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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사랑하여 아팠다-11화 (11/59)

제 11화

봄의 잔향에 잠긴다

어머니의 흔적에서, 어머니의 삶과 아픔, 미련과 소망을 보았다.

그것을 눈에 담으니, 아픔이 몰려온다. 그 아픔을 참을 수 없어, 눈으로 흘려보냈다.

봄의 발자취를 끌어안고 서럽게 울었다.

봄의 따뜻함을 끌어안고 구슬프게 울었다.

봄의 아픔을 끌어안고 아이처럼 울었다.

하염없이 울고 또 울어도 가슴이 아파서, 심장이 부서질 것처럼 아파와서, 봄의 잔향을 놓지 못하고 하염없이 울기만 한다.

봄이 나를 홀로 내버려 두고 가버릴 때도, 이리 아프지 않았다.

봄이 떠나갈 때도, 이렇게 아프지 않았다.

봄이 나를 내버려 두고 가버릴 때는 조금 서운하고 원망했다.

봄이 떠나갈 때는 슬프고 안타까웠다.

그리고는 잊어버렸다.

지금은 봄의 떠난 자리의 잔향 속에서 깨닫지 못한 아픔이, 잊어버렸던 아픔이 함께 몰려온다.

봄의 아픔이 알아주지 못한 후회의 아픔을,

봄의 따뜻함을 기억하고서야 생각나는 아픔을,

봄의 사랑을 알고서야 찾아오는 아픔이, 나를 옭아매고 집어삼킨다.

어릴 때는 봄의 따뜻함과 포근함은 원래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다.

부모가 되고서 봄의 마음을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삶을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삶의 끝을 보고 다시 주어진 삶에서, 어머니의 정원에 피어난 튤립을 보며, 봄과 나와 비슷한 감정과 아픔을 겪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모든 것이 나의 오만이고 착각이었다.

상처투성이인 봄의 따뜻함과 포근함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아픔을 참아내며, 썩어 문드러진 병든 마음을 감추고서 보여주는 그 따스함이, 어찌 당연한 것인가.

봄의 삶을 알지도 못했는데, 그 마음과 삶을 어찌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인가.

봄이 남긴 흔적만을 보고서, 어찌 나와 비슷한 감정과 아픔을 겪었을 것이라 생각했는가.

너무나도 어리석구나... 너무나도 바보 같구나.

나의 삶보다 더 큰 아픔을 품으며 살아간, 봄의 따스함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다.

봄의 삶을 보고서야 알게 된 봄의 마음을 끌어안고, 같이 아픔을 흘려보내고 싶다.

삶의 끝에서도 나를 그리워한 봄을, 대가 없이 사랑해준 봄을 다시 한번 보고 싶다.

지켜준다고 말하고 지키지 못한 봄을, 사무치게 그리워한다. 이제는 너무 오래되어서 흐릿해진 봄의 모습을 갈망한다. 그리고 후회한다.

한평생 갈망했던 봄은 다른 형태로 나에게 왔었다. 처음부터 나에게 주어져 있었다.

하지만 삶의 끝을 맞이할 때까지도 그 사실을 모르며 살았으며, 끝까지 다른 봄만을 찾으며 살았다. 알고자 했으면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조금만 더 생각을 해봤으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할 수 있었음에도 하지 않고, 지금에서야 봄이 지나간 자리만을 찾으며 그리워하는 내가 혐오스러워 오며, 진득한 미련과 후회가 뒤섞여 나를 잠식한다.

편지라도 자주 보냈어야 했는데. 조금 더 자주 어머니를 찾아뵈었어야 했는데. 조금 더 살갑게 굴었어야 했는데. 사랑한다고 말했어야 했는데. 어머니가 나의 어머니라서 행복했다고 말했어야 했는데. 병에 들어 몸져누우셨을 때, 옆에서 돌봐드렸어야 했는데. 임종의 마지막을 지켰어야 했는데. 세상에 남은 미련을 덜어드려야 했었는데...

난 그렇지 못했다... 나를 내버려 두고 가버린 어머니가 서운하고, 또 원망스러워서 편지조차 뜸하게 보냈다.

아비 같지 않은 아비의 하찮고 무가치한 경고가 무서워, 자주 찾아뵙지 못했다.

어머니에게 살갑게 구는 것이 부끄럽다고 생각하여, 그렇지 않았다.

낯 뜨겁다는 이유로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다.

행복 속에서 행복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보여서, 어머니의 아들이라 행복했다고 말하지 못했다.

어머니가 아프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해서, 돌봐드리지 못하고, 어머니의 임종조차 지키지 못했다.

이렇게 멍청하고 바보 같은 아이여서, 어머니가 가시는 길까지 미련을, 걱정을 안겨다 드렸구나.

나는... 나는 봄의 따스함을 당연히 여긴 불효자였다. 따스함에 보답하지 못한 불효자였다. 그저 따스함에 취해 진실에 눈을 돌려버린 불효자다.

그 사실이 나의 심장을 찢어발긴다. 나를 바스러지도록 아프게 한다. 나의 모든 것을 부수어버릴 재해처럼 아픔이 몰려오지만, 무너지지 않는다. 바스러지지 않는다. 부수어지지 않는다.

무너지고 부서져 바스러지기에는, 봄의 잔향에 남은 따스함과 봄이 남긴 소망이 나를 따스히 안아주기에, 나는 그럴 수 없다. 그러하여서도 안 된다.

봄이 나에게 행복을 기도하였다. 그 마음을 알기에, 두 아이를 떠나보내며 나 또한 그리 바랐기에, 무너져서는 안 된다. 주저앉을 수 없다. 봄을 지키지 못했고, 봄이 튤립 앞에서 한 바람을 이루어 드리지 못했지만, 마지막 바람만은 이루어 드려야 하지 않겠는가.

어머니를 가엽게 여기지 않겠습니다. 어머니를 생각하며, 슬퍼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을 괴롭게 한 아비와 형들을 미워하며, 저를 낭비하지 않겠습니다.

반드시 행복하겠습니다, 자유로이 살고 싶은 대로 살아가겠습니다.

그렇게 다짐했으니, 앞으로는 행복을 위해 달려갈 테니, 조금만... 조금만 더 어머니의 잔향을 느끼며 슬퍼하겠습니다. 오늘만 어머니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걱정하지 마소서... 나의 어머니, 나의 봄이시여...

...그리고 많이 사랑했습니다. 어머니의 아들이라 많이 행복했습니다. 그러니 다음 생이 있다면 나에게 와주소서, 그때는 제가 당신의 봄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듣지 못할 봄의 잔향을 끌어안고, 봄에게 하고 싶은 말을 토해냈다. 그리고 지나가 버린 봄의 따스함을, 도려내었던 마음에 다시 한번 터지도록 채워 넣는다. 저물어 버린 봄을 끌어안은 채 아픔을 곱씹는다. 나의 일생에 다음 봄이 찾아올지라도 지나간 봄과 같지는 않으니, 미칠 듯이 아파오더라도 곱씹어 삼키며, 나의 마음에 새겨놓는다.

지나간 봄을 누구 하나 모르더라도, 나 하나만은 떠나가 버린 봄이 이리도 따스했다는 사실을 남기기 위해, 마음에 새기고 아픔을 받아들인다.

세상이 새로운 날을 맞이하기 위해 어두움을 물리칠 여명이 찾아올 때가 되고, 모든 눈물이 마르고서야, 봄이 지나갔음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얽히고설킨 감정들이 다 흘려보내고,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어본다. 봄이 왔음에도 아직은 쌀쌀한 공기가 바람이 되어 들어와 뺨을 한번 간질이며, 쾌쾌하게 묵은 공기들과 손을 잡고서 방을 훑고 떠나간다. 바람이 떠나간 창 너머에 펼쳐진 세상은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건만, 오늘따라 노을 지는 도시의 풍경이 한 폭의 그림같이 펼쳐져 마음을 간질인다.

간질이는 마음에 몸을 맡기고 밖으로 향한다. 황량하다고 생각했던 정원을 가보니, 녹색이 펼쳐진 정원은 생기가 넘친다.

봄이 왔음에도 봄을 알아볼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가까이서 느끼니 또 그렇지는 않구나.

나무에서 막 돋아나 여리고 부드러운 잎은 마음이 편해지는 풀내음을 뿜어내고, 봄에 찾아오는 새들이 정답게 지저귀며, 아무도 심지 않은 이름 모를 풀의 새싹은 이곳에 봄이 왔음을 알리고 있거늘, 지금에서야 보이는구나.

그 봄을 보니 옛 기억이 떠올라 신을 벗는다. 신을 벗고서 부드러운 흙 위를 걸어본다. 부드럽고 약간 서늘한 흙 알갱이들이 발 사이사이를 간질이고, 부드럽고 여린 잔디의 촉감을 느끼며, 봄의 정원을 걸으니 어릴 적 기억이 어머니의 형상을 보여준다.

‘엄마, 엄마는 신발이 있는데 왜 맨발로 걷는 거야?’

‘그건 말이야, 이렇게 맨발로 걸으면, 같은 정원이 또 다르게 느껴져서 그러는 거란다.’

“정말로 또 다르게 느껴지네요... 어머니.”

어머니는 제게서 떠나셨지만, 저는 당신을 마음에 새기고서, 어머니가 없는 세상에서 어머니를 느낍니다. 함께 살아갑니다.

한 송이의 꽃마저 피어나지 않은 정원의 봄에서, 제 삶에 어머니가 너무 깊이 스며들었음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너무 흘려서 말라버렸다고 생각한 눈물이 뺨을 타고서 이름 모를 풀을 적시고, 다시 목이 메어온다.

어머니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아이처럼 눈물이 나옵니다. 이런 모습을 어머니가 보시면 걱정하시겠지만, 그러지 마소서. 어머니보다 나이가 더 많은 기이한 아들은, 수많은 사선을 넘은 전사이니 걱정하지 마시고, 미련을 내려놓으시고, 안식을 취하소서.

그렇다고 하여도 걱정이 되신다면, 꿈에서라도 찾아와 주십시오. 아니 걱정이 되지 않으시고, 하실 말이 없으셔도 되니, 한 번만 딱 한 번만이라도 더 어머니를 보고 싶으니, 꿈에 찾아와 주십시오.

어머니보다 더 나이가 많은 기이한 아들이, 이제는 흐릿한 어머니의 모습을 새로이 새겨넣고 싶습니다. 언제나 기다리며, 고대할 테니 부담 없이 찾아오소서.

그렇게 어머니보다 늙어버린 아들이, 들을 수 없는 어머니에게 희망을 말한다. 남아있는 미련과 아픔이 녹아서 흘러내린다.

모든 아픔과 미련을 흘려보냈으니, 행복을 취하기 위해서, 나를 잠식할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 검을 잡고 휘두른다. 무겁고 불안정했던 검 끝이, 가볍고 경쾌하게 변했음을 느끼며, 수련에 빠져든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부족한 부분이 많은 소설에 이렇게 많은 분들이 봐주시고 반응해주시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네요. 소설을 모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에 보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의 댓글에 모두 답변은 못 해 드렸지만 모두 읽어보고 있습니다. 댓글들에 많을 힘을 얻어갑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소설을 처음 써봐서 문장의 호흡이 너무 길게 만든 건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연재는 매일 저녁 8시에서~10시에 올릴 예정입니다. 연참은 제가 과제랑 시험에 치여서 힘들 것 같습니다.

아수라파천무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수정되었습니다.

tmi) 이번 편 환상에서 나타난 주인공의 모습이 환상 중에서 가장 어릴 적이라, 어머니가 아닌 엄마라는 호칭을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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