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화
괴인
발걸음 소리와 숨 쉬는 소리만 들리는 적막한 복도의 끝에서 소음이 몰려온다. 소음이 몰려오는 복도의 끝에 도달하고 빠져나오니, 소음은 군중의 시선과 열기가 되어 덮쳐온다.
참가자들의 투쟁이 단조롭고 힘겨운 일상의 일탈이자, 가슴을 뛰게 하는 축제가 되길 기대하는 군중의 시선과 그 열기는 누군가를 위축하게 만들고, 또 다른 누군가의 가슴을 뛰게 만든다.
그런 시선과 열기는 나의 가슴을, 투쟁을 하며 살아온 전사의 영혼을 고양시킨다.
머리가 아프고, 생각해 봤자 해결되지도 않는 고민은 잠시 내려놓고, 이 전사들의 축제에서 나는 한 명의 전사로서 무대에 오르며 검을 뽑아 든다.
숨 막히는 열기와 함성 속에서 시작을 알리는 뿔피리의 소리가 울려 퍼지고, 거대한 인파가 뒤섞여 싸우는 난전이 시작되었다.
피와 철의 비명소리가 난자하는 전장의 중심으로 향하며 검을 휘두른다. 검이 지나간 선을 붉은빛의 선혈이 뒤덮어 나가고, 검이 만들어내는 선이 늘어날수록 나를 향해오는 선의 간격이 짧아진다. 그 선을 쳐내고, 베어내기를 반복하니. 이내 두 줄기의 선이 동시에 나를 향해 달려온다.
한 줄기의 선을 그어 두 줄기의 선을 쳐내어 반격하려니, 세 줄기의 선이 달려들어 나의 피를 탐한다. 옆과 뒤에서 다가오는 그 선들은 위협적이지만, 합은 엉망이라 앞으로 한 걸음 옮겨 피하니, 선들은 자기들끼리 꼬여 틈을 만들어 낸다.
그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틈으로 파고들어 체구가 작은 남자를 왼손으로 잡아 던져 선을 완전히 엉키게 만들고, 남은 두 선을 사선으로 베어낸다. 곧바로 피를 흥건하게 머금어 무뎌진 검을 둔기처럼 휘둘러 엉킨 선들을 수확한다.
엉킨 선들을 수확하자 종료를 알리는 뿔피리 소리가 들려온다.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많던 인원들은 전부 처참하게 바닥에 구르거나 실려 나가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아직도 전투를 갈망하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관중들의 환호성을 들으며 무대에서 내려온다.
대기실에 왔었던 관계자에게 나무패를 보여주어 예선 통과했음을 기록에 남기고, 대기실로 돌아가기 위해 입구로 향하니 괴인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잠시 내려놓은 걱정이 돌아와, 고양되었던 기분은 처참하게 나락으로 떨어진다.
“굳이 나와서 기다릴 필요는 없었을 텐데.”
「형제님의 실력이 궁금해서 나와 봤어요. 실력이 좋으시네요.」
여전히 나를 형제님이라고 부르는 괴인의 관심에 불편함이 몰려온다.
“여기는 눈에 띄니 돌아가도록 하지.”
괴인은 고개를 저으며 책에 끄적여 나에게 보여준다.
「저 예선 B조라 곧 시작해서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으려고요.」
“그러면 나도 같이 있도록 하지.”
그 말에 괴인의 눈이 휘는 모습을 보자니 짜증이 몰려온다. 나는 알고 싶지도 않은 사실을 알게 되어 머리가 아파오는데, 그 원인을 제공한 괴인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이니 속이 뒤집어 진다. 그래도 괴인에게 알아내야 할 것들이 남았으니 참는다.
「저야 기다리는 동안 안 심심하고 좋죠.」
그렇게 적은 괴인의 책을 뺏어 들고 하고 싶은 말들을 적어나간다.
「혹시 카이안의 축복에 대가나 부작용 같은 게 있나?」
그 글을 보고는 괴인은 눈을 찌푸린다.
「카이안님이라고 불러주세요!」
정체도 모를 축복을 준 신을 존칭으로 부르기는 싫지만, 아쉬운 입장이니 순순히 따랐다.
「그래. 카이안님은 축복에 대가나 부작용 같은 게 있나?」
「부작용은 없지만, 카이안님은 축복의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대가는 있어요.」
그 소리에 입안이 바싹 말라온다.
펜던트가 정말 카이안의 성물이라 회귀의 축복을 받은 것이라면, 회귀라는 말도 안 되는 축복의 대가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런 생각으로 인하여 요동치는 마음을 억지로 진정시키며 글을 이어나간다.
「카이안님의 축복의 대가로 뭘 받아 가시는 거지?」
「음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평범한 축복이면 짐승의 피나 심장 같은 걸 받으시고, 특별한 축복은 특이한 걸 받아 가세요.」
「특이한 거? 정확히 어떤 거지?」
「그건 저도 잘 몰라요. 저도 그런 경우가 있다고 대사제님께 들은 거라서요.」
이 괴인은 중요한 부분에서만 모른 다고만 하니 답답함만 커져간다.
「대가를 드리지 않았는데도 축복을 받는 경우도 있나?」
「그건 아니에요. 카이안님은 어떤 형태로든 대가를 받아가세요.」
「하지만 난 대가를 바친 적이 없다.」
「정말요? 그런 경우는 저도 처음 들어 봐서 잘 모르겠어요.」
또 중요한 부분에서 모른다고 하는 괴인의 말에 답답함을 넘어서 짜증이 몰려온다.
「그러면 대사제님께 같이 방문해 보시는 건 어떠세요? 대사님은 어지간한 건 다 알고 계시니까 대답해 주실 수 있을지 몰라요.」
괴인의 말에 머리가 복잡해진다. 괴인의 말대로 대사제라는 존재를 만나면 축복에 대해서는 알 수 있겠지만, 교단에서 이단이라고 지정한 자들의 우두머리 격일 존재를 만난다는 사실이, 또 그런 존재를 만나려면 그들의 소굴로 가야 한다는 꺼림직하다. 그리고 아직 괴인의 정체도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괴인을 따라갈 수 없다.
「난 네 정체도 모르는데 무엇을 믿고 따라오라는 거지?」
「아 제가 깜빡하고 소개도 안 해드렸네요. 전 레이첼이에요.」
멍청한 건지 아니면 알려주기 싫은 건지 모르겠지만, 정체를 물으니 자기 이름만 말하고 있는 모습에 속이 뒤집어진다.
「네 이름을 물어본 게 아니라, 제국에서 기록이 말소된 신을 모시는 너희 정체가 뭐냐고 물어 본 거다.」
「아 그렇네요. 매번 형제님들과 대화하다 보니 제국 사람들은 저희를 모르고 있는 걸 까먹고 있었네요.」
그 글을 보니 짜증이 나지만 책을 돌려주고, 괴인이 책에 끄적일 때 통로에서 사람들이 몰려나오고, 아까 A조를 불렀던 관계자가 다가온다.
“B조 참가자들은 무대로 가셔야 합니다.”
그 말에 괴인은 쓰고 있던 책을 품에 넣고 무대로 올라갔다. 괴인의 정체를 알려고 할 때 대화가 끊겨 짜증이 몰려오지만, 금방 다시 들을 수 있으니 화를 죽이며 무대에 올라간 괴인을 지켜본다.
펑퍼짐한 검은 로브와 복면을 착용한 모습이 눈에 띄는 괴인은, 품에서 단검치고 조금 긴 검은색 특이한 형태의 검 두 자루를 꺼내 든다. 단도를 꺼내든 괴인은 아까까지 약간 모자라 보이던 모습은 사라지고, 기세와 숨소리를 죽이는 모습이 암살을 준비하는 암살자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시작을 알리는 뿔피리의 소리가 울려 퍼지자 괴인은 옷자락을 펄럭거리며 중심으로 향한다. 중심 쪽으로 이동한 괴인은 펑퍼짐한 옷자락을 휘날리며 춤을 춘다. 아니 검무를 춘다. 검무를 추는 괴인의 옷자락이 펄럭거리며 선을 그릴 때마다 한 사람씩 선혈을 내뿜으며 쓰러진다.
그 검무는 아름다우면서도 섬뜩한 느낌을 주는 것이 옛 기억을 자극한다.
해주 법을 찾으며 방랑하던 시절 찾은 남쪽 대지의 깊숙한 곳, 저주받은 정원이라 불리는 숲에서 만난 괴물들이 나를 향해서 저런 검무를 췄었다.
아름다움이라면 첫 손에 꼽는 엘프들과 피부색만 다른 생김새와 몇백 년은 가뿐하게 살아가는 수명. 그 어떤 종족보다 음습하고 배타적이고, 누구에게 물어보더라도 저주받은 존재라고 불리는 다크엘프가, 이곳에서 검무를 추고 있는 모습을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몇백 년을 살고, 수행했을지도 모르는 괴물을 상대하고 우승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저주받은 존재들이 모시는 신에게 축복을 받았다는 사실이, 다크엘프에게 형제님이라고 불리고 있는 상황이 나의 목을 졸라온다.
이런 내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민의 원인이자, 원인을 제공한 다크엘프는 신명나게 검무를 이어나가며 무대를 휩쓴다. 검무는 선과 선을 이으며 반복되다 더 이상 쓸어버릴 것이 없어져서야 멈춰 선다.
한 폭의 그림 같은 아름다운 검무에, 혼자서 모두를 쓸어버리는 압도적인 무력에 관중들은 거대한 함성과 박수를 보낸다. 그에 보답하듯 괴물은 허리를 한 번 숙이고는 아까의 모습과 달리 경박한 걸음걸이로 뛰어온다. 그리고는 책에 글을 끄적여 나에게 내민다.
「제 실력 괜찮죠?」
눈앞의 괴물의 의기양양한 모습이, 칭찬을 해달라는 듯한 그 모습이 짜증나 죄 없는 입술만 씹는다.
“... 그래 조금 하네.”
짜증나는 기분에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대에게 조금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그런데도 그 괴물의 눈은 칭찬을 받은 아이처럼 웃음을 짓는다. 그 모습에 기분이 더 나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짜증나는 기분을 느끼며, 본선은 내일이라 볼일이 없어진 콜로세움을 빠져나가기 위해서 등을 돌린다. 그런 나를 그 괴물이 옷자락을 붙잡고는 책을 들이민다.
「저 생각해보니까 머물 곳이 없는데, 형제님께 신세 좀 질 수 있을까요?」
마음 같아서는 무시하고 거절하고 싶지만, 내버려 두기에는 불안하기에 어쩔 수 없이 승낙을 한다.
“마음대로 해라.”
그 말에 또 눈이 휘는 괴물을 무시하고 걸음을 재촉한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주말에 신청한 일러스트는 빠르면 이번 주에 나올 것 같습니다.
오늘도 부족한 작품을 봐주신 [독자 닉네임 출력]님 감사합니다!
제가 댓글에 대댓글을 다 달아드리지 못하지만, 언제나 보면서 행복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몽디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