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화
레이첼
머물 곳이 없다면서 따라오는 괴물을 어쩔 수 없이, 마차에 태우고 간다. 눈앞에 있는 괴물 덕분에 생겨난 피로감과 두통에 지쳐, 마차의 푹신한 쿠션에 몸을 맡긴다.
자잘한 진동조차 잘 느껴지지 않는 승차감과, 쿠션의 부드럽고 폭신한 촉감 덕분에 조금 편해지는 기분을 느낀다.
그 기분을 느끼며 눈을 잠시 감았을 때, 볼을 누르는 감척에 눈을 뜬다. 괴물이 내 볼을 누르며 책을 들이민다.
「마차라는 건 원래 이렇게 푹신해요?」
휴식을 방해하면서 물어본 말이 하찮은 질문임에 살짝 짜증이 올라오지만, 참고 대답을 해준다.
“고급 마차들만 이렇고, 일반적인 마차들은 푹신하진 않다.”
대답을 마치고 다시 눈을 감고 있으니, 얼마 안 가서 괴물은 내 볼을 찌른다.
「저 거대한 건물은 뭐에요?」
“아르미스교단의 대성당이다.”
그 이후에도 괴물은 계속해서 질문을 해온다. 휴식을 방해하는 것에 짜증이 나지만, 모든 것에 호기심을 갖고 질문해오는 모습이 아이 같아서, 귀찮음을 감내하고 대답을 해준다.
수백 년을 살았을지도 모르는 존재를 아이 같다고 생각하는 내 모습이 웃기지만, 두 아이의 부모로서 살았던 삶이 그렇게 반응하는데 별수 있겠는가.
그렇게 생각을 하며, 아이 같은 괴물의 질문을 받아주다 보니 어느새 저택에 도착했다.
마차에서 내리고, 비어있는 손님방으로 괴물을 직접 안내해준다.
“넌 여기서 자면 된다. 난 옆방에 있을 테니 필요한 게 있으면 나한테 말해라.”
사용인들에게 이 괴물을 맡겨두기에는 불안해, 평소 쓰던 방이 아니라 비어있는 손님방에 머무르기며 관리하기로 했다.
“그러면 저 목욕물이 필요해요.”
약간 앳된 여성의 목소리에 잠시 머리가 고장 난다. 이름이 레이첼로 여성의 이름이고, 글에서 느껴지는 말투도 여성 같은 느낌이 들어서 괴물이 여성인 건 놀랍지 않다. 하지만 필담만 하기에 벙어리인줄 알았는데, 멀쩡하게 잘 말하는 모습을 보니 어이가 없어진다.
“너 말할 수 있었는데, 왜 지금까지 필담을 한 거지?”
“아 그건, 낯선 사람에게 목소리를 들려주면 안 된다는 규율 때문에 그랬어요.”
다크엘프들이 음습하고 배타적인 건 알고 있었다. 저번 생에서 만나자마자 칼부터 휘두르는 그들을 보면서 충분히 느꼈다고 생각했는데, 그 정도는 약과였다. 다크엘프들의 음습함과 배타성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들의 규율을 알고 나니, 대사제를 찾아갈지 말지 고민하던 저울이 찾아가지 말자는 쪽으로 기울어진다.
“아 이상한 이유는 아니에요. 저희 종족에 반해서 따라다니면서 사고치는 인간들이 많아지고, 노예로 삼으려고 납치를 시도하는 무리도 생겨서 그런 규율이 생긴 거예요. 이 로브랑 복면도 그래서 착용하고 있는 거고요.”
나의 표정을 읽었는지 묻지도 않았는데 그녀는 해명했다. 그래도 그 해명을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이유라 꺼림직함은 사라졌다.
“그 규율 때문에 얼마나 불편한데요. 이 로브랑 복면 생긴 것처럼 엄청 답답해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펑퍼짐한 로브와 복면을 벗는다. 달빛 같은 풍성한 은발이 흘러내리고, 잡티 없이 건강해 보이는 구릿빛 피부, 딱 달라붙는 가죽옷을 입은 여성의 모습이 드러난다.
“진짜 답답해서 혼났네.”
그녀는 로브를 쓰고 있어 뭉친 머리를 한번 털어내고는 로브와 복면을 의자에 대충 던져놓는다. 제 방처럼 편하게 행동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의문이 든다.
“나와 오늘 처음 만났는데, 그렇게 행동하는 건 규율위반 아닌가?”
그 말에 그녀는 웃으면서 입을 연다.
“에이 형제님은 카이안님의 축복을 받으셨잖아요. 낯선 사람이 아니니 괜찮아요.”
그녀는 웃으면서 말하지만, 나에게 기꺼운 소리는 아니기에 혀를 찬다.
“그것보다 빨리 씻고 싶어요! 아 그리고 씻고 나서는 밥도 좀 주세요.”
“쯧 알았다. 목욕물은 사용인들에게 시켜 놓을 테니 기다리고 있어라. 그리고 못 먹는 거 있으면 지금 말해라.”
“케브라의 정소 같은 것만 아니면 돼요. 그건 너무 써서 좀 그래요.”
웃으면서 알아먹지도 못할 재료를 말하는 그녀를 방에 내버려 두고, 잠시 사용인들에게 그녀의 요구사항을 준비하라 시키고 방으로 돌아온다.
“조금만 기다렸다가 왼쪽 끄트머리에 있는 곳으로 가서 씻으면 된다. 그리고 사용인들에게 근처에 오지 말라고 했지만, 로브 정도는 쓰고 가라.”
“네!”
해맑게 웃는 그녀를 챙겨주다 보니, 애들을 하나하나 다 챙겨주던 시절이 생각나 기분이 묘해진다.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자각하며 머리를 헝클어트린다. 수백 년은 살았을 수도 있는 괴물에게서 아이들을 떠올리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짓이다.
그래 말도 안 되지...
상념을 옆으로 치우고 오늘 고생시킨 육신을 씻으러 가, 차가운 물로 씻으니 머리가 조금은 맑아진다. 머리를 맑게 해주는 찬물을 조금만 더 느끼다, 씻는 것을 끝내고 방으로 돌아간다.
방으로 돌아오니 빵 바구니와 야채수프, 큼지막한 고기 요리가 나를 반겨준다. 음식을 보니 출출해지지만, 어딘가 아이 같은 그녀를 기다린다.
조금 기다리니 머리에 물기를 한가득 머금은 그녀가 들어온다.
“엄청 좋은 냄새가 나요.”
그녀는 웃으며 빵을 손으로 집어 먹는다.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보니 무심코 한 마디를 던진다.
“천천히 먹어라. 체한다.”
“네~.”
그녀는 그렇게 대답을 하지만, 먹는 속도는 여전했다. 그 모습에 어째서인지 한숨이 나왔지만, 옆으로 밀어두고 배고픈 위장을 달랜다.
수프와 빵으로 위장을 달래고 있을 때, 그녀가 엉성한 나이프질로 고기를 썰고 있는 모습에 눈에 들어온다.
“썰어줄 테니 줘 봐라.”
“여기요.”
그녀가 넘기는 접시를 받고, 고기를 먹기 좋게 썰어서 그녀에게 다시 건네준다. 그녀는 접시를 받고서 고기를 빠르게 입으로 집어넣는다.
“이 고기 엄청 맛있어요! 케브라 다리보다 맛있어요.”
“그러냐?”
고기 한 점에 기뻐하는 그녀의 접시에 내 고기를 썰어서 담아준다. 그 모습에 그녀의 눈이 커진다.
“형제님은 안 드세요?”
“난 평소에 많이 먹어서 질린다.”
“그럼 제가 다 먹어드릴게요.”
헤실헤실 웃으며 좋아하는 모습이 버린 삶의 향수를 자극한다. 아래에서부터 무언가 올라오는 기분이 들지만 억지로 틀어막아 내린다. 전혀 닮은 구석 없는 다크엘프가 아이처럼 행동한다는 이유로 향수를 느끼고 있음이 이상하다.
젊음이 문제다... 너무 감정적구나...
작은 것에도 향수를 느끼는, 감정적인 나의 모습에 탄식했다. 그렇게 탄식하고 있을 때, 그녀의 식사가 끝났다.
“잘 먹었습니다. 살면서 이렇게 맛있는 건 처음 먹어봤어요!”
“주방장이 그 말을 들으면 좋아하겠군.”
“그러면 꼭 전해주세요.”
“그래. 알았다.”
다 먹은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날 때, 피곤함에 밀려서 구석에 박혀있던 궁금증 하나가 올라왔다,
“그리고 보니 다크엘프들은 엄청 배타적이라, 고향에서 잘 안 나오는 걸로 알고 있는데, 무슨 이유로 무투대회에 참가했지?”
“아 그거요? 카이안님이 계시를 내려서 참가한 거예요.”
또 그 정체 모를 신의 이름이 나오니 머리가 아파진다.
“무투대회에 참가하라는 계시만 내려졌으니, 아마도 형제님을 만나보라는 뜻이 아니었을까요?”
부정하고 싶은 말이지만 정황상 가장 타당한 이유라 부정할 수 없었다.
“그래... 그렇겠지. 물어볼 건 다 물어봤으니 가봐라”
“네~”
그녀가 나가고 한숨을 한 번 쉬고는 뒷정리를 한다. 그렇게 길고 긴 하루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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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님 빨리 일어나세요! 빨리 가야 덜 서서 기다리죠. 저 어제 늦게 가서 엄청나게 기다렸단 말이에요.”
해가 뜨지도 않은 새벽부터 시끄럽게 하는 그녀 덕분에 잠을 깼다.
“오늘 본선만 치러져서 참가자가 적으니 늦게 가도 상관없다.”
“정말요?”
“그래.”
“음 그러면 일찍 일어났으니 밥이나 먹어요.”
어제 내 몫의 고기까지 먹어 치웠던 그녀는 침을 약간 흘리며 말한다. 그 모습에 단잠을 방해당해 생긴 짜증 대신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아직 주방장은 자고 있는 시간이다.”
내 말에 그녀는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짓는다. 그 모습에 웃음이 새어 나온다.
“형제님 왜 웃으시는 거예요?”
“아무것도 아니다. 나중에 주방장이 깨어나면, 깨워줄 테니 더 자고 있어라”
“네.”
그녀는 축 처진 상태로 돌아간다. 그 모습에 또 웃음이 새어 나온다.
시간이 지나 약간 푸짐한 아침을 먹고 콜로세움으로 향한다. 마차 안은 아침을 푸짐하게 먹은, 다크엘프 한 명이 자면서 내는 숨소리만 가득하다. 내가 봤던 다크엘프들과 영 딴판인 그녀를 관찰하고 있다 보니, 어느새 콜로세움에 도착했다. 잠에 취해있는 그녀를 깨우고 콜로세움에 입장한다.
그녀는 기지개를 쭉 켜고는 나를 쳐다보면서 책을 들이민다.
「형제님 저희 오늘 겨뤄볼 수 있는 거죠?」
“오늘 결승까지 다 치루니 만나겠지.”
「그러면 저희 내기해요! 지는 사람이 이기는 사람 소원 들어주기!」
“그런 거 애들이나 하는 거다.”
「형제님 재미없어요.」
약간 토라진 듯한 그녀를 무시한다. 어제는 뭔가에 홀렸는지 편하게 대했지만, 가까워져서 좋을 것 없다. 그리 생각하며 그녀의 잡담을 무시한다.
그녀가 계속 무시하는 내 어깨를 툭툭 치고 있을 때, 어제 봤던 관계자가 들어온다.
“오늘은 예선과 달리 개회식이 있으니 나오셔야 합니다.”
그 말에 나와 그녀는 관계자를 따라가, 콜로세움 중앙에 있는 무대로 올라가 기다린다. 조금 기다리니 너무 익숙한 사람이 단상 위로 올라온다. 아름다운 호수 같은 머릿결이 눈에 띄는 그녀가 입을 연다.
“오늘 열리는 무투대회 본선에서 모두 한 명의 전사로서, 후회 한 점 남기지 말고 모든 것을 불태워라.”
아이리스 브란트. 그녀가 말을 마치고는, 나를 보면서 웃음을 짓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하렘을 좋아하시는 분이 있으시다면 죄송하지만, 소개란에 적혀져 있듯이 제 작품에는 하렘+순애는 없습니다.
누렁이아님님 2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