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대를 사랑하여 아팠다-12화 (12/59)

제 12화

괴인

콜로세움. 제국의 초창기 황제의 잔혹한 취향의 유흥을 위해 만들어진 사형 집행장이었으며, 죄인들과 포로들에게는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치던 전쟁터.

그런 곳이 지금은 젊은 전사들이 가슴에 꿈을 품고 몰려드는 꿈의 무대이자, 전쟁터가 되어 수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해가 온전히 뜨지도 못한 이른 새벽부터 콜로세움 앞은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 대회에 걸려있는 상금과 상품을 차지하기 위해서, 주체하지 못할 혈기에 의해서, 각자 다른 이유를 가지고 모여든 이들이 무투대회 참가를 위해 파도와 같이 몰려든다.

나 또한 그들과 같이 가슴에 품은 목적을 위해서 콜로세움을 찾았다.

행복을 쟁취하기 위해서, 나를 집어삼킬 악몽에서 도망치기 위해 반드시 우승을 쟁취해야 한다.

다시 한번 목적을 마음에 새겨넣는다. 그리고는 북적이는 인파들의 틈을 뚫고 귀족들을 위해서 만들어진 통행로를 따라 걷는다. 이런 이른 아침부터 찾아오는 귀족은 없어 나 홀로 그 길을 걷는다.

그런 나에게 향하는 시선들이 느껴진다. 그 시선들이 따가울 정도지만 별수 있겠는가. 자기들은 답답한 인파 사이에 끼어있는 상태로 기다리는데, 귀족이라는 놈들은 편하게 가는 모습이 아니꼽게 보이는 걸 이해하지 못할 일도 아니니 그 시선들을 받아들인다.

한적한 통행로를 따라가면 나오는 접수대로 향해 가문의 문양을 보여준다.

“노르먼 백작가의 알릭 노르먼이다.”

신분을 밝히니 접수원은 빠르게 명부를 작성하고는 구멍이 나 있는 상자에서 나무로 만들어진 패를 꺼내서 넘긴다.

“알릭 노르먼님은 예선 A조에 배정되셨습니다. 대기실은 개인 대기실을 사용하시겠습니까?”

“필요 없다.”

개인 대기실이 조용해서 마음을 가다듬으며 준비하기에는 좋지만, 공용 대기실을 사용하면 출전자들 중에 강자가 있는지 파악하기 편하고, 쓸데없는 말들에서도 가끔 쓸만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기에 거절했다.

“그럼 들어가셔서 왼쪽으로 가다 보면 나오는 대기실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깔끔하게 잘 관리된 복도를 조금 지나서 나온 문을 연다. 문 너머의 넓은 대기실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미 자리를 잡은 사람들은 나를 한 번 위아래로 한 번 훑어보고는 다시 자기들이 하던 일들을 한다.

나는 조용히 구석에 자리를 잡고 주위를 한 번 둘러본다. 중앙에 있는 무리는 시장에 있는 장사치들처럼 떠들어대며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그 무리는 그저 세상에 막 나온 치기 어린 아이들 같아 보여 관심을 끊고, 다른 쪽으로 눈을 돌려본다.

구석에 자리를 잡은 이들은 눈을 감고 마음을 다스리거나, 자신의 병장기를 손질하는 모습이 중앙에서 무리를 지은 애송이들보단 괜찮아 보이지만, 특별하게 위험한 자들은 보이지 않는다.

이상하다. 아무리 이름이 좀 알린 자들은 참여하지 않는다지만, 대회 때마다 숨은 보석들이 튀어나와 무대를 빛냈다고 들었는데 그런 자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 자들이 출전하지 않아서 편하게 가면 좋겠지만 그럴 리가 없다. 적기는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 오는 자들도 있고, 가끔가다가 호기심으로 나오는 이종족의 전사들도 있는데 없을 수가 없다. 아마 다른 대기실에 있으리라.

기껏 조용한 개인 대기실도 포기하고 이곳으로 왔지만, 쭉정이와 평범한 자들만 있으니 허탈해진다. 소득이 없어 허탈하지만 별수 없고, 대회의 시작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조용히 명상하며 마음을 다스린다.

그렇게 한참 마음을 다스리다 노골적인 시선이 느껴져 눈을 떠보니, 펑퍼짐한 검은 로브와 복면을 착용하여, 붉은 눈과 눈 주변의 구릿빛 피부를 제외하고는 다 가리고 있는 괴인과 시선이 맞닿는다. 시선이 맞닿은 괴인의 옷차림과 옅은 기척과 호흡이 훈련된 암살자 같아, 본능적으로 검에 손을 올려둔다.

“볼일이라도 있나?”

그 괴인은 고개를 젓고는 나의 옆에 앉는다. 이 넓은 대기실에서 굳이 내 옆자리를 골라서 앉는 괴인의 의도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불편하여 다른 자리로 옮기려 일어나니 괴인은 나의 옷자락을 붙잡는다.

그 행위에 인상을 쓰고 살기를 흘려보내도 그 괴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붙잡은 옷자락을 놓지 않는다. 그 모습에 짜증을 담고 입을 연다.

“뭘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지만 말이라도 해보시지?”

괴인은 입은 열지 않고 품에서 특이한 재질로 보이는 작은 책을 꺼내서 검은 흑연 조각으로 무언가를 적고서 나에게 보여준다.

「화나게 만들어서 죄송합니다. 그저 타지에서 형제님을 만난 것이 기뻐서 그랬습니다.」

형제라고는 생각하기도 싫은 짐승들만 있는 나에게, 형제라고 칭하는 괴인을 보니 인상이 절로 찌푸려진다.

“무슨 오해를 하고 나에게 형제님이라 칭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네가 생각하는 형제는 아니다.”

내 말에 괴인은 다시 책에 끄적거리고 나에게 보여준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신실한 형제님들에게나 주어지는 카이안님의 축복이 당신에게서 느껴집니다.」

카이안 이라는 말에 머리가 아파온다. 전의 삶에서 해주 법을 찾기 위해서 돌아다니다 알게 된 신, 카이안. 그 신은 국교인 아르미스교에서 오래전에 그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이단이라 선포하여 기록이 말소된 존재이고, 지금은 남부의 미친 식인종들과 오랜 세월을 살아가는 엘프들이나 기억할 법한 신의 이름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이 괴인이랑 엮여서는 안 된다.

“모르는 일이고, 나에게 더 이상 말 걸지 마라.”

그 말과 함께 괴인의 손을 쳐내고 반대쪽에 있는 구석으로 이동하고 날뛰는 심장을 진정시킨다.

그 괴인이 왜 나에게 카이안의 축복이 느꼈다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진실이라면 누군가에게 들키는 순간 교단의 이단심판관들이 나에게 찾아올 것이다.

그 미치광이 광신도집단은 한번 맡은 냄새는 포기하지 않고 쫓고, 이단에게는 한 줌의 자비조차 베풀지 않는 것으로 악명 높은 놈들이 나를 노린다고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해진다.

원래는 짐승을 사냥한 다음 무고한 피해자가 없도록 뒤처리만 하고 제국에서 떠나려 했지만, 계획이 틀어지게 생겼다. 잘못하면 짐승도 잡지 못하고 떠나거나, 미치광이들에게 잡혀 고문당하다가 죽게 생겼다.

갑자기 생겨난 재앙에 머리가 복잡해지고 마음은 요동을 치는 것을 억지로 진정시키고, 차분히 생각을 이어나간다.

말 같지도 않은 신의 축복을 받을 만한 일들을 생각해보니 두 가지 가설들이 생각난다. 하나는 전생에서 남부의 이름 모를 제단들을 방문하다가 받은 축복이 그대로 이번 삶에서도 적용되었다는 가설과, 삶의 끝에서 소원을 빌었던 낡은 펜던트가 카이안의 성물이라는 가설이 떠오른다. 생각한 가설 둘 중에서 후자에 마음의 무게가 실리지만 의미는 없다.

축복을 받았을 만한 이유가 생각나 봤자 위기를 모면할 해결법은 생각나지 않는다. 해결법은 생각나지 않지만, 내 상태라도 알아내야 한다. 만약에 신관들이 알아볼 수 있다면, 참가자들의 안전을 위해서 신관이 상비하고 있는 이곳도 위험하다.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그 괴인에게 다시 찾아간다. 괴인은 다시 돌아온 나를 보자 눈이 약간 휘어졌다. 그 모습이 마음에 안 들었지만 괴인의 도움이 필요하기에 참는다.

「다시 생각해보시니 짐작이 가는 부분이 생기셨나요?」

약간 말투가 변해버린 괴인의 책을 뺏어 들고 손을 내미니 괴인은 내 제스쳐를 알아먹고 흑연 조각을 넘긴다. 흑연 조각으로 필기감이 이상한 책에 하고 싶은 말을 쓴다.

「그래 생각났다. 그보다 너는 내가 축복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아봤는데, 다른 사람들도 알아볼 수 있나?」

「카이안님을 모시는 사람들 말고는 알아볼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아니면 저도 이렇게 돌아다니지는 못해요」

그나마 긍정적인 소식에 안심했다. 나중에 축복 때문에 무슨 일이 생길지는 모르겠지만, 괴인의 말이 사실이라면 짐승의 사냥할 계획에는 차질이 없어졌다.

축복이 당장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이 알 수 없는 축복을 알아내기 위해 다시 필기감이 이상한 책에 끄적인다.

「내가 정확히 무슨 축복을 받았는지 모르는데 너는 확인해 줄 수 있나?」

「음 그건 제가 하기 힘들 것 같아요. 하지만 고향에 있는 대사제님이라면 알 수 있으실 거에요.」

급한 불은 껐지만,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축복에 대해서 알아낸 것이 없다는 사실에 뒷맛이 찝찝해진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교단에서 직접 이단이라고 정한 신에게 축복을 받았다는 사실은 마음의 불안감을 고조시킨다. 그 불안감에 입술을 씹으며 다시 흑연 조각을 들었을 때 대회의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이 들어온다.

“예선이 곧 시작되니 A조 분들은 나오시길 바랍니다.”

그 말에 책을 괴인에게 넘기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중에 다시 하도록 하지.”

괴인은 반달처럼 휜 눈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난 그 모습을 뒤로하고 찝찝한 기분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보증된 것 하나 없는 작가의 처녀작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심에 감사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관심에 보답하기 위해서, 또 제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표지 외주를 넣었습니다.

많은 돈을 사용한 건 아니지만 이렇게 하면 의지가 약한 제가 도망치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해봤습니다.

오늘도 부족한 제 작품을 봐주신 [독자 닉네임 출력]님 감사합니다!

레리프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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