에 몸을 맡기고, 몸 안에 마나를 끌어올려 육신을 강화시킨다.
나를 삼키려 했던 입의 주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본다. 평범한 늑대보다 2배 정도 큰 몸집에, 머리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비대한 입.
기괴한 비율을 가진 괴물의 형상이 신경 쓰이지만, 살아남고 확인할 일이다.
검이 없기에 마나를 끌어올려 손에 두르고, 괴물을 향해 돌진한다. 괴물은 돌진하는 나를 향해, 비대한 입을 벌리고 달려온다. 괴물의 입 앞에서, 몸을 틀어 옆으로 미끄러지듯이 회피한다.
비대한 입은 한 박자 느리게 방향을 틀고, 나는 괴물의 몸통에 올라탄다. 괴물의 몸부림을 허벅지에 힘을 주어 버티며, 괴물의 목을 내려친다. 거대한 바위를 때리는 듯한 둔탁한 반발감이 밀려온다.
계속 내려치면 목을 부러트릴 수 있을 것 같지만, 체력과 마나 소모가 심해질 것이다.
날뛰는 괴물의 가죽을 찢어낼 듯이 부여잡고,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간다. 비대한 입에 비해 초라할 정도로 작은 눈이 간격에 들어온다. 괴물의 눈을, 마나로 강화된 주먹으로 내려친다. 불쾌한 감각과 함께 짐승의 몸부림이 거칠어졌다.
짐승의 단말마 같은 몸부림을 무시하고, 괴물의 뇌에 충격을 전달하기 위해 주먹을 다시 내려친다. 난폭한 몸부림은 거짓말 같이 사라지고, 거대한 입에서 검은 피를 토해냈다. 짐승이 토해낸 피에서 검은 안개가 피어나며,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나를 덮쳐온다.
그것을 피하려 몸을 내던졌지만, 한 박자 느렸다. 숨을 참고 검은 안개에서 빠져나오려 했지만, 검은 안개는 피부로 스며든다.
머리가 저릿해지는 통증과 함께 구역감이 찾아온다. 그 감각들과 함께 몸을 강화시키던 마나가 굳어버리며, 기능을 잃어버린다.
굳어버린 마나를 움직이려 시도했지만, 이질적인 기운이 마나를 붙들어 실패했다. 실패한 반동으로 통증과 구역감이 커진다. 참을 수 없는 구역감에 입을 벌려 쏟아내니, 검붉은 피가 쏟아졌다.
피를 쏟아내니 통증과 구역감이 사라지며, 몸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마나는 여전히 굳어 더 이상 운용할 수 없다. 머릿속에서 아이리스의 말이 스쳐 지나간다.
‘상당수의 기사들이 죽었다는군.’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던 말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기사들의 가장 큰 힘은, 마나로 강화된 육체와 오러의 절삭력이니. 마나를 봉인 당하고 이런 괴물들을 상대했다면, 큰 피해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리 생각하면서도, 이런 정보가 왜 전달되지 않았는지에 대한 의문이 피어난다. 하지만, 그 의문에 대해 생각할 상황이 아니기에 머릿속에서 의문을 지운다.
이 상황을 보고하고, 흩어져 있는 전사들을 불러 모아야 한다.
그리 판단하여 계단을 오르니, 아까까지만 해도 없던 붉은 벽이 자리해 있다. 그 벽에 불길함이 느껴지지만, 그런 것에 겁먹고 주춤할 시간이 없기에 손을 뻗는다. 붉은 벽은 일렁이며, 빛을 뿜어내어 손을 삼키려 든다.
그 모습에 손을 바로 뺐지만, 손끝이 붉은빛에 닿아버렸다. 붉은빛에 닿은 손끝은 붉게 물들며, 감각이 사라진다. 그 현상에 어찌할 수 없음을 절감했다.
이 상황을 보고하고, 아이리스가 가지고 있는 종으로 습격을 알려야 하는데.
시간이 지나면 그녀가 이상함을 알아차리겠지만, 그사이에 많은 전사들이 죽을 것이다. 아니, 이미 위에도 공격받고 있을 수도 있다.
무엇하나 알 수 없는 상리를 벗어난 상황에, 불길한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고 마음이 요동친다. 사지에서 요동치는 마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기에, 억지로 마음을 진정시킨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몸을 움직여 괴물의 시체로 향한다. 또 마주칠지도 모르는 괴물의 약점을 찾고자, 괴물의 시체를 살펴본다. 비대한 입에, 톱니 같은 이빨과 비대한 입에 비하면 부실한 다리.
몸에서 가장 부실해 보이는 다리의 강도를 확인해 보기 위해서, 있는 힘껏 내려찍는다. 신발 너머로 묵직한 반발감과 함께 통증이 밀려온다.
맨몸으로는 부실해 보이는 다리조차 부술 수 없음을 절감했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아까처럼 몸 위에 올라타서 눈을 공략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마나를 운용할 수 없는 상태에서, 그 방법의 성공 여부가 미지수이기에 입안이 바짝 마른다.
이런 상태로는 또 찾아올 사선을 넘기 힘들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이루어 낼 수 없다. 아무것도 못 한 채, 죽어버린 자의 시신 앞에서 씁쓸함을 느끼고 싶지 않다.
그리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고, 가까운 방들을 뒤지며 전사들과 무기를 찾는다.
몇 방을 뒤져봤음에도, 무기로 쓸만한 건 단검 한 자루 말고는 찾지 못했다. 그 상황에 점차 입이 타들어 갈 때,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짐승의 울음소리와 기합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단검을 보며 잠시 갈등하다, 걸음을 급하게 옮겼다. 소리와 가까워질수록 혈향이 짙어지고, 기합 소리는 힘을 잃어갔다. 그 상황에 조급함이 몰려와 달리고 있는 몸을 채찍질한다.
모퉁이를 돌고 나니, 소리의 근원지가 보인다. 바닥에 뒤섞인 검은 피와 검붉은 피. 머리가 두 개 달린 거대한 늑대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이 비틀거리는 젊은 전사.
결말이 보이는 상황을 뒤집기 위해, 볼품없는 단검을 단단히 쥐고 사선에 뛰어든다.
사선의 지척에 도달했을 때, 머리가 두 개 달린 괴물의 머리 중 하나가 나를 발견했다. 나를 발견한 머리는 나를 향해 입을 뻗으려 하고, 나머지 머리는 젊은 전사를 향해 뻗으려 한다.
그 머리들의 뒤틀린 합에 하나뿐인 몸이 따라가지 못하며, 틈이 만들어진다. 그 틈을 놓치지 않기 위해, 몸을 던졌다.
괴물의 날카로운 이빨이 어깨를 스쳐 지나가고, 혈향과 함께 통증이 찾아왔지만, 틈을 놓치지 않고 괴물의 몸 위에 점한다. 그리고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몸부림이 시작됐다.
다리 힘과 손의 악력만으로는 버티기 힘들어, 볼품없는 단검을 등에 박아 넣는다. 날의 뿌리까지 박힌 단검이 괴물의 몸 위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도움을 준다.
단검을 박은 채 괴물과 드잡이질하며, 젊은 전사를 곁눈질하며 확인했다. 뒤에서 볼 때와는 다르게 상태는 심각해 보였다. 찢겨진 갑옷과 생각보다 많은 출혈, 덜렁거리는 팔과 초점이 흐릿한 눈. 그리고 힘이 풀렸는지 주저앉는 그의 모습.
도움을 바랄 수 없다. 이 드잡이질에 내 목숨과 저자의 목숨이 달려있다. 그 사실을 확인하고, 이를 꽉 물고 드잡이질에 집중한다.
가늠이 안 가는 시간이 흐르고, 괴물의 몸부림은 처음보다 약해졌다. 그리고 나 또한 체력이 고갈되기 시작했다. 괴물과 나의 체력 중 무엇이 먼저 떨어질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저 악에 받친 끈기로 버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상황이 조금 변하였다. 괴물은 몸부림을 멈추더니 벽에 돌진하여, 나와 함께 벽을 들이박는다. 둔탁한 충격과 눈앞이 흐릿해지고, 정신이 끊어지려 한다.
한 번 더 들이박으면, 그대로 끝이 날 것이다.
그리 생각하여, 또 벽에 들이박으려는 괴물의 등에서 뛰어내렸다. 얼마나 세게 박았는지 땅이 울리며, 괴물이 비틀거렸다.
괴물이 비틀거리는 것을 보고 기회를 잡으려 했지만, 벽에 부딪힌 충격 때문인지 몸이 비틀거린다.
내가 잠시 비틀거리며 기회를 놓친 사이, 괴물은 머리를 흔들고는 정신을 차렸다. 정신을 차린 괴물은 콧바람을 내뿜으며, 나를 향해 달려온다.
짙은 사선이 선명하게 보이고, 나를 조여온다. 조여오는 사선에서 벗어나기 위해, 비틀거리는 몸을 옆으로 던진다.
사선이 잠시 나를 피해 간다. 그리고 다시 나를 향한다. 다시 조여오는 사선에, 온전한 상태로 끝날 수 없음을 절감한다. 목숨을 제외한 모든 것을 내줄 각오를 하고, 손에 힘을 준다.
두 머리의 입이 나를 삼키려 들 때, 몸을 숙여 괴물의 아래로 파고든다. 아래로 파고들며, 괴물의 앞발이 잠시 등을 스쳐 지나간다.
화끈하면서, 서늘한 고통이 엄습하지만 무시하고, 단검을 내질렀다. 괴물의 배를 파고든 단검은 저항감과 함께 살가죽을 갈라낸다. 검은 피가 나를 적신다.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과 함께, 두통과 구역감이 찾아왔다.
구역감은 입에서 검붉은 피와 함께 흘러나오고. 힘이 빠져나간다. 눈앞이 흐릿하다. 그렇지만, 단검은 계속 전진한다.
빠르지는 않지만, 계속해서 전진하던 단검이 힘을 잃고 부러진다. 부러진 검날을 손으로 잡고 괴물의 안을 썰어버린다.
손에서 힘이 빠져서 검날을 놓쳤을 때, 괴물이 옆으로 쓰러졌다. 나를 조여오던 사선이 사라지고, 몸에 힘이 풀린다.
힘이 풀렸지만, 주저앉아 있을 수 없다. 이를 꽉 깨물고 몸을 일으키려 했을 때, 처참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괴물의 턱에 박힌 검과 사지가 물어뜯긴 젊은 전사의 시신.
그 광경에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다시 주저앉아 그 시신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비명조차 지르지 않고, 괴물의 숨통을 끊는 동안 몸부림치지 못하도록 목숨을 내던진 이름 모를 전사의 명복을 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 제 작품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응원해주신 여러분들 덕분에 본선에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본선에 진출했으니 성실히 연재하며, 최대한 맛있는 작품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조별 과제를 끝내고, 오늘 9~10시 사이에 한편 추가로 올릴 예정입니다!
+휴재하는 동안, 주인공 가족 편을 수정했습니다. 복수 스토리는 없어졌습니다.
+외전으로 많은 분이 원하신, 아이들 시점의 이야기를 적으려고 합니다. 적당히 집어넣을 시점을 찾지 못해, 이번 에피소드가 끝나면 올릴 예정입니다.
[독자 닉네임 출력]님 오늘도 제 작품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