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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사랑하여 아팠다-30화 (30/59)

제 30화

이상한 꿈

눈이 내리는 날 아침.

별채의 투박한 방에서, 나는 침대에 누워있는 남자의 옆에 앉아 있었다.

나는 체온을 잃어버린 차가운 남자를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내가 말하고 있는데, 어째서인지 그 말을 들을 수 없었다.

그 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남자의 뺨에 손을 뻗는다. 몽롱한 정신 속에서, 손에서 느껴지는 차가움은 너무나 선명했다.

그 선명한 차가움에 어째서인지 슬퍼졌다. 그 알 수 없는 슬픔을 머금고,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다.

새하얀 백발에, 여기저기에 흉터가 자리 잡은 남자의 얼굴이 어딘가 익숙했다. 익숙했지만, 무언가에 가로막혀 떠오르지 않는다.

신경 쓰인다.

신경 쓰이지만, 알 수 없는 벽에 가로막혀 떠올리지 못한다.

그 현상에 대해 신경 쓰고 있을 때, 손이 저절로 움직인다. 손은 남자의 흰 머리를 쓸어본다. 푸석푸석한 촉감이 전해져 온다. 그 촉감이 마음을 자극하여, 슬픔이 선명해진다.

혼란스럽다.

익숙하지만 처음 보는 남자에게서,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는가... 도무지 모르겠다.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또 손이 움직인다.

이번에는 손을 잡는다. 차갑고 거칠다. 그 손에서 느껴지는 차가움은, 뺨에서 느껴졌던 차가움보다 더 아프다. 그 아픔이 마음에 비를 부르고, 그 비는 넘쳐서 밖으로 흘러내린다.

흘러넘쳐 버린 비가 남자를 적신다.

그것이 어째선지 싫었다. 싫고, 슬펐다.

또 손이 움직인다. 남자의 입술에 손을 뻗는다. 차갑고 딱딱했다.

그 감각에 마음이 요동치며, 감정이 거칠게 몰아친다. 그 감정은 거칠고, 무거워 나를 집어삼킨다. 숨이 무거워진다.

그 무거운 감정 속에 잠겨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뒤에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머니... 시간이 됐습니다.”

처음 듣지만 어딘가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에, 몸이 움직여 뒤를 돌아본다.

하늘색에 가까운 푸른 머리의 남성과 갈색 머리의 여성이 나를 바라본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의 눈시울은 붉었다. 그 붉은 눈시울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아파온다.

무거운 감정과 아픔이 뒤 섞이며, 세상이 흩어지고 어둠이 찾아온다.

시간이 흘러 어둠이 사라진다. 익숙한 천장이 눈에 들어온다.

누워있는 상체를 일으켜 주변을 둘러본다. 품위를 위한 최소한의 장식만이 놓여 있는 나의 방. 그 광경을 보고야 꿈에서 헤어 나온다.

또 그 꿈이다.

설원에 있는 마녀의 거처에 도착한 날 이후부터, 매일 꾸기 시작한 아픈 꿈.

그 꿈이 오늘도 찾아와 나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같은 꿈을 꾸는 것은 상관이 없다. 문제는 몽롱함 속에서 그 꿈의 감정이 너무 선명하여, 깨고 나서도 그 감정의 여운에서 피어난 아픔이 나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 진득한 여운에 잠겨 그 꿈을 다시 생각한다.

첫날에는 남자의 얼굴만이 잠깐 보였건만, 어째서인지 점차 길어져 오늘의 꿈이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평범한 꿈은 아니다.

마녀의 거처에서 저주라도 걸린 것일까?

아닐 거다. 그 지독한 마녀의 저주가 이런 꿈일 리가 없다. 하지만 그것 말고는 집히는 것이 없다.

원인 모를 꿈에 그저 한숨만 나온다.

원인을 생각해 보아도 답이 안 나오기에 옆으로 치워두고, 꿈의 장면들을 곱씹어 본다.

중년과 노인의 경계쯤으로 보이는 남자의 시신... 분명 꿈에서만 본 남자인데 낯익다. 분명 낯익은데 알 수가 없다. 조금만 더 가면 생각날 것 같은데, 남자의 얼굴이 점차 흐릿해져 간다.

감정은 여전히 남아서 나를 괴롭히는데, 기억은 빠르게 흩어져 간다.

오늘도 꿈에서 본 남자에 대해서 떠올리지 못했다. 그 남자가 중요하기에, 이 감정이 남아서 나를 괴롭히는 것일 텐데.

한숨을 내쉬고, 남자에 대한 생각은 치워버린다. 그렇게 치우고 나니, 꿈에서 본 흐릿한 남자가 한 말이 떠오른다.

「어머니... 시간이 됐습니다.」

어머니... 그 호칭은 분명 나를 향한 말이다. 그 호칭 때문에 많은 생각이 든다.

꿈에서 나는 정말 나였을까? 다른 사람은 아니었을까? 꿈에서 내가 나였다면, 미래를 보기라도 한 것일까?

모르겠다. 정답을 알 수 없는 생각들에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복잡한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 침대에서 일어나 환복을 하고 정처 없이 걸음을 옮겨본다. 복도를 지나고 발걸음은 밖으로 향한다.

세상은 어둠이 조금씩 물러가고, 그 자리에 푸른빛이 스며든다. 그리고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그 서늘한 바람이 조금은 머리를 가볍게 해준다.

조금 머리가 가벼워지니 꿈속의 장소가 떠오른다. 꿈속에서 나는 그곳을 별채라고 생각했다.

별채... 어머니가 유폐되었던 곳. 그래서 찾아가지 않았던 곳인데...

그 생각에 조금 망설여진다. 그렇지만, 확인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무거워진 발걸음을 옮긴다.

본관에 비하면 너무나 투박하고 초라한 별채가 눈에 들어온다. 그 초라한 별채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

아무도 살고 있지 않는 별채는 너무나 적막하고 어두워, 어딘가 차가워 보였다. 그런 쓸데없는 감상을 치우고는, 별채의 방들을 하나하나 들어가며 확인해 본다.

방들을 확인하면 할수록 꿈의 장소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커져간다. 그 생각 때문에 발걸음이 점점 빨리 진다.

빨라진 발걸음은 멈춰 섰다. 꿈에서 본 방과 몇 개의 가구들을 제외하고는, 꿈에서 본 방과 똑같은 방이 펼쳐졌다.

그 광경이 그 꿈이 평범한 꿈이 아님을 확신시켰다.

꿈은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가.

그것에 대해 한참을 생각했을 때, 예전에 읽은 책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꿈이 때로는 미래를 보여준다.」

꿈이 미래를 보여준다... 그 꿈이 미래라도 된다는 말인가?

그 남자는 미래의 남편이고, 마지막에 보았던 남녀는 나의 아이들... 지나친 비약이다. 분명 지나친 비약이다.

그리 생각했지만, 지나친 비약은 머리에서 떠나지 않고 나를 옭아맨다. 머리가 아파온다. 숨이 조금 무거워진다.

그 감각들에 짜증이 올라온다. 겨우 꿈 때문에 이리도 휘둘리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꿈의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한숨을 내쉬고, 방을 조금 더 둘러본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사람의 흔적이 없다는 것 말고는 특별한 것 없는 방이다. 그럼에도 무언가 있을까 싶어 조금 더 뒤져본다.

창문 너머로 밝은 햇빛이 들어오기 시작할 때까지 뒤져 보았지만,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허탈감이 조금 올라온다. 허탈감과 찝찝함을 느끼며 돌아가려고 생각했을 때, 발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별채에 살고 있는 사람은 없으니, 관리하는 사용인일 것이다. 사용인에게 물어보면 뭔가를 더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다가오고 있는 발걸음 소리로 향했다.

아무것도 없는 방문을 열고 나가니, 복도 끝에 여기에 올 이유가 없는 남성이 보였다.

나의 약혼자, 내가 사랑하게 되어 버린 사람. 알릭이 보였다.

그의 얼굴에서 잠시 당황한 표정이 스쳐 지나간다.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침부터 그를 보니 복잡했던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좋은 아침일세.”

“좋은 아침입니다. 공녀님.”

아직도 딱딱하게 부르는 그에게 다가간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 이상한 느낌과 함께, 꿈에서 본 장면이 잠시 스쳐 지나가고 흩어진다.

마치 꿈이 말을 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또 과한 비약이다. 과한 비약을 접어두고, 그에게 말을 건다.

“여기는 무슨 일로 찾아왔는가?”

“할 일이 없어 산책하던 중에, 이곳이 눈에 띄어 들어왔습니다.”

그 말에 거슬림이 약간 느껴진다. 눈에 띄어서 들어왔다고 했지만, 이곳을 둘러본다는 느낌보다는, 이 복도로 직행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는데 이상하다. 그 이상함이 거슬렸지만, 큰 문제도 아니기에 무시한다.

“할 일이 없다니. 그러면, 그대에게 할 일을 줘야겠군.”

손님에게 할만한 말은 아니지만, 그저 그의 반응을 보고 싶었다.

“제가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도와드리겠습니다.”

아마 형식적으로 말하는 말이겠지만, 그런 말을 들었으니 놓아주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그대가 그렇게 말해주니 다행이군. 그러면, 곧 있으면 열릴 수확제에서 나의 약혼자로서 옆에 있어 주게.”

나의 말에 그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그 눈동자에서 보이는 당혹감이, 나에게 즐거움을 선사해 주었다. 나에게 즐거움을 선사해준 그는, 잠시 뜸을 들이고 입을 연다.

“... 알겠습니다.”

“그러면, 그날을 기대하겠네.”

복잡하고 진득한 꿈의 여운은 사라지고, 기대감과 기쁨이 피어난다. 그 감정들 때문에, 웃음이 조금 새어나왔다.

“그보다 공녀님은 왜 이곳에 있으신 겁니까?”

그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다, 숨길 이야기도 아니기에 솔직하게 말한다.

“이상한 꿈속에서, 이곳을 보았기에 찾아왔네.”

나의 말에 그의 얼굴에 약간 어두워진 느낌이 들었다.

“이상한 꿈 말입니까?”

“그래, 조금 이상한 꿈이었지.”

“혹시, 무슨 꿈인지 들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의 질문에 잠시 의아했지만, 숨길만한 이야기는 아니기에 대답해 주었다.

“이곳에서 모르는 남자의 시신 앞에서 울고 있는 꿈이었네.”

“그렇군요...”

어째서인지 그의 얼굴이 조금 창백해졌다.

“할 일이 생각나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급하게 사라졌다. 할 일이 없다고 했으면서, 할 일이 생각났다는 앞뒤가 안 맞는 그의 모습이 조금 신경 쓰였다.

신경은 쓰였지만, 별일도 아니기에 그 느낌을 무시하고, 오늘 얻은 수확의 즐거움을 곱씹으며 업무를 수행하러 발걸음을 옮겼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마도 이번 주말에 7~12화 수정에 들어갈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삭제할까 생각도 했지만, 10~11화를 개인적으로 좋아하기에 수정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이야기에는 영향이 가지 않게, 조금 더 빌드업하는 쪽으로 수정할 예정입니다.

+업로드 시간은 시험 기간이라 조금 늦어질 것 같습니다.

오늘도 제 작품을 봐주신 [독자 닉네임 출력]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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