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화
음습한 다크엘프
아직 마주 하고 싶지 않았던 아이리스의 초대를 받고, 미래이자, 과거의 모습과 똑같은 식당에서 그녀의 맞은편에 앉는다.
식당에는 만찬을 나르는 시종들의 소리만이 맴돌고, 그 소리마저 이제는 사라져 간다.
적막한 식당에는 코를 자극하는 냄새가 진동을 하고, 갖은 종류의 음식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그런 만찬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지금의 상황이 너무 불편하여 식욕은 올라오지 않는다.
그 불편함의 원인이 적막감을 깨트린다.
“몰래 온다고 고생했을 텐데 음식 좀 들지.”
평생 비꼬는 화법을 쓴 적 없던 그녀가 비꼬는 모습을 보니 새로우면서도, 불편하다.
“그러면 잘 먹겠습니다.”
레이첼은 낯선 이에게 목소리와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규율은 어디다 팔아먹었는지, 아이리스가 있음에도 복면과 로브를 벗고는 식사를 시작했다. 그 모습에 아이리스의 눈이 살짝 찌푸려진다.
“흠. 그대는 다크엘프와 같이 다니던 거였나?”
“문제라도 있습니까?”
“문제를 지적하라면 여러 가지가 있지, 하지만 그대도 알 테니 말하지 않겠네.”
그녀의 말이 맞다. 축복받은 존재로 취급받는 엘프들과는 다르게, 다크엘프들은 저주받은 존재로 인식이 박혀 있으니 문제로 보일만 하다.
“다크엘프에 대한 세상의 인식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생각보다 괜찮은 존재들입니다.”
“흠. 그대는 생각보다 다크엘프들에 대해서 잘 아는가 보군. 내가 받은 정보에는 다크엘프와 접점은 없는 거로 아는데. 남부로 갔을 때 만났나?”
그 말에 귀를 의심하며 그녀를 바라본다.
“뭘 그런 표정으로 바라보나? 약혼자에 대한 정보 정도는 알고 있어도 이상할 것 없지 않은가?”
그녀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약혼자에 대한 정보 정도는 알고 있을 만하다. 하지만, 나에게 무관심하던 그녀는 그럴만한 사람은 아니다.
“생각보다 저에게 관심이 많으시군요.”
“저번에도 말했지만, 나는 그대가 신경 쓰이고 놓치고 싶지 않네. 그래서 조금 조사해 봤지.”
그래, 저번에도 그녀가 그리 말했다. 전의 삶에서 들었다면 분명히 좋아했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저 말이 달갑지 않다. 아주 작은 희망을 품고 있지만, 그 희망이 무너졌을 때의 아픔을 잘 알기에, 저 말을 듣고 싶지 않다. 거부하고 싶다. 지금은 거리를 두고 싶다.
“저도 저번에 말했지만.”
“그 정도는 기억하고 있으니, 말할 필요는 없다. 그보다, 음식이 식기 전에 식사나 하지.”
그녀는 나의 말을 끊어버리고는 식사를 시작한다. 그런 그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삼키고 식사를 한다.
이곳에서 종종 먹었던 사슴 스테이크를 썰어서 입어 넣는다. 기억하던 맛이 아니다. 사실 불편함 때문에 무슨 맛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저 이 시간이 끝나길 바라며, 입에 넣는다.
그렇게 불편하면서 조용한 식사 시간을 보낼 때, 옆에 있던 레이첼이 나의 소매를 당긴다. 옆을 보니 그녀는 큰 뼈가 붙은 스테이크를 나에게 내민다.
이상하게도 나이프질이 익숙하지 않은 그녀를 위해서, 스테이크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준다. 그녀는 내가 썰어준 고기를 기쁘게 먹어 치운다.
그때 맞은편에서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썰어주는 모습이 보기가 좋네... 둘 사이가 좋아 보이는군.”
그녀는 표정을 찌푸린 채 우리를 노려본다. 누가 보더라도 기분이 나쁘다는 걸 느낄 수 있는 표정이었다.
“네! 형제님이랑 사이가 많이 좋아요. 그렇죠?”
레이첼은 눈치도 없이 밝게 대답하고, 나에게 답을 요구한다. 그 모습에 그녀의 표정이 더 구겨진다. 그 모습을 보고, 다가오는 그녀와 조금 거리를 두고 싶기에 눈치를 버린다.
“그렇지. 거의 3달 정도 같이 다녔으니까.”
“그렇죠.”
내 말에 호응하는 레이첼을 한 번 보고, 아이리스의 표정을 한 번 확인한다. 찌푸린 표정은 풀어지고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 모습은 평소와 다르게, 보고 있으니 간담이 서늘해져 온다.
“그렇군, 그래... 사이가 좋은 건 잘 알았네.”
그녀는 죄 없는 입술을 한 번 씹고는 말을 이어간다.
“그보다, 둘이 어떻게 친해졌는지 궁금하군.”
“그건 제가 말해드릴게요.”
레이첼이 나서는 걸 지켜본다.
"음. 처음부터 운명적인 만남이었죠.“
헛소리를 내뱉는 그녀 때문에 표정이 구겨질 뻔했다.
“무투대회 대기실에서 형제님과 딱 마주쳤을 때, 이 사람이 운명의 사람이라고 딱 느껴졌어요.
처음 듣는 헛소리다. 당장 무슨 헛소리냐고 소리 지르고 싶지만, 아이리스의 표정이 안 좋아지고 있으니 잠시 참는다.
“그래서 먼저 말을 걸었죠. 처음 보는 사람이 말을 걸어오니 형제님은 까칠하게 반응하셨지만, 나중에는 먼저 찾아와주셨죠.”
분명 처음에 까칠하게 한 것도 맞고, 나중에 내가 먼저 찾아간 것도 맞는데, 속이 뒤집어지는 기분이 든다.
“그게 참 기쁘면서도, 먼저 찾아오는 모습이 참 귀여웠어요.”
끔찍한 소리를 하는 저 입을 당장이라도 막고 싶어진다.
“그러면서 이야기도 좀 나누고, 서로 예선전의 모습을 보면서 덕담도 나눴죠.”
식탁에서 진동이 조금 전해져 온다.
“그리고 낯선 타지에서 갈 곳 없는 저를, 형제님이 집에 초대해 주셨죠.
“그렇군.”
아이리스의 목소리가 싸늘한 한기와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다음날 본선에서 서로 결승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하고, 저희가 결승에서 싸우게 되었죠.”
“그건 알고 있다.”
“보셨듯이 마지막 순간까지 제가 유리했죠. 솔직히 가지고 놀았어요.”
너무 솔직해서 표정이 절로 찌푸려졌다.
“그런 압도적인 실력 차이가 분명함에도, 형제님은 포기하지 않으시더라고요. 그 모습에 가학심이 조금 들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저 사람을 망가트릴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무럭무럭 자라났어요.”
평소에는 호기심 많은 아이 같은 행동 때문에 잊고 있지만, 저 음습한 마음을 확인할 때마다 어지러워진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형제님은 검을 던졌죠. 솔직히 많이 실망해서 그대로 끝내려고 했는데, 형제님은 방어를 포기하고 저의 목을 잡아채셨죠.”
그 일을 생각하니 그녀에게 당했던 상처들이 쑤셔오는 기분이 든다.
“저를 땅에 내려찍으며 지으셨던 야수 같은 표정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그렇군...”
“경기가 끝나고 다시 만나서 형제님께 중요한 고백을 하고, 형제님과 함께 3개월 정도 여행하면서 많이 친해졌어요.”
그녀가 무슨 끔찍한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분명 거짓말은 없는데, 사실을 꼬아서 이상하게 말하는 걸 듣고 있으니 속이 거북해진다. 그렇게 생각할 때 식탁이 크게 흔들린다.
“... 중요한 고백이 뭐지?”
“그건 저희 둘의 비밀이에요.”
레이첼의 밝은 목소리와, 북부의 칼바람처럼 싸늘한 아이리스의 목소리가 대조된다.
“... 그래, 둘이 어떤 사이인지 충분히 이해했네.”
얼굴이 약간 붉어진 그녀는 나와 레이첼을 노려본다.
“그대들이 그런 사이라고 해도, 나는 그를 포기할 생각은 없네.”
오해를 한 그녀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나는 피곤하니 먼저 가겠네. 푹 쉬고 내일 다시 말하지.”
그녀는 어딘가 힘이 빠진 걸음걸이로 떠나간다. 언제나 당당하고, 위엄 있는 모습이 아닌 그녀를 보고 있자니, 기분이 이상해진다.
“형제님 저 잘했죠?”
레이첼의 목소리에 이상한 기분을 치워둔다.
“그래. 언제부터 눈치챘냐?”
“형제님이랑 자매님이 처음 만났을 때부터, 형제님이 불편해하는 게 느껴졌어요.”
같이 다니면서 느꼈지만, 그녀는 이상한 곳에서 눈치가 참 빠르다.
“잘했다. 그런데 자매님이라니?”
“아 그거요? 저분도 형제님만큼은 아니어도, 카이안님의 축복을 크게 받았으니 자매님이죠.”
큰 축복이라는 말이 유독 거슬리지만, 알 방법이 없으니 신경 쓰지 않는 것이 편하다.
“자매님을 화나게 하니 뭔가 기분이 이상해요.”
“신경 쓰지 마라. 말의 느낌은 이상했지만, 거짓말한 것도 아니니.”
내 말에 그녀는 싱긋 웃고는 입을 연다.
“그런 뜻이 아니에요. 저보다 큰 축복을 받은 사람을 놀리니까, 기분이 묘해서 그래요.”
“묘하다니?”
묘한 표정으로 말하는 그녀를 보니 뭔가 느낌이 안 좋아진다.
“저희한테 축복의 크기는 약간 위계? 서열? 그런 거란 말이에요. 그런데, 저보다 높은 사람을 가지고 논다고 생각하니까. 뭔가 잘못된 일을 하는 거 같으면서도, 짜릿함과 고양감이 찾아와서 기분이 묘해요.”
음습한 마음을 또 들으니 귀를 씻고, 그녀를 어딘가에 버리고 싶어진다.
“아 그래도, 형제님과 싸웠을 때가 지금보다 심했어요.”
알고 싶지 않은 사실에 표정이 찌푸려진다. 듣고 싶지 않아 그녀의 입을 막으려고 손을 뻗었지만, 그녀는 잘 빠져나갔다.
“대사제님만큼 큰 축복을 받은 사람이 약하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때, 가지고 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생각대로 해봤죠. 크으, 진짜 그때의 기분은 잊을 수가 없어요.”
“그런 기분 알고 싶지도 않고, 듣고 싶지도 않았다. 한동안 가까이 오지 마라.”
끔찍할 정도로 음습해서 소름이 돋는 그녀를 내버려 두고 식당에서 빠져나온다. 뒤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오지만, 무시하고 마음속에 그녀에 대한 평가를 조금 수정한다.
끔찍할 정도로 음습해서, 조심해야 할 녀석으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 편에서 레이첼의 성격이 잘 전달됐으면 좋겠네요.
[독자 닉네임 출력]님 오늘도 제 작품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