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정 -->
113화
어떻게인지는 모르겠지만, 유희 내앞으로 다가와 대신 검을 맞은 상태였다.
[유희 님이 일회성 스킬 ‘수호천사’를 사용하셨습니다]
[지정된 플레이어에게 가해지는 모든 공격과 상태이상 효과를 무효화시킵니다]
[지정된 플레이어를 공격한 대상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킵니다]
무슨 상황인지는 아직도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나는 살았고 그녀가 대신 맞았다는 것.
손상된 날개가 해제되고 균형감각을 되찾자마자 나는 바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대체 이게 무슨일이야... 괜찮은 거야?”
“저, 전 괜찮아요... 그러니까, 싸움을 끝내주세요”
전혀 괜찮지 않은 모습이다. 조금 있으면 죽을 거야.
아니, 이미 죽었다.
HP는 0인 상태. 캡슐 밖으로 튕기기 전에 잠시동안 버티고 있는 것이다.
“이걸... 이걸 써주세요...”
이내 유희는 흰빛 이펙트로 변해 흩어졌고, 그녀가 쓰러져있던 자리에는 검 한자루가 놓여있었다.
그 검을 보자마자 나는 바로 정체를 알아차렸다.
“카르킨의 검?”
아직 엘카피에 꽂혀 있었을텐데, 그새 뽑아낸 건가?
그 사이에 일시적으로 마비상태에 있었던 케인이 일어섰다.
“흑기사 스킬 같은거라도 있었던 건가. 쳇, 아깝네”
“…진짜 죽었어, 너 이새끼”
유희도 진짜로 죽은 게 아니고 이젠 언제든지 현실에서 만날 수 있지만, 그러니까 저 녀석도 진짜로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단지 게임속에서 그만큼 죽여놓을 거다. 다신 돌아올 생각도 하지 못하게.
나는 오른손에 가엔을 쥔 채, 왼손으로 카르킨의 검을 잡았다.
처음 쥘 때는 어색했지만, 그래도 몇 번 연습을 해본 뒤라 그런지 금세 잡는 게 익숙해졌다.
“이도류? 이제부터 제대로 하겠다는 거냐. 뭐 좋아, 나도 이제부터가 진짜니까 말이야!”
내가 영문을 몰라하고 있을 때. 갑자기 녀석의 검에서부터 뻗어나온 붉은 빛이 일직선으로 내게까지 닿았다.
“얼티밋 스킬?”
그리고 잠시후.
거대한 기류가 내게로 곧장 날아왔다.
“미친!”
평범한 바람기류가 아니었다.
공기가 너무 많고 빠르게 밀집되어 그대로 고체화된 듯한 날카로운 기류.
깡!
검을 교차해서 막는데 쇳소리가 날 정도였다.
심지어 가만히 막으며 버티고 있으니 계속 날아가려고 한다.
“흐아아아!”
검을 든 양팔을 앞으로 강하게 밀쳐내자 그제서야 기류가 흩어졌다.
강하다. 너무 강해.
그래도 얼티밋 스킬이니 소모값이 엄청나겠ㅈ... 잠깐.
“맞다 시발, 여기 소모값 없댔지?”
얼티밋 스킬 같은 경우는 쿨타임도 긴 편이지만, 쿨타임이 짧은 대신에 소모값이 무지막지하게 높은 구조라면...
진짜 좆됐다.
“하하하하!”
방금 전에 쓴지 얼마나 되었다고 곧바로 다시 기류가 날아왔다.
“젠장!”
이번엔 쌍검을 휘두르며 맞기류로 동강냈지만, 팔에 엄청난 무리가 갔다.
계속 이렇게 막긴 힘들텐데, 불행인 것은 저 공격은 계속 날아올 거라는 점이었다.
“죽어! 죽어! 죽어!”
붉은 빛 이펙트가 나올때 피해도 계속 날 따라왔다.
유일하게 피할 시간은 스킬 시전이 시작된 후 뿐인데, 그림자도약이나 유화술로 두 번 피해도 그 다음은?
채앵!
세 번째 기류검을 간신히 막아냈다.
이제는 더이상 거리를 주면 안돼.
아주 잠깐동안 기류검이 쿨타임일때. 나는 재빨리 케인에게 접근했다.
롱소드를 잃은 녀석은 어쩔 수 없이 단검을 뽑아 상대했고, 눈으로 일일이 확인하기도 힘들 정도로 공방이 빠르게 오갔다.
분명 리치에서 내가 우위를 점하고 있었음에도 그는 쉽사리 빈틈을 허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속도로 몰아붙히면, 과연 그래도 버틸까?
챙챙!
양쪽에서 다가오는 단검을 가엔으로 막음과 동시에 다른 손으로 카르킨의 검을 내질렀다.
공격력을 갖고 있지 않은 녀석이라 오브젝트 데미지만 들어가지만, 워낙 속도가 빨라 꽤 아플 것이다.
슬슬 녀석이 힘에 부쳤는지 뒤로 도주해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다시한번 나타나는 붉은 색 이펙트.
확실히 저걸 쓴다면 내가 쉽게 접근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지.
하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오만상 힘들긴 해도, 워랜드에 탈진이라는 건 없어”
물론 정말 없다는 게 아니다.
강력한 스킬을 사용한 직후에는 분명 지치긴 하지만, 그건 정신력을 소모해서 몸에 명령을 내리는 능력을 현저히 줄인 것.
즉 정신만 바짝 차리고 죽을 각오로 움직이면 난 무한정 저 기류검을 막을 수 있다.
다음 기류검이 날아온 순간.
다시 한번 검을 엑스자로 교차해 막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튕겨내지 않았다.
“하아아아아아!!”
뚫고 나가려는 녀석을 계속 붙잡고 있으니 가뜩이나 지쳐있던 팔이 떨어져나갈것만 같았다.
직접적인 고통을 느끼지 않게 해주는 시스템이 고장난 것만 같았다. 현실에서의 ‘진짜’ 고통이 느껴지는 듯 했다.
흔히 근육이 비명을 지른다고 하는 표현.
현실에서도 체육관 한번 다녀본 적 없는 내게는 처음으로 느껴보는 고통이었다.
하지만 그 느낌을 모르긴 몰라도 지금과는 다를 것이다.
이건 현실이 아니다.
현실에선 정말로 팔이 부러질 지 몰라도, 이곳에선 그냥 무진장 아플 뿐 팔은 멀쩡하다.
제길, 조금만 더 버텨줘!
기류검을 계속 붙잡고 있느라 무방비 상태라는 걸 눈치챘는지, 케인이 곧장 내게 다가왔다.
녀석이 옆으로 다가와 내 앞까지 온 그 순간.
나는 눈을 부릅떴다.
“걸렸다!”
“…!”
양손에 쥔 검이 기류에 닿은 그 상태. 그림자 도약으로 순식간에 케인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틀은 뒤 곧장 그쪽으로 기류검을 튕겨냈다.
거대한 폭발음.
마지막 순간에 그가 비명을 질렀는지, 무슨 표정을 지었는지는 알 수 없게 되었다.
그 장면을 마지막으로 결투 결계가 해제되었다.
[승리자: 현우]
[패배 패널티로 케인 이 사망합니다]
결국 마지막 얼굴을 보지 못하는 건가.
아참.
“승현아! 괜찮은 거지?”
“으윽, 네! 몸은 멀쩡해요!”
몸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버프를 줄 사람도 없는데다 시간도 부족하다.
검으로 승현이를 묶고 있던 사슬을 끊어낸 직후,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형! 괜찮아요?”
“으응, 아직은”
승혀이의 부축을 받으며 조심스럽게 일어날 때쯤. 마력이 응축된 포탈이 심하게 흔들렸다.
아마 소환이 거의 다 되어가고 있는 거겠지.
"이제 저걸 어떻게 막아야 할까"
"충격탄 가져왔잖아요? 그걸 쓰죠"
승현이는 인벤토리에서 충격탄을 꺼내 있는 힘껏 포탈 쪽으로 던졌다.
대부분의 포탈 소환마법은 이런 식으로 마비나 기절 효과를 넣어주면 자동으로 끊기게 된다.
그런데 아무래도 얘는 예외인것 같네.
"cc기가 먹히지 않는다니.. 역시 그냥 폭발시키는 수밖에 없나?"
"아무래도 그런 거 같은데요"
말 안해도 알고 있겠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검으로 저 포탈을 없앨 수는 없다.
마검 블러드 터스터를 켠 상태로 풀스택, 아니 오버스택을 만든 다 한들 부술 수 있을 지 의문이었다.
그럼 엘카피한테 맡겨야지.
“아까 지도에 보면 마나 장막 생성기 있었지? 가서 그걸 부수고 엘카피한테 연락해서 성을 부수라고 해”
“형은요?”
“난 여기서 포탈을 감시하고 있을게. 혹시라도 녀석이 너무 일찍 소환돼면 누군가는 시간을 벌어야하니까”
아마도 나와 승현이는 이 자리에서 한번은 죽어야 될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다시 살아날 거, 상관없잖아?
“빨리가! 이젠 정말 시간이 없어”
“네, 넵!”
그렇게 승현이는 계단을 타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가 사라지고 잠시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포탈이 강력한 중력을 발산하며 날 끌어당겼다.
“윽! 뭐, 뭐야?!”
이상하게도 오직 나에게만 작용하는 인력.
스킬도 전부 차단되어 도망칠수도 없었고, 딱히 짚고 버틸 곳도 없었기에 나는 그대로 포탈 속에 빨려들어갔다.
“어어억!”
평소에 몬스터를 소환할때나 보던 소환용 포탈에 내가 들어가다니.
느낌은 딱히... 썩 좋지는 않았다.
끈임없이 빨려들어갔다.
점점 더 안쪽으로, 내가 있던 워랜드와는 훨씬 멀어지는 게 느껴졌다.
게임을 넘어가 이 게임을 이루는 코드 하나, 아니 그보다도 더 작은 단위까지 파고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
뭔 개소린가 싶겠지.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건지 모르겠다.
하여간에 중요한 건, 정말 정말 느낌이 이상하다는 거다.
“흐헉! 흐억... 허억...”
잠시후, 끈임없이 빨려들어가기를 멈추고 나자 웬 공간에 와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부터 달려오고 있는 한 존재.
저 너머 차원에서부터 부름을 받아 오고 있는 캣츠의 마지막 소환수.
그 얼굴을 봤을 때, 오싹한 기운이 전신을 감아올랐다.
“…!”
그것은...
최종화 完.
2회의 추가외전 연재 후 에필로그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