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정 -->
111화
“대체 그건 뭐였을까”
“맞자마자 전부 죽어버렸으니 알수가 있나. 그래서 지금 이렇게 엘카피의 녹화기록을 보고 있는거잖아”
나는 폐허가 되어버린 중앙광장을 보며 말했다.
우리가 이벤트를 끝내고 거의 바로 날아온 정체모를 붉은 광선.
하늘에 떠 있었던 엘캐피탄에선 혹시 뭔가가 보였을까 해서 블랙박스를 확인하려던 참이었다.
위에 있던 사람들은 제대로 못 봤다고 하긴 했는데, 그래도 저쪽엔 뭔가가 잡히지 않았을까 해서.
“대충 이때쯤인거 같은데. 이때 막 포탈에서 나와서...!”
우리가 이벤트를 클리어하고 나온 그때 쯤.
로드란의 거대한 호수 주변의 공간이 일그러지며 갑자기 무언가가 나타나는 것이 보였다.
“캣츠 본거지성...”
은신마법으로 꽤 오래전부터 그곳에 숨어있었던 듯 했다.
중앙의 높은 탑에서 쏘아져나온 빛이 보호막에 반사된 뒤 곧장 광장으로 떨어지는 장면이 전부 녹화되어 있었다.
그 뒤, 본거지성은 텔레포트로 다시 사라져버렸다.
“바로 앞까지 와 있었는데도 눈치 못채고 있었다니”
소름이 끼쳤다.
지금쯤 녀석들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가 찾을 수 있기는 한걸까?
* * *
중앙광장은 공격으로 박살나버렸지만, 아틀란티스의 도움과 마법들 덕분에 빠르게 복구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의 분위기는 여전히 암울한 상태였다.
“계속 이렇게 축 쳐져있지만 말고 뭔가 생각해보는게 어때?”
“예를 들면 어떤거를요?”
“생각해볼거야 많잖아. 본거지성은 지금쯤 어디에 있는건지, 무슨 패턴으로 움직이는 건지, 녀석들이 소환하려는 건 과연 뭔지 등등”
지난 며칠동안 상위 마법사들과 엘캐피탄으로 돌아다니며 수색작업을 계속했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패턴조차 알 수가 없다.
“지금까지 확인되었던 위치는 서향왕국 수도랑 지금 이번, 로드란 뿐이니까“
“그러고보니 둘 다 왕국수도네. 그쪽도 조사해봐야되는거 아니야?”
“그럴 줄 알고 제일 처음으로 전부 다 가봤지. 에란젤, 레버튼, 아스칼 전부 다. 하지만 없었어”
전쟁이 끝나고 아틀란티스로의 텔레포트는 차단되었으니 그쪽으로 갔을 확률은 적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소환하려는 것도 불분명해”
지금까지 나타나왔던 몬스터들로 짐작해보면 최상위 언데드의 일종이 하나가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데스나이트와 어비스나이트들을 그렇게나 소환하고도 남는 차원석으로 불러들이게 될 소환수.
과연 그정도로 강력한 소환수가 현존하는 언데드 중에 있을까?
“발견되지 않았던 몬스터일지도 몰라. 아니면 엄청나게 많은 수를 소환하는 거라던가...”
“그건 좀 끔찍하다”
지금까지 수백만에 달하는 언데드들을 상대해왔다.
그럼 최종 소환 때는 대충 억 마리 정도 된다는거야?
“차라리 그냥 존나 쎈 애 한명 상대하는 게 낫지 어우...“
그 순간.
공중에 떠 있던 엘카피의 주위로 약한 바람이 불었다.
아니, 바람보다는 약한 파장같은 느낌.
그리고 그와 함께 날려오는 검붉은 빛가루.
“마계 소환 이펙트? 하지만 근처 레이더에서 소환마법은 감지가 안되는데요”
“애초에 레이더에 잡힐법한 위치였다면 이 높이까지 이펙트가 올라오지도 않았겠지. 이 근처에서 발생한 마법이 아니야”
“그럼 어디에서 날아온 건데?”
지금 엘카피가 떠 있는 높이까지 날아올 만한 고도에서 소환마법을 펼쳤다는 건데, 메멘텔 산에서 쓰기라도 했나?
다들 영문을 몰라하고 있을 때, 오직 테오만이 뭔가를 눈치챈 듯 눈을 부릅뜬 채 벌벌 떨고 있었다.
“야, 왜 그래?”
“함선을 최대고도까지 띄워주세요! 지금 당장!”
대답할 틈도 없이 그는 함교를 향해 소리쳤고, 조타수도 마찬가지로 어리둥절해하며 일단 함선을 높이 올렸다.
시스템의 투명천장에 닿기 직전의 높이까지 올라오자, 대륙 너머의 북쪽 바다까지 보일 정도가 되었다.
“저기 바다쪽 너머에 작은 먹구름 쪽을 확대해서 보여주세요”
“혼자만 알지 말고 설명좀 해주지 그래? 최소한 우리도 무슨 일인건지는 알아야...!”
하지만 북쪽 바다를 최대배율로 확대한 화면이 비춰지자, 그런 것은 전혀 필요없게 되었다.
대륙 한참 너머에 몰아치고 있는 커다란 폭풍.
그 폭풍 한가운데에 캣츠의 본거지성이 부유하고 있었다.
“어디로 텔레포트했나 찾아다녔는데 저런 곳에 있었다니... 잠깐, 주변의 폭풍도 그냥 바람이 아니잖아”
아까전 아스가니아 대륙 남쪽까지 불어왔던 검붉은 빛.
마계의 존재를 불러내는 소환마법을 사용할 때 나타나는 이펙트가 소용돌이 치고 있던 것이다.
그 순간 확신했다.
저게 캣츠가 마지막으로 소환할 가장 강력한 존재라고.
“...어떻게 할까요?”
“당연히 가서 막아야지. 뭘 생각하고 있어”
소환 중에 발견해서 천만다행이지만, 저거 소환될때까지 내버려뒀다간 그대로 끝이다.
하지만 워프까지 해서 본거지성 바로 앞까지 다가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함선에 달려있는 주포를 쏴 봐도 전혀 부서질 기색이 안 보인다.
“얼티밋 스킬은 왜 안쓰고 있는건데? 그거 쓰면 바로 박살날 거 같은데”
“방금 쐈던 그게 얼티밋 스킬이었는데?”
“…시발 뭐?”
방금 쐈던 그거라면, 잔뜩 충전해서 쏘길래 기대했다가 성 외벽 맞으니까 데미지 1도 못 내고 흡수되버린 그거?
난 또 무슨 부포인줄 알았지!
“원거리 견제로 막을 방법은 전혀 없다는거냐”
그렇다면, 우리가 직접 저 성 안으로 들어가는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들어가라고. 폭풍을 뚫고 성이 있는곳까지 내려주기엔 엘카피가 너무 크잖아”
“아아! 그러고보니 여기에 비행아이템이 있지 않았나?”
“엥? 무슨 비행 아이템?”
지금까지 워랜드를 하면서 그런 게 있다는 소리는 못들어봤는데.
“저번에 아틀란티스 쪽에서 선물해줬던 건데, 엘카피에 아마 네 개 정도 있을 거에요. 따라와보세요!”
승현이가 밑층으로 내려가며 우리에게 손짓했다.
최하층의 비상 에어락까지 내려가자, 벽면에 무슨 아이템이 걸려있었다.
[라비린토스의 날개]
[본래 밀랍으로 만들어진 흰빛의 날개. 아틀란티스의 기술로 한층 튼튼하게 다시 태어났다.
장비창에서 등장식으로 착용하면 비행이 가능하다]
간단한 설명이었지만, 지금 꼭 필요한 물건이었다.
“이런 게 있다는 건 듣도보도 못했네. 설마 그냥 장식품이고 달아도 못 나는 건 아니겠지?”
만약 그렇다면 나는 에어락 밖으로 뛰어내리자마자 바다에 추락해 물고기들과 인사를 하게 될 것이다.
만우절도 아니고 설마 워랜드가 그런 장난을 치지는 않겠지.
“시간이 없어! 속전속결로 끝내야돼”
소환이펙트가 휘날리는 형태로 보아 소환은 지하층에서 이루어지고 있을 것이다.
날개를 달고 뛰어내리자마자 바로 성으로 날아가서, 소환이 이루어지고 날려버릴 생각이었다.
“굳이 부수지 말고 CC기로 끊는게 어때?”
“저 정도 소환을 끊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CC기 스킬이 있을 지는 모르겠다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충격탄 준비해둬”
이제 정말 시간이 없었다.
곧 있으면 저 성 안에서 굉장히 강력한 무언가가 튀어나와 이 세계 전체를 찢어발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가자!”
날개를 단 건 나와 엔초, 유희.
원래는 유희 대신에 승현이나 테오를 데려갈 생각이었지만, 이내 마음을 바꿨다.
왠지 저번에 정찬호로부터 들었던 말이 생각나서.
‘항상 옆에 있는 뮤즈를 잘 활용하라고’
지금이 아니면 언제일까.
만약 어떤 방법으로라도 그녀가 활약을 하게 된다면 지금이 가장 절실히 필요한 순간이었다.
쿵!
에어락이 열렸고, 우리는 날개를 단 채로 한번에 함선에서 뛰어내렸다.
[다이달로스의 날개가 발동됩니다]
[앞으로 10분동안 제한없이 공중을 비행할 수 있습니다. 단 투명천장 이상의 고도로는 불가능]
이전 계정까지 합쳐서 워랜드를 시작한지 근 2년.
나는 처음으로 자유롭게 하늘을 날았다.
날아갈것처럼 가벼운 느낌도 아닌 그야말로 완전한 비행.
바람을 맞으며 떠다니는게 나름 기분이 좋았다.
“아차, 이럴 때가 아니지”
최대한 빨리 성으로 날아가던 그때.
성문에서 무엇인가가 나와 우리 앞을 가로막았다.
[데몬 워리어 Lv. 428]
등에는 얇고 구멍뚫린 날개가 달린 채 양손으로 잔뜩 구부러진 검을 들고 있는 몬스터.
얼굴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져 있는 난생 처음보는 신규 몬스터였다.
“그렇다고 쟤네가 캣츠의 마지막 소환수인것 같지는 않네”
드래곤에 필적하는 오버레벨이긴 했지만, 저게 캣츠가 7천만년이나 차원석을 모아 소환해낸 몬스터로 보이지는 않았다.
아마도 우리를 막기 위해 보낸 거겠지.
많이 시간을 버릴 순 없다.
“하아아압!”
공기를 걷어차며 돌진해 한 녀석의 뒤로 돌아가 날개를 베자, 녀석이 그대로 바다에 고꾸라졌다.
한 놈 잡았고, 이제 두 놈이다.
“으윽!”
곧바로 다음 녀석에게 유화술을 타 날개를 자르려고 했지만, 방금 전 그 녀석처럼 당하지는 않았다.
금세 배웠는지 철갑 같은 것으로 날개를 보호한 상태.
때문에 검을 휘두른 손이 튕겨져 나갔고, 그 틈에 옆구리를 살짝 베였다.
[HP : 60%]
한번 스쳤다고 이 정도라니.
미리 에렌의 후예로 각성한 상태라 즉사는 피했지만, 계속 맞아주긴 힘들 것이다.
승현이와 유희의 버프를 받으며 한 놈을 상대할 동안 나는 다른 한 놈을 맡았다.
검과 검의 공방을 주고 받으며 30타 정도가 되었을 때.
“유희, 피흡 버프!”
“네!”
[유희 님의 기적 주문으로 생명력 흡수 효과를 획득합니다]
[10초동안 공격으로 입힌 피해량의 100%만큼 회복합니다]
이델클로를 잡는동안 문득 생각나 유희에게 미리 부탁했던 버프.
덕분에 걱정 없이 마음껏 마검 블러드터스터를 뽑을 수 있었다.
“하아아압!”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
오버레벨인 데몬조차도 따라오기 힘들어하는 속도.
공방을 주고 받는 검이 흔들리는 걸 감지한 그 순간.
날개를 멈춰 밑으로 떨어진 뒤, 곧장 그림자도약으로 치고 올라오며 녀석의 턱을 날려버렸다.
“됐다!”
때마침 승현이도 나머지 데몬을 처치한 상황.
왠지 유희가 너무 지친 듯한 기색이다. 하긴, 나도 좀 빡셌는데 승현이는 죽을 맛이었겠지.
“그래도 다들 안죽고 잡았으니까. 다행이네. 자 이제 막을 것도 없겠다, 가자!”
최종적인 적이 기다리고 있을 본거지성을 향해서.
우리는 휘날리는 바람을 뚫고 캣츠의 검은 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