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화
불쾌한 하루
무투대회 출전을 위해, 가문에서 출발한 지 칠 주야. 제국의 심장인 벨리아스에 입성했다.
보고 있는 사람이 압도당할 정도로 높은 성벽이 지키는 황도 안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다양한 양식의 건물들과 수많은 사람들이 붐비어 정신이 없을 정도로 번잡하고 떠들썩했다.
일생의 대부분을 넓은 들판이 펼쳐진 북부에서 지낸 나에게는, 이 정신없을 정도로 떠들썩하고 번잡한 수도는 답답하게만 보인다.
답답한 풍경에서 눈을 떼고 도착하기만을 기다린다.
다른 마차들이 많아 속도를 내지 못하던 마차가 느릿한 속도로 한참을 가서야 멈춰 선다.
“공자님 도착했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마차에서 내리니, 본가에 비해서 소박하지만 정갈한 멋이 살아있는 건물이 보인다. 어머니의 임종을 맞이하셨던 저택의 앞에, 시종들과 수도 저택을 책임지는 집사장이 나와서 나에게 예를 표했다.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래. 그보다 형들은 안에 있나?”
“두 분 모두 아침에 나가셨습니다.”
“알았다.”
그놈들은 수도의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여흥들에 미쳐 살았으니, 이런 대낮에 저택에 있을 리가 없지.
가족 같지 않은 인간들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검을 챙긴다. 칠 주야 동안 마차에 앉아있어, 굳어버린 몸을 풀기 위해 정원으로 향한다.
정원이 풍경이 눈에 들어오고, 씁쓸함이 밀려온다. 예전에 찾아왔을 때 보았던 만개한 꽃들은 보이지 않고, 이름 모를 풀들과 원래 있었던 나무만이 자리해 있었다.
겨우 1년 만에 변해버려, 봄이 왔음에도 봄을 찾아볼 수 없는 그 광경이 씁쓸하고 신경 쓰인다. 씁쓸하고 신경 쓰이지만, 해야 할 일이 있기에 검을 뽑고 몸을 풀어낸다.
몇 번 휘두르지 않았음에도, 검 끝이 무겁고 불안정 했다.
그 끔찍한 현상을 훈련 부족이라 생각하며, 무시하고 계속 휘두른다. 무거운 검 끝이 수백 번 흔들리고, 훈련 부족이 아님을 깨닫는다.
추억으로 상처를 메워둔 마음이, 황량해진 정원에 흔들려서 그런 것이다. 이 상황이 마음에 안 들어 한숨을 쉬고, 검을 집어넣는다.
훈련을 매진하기 위해, 흔들리는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어머니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3층 왼쪽 구석의 방. 안주인이 살기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풍경이 잘 보인다며 고집하셨던 어머니의 방문을 연다.
주인이 없어진 방은 관리하기 편하게 흰 천으로 덮어둔 가구들만이 덩그러니 남겨져 있다. 본가와 똑같은 모습에 씁쓸함이 밀려온다.
씁쓸함 속에서 흰 천을 벗겨낸다. 그리고 낯선 가구들이 눈에 들어온다. 담백한 멋이 담겨있던 어머니의 가구 대신, 하인들의 방에나 있을 법한 초라한 가구들이 자리해 있다. 그 모습에 마음이 요동친다.
요동치는 마음이 불길한 생각을 끄집어낸다. 사치가 심한 형들의 씀씀이와 부족한 용돈. 그리고 사라진 고급 가구들. 그 생각에 심장이 거칠게 뛴다.
그 불길한 생각을 부정하고 싶어, 방에 딸린 드레스룸을 열어본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어머니가 착용하시던 장식품들을 모아둔 보석함을 열어본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어머니의 자수를 모아뒀던 상자를 열어본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어머니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은 방에, 숨이 무거워진다.
불길한 생각과 광경에 지금의 상황을 부정하고 싶어. 지나가는 시종을 붙잡는다.
“어머니가 쓰시던 가구와 물건들은 어디로 갔느냐?”
“그것이...”
시종의 이어지지 못 하는 말에, 불길함이 커져서 나를 짓누른다.
“뜸 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보거라.”
“공자님들이 처분하셨습니다.”
“... 알았다 가보거라.
불길함은 틀리지 않았고, 부정하던 나를 조롱한다.
끔찍한 광경에 여러 감정이 뒤엉키며 검게 물들고, 그 감정은 어머니를 잊은 쓰레기들에게로 향한다.
유품은 그 사람의 흔적이거늘. 그런 것인데 남도 아니고 어머니의 유품인데, 어찌 처분한단 말인가.
1년.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겨우 1년이다. 그들에게 대체 어머니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들도 가족이 아니던가.
고작 1년 만에 어머니의 유품들을 처분할 만큼 사치가 즐겁던가, 아니면 어머니를 가족으로도 보지 않는 것인가.
모르겠다. 쓰레기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하고 싶지 않다. 그들을 더 이상 형제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들과 나 사이에 연결된 유일한 끈이 흔들리고, 검게 물든 감정이 그들에게 자신을 토해내라고 외친다. 그 외침에 흔들리지만, 끊어질 듯이 흔들리는 끈이 눈에 밟히기에 참는다.
어머니의 삶이 눈앞의 현실만큼 비참하지 않기를 바라기에, 형들에게 사정이 있었기를 빈다.
눈앞의 광경을 부정하며, 감정을 삭이며 그들을 기다린다.
태양과 작별의 시간이 되어 붉어진 세상이 지쳐 어둠이 깔려올 때쯤, 말들의 투레질 소리가 들려온다.
멀리서 형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목소리에 삭히고 있던 감정이 요동친다. 억지로 그 감정을 짓누르며, 형들을 만나러 내려간다.
1층으로 내려오니 형들이 보이지 않는다. 돌아다니는 시종을 붙잡아 행방을 묻는다.
“형님들은 어디 가셨지?”
“시장하시다고 식당으로 가셨습니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간다.
얼굴에는 주근깨가 가득하고, 금발의 말총머리를 한 조금 마른 첫째 형과 턱이 2개로 보일 정도로 살이 쪄버린 둘째 형이 와인을 마시며 이야기를 하고있었다.
“오늘 크게 먹을 수 있었는데, 막판에 운수가 안 따라서 거지 같네.”
“그러니까 말이야. 막판에 패만 조금만 더 잘 붙어줬으면 다 먹는 거였는데~.”
그 말에 어머니의 유품이 도박 자금으로 사용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고, 짓누르던 마음이 날뛴다.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요동치는 감정을 이를 꽉 깨물며, 다시 짓누른다.
“형님들 오랜만입니다.”
형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래, 오랜만이다. 아이리스 공녀님이랑 약혼했다면서, 팔자 폈네, 축하한다.”
“맞아, 아주 팔자 폈어. 팔자 폈다고 우리 잊지는 말고.”
구역질이 올라온다. 나에게는 저주가 된 일을 팔자가 폈다고 축하하는 첫 번째 형의 말이, 자기들이 한 짓거리는 생각하지 않고 잊지 말라고 하는 두 번째 형의 말이, 나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속이 뒤집혀 더 말을 섞고 싶지 않기에, 바로 본론을 꺼냈다.
“어머니의 유품들은 어디 갔습니까?”
“유품? 어떻게 했드라? 로딕 기억나냐?”
“음, 글쎄. 기억이 잘 안 나네.”
어머니의 유품을 가벼이 여기는 반응에, 이성이 비명을 지르며 끊어지려 한다. 이성을 억지로 붙들며, 다시 입을 연다.
“찬찬히 생각해 보시지요.”
“음... 다시 생각해 봐도 기억이 안 나는데. 갑자기 그런 걸 왜 물어보냐? 돈 좀 급하냐?”
어머니의 유품을 돈 따위로 취급하는, 쓰레기의 마지막 말에 이성이 끊어진다. 끊어진 이성 사이로, 검게 물든 감정과 함께 살심이 올라온다. 살심에 반응하여 기세가 흘러나온다. 기세는 단련하지 않은 쓰레기들의 숨통을 짓누르고, 쓰레기들의 안색이 창백해진다.
“다시 물어볼게. 어머니 유품 어떻게 했어?”
나의 질문이 끝나고, 쓰레기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들이 정말 기억을 못 하는 것인지, 아니면 분위기를 읽고 입을 열지 않는 것 중에서 무엇이 정답인지는 모른다. 그저 어머니의 흔적을 이토록 가볍게 여겨졌다는 사실에 비참했다.
비참함과 검게 물든 감정을 쏟아내기 위해, 주먹을 쥐고 쓰레기들을 바라본다. 역겹고 짜증 나는 쓰레기들의 모습에서, 어머니의 흔적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 흔적들을 부정하지만, 부정할 수 없었다. 부정할 수 없어, 감정이 흔들린다. 감정이 흔들리니 주먹에서 힘이 풀린다. 그것이 싫어 주먹에 힘을 주려고 했지만, 어머니의 모습이 아른거려 힘이 풀린다. 그리고 기억 속 어머니의 말이 들려온다.
‘내가 정을 제대로 주지 못하여 그런 것이니, 형들을 너무 미워하지 말렴.’
아들들에게 무시를 당하면서도, 그들을 옹호해주는 어머니의 말에 기분이 이상해진다. 이상한 기분은, 그들에게 감정을 토해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 생각에 힘이 빠지고, 울분은 길을 잃는다.
길을 잃어버린 울분이 날뛰며, 마음을 어지럽힌다. 그 감각 속에서, 억지로 입을 연다.
“... 더 이상 묻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당신들을 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그리니 저를 동생이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날뛰던 울분에 비해 너무나도 미약한 말을 내뱉고, 쓰레기들을 짓누르던 기세를 거두어들인다. 그리고 길잃은 울분을 죄 없는 벽에 토해냈다. 주먹에 아릿한 통증과 함께 벽에 금이 가며, 주먹의 흔적이 남는다.
그 광경에 쓰레기들의 얼굴이 창백해진다. 그런 쓰레기들의 모습을 더 보고 싶지 않아 등을 돌린다.
힘이 빠져버린 발걸음은 식당을 빠져나와 어머니의 방으로 향한다.
어머니의 임종 장소임에도, 흔적 하나 남지 않은 방에 주저앉는다. 그리고는 뒤엉킨 감정들을 토해냈다.
어머니를 가벼이 여긴 쓰레기들에 대한 울분. 그런 쓰레기들을 옹호하는 자책에 대한 서운함과 가여움. 그리고 이런 상황 몰랐던 나에 대한 한심함과 혐오감을 토해내며, 아비와 쓰레기들과 연결된 끈을 끊어냈다.
끊어진 끈과 함께, 추억으로 채워두었던 마음에 구멍이 생겨나며, 불쾌한 하루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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