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대를 사랑하여 아팠다-18화 (18/59)

제 18화

데니엘 브란트

「카이안님의 뜻에 따라 혼란스러운 세상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세상으로 나왔다. 그 과정에서 많은 피가 흘렀지만, 세상은 평화를 되찾았다.

세상은 평화를 되찾아 성지로 돌아가려 할 때 황제가 나를 찾아왔다. 황제는 북부의 땅과 공작위를 하사하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나는 그저 카이안님의 계시를 따른 것이기에 거절하였으나, 황제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를 무시하고 성지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오랜 시간 뒤를 맡긴 전우이기에 매몰차게 무시할 수 없었다. 서로 주장을 굽히지 않다가, 공작위와 북부의 땅을 잠시만 맡는 것으로 타협을 보았다. 그리고 그의 부탁으로 건국식에 공작으로서 참여하였다. 그날부터 문제의 시작이었다.

제국의 건국을 기념하는 건국식에 참여했을 때 내 심장을 가져간 그녀, 비앙카를 만났다. 나름 적지 않은 세월을 살면서 많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녀를 만났을 때 느낀 감정은 너무나 이질적이고 새로웠다.

그 감정을 알고 싶기에 전우들과 술을 마시며 상담을 했다. 전우들은 그 이야기를 듣고는 뒤집어 지도록 웃다가 질문을 해온다. 그녀를 보고 있을 때 심장이 거세게 뛰고, 보이지 않을 때는 보고 싶어지냐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전우들은 시기할 정도로 나의 상태를 잘 알았다. 전우들은 자기들끼리 웃다가 그 감정이 사랑이라고 말했다.

난 그 사실을 부정했다. 평생을 카이안님만을 바라보며 살기로 맹세한 나에게, 한 여인이 들어올 자리는 없다.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봄을 맞이한 눈처럼 녹아내렸다.

내가 가진 감정이 사랑임을 부정하기 위해서, 그녀를 쫓아다녔다. 쫓아다니며 그녀를 바라볼수록 그 감정은 커져만 갔다. 결국에는 그 마음을 인정하고 카이안님께 물었다.

평생 카이안님만을 바라보며 살기로 했지만, 제 맘의 남은 자리에 그녀를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카이안님은 웃으시며 그런 것까지는 물어볼 필요 없이 하고 싶은 데로 살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는 그녀에게 달려가 내 마음을 솔직하게 전했고, 거절당했다.

그 말이 너무 아팠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계속해서 그녀를 쫓아다니며 고백을 했고, 1년이 지나서 그녀가 백기를 들었다. 카이안님께는 죄송하지만, 그 순간만큼 기뻤던 적이 없었다.

꿈만 같은 시간이 흐르고, 성지에서 그녀의 삶을 책임질 것을 맹세한 지 1년이 지났을 때, 우리에게 첫 아이가 와주었다. 그 사랑스러운 아이가 태어나고 1년. 아이는 우리의 곁에서 떠나갔다.

그날 처음으로 카이안님을 원망했다. 평생을 모시고 살았지만, 죽어간던 아이를 살려달라는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셨다. 아이의 시체를 끌어안고 카이안님을 원망했다.

그날 이후로 불행이 시작되었다. 아이를 떠나보낸 충격으로 아내가 몸져누웠다. 매일 악화되는 그녀를 낫게 하기 위해서, 모든 방법을 갈구했고, 그런 나에게 황제가 찾아왔다.

북부의 땅과 공작위를 임시로 맡는 것이 아닌, 자신의 신하가 되어 완전히 받아들인다면 도와주겠다며 나를 제안했고, 나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황제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나서 황실에서 고위사제들을 파견하고, 귀한 약제들도 보내왔다. 그것이 그녀를 완전히 낫게 하지는 못했지만, 악화되는 것은 막았다.

그 이후로 5년이 지나갔다. 여전히 그녀는 침상에 누워있고, 나는 지쳐가고 있었다. 그런 나의 앞에 겨울의 마녀라고 자신을 칭하는 여인이 찾아왔고, 자신이 그녀를 낫게 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지쳐버린 나는 그 말을 의심조차 하지 않고 매달렸다.

겨울의 마녀는 치료를 위해서 나와 그녀의 피를 채혈해 갔고, 보름이 지나고 그녀가 병상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에 눈물이 흘러내렸고, 벅찬 감정에 그녀를 끌어안고 아픔을 흘려보냈다. 아픔을 흘려보내고, 마녀에게 감사를 전하기 위해서 마녀의 거처에 찾아갔지만, 마녀는 그곳에 없었다.

감사 인사도 못 하고 떠나보낸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기에 별수 없었다.

또다시 세월이 흘러 우리에게 새로운 아이가 찾아왔다. 그때부터 서서히 끔찍한 저주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다양한 표정을 짓던 그녀의 얼굴에서 표정이 줄어들었고, 하루하루가 기쁨에 겨웠던 나의 마음도 무뎌져 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별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남들이 말하는 권태기가 왔다고 그리 생각했다.

그 이후로 시간이 지나고, 어느 날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확신했다. 사랑하는 아이가 훈련을 하다 다쳤을 때, 아무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 조금 지나고 나서야 걱정이 되고,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그 조차도 얼마 가지 못하고, 마음은 차분해졌다.

그 일을 곱씹고 나서야 잘못되었음을 인지하고, 그 원인에 대해서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마녀가 원인이라는 생각 말고는 들지 않는다.

마녀를 찾기 위해서 수배서를 퍼트리고, 황제에게 요청하여 마녀에 대한 정보들을 모았다. 하지만 소득은 없었다. 생각나는 방법들을 다 시도하고서야, 성지에 있는 지식의 요람이 생각나 찾아갔다.

내가 카이안님을 원망하고 오랜 세월 찾아오지 않았지만, 같이 카이안님을 모시던 형제들은 나를 환영해 주었다. 그런 형제들의 모습을 보니 얼굴을 들기 힘들었지만, 옅어진 감정은 금방 원래의 평온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지식의 요람을 한참을 뒤지고 나서야 그 마녀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 있었다.

겨울의 마녀. 사람으로 태어나 스스로의 힘으로 반신의 격을 얻고도 이 세상에 남은 괴물. 그 괴물은 세상의 법칙 때문에 신들이 직접 개입하지 못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신들의 사도에게 불행을 가져다준 다음 사도와 신의 교감을 단절시키고, 타락시키고 저주를 거는 것을 유희로 삼는 존재.

그 글을 보고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첫 아이가 죽고 평생을 모셨던 카이안님을 원망하였는데, 그 모든 것이 마녀의 장난이었다. 감정이 옅어졌건만 머리가 뜨거워지고, 이성을 잠식할 정도의 분노가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왔다.

그날 이제는 단절되어 듣지 못하실 카이안님과, 먼저 떠나보낸 아이에게 마녀를 죽일 것을 맹세했다.

공작으로서의 모든 일은 보좌관들에게 맡기고 세상을 떠돌았다. 세상을 떠돌았는지 수십 년, 나의 아이를 죽인 마녀를 찾았다.

반신의 격에 오른 마녀는 이루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강하였다. 하지만 강대한 마녀를 죽이기 위해 살아온 삶은 헛되지 않았다. 평생의 갈고 닦은 힘과 성물의 힘을 빌려 괴물의 목을 취하였다.

괴물의 시체를 난도질하고 불에 태우고, 성물을 통해 괴물의 영혼이 신들에게 끌려가는 것까지 확인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괴물이 죽었음에도 기쁨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 사실을 부정했다. 내가 너무 지쳐서 그런 것일 거라고, 조금 있으면 저주가 풀릴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 최면을 걸며 사랑하는 이들에게 찾아갔고, 끔찍한 현실을 직시했다.

사랑하는 아내 비앙카의 감정은 거의 죽어가고 있었고, 나의 아들 카인에게도 저주가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 사실을 보고도 조금, 아주 조금 슬펐다. 그리고 마음은 안정을 되찾았다.

마녀에게 복수했으니, 만족하면 된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그 생각이 타당하다. 그리 생각하고 삶을 보냈다.

그로부터 시간이 흐르고, 그녀가 죽었다. 주어진 수명만큼 살았으니 유복하게 간 것이다.

그리 생각했다. 그리고 저주가 무너졌다.

무뎌졌던 감정이 돌아오고, 세상을 무너트리는 슬픔이 범람한다.

그녀의 시신을 끌어안고, 슬픔에 익사해간다.

차가워진 그녀를 느끼면서도, 그녀를 떠나보내지 못한다.

그녀에게서 썩은 내가 진동함에도, 그녀를 놓지 못했다.

그녀에게 해주지 못한 일들이, 그녀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사실이 나를 찔러온다.

한참을 울다. 그녀의 시신을 묻어준다.

그런 나의 모습을 나의 핏줄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어째서인지 나의 핏줄들은 저주가 풀리지 않고, 나만이 풀렸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저주가 풀렸으니 방법이 있으리라 생각하여 해주법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무엇을 하든 그녀가 생각나 버틸 수가 없다. 버틸 수 없어 독한 술을 입에 달고 다니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나이를 무시할 정도의 강성한 육체와 정신은 무너지고, 삶의 끝이 다가왔음을 직감했다.

그때가 되어서야 이 책을 작성했다.

그녀와 나의 피로부터 비롯된 저주를 풀기를 기원하는 자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면 작성했다.

이 책을 가문에 남겨두고 싶었지만, 나의 핏줄들이 점차 저주를 받아들이고, 해주를 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기 시작하여 지식의 요람에 남긴다.

저주를 풀기 위해서 이 책을 보고 자네는 나처럼 실패하지 않기를 빌며, 혹시라도 도움이 될까 봐 마녀가 살던 거처의 위치를 나타낸 지도를 넣어두었네.

그대에게 카이안님의 축복이 있기를」

책의 내용은 끝이 났다.

영웅이라 칭송받던 남자의 불행한 삶이 담긴 책을 보고 나니 머리가 복잡해진다.

왜 그만 저주가 풀렸는가? 내가 죽고 그녀도 저주가 풀렸는가? 풀렸다면 그처럼 슬퍼했을까?

모르겠다. 도무지 모르겠다.

생각해보아도 모르니, 그 질문은 옆으로 치우고 현실을 바라본다.

이 책은 저주의 이유는 말해 주지만, 내가 묻고 싶었던 것의 답을 알려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저주의 근원인 마녀가 살던 곳은 남겨두었다.

이것을 희망이라 보아야 할지 모르겠다. 희망이라기에는 너무 작디작아서 보이지 않을 정도다.

그곳에 답이 없더라도, 가고 싶다. 죽도록 아팠던 것이 억울해서라도, 확인하고 싶다.

그러니 한 번만, 딱 한 번만 더 희망에 속아보리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다음 편에 외전 느낌으로 주인공이 죽고 나서 아이리스의 이야기를 쓸 생각인데, 독자님들의 의견을 받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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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가주의 시기에는 카이안은 이단으로 취급되지 않은 시기였습니다.

제 작품을 봐주신 [독자 닉네임 출력]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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