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대를 사랑하여 아팠다-27화 (27/59)

제 27화

마녀의 악의와 무덤

마녀의 거처에서 서고를 발견하고, 세상은 다섯 번의 아침을 맞이했다.

그런 짧은 날사이에 이곳에 질려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희망을 품고 서고를 뒤졌고, 서고에 있는 귀중한 서적들에 감탄을 했다. 소실된 마법과 역사서, 전설로만 내려오던 이야기들의 진실을 담은 서적과 이제는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신들에 관한 이야기.

지식에 목마른 마법사와 역사에 빠져 사는 학자들이 본다면, 아니 이 책들의 가치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사람이 본다면, 눈이 뒤집힐만한 책들이 가득했다.

그런 귀중한 서적들을 보며, 저주에 관한 단서를 찾는 시간은 나름 즐거웠다. 그런 시간을 보내다가 한 서적을 뽑았을 때, 벽면을 뒤덮은 책장이 이동하며 새로운 공간이 나타났다. 그 공간은 이곳과 마찬가지로 서적들로 가득했다.

처음에는 그것이 신기하면서도, 단서를 찾을 가능성이 올라갔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그 긍정적인 생각은, 같은 일들이 계속해서 반복되어 이제는 끝이 안 보이는 서적들에 파묻혀 사라졌다.

우리들만으로 다 확인해보기 힘든 규모에 질려, 아이리스가 제안을 했다.

“돌아간 다음, 가문에서 사람을 뽑아 조사단을 꾸리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그게 나을 거 같습니다.”

“전 찬성이에요.”

서적의 양에 질려버린 우리는 그녀의 제안에 동의했다.

“그러면, 빨리 돌아가서 조사단을 꾸리지.”

“자매님, 돌아가기 전에 옆방도 확인해 보는 게 어때요?”

“그게 좋겠군.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나?”

“저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여기 있는 동안 서고만 뒤졌던 우리는, 걸음을 옮겨 갈림길에 있던 문을 열어본다. 문은 녹슬었는지 비명을 지르며 열렸다.

문 너머에 나온 풍경은 평범한 침실이었다. 그 평범한 침실에는 수수한 침대와 책상, 옷장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특별한 건 없어 보이는군.”

그녀의 말대로 특별해 보이는 건 없었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레이첼이 옷장 쪽으로 다가가 옷장을 한 번 열어본다.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열린 옷장은 텅 비어있었다.

텅 빈 옷장을 유심히 보던 레이첼은, 옷장을 옆으로 밀기 시작했다. 옷장은 부드럽게 밀려나며, 통로가 나타났다.

“어떻게 알았나?”

“저 너머에 특별한 기운이 느껴져서 확인해 본 거예요.”

“특별한 기운?”

“네. 이질적인 느낌은 아니고, 성물이랑 비슷한 느낌이 느껴져요.”

“아무튼 잘했다.”

저 너머에 어째서 성물의 기운이 느껴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알아차린 레이첼을 칭찬해주고 걸음을 옮겼다.

어두운 통로에 진입하니, 천장에 달린 구체에서 은은한 빛을 뿜어내며 길을 인도했다. 우리는 그 빛을 따라 걸음을 옮겼고, 유리로 된 전시대가 가득한 방이 나왔다.

양쪽에는 신비한 분위기를 뿜어내는 다양한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고, 정면에는 검은색 문이 자리해 있었다.

“형제님, 자매님. 기운이 약하긴 하지만, 여기 있는 물건들 전부 성물인 거 같아요.”

그녀의 말에 아이리스와 나는 굳어버렸다. 이곳에 있는 수십 개는 넘는 물건들이 전부 성물이라면, 이곳에 대한 이야기가 새어나가는 순간 전쟁이 터질 것이다.

교단, 나라, 종족을 떠나서 성물의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그 존재 하나만으로도 능히 피바람을 부르는 물건이 성물이다. 그런 것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는 사실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공녀님 조사단을 꾸리는 건 미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그래야겠군.”

그녀의 안목을 믿기는 하지만, 사람이라면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흑심을 안 품기가 힘들다.

“여기는 일단 내버려 두고, 다음 장소나 확인해 보는 것이 좋을 거 같습니다.”

“그러지.”

감당이 안 되는 광경은 치워두고, 정면에 있는 문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손잡이를 잡는 순간, 손에서 통증이 느껴져 손을 뗐다.

문의 손잡이에 처음에는 없던, 작은 바늘이 튀어나와 손바닥에 작은 상처가 생겨났다. 상처에서 나온 소량의 피는 바늘을 적셨고, 문은 잠시 불그스름한 빛을 띠면서 열렸다.

그 광경이 나에게 섬뜩함을 안겨주었다.

“괜찮나?”

“형제님, 괜찮으세요?”

“조금 찔렸을 뿐입니다.”

그녀들의 걱정에 섬뜩함을 접어두고, 태연한 척을 하며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조금 아래 방향으로 이어지는 통로는, 문에서 보았던 불그스름한 불길한 빛을 띠고 있었다.

그 섬뜩한 통로의 끝에 어두운 공간이 나왔다. 어두운 공간의 천장에서 흐릿한 불빛이 나오며, 공간을 밝혔다.

어두움이 조금 사라진 공간에는 중앙에 하나의 책이 놓여있고, 주변에는 관들이 놓여 있었다. 그 관들은 특이하게 안쪽이 훤히 보였다.

엘프, 드워프, 수인, 오크, 야만인 등 여러 존재들의 시신이 관에 안치되어 있었다. 분명 마녀는 수백 년 전에 죽었을 텐데. 어째서인지 그 시신들은 부패한 흔적조차 없이,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만 같았다.

“끔찍한 취향이군.”

아이리스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성물을 전시한 방에 모자라, 죽은 존재들을 전시한 방이라니... 그저 끔찍하단 말 말고는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 방 중앙에 놓인 서적에 시선을 돌린다. 특별해 보이는 점은 없어 보이지만, 이런 방에 있다는 사실 때문에 어딘가 꺼림직해 보였다.

쉬이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옮겨, 조심히 책을 들어본다.

양피지도 동쪽 국가에서 발명한 종이도 아닌, 이상한 질감이 꺼림직함을 선사한다.

꺼림직함 때문에 포기하기에는 나의 소망이 그리 가볍지 않기에, 그 감정을 무시하며 책을 펼쳐본다.

책에는 붉은 글씨가 가득했다.

「일국의 공주로 태어나 무료함 속에서 살았다. 그 무료함 속에서 마법과 주술이 그나마 무료함을 덜어주었다.

그런 사소한 이유로 마법과 주술에 매진할 때, 나의 성향을 깨닫게 해준 사건이 발생했다.

실험의 실수로 마법진이 폭발한 날. 마법진을 그리던 자가 온몸에 화상을 입고, 비명을 질렀다. 그 비명이 너무 아름답고 듣기 좋았다.

그 사건으로 나의 뒤틀린 성향을 자각했다. 남들과 다르고, 통념적으로 옳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참아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그렇기에 천한 노예들로 연주를 즐겼다. 그 시간은 내 삶의 원동력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 시간을 음미한 지 1년이 지났을 때, 갈증을 느꼈다. 갈증을 해소해줄 더 큰 자극이 필요했다.

그래서 노예에게 저주를 걸어 죽이고, 마법으로 불태우고, 잘라내고, 익사시키고, 감전시키고, 터트려 죽였다. 바닥을 적시는 피와 울려 퍼지는 비명에 갈증이 사라졌다.

갈증이 가시고 얼마 안 가서 또 갈증이 찾아왔다. 갈증은 계속해서 더 큰 자극을 원했고, 점차 손대는 범위를 넓혀갔다.

노예부터 시작하여 하녀, 시종, 백성들, 그리고 귀족, 결국에는 가장 고귀한 혈통을 가진 가족들에게도 손을 뻗었다. 그때부터 이름 대신 마녀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이 나에게 손가락질하며 나의 목숨을 노려왔지만, 모두 나의 악기와 물감이 되어 세상을 아름답게 꾸미는 데 사용됐다. 그리고 왕국에는 더 이상의 악기와 물감들이 남지 않았다.

갈증이 찾아왔다. 그 갈증은 학살에도 만족하지 못하게 되었고, 더 큰 자극을 얻기 위한 연구에 빠져들었다.

어느 순간 몸이 재구성되고, 정신체와 생명체 중간의 존재로 변했다. 그 순간부터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세상은 한가지의 법칙 속에서 흘러가고 있었다.

신들은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없다는 법칙 아래에서 말이다. 그 사실을 알고 더 큰 자극을 줄 단서를 발견하여, 환희가 찾아왔다.

그 환희 속에서, 모든 생명체 위에 군림하는 신을 타천시키기 위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신이라는 존재는 완전한 것 같지만, 불완전한 존재들이다. 그들은 생명체로 태어나 생명의 한계를 깨 반신의 격을 얻고, 신앙을 모아 진화하였기에 불완전하다.

신앙은 그들을 존재시키기 위한 근본이요. 그들의 전부였다. 그 사실을 바탕으로 하여 실험을 하였다.

신의 대행자이자 전달자인 사도를 죽여 구심점을 없애고, 신실한 신도들을 전부 죽였다. 그리고 새로이 열린 시야로 신계를 관찰하며, 흐릿해져 가는 신의 모습을 음미했다.

흐릿해져 버린 신은 시간이 지나 모든 신앙을 잃어버리고, 온전한 신격을 잃어버렸다. 신격을 잃어버린 신은, 사도의 시체에 깃들어 살아났다. 그 신은 나에게 분노하며 달려들었지만, 오랜 시간 나태하게 살아온 신은 나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아 그 순간에 찾아온 쾌락은 너무나 달콤하여, 뇌가 녹아버릴 것만 같았다. 그런 쾌락을 준 신에게 감사하며, 그를 위한 공간을 만들었다.

시신은 부패하지 않게 처리하고, 투명한 관을 만들어 그들을 장식하여 안치시켰다.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끔찍했던 갈증이 사라졌다. 이 이상의 행복은 찾아오지 못할 것이다. 그 사실이 한편으로는 아쉽지만, 아직도 나를 위한 장난감들이 많이 남았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천천히 신들을 타천시키며 삶을 음미하고 있을 때, 세상의 모든 신들이 나를 공적으로 삼는 계시를 내렸다.

그 계시를 따라 찾아온 끝없는 물결을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다시 짜릿해진다.

죽음의 위기 속에서 보았던, 붉게 물들은 세상은 너무 아름다웠다. 목숨이 위급해 그 광경을 제대로 음미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아쉽지만, 신들을 모두 처리하고 다시 즐기면 된다.

그 목적만을 바라보며 살았다. 그것만을 바라보며 살던 중, 사도와 신의 연결을 끊는 방법을 찾아냈다.

그 방법을 사용하니, 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된 사도는 미쳐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더없이 사랑스러워 참을 수 없었다. 그런 사도에게 저주를 걸고, 매혹하여 나의 것으로 삼았다.

나의 것으로 삼은 사도를 바탕으로, 나는 아르미스교를 천천히 삼켜갔다. 그것을 보던 아르미스의 처절한 절규는 너무 각별하여, 없어진 심장이 떨려오는 착각이 들었다.

그 절규를 들으며 아르미스교를 나의 것으로 만들었다. 이상하게 아르미스는 타천하지 않았지만, 아르미스의 통곡과 분노가 너무 달콤하여 그대로 두었다.

아르미스에게 빼앗은 사도를 바탕으로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혼란스러운 세상에 괴물이 나타났다. 자신을 카이안의 사도로 자칭하던 남자는, 내가 보아왔던 사도들과는 격이 달랐다. 반신의 격을 얻지 못했지만, 어째서인지 내가 상대했던 신들보다 강대한 힘을 갖고 있었다.

그런 괴물을 찬찬히 관찰했다. 그 괴물은 쓸모없는 정의감과 신념을 갖고, 아름다웠던 세상을 더럽혔다. 그것이 마음에 안 들었으며, 또 한편으로는 기대감이 차올랐다.

저런 존재를 타락시켰을 때, 나에게 찾아올 환희가 기대됐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미칠 것만 같다.

강대한 괴물을 타락시키기 위해 찬찬히 관찰했다. 생명의 한계를 깨지 못한 존재라기에는 너무 강대한 힘과, 틈이 존재하지 않는 신과의 연결고리가 큰 장애물이었다.

그 사실이 아쉽지만, 없으면 만들어 내면 된다.

마침 그 괴물이 아이가 태어난 것을 확인하고, 아이에게 저주를 걸어 죽였다. 그때 무리를 해가며, 잠깐만 신의 목소리가 그에게 닿지 않게 만들었다.

마침 부인은 병들어버리고, 짐승은 신앙이 흔들렸다. 그 덕분에 그들의 연결고리에 틈이 생겨났다. 무리한 상태에서 조금 더 무리를 해가며, 그 연결고리를 끊어버렸다. 연속해서 무리한 덕분에 격이 조금 낮아졌지만, 곧 찾아올 환희를 생각하며 잊었다.

괴물은 대부분의 시간을 울부짖으며 보냈다. 그 모습이 나를 자극했다.

그리고 더 큰 고통을 선사하기 위하여 그를 찾아갔다. 마음에 병을 얻은 부인을 고쳐주겠다고 한 뒤, 그들의 피를 얻어왔다.

더 큰 환희를 위하여 부인을 치료해 주었다. 마음에 병이 들었다면, 감정이 없으면 해결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리 생각하며, 먼저 부인의 피를 매개로 저주를 걸었다. 대대로 이어질 저주를 말이다.

그 덕분에 부인은 깨어났고, 그들은 잠깐의 행복을 즐겼다. 그 행복의 끝에 아이가 태어났고, 부인의 저주가 완전히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괴물에게도 같은 저주를 걸었다.

괴물의 격이 높아 저주는 자리를 잡는 데 시간이 걸렸지만, 그에게도 저주가 자리를 잡았다. 그 저주 속에서 괴물은 혼란에 빠져들었고, 그의 처절한 삶이 시작되었다.

나를 죽이겠다고 발악하는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그런 그를 보며, 그의 끝을 상상한다. 사랑하는 아내가 죽고 막혀있던 감정을 되찾을 그의 모습이 저절로 머릿속에서 그려진다. 자신의 사도가 슬픔에 익사하고, 이단으로 몰린 카이안의 표정을 상상한다.

그것은 너무 달콤하여, 그 끝에는 내가 이미 죽는다는 사실조차 상관없게 만들었다.

실망스럽게 그가 나를 죽이지 못한다고 하여도, 신들을 모두 타천시키고 새로운 세상을 열면 된다.

무엇이 되더라도, 그 끝에 지극한 환희가 찾아올 것이다.」

마녀의 지독한 악의가 책에서 흘러내린다.

그 악의는 너무 지독하여, 나의 숨통을 조여 왔다.

우리는 마녀가 만든 신들의 무덤에서, 한참을 침묵하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제 작품의 봐주신 [독자 닉네임 출력]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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