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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화
탑 밑쪽으로 돌아가서 엘카피를 무력화시키고 있던 마법사 두 놈을 곧장 베었다.
케인의 당황한 표정이 여기서까지 보였다.
“어, 어느 틈에..!!”
“형! 돌아올 줄 알았어요!”
방금전까지 희망을 잃어가고 있던 우리 병사들 얼굴에 활기가 돋기 시작했다.
엘카피도 돌아왔고, 이 상태라면 충분히 해볼만 하지 않겠어?
“크윽, 하아아!”
재소환 된 언데드 군대야 저쪽에 맡기고, 나는 지금 달려오고 있는 케인에게 집중했다.
이번엔 각성모드를 쓰고 오지 않은 모양이다.
지금도 케인은 날 향해 정면으로 달려오는 중.
나도 오른 손에 검을 쥔 채 똑같이 맞달려가서 검을 부딪히려 하였다.
적어도 그렇게 보이긴 했겠지.
“…!”
걸렸다!
검이 닿을 거리에 오기 직전 왼손에 감추고 있는 단검을 휘두르는 시늉을 하자 케인은 완전히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이 거리에서 내가 이렇게 나오면 미리 대비하지 못한 저 녀석은 두가지 선택밖에 없다.
맞아주거나 아니면 도주기로 재빠르게 회피하거나.
내 한대가 얼마나 센지 알고 있었기에 녀석은 후자를 택했다.
도약기를 이용해 단검 리치 밖으로 멀리 달아난 것.
좋아.
나는 마지막으로 씨익 웃음을 지었다.
녀석이 도약하며 잠시동안 땅에서 발이 떨어져있을때.
[각성모드 : 마검 블러드터스터에 돌입합니다]
땅을 박차고 순식간에 앞으로 튀어오르며, 마검으로 각성함과 동시에 그림자도약으로 녀석의 바로 옆을 지나갔다.
일격의 승부!
“쓸 수 있는 모든 수를 전부 다 썼었어야지. 굳이 마지막 전투에서 힘을 숨길 필요가 있었어?”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귀에 바로 닿는 가까운 거리에서 살며시 속삭였다.
당연히 깜짝 놀랄 줄 알았던 케인은 예상외의 반응을 보였다.
“여기 잡는다고 우리 싸움이 끝난다고 생각해? 멍청하긴”
뒷말이 더 있었을 지도 모르고, 무의식중에 내가 묻고 싶은 게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검 끝이 녀석의 목을 스치는 순간, 케인은 그대로 쓰러져버렸다.
“마법사들 소리없이 암살하려고 스택 쌓아왔던 게 꽤 있긴 했지만, 이 정도로 쎘던가?”
뭐, 잡았으면 됐지.
언데드들까지 대충 정리 된 뒤. 우리는 잠깐동안 재회의 시간을 가졌다.
“현우 형! 이게 얼마만이야”
“아직 관두겠다고 한지 1주일밖에 안됐어 임마. 그래도 여기 시간으론 한달이려나”
이렇게 말하니 뭔가 공백기간이 너무 많아보이잖아.
“이왕 올거면 조금만 일찍왔어도 합류가 가능했잖아”
“미안미안, 일 때문에 조금 늦었어. 게다가, 내가 같이 왔으면 저 탑에 있던 두 놈들을 암살 못했을거 아냐”
불만에 가득차있는 표정인 테오를 웃으면서 달래주었다.
“오빠! 왜 이렇게 늦게 왔어?!”
“형님! 오셨습니까!”
“오냐, 반갑다!”
엔초랑 수아까지.
일주일, 한달 만에 다섯 명이 모두 모였다.
“그럼 이제 돌아오셨으니 총사령관을 맡으실건가요?”
“아니, 난 따로 움직일거야. 이 도시 안에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유희를 구하러 가야지”
“아아”
다행히 넷은 납득해주었다.
어차피 케인과 하이랭커 셋이 빠졌고 아직 엘캐피탄이 살아있는 이상 내가 없어도 충분할테니까.
“여기 내려오기 전에 미리 엘카피에서 탐색마법으로 위치도 알아냈어”
캣츠의 본거지성은 여기서 많이 떨어지지 않은 언덕 밑에 있었다.
지은 땅의 높이 자체가 워낙 낮아서 성이 눈에 띄지 않았겠지만, 작정하고 찾으면 찾기 쉬운 곳이었다.
“크다”
성을 두 눈으로 보고 제일 처음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정말 컸다. 현실에 있는 성이라도 고층빌딩 정도로는 쳐줄 정도로.
저 높은 성을 빙 둘러보며 나는 창이 있는 벽 쪽을 유심해 살펴보았다.
“유희가 있는 방은... 대충 저기 정도이려나”
사진 속에는 유희의 방 바로 옆에 깃발이 걸려있으니 바로 저곳일 것이다.
외벽을 타고 오르는 건 역시 안되겠는걸. 그냥 안쪽에서 돌파하자.
“시간이 없어. 빨리 들어갔다 유희만 데리고 빨리 나온다”
성이 텔레포트 마법을 준비하는데 10분, 완전히 텔레포트하는 데 걸리는 시간 10분 총합해서 20분의 시간이 있었다.
그 안에 안쪽의 경비를 돌파해 저 위까지 올라가야한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곧장 성 정면으로 다가가, 앞을 가로막는 대문을 열어재꼈다.
“크아악!”
안쪽에서 경비를 서고 있던 스켈레톤 아미가 이례적인 존재를 감지하고는 내게 고개를 돌렸다.
뭔가 반응을 보일 시간조차 아까워 곧장 스켈레톤을 베어나갔다.
처음에는 몇번이고 계속 때렸지만 스택이 쌓이니 전부 한방에 쓰러졌다.
순식간에 1층을 돌파, 계단에 여유롭게 서 있는 병사까지 전부 처리하자 경보가 울렸다.
[침입자 발생! 현재 1층에서 2층으로 이동 중]
밑으로 내려가는 계단도 있는 듯 했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2층 계단에서 3층 계단은 반대쪽 복도에 놓여있었고, 그 사이를 이번엔 좀비들이 가로막고 있었다.
“퀴엥에엑!”
역겨운 소리와 함께 침을 줄줄 흘리면서 느릿느릿하게 날 포위하는 좀비들.
포위당하는 순간 끝이라고 봐도 무방하지만, 가볍게 유화술로 포위망을 뚫은 뒤 밖에서부터 차례차례 좀비들을 베어버렸다.
2층도 정리 완료.
[레벨이 오르셨습니다!]
경험치도 주는구나.
곧장 3층, 4층, 5층, 6층에 있던 놈들을 전부 처리하고 7층까지 올라왔다.
밑 층들에 비해 유독 넓은 층.
방들을 제외하고 엄청나게 넓은 복도를 지나갈 틈이 없게 만들정도로 많은 언데드들이 가로막고 있었다.
데스나이트, 스켈레톤 메에지, 구울. 종류도 가시각색이다.
[다수의 구울을 맞닥뜨리셨습니다]
[상태이상 효과 : 약한 공포가 지속됩니다]
[마력의 수치가 너무 강력합니다]
[스킬을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언데드의 기세가 압도적입니다]
[이동속도가 4% 감소합니다]
시작부터 디버프를 따발로 먹고 들어가는구나.
그렇다고 져줄 생각따윈 없었다.
“와라 개새끼들아!”
가엔을 짧게 쥐고 데스나이트들과 정면으로 부딪혔다.
바로 큰 궤적으로 날아오는 공격.
몸을 수그리고 궤적 안쪽으로 파들어 곧장 데스나이트의 목에 검을 꽂아넣었다.
녀석이 쓰러지마자 다른 데스나이트들을 베며 스택을 쌓았고, 데스나이트가 전부 쓰러질 때쯤 스택이 꽤 쌓여있었다.
“이제 물몸들만 남은거ㅈ...!!”
잠깐 방심하던 순간 열마리는 되는 구울들이 내게 달려들었다.
[구울이 ‘식인’ 스킬을 시전했습니다]
[상태이상 제압 상태입니다]
팔을 물렸다!
구울이 빨아먹고 있는 사지에서 엄청난 진동이 느껴짐과 동시에 HP가 무서운 속도로 닳기 시작했다.
“아악, 씨바아아알!”
[각성모드 : 마검 블러드터스터에 돌입합니다]
제압효과가 풀렸다.
바로 빙그르 돌면서 구울들을 전부 죽여버렸다.
그리고 이제 남은 것은 스켈레톤 메이지들인데.
“으윽”
화르륵. 화르륵.
순식간에 엄청나게 많은 파이어볼 세례가 내게 날아왔다. 하필이면 좁은 공간이라 회피하기도 힘든 상황.
이 상황에서 나는 그냥 정면 돌파를 택했다.
앞의 스켈레톤메이지를 베고 그대로 녀석들 사이로 파고들은 것이다.
당연히 순식간에 마법이 날아들었다.
“하압!”
높이 점프하곤 한놈의 머리를 밟고서 다시 회피했다.
어떻게하면 쉽게 잡을 수 있을까?
“아 맞다 그게 있었지!”
뒤늦게 깨달은 나는 바로 앞쪽으로 물러났다.
거리가 생기자 당연히 파이어볼들이 날아왔다.
화르륵.
뜨거운 불덩이들이 닿기 직전의 순간.
“하압!”
짧고 강한 기합.
그와 동시에 검을 수평으로 빠르게 갈랐고, 검기류를 통해 파이어볼이 막혔다.
그걸로 끝이아니었다.
파이어볼을 막는 것으로 끝났어야 할 기류가 그대로 앞으로 퍼져나가 스켈레톤 메이지들을 베어버린 것.
한 순간에 5층의 몬스터들이 전멸했다.
응? 이런 스킬은 언제배웠냐고?
말해주기가 살짝 애매한데. 나중에 시간 나면 알려줄게.
일단 스킬 이름은 ‘바람가르기’다.
[긴급사태! 언데드 경비들이 전멸했습니다!]
[성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즉시 최상층으로 올라와 대기하십시오]
전부 처리한건가.
이젠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유희야, 이제 거의 다 왔어.
* * *
밖으로 걸려있는 깃발이 보이는 층에 도착했다.
앞에 있던 테이블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장비의 흔적.
그 뒤쪽으론 누군가를 가두어두었던 듯한 철창도 보였다.
그런데... 유희는 어디있지?
“설마, 접속중이 아닌건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내가 왔을때 접속하고 있지 않았을거란 생각을 미처 못한 것이다.
그냥 무작정 이곳에 오면 찾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시발, 멍청아! 이 멍청한 새끼야!”
머리를 쥐어뜯었다.
왜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만 대가리가 안돌아가는걸까.
대체 왜 생각을 못한건데.
아니, 그건 지금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 어떻게하면 지금 유희가 돌아오게 할 수 있을까?
지금 접속하게만 하면 데리고 나갈 수 있는데. 성은 포기하더라도 데리고 돌아가서 다시 예전처럼...
“친구목록에도 없고 현실에서도 연락처도 없어”
개인적인 연락수단으로 유희를 불러들일 방법은 없다.
잠깐.
그럼 공개적인 연락수단을 쓰면 되는건가?
“제발, 이게 정답이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워랜진을 열었다.
곧장 게시판에 들어가서 게시물 작성 버튼을 누르고는, 재빨리 글을 써내려갔다.
[제목 : 제발 들어와줘]
[상단 고정글]
[작성자 : 현우]
[유희야. 지금 바로 네 앞까지 왔어.
지금 아니면 한참 걸릴거야. 제발, 지금 무슨 일이 있는게 아니라면 바로 들어와줘]
맨 위에는 현재의 스샷까지 찍어 첨부했다.
내가 글을 올리자마자 조회수가 순식간에 올라갔다.
몇번째 연계글이냐면서 묻는 댓글들, 이젠 꼭 찾으라면서 응원하는 댓글들.
하지만 그 중에서 유희는 없었다.
“못오는...건가?”
아냐. 아직 올린지 몇 분 안됐어. 조금만 기다리면 분명 올 것이다.
그런데, 정말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주구장창 앉아서 10분동안 기다리자, 성 전체가 심하게 흔들렸다.
이제 텔레포트할 때가 다 되었다는 소리.
“...그래, 다음번을 노려보자”
같이 텔레포트해서 기다릴 방법도 있지만, 그럼 어딘지도 모르는 적진 한가운데에 노출될 것이다.
피할 틈도 없이 바로 무한척살이다.
차라리 다음에 찾을 때를 노리는게...
그 순간.
“…?”
갑자기 뒤쪽에서 없던 인기척이 느껴졌다.
로그인 이펙트로 나오는 밝은 가루들도 보인다. 착각이 아니야.
지금 이상황에 뒤쪽에서 들어온 저 사람은...
“현우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