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타, 한계돌파 -->
110화
피융 쾅!
로드란 중앙광장이 순식간에 사람들로 북적였다.
보스 챌린지 이벤트 때문에 텔레포트 포인트가 있는 모든 곳이 플레이어로 북적일테지만, 로드란이 유독 많았다.
그도 그럴게 케인은 전쟁 뒤로 관짝 들어갔고, 이젠 워랜드에서 가장 인기있는 내가 있는 곳이니까.
살짝 자뻑처럼 보였나?
피융 쾅!
거기다가 이곳은 공중에서 엘카피를 통해 저런 폭죽쇼까지 펼쳐주니 너도나도 로드란으로 몰려든 것이었다.
“워랜드 최강의 무기를 갔다가 폭죽 발사대로 쓰고 있다니, 황제가 뭐라 안하냐?“
“어차피 한번 있을까말까한 축제인데 즐겨야되지 않겠냐면서 맘껏 쓰라 하시더라”
저걸 허락해준 황제도 이상하지만, 그걸 또 당당하게 받아온 테오도 대단하다.
“오오 미친! 진짜 있어!”
“현우 님 저 사인 한번만요!”
“야야 나도 좀 보자! 뒤쪽은 아예 안보여”
이놈의 인기를 어떻게 해야할까.
이러면 뭐 게임 안에서 사생활이 없잖아.
“이번거 끝나면 좀 숨어살아야겠다”
“얼씨구, 아예 선글라스랑 마스크까지 준비해드릴까요?”
어쨌든 사람이 많이 모였어도 우린 앞줄에 서있었고, 덕분에 빠르게 던전 챌린지를 시도할 수 있었다.
[6인파티가 확인되었습니다. 던전 챌린지에 도전합니다]
[2회의 재도전이 가능하며, 셋 중 가장 빠른 기록이 최종결과로 인정됩니다]
[입장하시겠습니까?]
포탈 앞에 서서 우린 바로 확인을 눌렀다.
이윽고 블랙홀 같은 것이 우리를 빨아들였고, 잠시 후 우리는 북적이는 광장을 떠나 황폐한 사막으로 이동해 있었다.
[보스 챌린지가 시작됩니다]
[이벤트 보스 몬스터 : 수호신의 이데클로가 출현했습니다!]
출현했다는 것 치고는 아무것도 안보이는데.
“우리 제대로 온거 맞지?”
“배경이 사막이라는 건 이해하는데, 정작 보스 몬스터가 안보이잖아”
은신스킬이 있는 녀석인가. 아니면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는 녀석을 상대해야 한다거나.
그러나 그 궁금증은 금세 풀렸다.
휘이이잉.
모래먼지가 날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막에서 모래먼지 날리는게 뭐가 이상한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모래먼지가 불고 불어 모래폭풍 규모로 몰아친다면 주목할 만 하지.
“으윽! 보스는 어딨고 난데없이 바람인데?!”
모래폭풍은 끈임없이 커져가는 듯 싶더니 이내 다시 잠잠해졌다.
그리고 바람이 물러간 자리에는, 거대한 샌드웜 한마리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저게 이데클로?”
뭔가 수호신이라는 이름과 사막 배경 때문에 고대 이집트의 석상 같은 모습을 하지 않았을까 했는데, 하필이면 샌드웜이라니.
참고로 말하자면 나는 비위가 좀 약한 사람이다.
피튀기는 건 잘 보지만 수술장면이라던지, 특히 이런 식으로 역겹거나 징그러운것도 딱 질색.
유희도 마찬가지인거 같네
“저 무서워요...”
그녀가 내 오른팔에 안기며 울먹였다.
이러니까 좀 좋은거 같기도... 크흠.
“어쨌든 빨리 잡는게 좋겠지? 기록 챌린지도 있고, 다들 얘랑 오래 놀고 싶어하진 않는거 같으니까”
말은 그렇게 해도, 이미 나는 각성모드를 해제한 후였다.
획득한 뒤 근 한달 동안 애용하던 ‘에렌의 후예’.
대적할 사람이 없을정도로 강하게 만들어준 녀석이긴 했지만, 이번에는 그냥 공격력도 HP도 1인 그때의 모습으로 싸워보고 싶었다.
“확실히 한대도 안맞고 피하는 맛이 있었단 말이지”
[이름: 현우]
[레벨 : 242]
[직업: 과학자]
[아스칼 개국공신/최강 랭커/처형인]
[HP : 1] [공격력 : 1]
[방어력 : 1,800] [민첩 : 525(+250)]
[마나, 지능, 신앙 스탯을 요구하는 스킬을 배울 수 없습니다]
괜찮네(?).
레벨과 칭호, 민첩만 화려하고 나머지는 다 망한 상태창.
예전에는 빈약한 HP와 공격력이 너무 거슬렸지만, 오랜만에 보니 이젠 이렇게 그리운게 없었다.
“민첩 상태 봐라 오우야... 이러니까 그리 빨랐지”
775의 민첩.
마검각성을 켰을 때라고 생각하면 대충 생각해봐도 2천이 넘어갔다.
애들이 다 썰린데에는 이유가 있었구나.
“셰에에엑!”
이제부턴 진짜 전투의 시작이었다.
샌드웜 이델클로는 땅 밖으로 삐져나와있는 큰 머리를 이리저리 휘두르며 우리를 공격했다.
하지만 테오와 승현이가 방패로 막아주고, 나나 엔초도 손쉽게 회피해서 그리 어려운 상대는 아니었다.
“수아. 유희 데리고 멀리 물러나있어!”
“안그래도 이미 물러나 있거든!”
미리 도망쳐있었던 거냐...
깡! 깡! 깡!
“윽, 젠장”
예전 상태로 돌아오면서 유일하게 암걸리는 부분.
공격력이 1이 되었다보니 방어력을 뚫고 들어가는 데미지가 아예 없었다.
20스택이나 쌓였는데, 공격력이 25배나 증가 했는데도 이꼴이라니.
잠시후 30스택이 되자 그제서야 겨우 한자릿수의 데미지가 들어가기 시작했다.
“쉬에에옉!”
“헙!”
60타 쯤에 마침내 어그로가 내게 끌렸다.
머리로 날 들이받으려는 녀석의 공격을 점프해서 피함과 동시에 곧장 녀석의 뒷머리에 올라탔다.
인벤토리에서 미리 준비해두었던 단검을 들어 있는 힘껏 녀석의 머리에 꽂아박았다.
[치명적인 일격을 가하셨습니다!]
[해당 공격으로 입는 피해가 3배로 증가합니다]
[출혈효과를 발동합니다. 무기가 꽂힌 동안은 지속 고정피해를 입힙니다]
머리에 자상을 입히자 녀석이 순간적으로 경련했고, HP가 순식간에 닳아가기 시작했다.
근데 얘는 그러면서도 잘만 움직이네. 원래 뇌가 없는건가?
“뭐야. 생각보다 보스 챌린지도 금방 끝내겠... 헉!”
안심하며 검으로 마무리를 지으려던 그 때.
갑자기 녀석이 땅 밑으로 모습을 감췄다. 방금전까지 고개를 내밀고 있던 모래구멍도 이내 메꿔졌다.
“끝난건가? 아직 HP가 조금 더 남아있었을 텐데”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
이벤트 클리어 메세지도 안 나타났고, 보스 경험치도 안들어왔어.
오히려 더욱 바짝 긴장해야 할 때다.
그리고 그 순간.
“커헉!”
밟고 있던 땅이 흔들리더니, 순식간에 밑에서 촉수 같은 게 튀어나와 내 몸을 궤뚫었다.
[사망하셨습니다]
“말도 안돼 시ㅂ... 무슨 이렇게 끝나는거냐고”
어쩌면 원래 이걸로 받는 데미지는 굉장히 적었을 지도 모른다.
단지 내 몸이 그것조차 못버틴 거지.
이렇게 될거면 그냥 각성모드로 할걸.
[유희 님의 기적 주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벌써 포기하실거에요? 아직 갈 길이 먼데요”
아아, 그러고보니 유희한테 부활스킬이 있었구나.
“포기하려면 이르지. 고마워”
한 번 부활을 쓴 이상 마나와 정신력 소모가 엄청날 터. 당분간 유희는 서포트 지원을 해주기 힘들 것이다.
뭐 어차피 힐 같은 버프는 받지도 않고 있었으니까.
“수아! 이속 버프 한번만!”
“오케이!”
[바람 정령의 가호를 획득하셨습니다]
[1분동안 민첩이 50% 상승합니다]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HP가 다시 1로 돌아가버렸으니, 마검 블러드터스터는 사용 불가능한 상태.
지금도 그때에 비하면 한참 부족했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빨라진 것이 느껴졌다.
“어느새 나도 적응이 된걸까나, 그 빨랐던 속도에”
솔직히 그때에 비하면 엄청 느린 편이긴 해도 저 샌드웜을 잡기엔 충분한 수준이었다.
[수호신의 이델클로 Lv. 298]
오버레벨도 아닌 녀석인데, 그렇게 전전긍긍해할 필요는 없잖아?
이속버프를 받자마자 나는 곧바로 녀석에게 달려갔다.
분명 아까전에 딸피를 만들어놨는데, 지금은 어째서인지 HP가 반이 넘게 차올라 있었다.
심지어 머리에 꽂아두었던 단검도 보이지를 않는다.
“땅 속에 들어갔다 나오면 회복이 되는건가. 방해효과도 전부 사라지고”
아마 사라진 단검을 다시 돌려받을 순 없을것이다.
풀스택 상태가 되었을 때.
좀 아픈 공격이 들어왔는지, 이델클로는 다시 땅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다시 한번 땅에서 충격이 온 순간.
“두번은 안맞아 준다!”
발 밑에서 진동이 느껴지마자 바로 그림자도약으로 촉수를 피했다.
다시 HP바는 거의 풀에 가깝게 차오른 상태.
“풀스택이어도 버티네. 대체 HP가 얼마나 많은건데?”
분명 아까는 백만 정도밖에 안됐던 걸로 기억하는데.
잠시 거리를 벌리곤 이델클로의 HP 바를 재확인했다.
그리고 충격.
[21,983,470]
“2천만?! 잠깐 땅에 있던 사이 10배나 올랐어?!”
아무래도 회복만 되는게 아니라 한번 들어갔다 올수록 최대 HP마저 늘어나는 모양이다.
그럼 다음번에는 2억이 된다는 거잖아.
풀스택 상태여도 족히 백번은 때려야된다.
“각성모드라면 쉽게 끝내겠지만, 그래도 일단은 계속 때려보자. 게다가 지금은 혼자도 아니니까”
솔로에 익숙하다보니 비록 거의 신경을 끄고 있었지만, 승현이와 테오, 엔초도 열심히 데미지를 넣고 있었다.
그리고 그 딜량도 만만치 않았다.
어쨌든 내 스택은 90이 최대치니 아마도 이 이상은 무리겠... 어라?
“스택이... 계속 올라?”
항상 한계치에 부딪힐 때면 더이상 올라가지 않던 패시브 스택이 지금은 그냥 계속 쌓였다.
10번 더 때리니 100타가 되었다.
110스택이 되는 순간, 순식간에 빈사상태로 치닫은 이델클로는 다시한번 모습을 감췄다.
“그래. 어디 한번 고개를 내밀어 봐라”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봐도 내 발밑으로는 진동이 올라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에, 유희와 수아가 있는 뒤쪽 땅이 흔들렸다...!
“위험해!”
더 생각할 틈도 없이 유희에게 달려가 그녀를 안았다.
“꺄악!”
촉수가 땅을 뚫고 올라오기 직전, 간신히 그녀와 피할 수 있었다.
“괜찮아? 다친데는 없어?”
“네, 네에... 전 괜찮아요”
다행히다. 늦지 않았어. 수아도 알아서 피한 모양이다.
“뭐야! 언니만 챙겨주고!”
“삐졌으면 니 오빠한테 달래달라고 해!”
[HP : 719,035,412]
이번엔 대충 30~40배 정도 늘어난 거 같은데.
뭐, 그래도 스택이 무한정 늘어나는 지금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하아아!”
거의 다 사라져가는 민첩버프를 마지막까지 쥐어짜서 순식간에 10번을 때렸다.
10%정도의 HP를 남기고 다시 고개를 감추려는 녀석을 마지막까지 쫓아가서, 결국 120타째 공격을 터뜨렸다.
[이벤트 보스 몬스터 : 수호신의 이델클로를 쓰러트리셨습니다!]
* * *
[현 이벤트 랭킹]
[1위 : 현우 외 5명(4분 57초)]
[2위 : 이름없음 외 5명 (13분 24초)]
[3위 : 없는이름 외 5명 (18분 49초)]
[…]
이벤트를 5분도 안되어서 클리어한 것은 우리 파티가 유일했다.
내 생각에는 아마 이벤트가 끝날때까지 1위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사람이 많이 줄었네”
다들 이벤트 장소 안에서 열심히 보스를 잡고 있는지 광장은 사람들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우린 재도전 안할거지? 이벤트도 끝났겠다, 이젠 정말 파티하러 가ㅈ...!!”
그 순간.
거대한 굉음과 함께 어디선가 붉은 빛줄기가 쏘아져나와 엘카피를 강타했다.
미리 대처를 했는지 마나 보호막에 막혔지만, 문제는 광선이 흡수된 것이 아니라 ‘반사’되었다는 것이다.
“...시발”
광선이 곧장 우리가 있던 중앙광장을 강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