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격력 1로 랭커 까지-115화 (116/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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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번째 외전- 오빠라고 불러

9월 18일.

워랜드 날짜로 오후 네시쯤, 오랜만에 나는 전 중앙왕국 광장에 와 있었다.

석제 구조물에 꽃과 비둘기 장식이 달려있는 큰 분수대. 그 분수대를 중심으로 끼고 있는 넓은 초원.

항상 두번째 조각 밑쪽의 그래픽 깨지현상이 거슬렸지만, 은근 인게임에서 핫플레이스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나는 한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슬슬 올 때가 됐는데...”

게임하면서 거의 처음으로 느껴보는 초조함.

다행히 걱정이 들 때 쯤 분수대 반대편으로 누군가가 들어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내가 기다리던 사람이었다.

“오래 기다리셨어요? 저 너무 늦었죠?”

“아냐. 별로 많이 안기다렸어”

사실 체감상으론 4시간도 넘게 기다린 것 같다.

그만큼 내게는 너무나도 긴장되고 떨리는 순간이었으니까.

오늘은 우리의 첫 데이트 날이었다.

“푸흡, 많이 떨리셨나봐요? 엄청 떨고 계시는데”

“그, 그렇게 티나? 그래도 긴장될수밖에 없잖아...”

내 인생을 통틀어서도 첫 데이트인걸.

아마 그녀가 없었더라면 평생 데이트라는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알지 못하고 살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긴장 안하셔두 되요. 그냥 좋아하는 사람 둘이서 같이 여행다니는건데”

“그, 그런가... 그런데 말야. 굳이 꼭 게임 안에서 해야했어?”

모르긴 몰라도 보통 데이트는 현실에서 직접 만나서 하는 거 아니었나.

“현실에서 만나는 것도 좋지만 요즘은 공기도 안좋고, 무엇보다 우리가 처음 만난 곳이잖아요”

“음, 듣고보니 그건 그렇네”

“거기에 오늘은 계절맞이 이벤트도 있는 날이라, 풍경 좋다고 다들 모여들고 있는걸요?”

정말 그녀의 말대로 주변에서 커플로 보이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래서 조금 일찍 나와달라고 한 건가?

[계절맞이 이벤트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벤트 계절 : 가을]

[1년에 한번씩만 돌아오는 계절!

이번 계절은 예쁜 단풍이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가을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전’왕국들의 각 수도에 감춰진 비밀 정원을 찾아내세요.

비밀정원은 한 수도에 한곳 뿐이며, 최초 발견자는 이벤트 기간동안은 제한없이 출입이 가능합니다]

통일제국이 된 후라 그런지 5개의 수도들이 ‘전 왕국’으로 표기되는구나.

방구석에서 홀로 게임하는 모솔 폐인들은 당연히 할게 별로 없는 그야말로 커플 저격 이벤트.

저저번달이었다면 나도 별로 상관 안하고 지나갔겠지만, 이번엔 유희가 엄청 신경을 쓰고 있었다.

“아 그러고보니, 저번달 여름 이벤트는 안 나왔었어요?”

봄가을의 비밀정원 말고도 겨울의 동계스포츠 이벤트라던가, 여름의 바캉스 이벤트 같은것도 꽤 재밌다고 한다.

놓쳐서 많이 아쉬운 모양인데.

“아무래도 지난달은 전쟁 기간이었다보니까. 긴장 바짝 들어가있는 상황이었으니 그런 건 안나오더라. 너만 놓친거 아니니까 너무 풀 죽어 있지마”

“아아”

“자 그럼, 빨리 찾으러가야지?”

“네!”

어차피 경험치 보상을 주는 이벤트도 아니고, 정찬호의 원래 목적대로 그냥 ‘힐링 프로그램’으로 유지된 부분 중에 하나다.

위협이 될만한 몬스터 같은 건 안나올테니 굳이 무장상태로 갈 필요는 없으려나.

목걸이나 반지 같은 장신구는 제외하고 갑옷은 전부 착용해제한채, 오랜만에 생활복차림만으로 그녀와 함께 광장을 나섰다.

* * *

“흐에에... 아무리 찾아도 안 나오네요”

“그러게. 원래 이렇게 찾기 힘든 건가”

“지금쯤이면 이미 누가 찾은 거 아닐까요? 그냥 포기해야 되나”

“아직까지 클리어 메세지가 없었던 걸 보면 다들 못 찾고 있는 거 같애. 게다가 이미 한 번 시작한 도전인데, 끝을 봐야지”

오랜만에 승부욕이 불타올랐다.

…라고는 하지만, 역시 못 찾겠다.

“대체 어디에 있는건데에에!!!”

비밀 정원이라고 해서 주변의 숲이나 호수 같은 곳들은 다 돌아다녀 봤는데도 정말 코빼기도 안 보인다.

“중앙왕국이 제일 풍경이 예쁜 곳이라고는 하지만, 역시 다른 곳을 찾아보는게 답인가?”

그런 것 치고는 다른 왕국의 클리어메세지조차 나타나지 않았으니 그냥 전체적으로 난이도가 상향조정됐다고 볼 수 밖에 없었다.

하긴 전국민의 최소 절반은 즐기는 게임인데 이정도는 되어 줘야겠지.

평균 동시접속자가 한국에서만 천 만에 달하는 게임이다.

[2시간 동안 최초 발견자가 나타나지 않아 첫번째 힌트가 제공됩니다]

[가테즈의 비밀정원 (보기)]

[에란젤의 비밀정원 (보기)]

[레버튼의 비밀정원 (보기)]

[에킬라제국의 비밀정원(보기)]

[‘New!’ 아스칼의 비밀정원 (보기)]

지역별로 각각의 힌트가 제공되는 듯 했다.

“두시간이나 아무도 못 찾았다니... 정말 난이도가 극악이구나”

“일단 에란젤의 힌트부터 펴봐요!”

우리는 동시에 두번째 보기 버튼에 손가락을 가져다댔다.

서로의 손가락이 스치자 잠깐 뻘쭘 했지만 이내 피식하며 서로를 향해 웃었다.

[에란젤의 비밀정원은 그림자가 드리운 곳.

태양의 햇살이 닿지 않는 곳에서 홀로 빛나고 있습니다]

힌트 안에 들어있는 것은 두 문장 짜리 짧은 글귀였다.

“햇살이 닿지 않는 곳..? 홀로 빛나고 있다니”

구체적인 것을 알 수 없는 아리송한 문구.

이걸 가지고 어떻게 찾으라는 거니.

혹시나 해서 다른 왕국의 힌트까지 찾아봤지만, 거의 대부분 비슷한 식이었다.

[이슬방울이 겨레를 이루는 곳]

[시원한 공기를 제일 잘 느낄 수 있는 곳]

등등.

도무지 영문을 알수 없는 글들 뿐이었다.

“그래도 첫번째 힌트라는 건 발견자가 안나올 수록 여러 힌트가 계속 나온다는 소리겠지”

찾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힌트에서 말하고자 하는 걸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림자가 드리운 곳... 그림자 하면 역시 도시겠죠?”

“비밀정원이 숲이 아니라 도시 어딘가에 있다는 소리야?”

대개 이런 이벤트는 자연환경 주변에 있었다고 하니, 도시에 있다면 의외로 찾는 사람이 없는 것도 일리가 있다.

“아니면 숲의 그림자를 말하는 걸수도 있고, 지하나 물속을 말하는 걸수도 있죠”

“...아무래도 그런 곳보다는 도시부터 찾아보는게 낫겠네”

숲은 지금까지 쭉 찾아봤던 곳이니까.

우리는 곧장 처음 왔던 중앙광장의 도시 쪽으로 향했다.

전쟁에서 패배한 연합군 왕국 중에서 유일하게 수도가 보존되어 있는 곳.

가테즈는 이미 폐허가 된 땅으로 물이 흘러들어 거대한 호수들이 줄을 지은 곳이고, 레버튼도 온전치는 못하다.

“역시 우리처럼 생각한 사람들도 꽤 있나보네요”

“응, 저들한테 정원을 넘겨줄 생각은 없지만 말야”

여러 건물을 돌아다니며 그림자가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입구는 어떤 식으로든 일단 찾으면 정원이라는 걸 확실히 알 수 있게 되어있다는데.

역시 안보이네.

“건물 지하 같은 곳에 들어가봐야 되는걸까요?”

“나야 최고기밀등급이 있으니까 들어가볼수야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한테 지하층은 제한된 곳이니까 아마 그런데엔 없을걸”

“에에, 너무 어렵다아...”

유희가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수그렸다.

힘을 뺐는지 자연스레 내 어깨에 기대어지더니 이내 깜짝 놀라며 벌떡 일어서는 것이었다.

“뭘 그렇게 놀라고 그래. 이제 남남도 아니잖아?’

“아, 그랬지...”

귀여운 구석은 여전하다니까.

다시 생각해보니 굳이 정원을 못찾는다 하더라도, 이렇게 그녀와 함께하는 순간만으로도 좋은 것 같다.

그녀는 어떤지 몰라도, 적어도 나는 이 시간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희야, 우리 커플링 맞추러 갈래?”

“에에? 이렇게 갑자기요?”

“현실에서처럼 오래 걸리는것도 아니잖아. 거기다가 혹시 장신구 상점에 정원이 숨겨져 있을 지 누가 알아”

모처럼 데이트인데, 시간에 쫓겨서 이벤트를 찾아다니는 것보다는 이렇게 여유롭게 추억을 만드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내 생각을 읽었는지, 그녀도 고개를 끄덕였다.

“네 좋아요! 빨리 가요!”

잠시동안 이벤트는 제쳐두고 우린 장신구 상점으로 향했다.

“어서오십시요! 뭘 구하러 오셨나요?”

웬일로 상점은 NPC가 아닌 플레이어가 운영중이었다.

“밖에 다들 이벤트 하고 있는데 고생이 많으십니다”

“하하, 저야 뭐 23년차 모솔인데요. 은근 오늘같은 날은 커플 분들이 많이 오셔서 돈이 많이 된답니다”

좋아해줘야 할지 동정해줘야 할지.

“어쨌든. 얘랑 커플링 맞추러 왔습니다. 가격은 상관없으니까 제일 예쁜거로 부탁드려요”

“네넵! 진열대는 이쪽입니다”

벽 한면에 수많은 종류의 반지들이 한가득 걸려있었다.

[순수다이아몬드 커플링]

[가격 : 210만 골드]

[오리할콘 커플링]

[가격 : 80만골드]

이외에도 등등.

추가 옵션은 없이 예쁘기만 한데도 랭커급 장비에 준하는 가격을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다이아 같은 거는 정말 현실세계의 것과 구분하기 힘들 정도인데다 제작수가 세 자리를 넘기지 않았다고 하고.

“음... 이걸로 할까?”

잠시 둘러본 뒤 나는 중앙에서 약간 구석에 놓여있는 반지 한쌍을 집어들었다.

반지 전체를 순수 오리할콘으로 만든 후 위에 에테르석으로 꽃무늬를 새긴 작은 커플링.

푸른빛과 분홍 빛이 은은하게 조화를 이루는 게 바로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에에, 저도 좋긴 하지만... 이거 110만 골드나 하는건데, 너무 비싸지 않아요?”

“내가 돈 걱정은 하지 말라고 했지”

사실 포션 몇개 사본 것 빼고는 랭킹 1위가 될때까지 거의 골드를 써본적이 없었다.

남아도는 게 돈인데 굳이 아낄 필요가 있나.

“이걸로 주세요”

“넵! 110만 골드입니다!”

랭킹 1위가 되며 대부분의 상점을 무료로 이용할수 있다더니, 커플링은 그에 해당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뭐 그렇다고 해도 어차피 돈은 줄 생각이었으니, 나는 망설이지 않고 점원에게 골드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두분 좋은시간 되세요!”

점원이 해맑게 웃으며 인사했고, 우리도 커플링을 챙겨 상점을 나왔다.

“되게 예뻐요”

“그러게. 나도 마음에 들어서 다행이다”

건물을 나와 햇빛을 받으니 꽃무늬의 에테르가 반사된 빛을 품었다.

심지어 저 상점에 하나 밖에 없던 한정판. 이정도면 가격값은 톡톡히 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나저나 아직도 아무도 못찼았네요?”

“어라 그러게? 얼마나 어려운 거야 대체”

이젠 슬슬 눈치챈 사람들이 많이들 도시에 몰려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한번도 메세지가 뜨지 않았다.

[3시간동안 최초 발견자가 나타나지 않아 두번째 힌트가 제공됩니다]

[에란젤의 비밀정원 (보기)]

[레버튼의 비밀정원 (보기)]

[’New!’ 아스칼의 비밀정원(보기)]

그 사이에 남향왕국과 서향왕국은 발견자가 나타난 듯 했다.

그만큼 여기가 어려운 축에 속한다는 건데, 과연 이번 힌트는 뭘까?

“이게 뭐지?”

두번째 힌트는 웬 사진이었다.

돌로 된 석상. 날개가 달린 드래곤을 조각한 것 같은 듯한 모양이었다.

뭔가 이상한 점이라면, 그래픽이 굉장히 깨져있었다는 점.

기술이 발달하며 현실과 구분하기 힘든 그래픽을 자랑하는 이곳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일이었다.

나는 다시 한번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날개가 달린 걸로 봐서는 드래곤이나 와이번 같은 걸 조각한 거 같은데. 이런 게 에란젤에 있었나요?”

“잠깐 이거, 드래곤이 아닌 거 같은데... 뭐야. 정말 아니잖아”

“에에. 그래픽이 많이 깨지긴 했어도 날개랑 몸체는 대충 보이는데 드래곤이 아니라고요?”

유희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영문을 모르는 듯 했지만, 나는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드래곤이 아니라 분수대 밑에 장식된 비둘기야. 워낙 작은 조각품이라 그래픽이 조금 깨져보인거지”

나는 평소 기억을 더듬으며 분수대 밑을 만지작 거리기 시작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아마 조각이 이쯤에 있었을 텐데...

잠시후, 분수대 밑층 부분에서 조그만 새머리 같은 게 만져졌다.

“찾았다”

[에란젤의 비밀정원을 발견하셨습니다!]

[모든 정원의 최초발견자가 나타났습니다. 이벤트가 종료됩니다]

[각 최초발견자분들은 동료와 함께 일주일동안 정원을 제한없이 드나들 수 있습니다]

찾았다!

제대로 찾았다는 걸 알려주기라도 하려는 듯, 분수대에 앉아있던 우리는 곧장 다른 장소로 이동되었다.

“우와, 전 전혀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현우 님은 어떻게 아셨어요?”

“나야 뭐. 그냥 이펙트 깨져보이는 데를 여기밖에 못봤거든. 비슷하게 생겼다 싶어서 혹시나 했지”

그러면서도 유희는 대단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날 쳐다봤다.

뭐, 내가 생각해도 스스로 뿌듯하긴 하니까.

[앞으로 에란젤 광장에 오시면 비밀정원에 입장하실 수 있습니다]

[입장하시겠습니까?]

우리는 단풍장식으로 가득한 아치형 입구 앞에 서 있었다.

“바로 들어가볼래?”

“네!”

나나 그녀나,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고 싶지는 않았다.

* * *

가을.

봄에는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고 겨울엔 감기, 여름엔 모기에게 약했던 내게 가장 좋았던 계절이다.

그리고 오늘 때문에.

단순히 좋았던 계절에서, 1년중 최고의 계절이 되어버렸다.

“좋다. 그렇죠?”

“응, 너무 좋아”

잔잔한 바람이 볼깃을 간지럽힌다.

피로를 싹 풀어주는 느낌을 조금이나마 더 몸으로 느껴보려고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단풍과 어우러져 아름답게 떨어지는 폭포수.

“보는 사람도 없이 이렇게 둘이서만 있는 것도 처음이네”

“...여기서는 눈치 같은 거 안봐도 되는거겠죠?”

“응?”

그 순간, 그녀가 살며시 내 품에 안겨 은근슬쩍 팔짱을 끼려 했다.

워낙 틈이 없어서 그런지 팔이 막혀버리고는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는 것이었다.

“풉, 그냥 말로하지 그랬어”

나는 곧장 어깨를 벌려 유희와 팔짱을 꼈다. 그녀의 표정이 한결 나아진 듯 했다.

감시시스템도 보는 사람도 없고, 완전히 자유롭고 아름다운 장소에 그녀까지.

이 행복을 말로 표현할 길이 없었다.

“살면서 이렇게 예쁜 곳을 와볼 수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어요. 이게 다 현우 님 덕분이에요. 감사합니다!”

현우 님.

현우 님, 현우 님, 현우님...

항상 그녀에게 들어왔던 호칭이고, 다시 만났을 때는 그렇게 반가웠던 호칭이다.

그런데 지금은 왠지 모르게 그게 거슬렸다.

“유희야”

“네?”

지금껏 충분히 만족했었는데, 최고의 상태에 도달하니 확실히 찝찝했다.

오늘부로, 그 호칭을 바꿀거다.

“우리 이제 정식으로 연애까지 하는데, 계속 너만 그렇게 딱딱하게 부를거야?”

“그, 그렇다고 해도 딱히 부를만한 호칭이 없는걸요?”

“없긴 왜 없어. 딱 맞는게 있잖아”

지금이 절호의 타이밍이었다.

나는 잠시 심호흡을 한 뒤, 그 후론 망설이지 않고 그녀에게 말했다.

“오빠라고 불러줘”

심장이 터질 것같이 뛰었다.

처음으로 고백했을때나, 서로의 사랑을 직접 확인한 그날 밤보다도 더.

최소한 그때는 은은하고 조용한 분위기라도 깔려있었지, 지금은 그런 거도 없다.

이 폭포수 전체가 말하는 것 같다.

그냥 마음이 가라는 대로 하라고.

“저야 상관없긴 하지만...”

“제대로 부르기 전엔 대꾸 안해줄거야. 자, 한 번 불러봐”

어색해서 그런지 유희는 좀처럼 입을 열지 못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피식 올라가는 입꼬리가 그녀의 현재 기분을 말해주고 있었다.

“어떡할래. 불러 줄거야, 말거야?”

“푸흡... 당연히 거절할수가 없죠”

그러더니 그녀는 아예 대놓고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걸 놀리기라도 하듯.

슬슬 가슴이 떨려 죽을 것 같을 때 쯤, 그녀가 완전히 내게 안기며 귓가에 속삭였다.

“현우 ‘오빠’”

이젠 묘사도 못하겠다. 그냥 심장이 터져버렸다.

더는 못참겠어.

촤악!

수면에 부딪힌 폭포세례가 수면 위로 튀어올랐다.

물방울들이 차갑게 적셔울 때.

나는 품에 안겨있는 그녀와 입을 맞추었다.

새들은 우리를 축복하듯 나무 위에서 잔잔하게 노래를 불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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