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현우가 달라졌어요 -->
107화
“이제 이거 치워봐, 얼굴은 보면서 얘기해야지”
암살자를 데려와 로드란 지하감옥 방의 의자에 묶은 뒤, 승현은 그의 얼굴에 씌워두었던 자루를 벗겼다.
“윽”
“자아, 이제 시작해볼까”
환한 촛불을 들어 어두운 방을 밝히고는, 둘은 곧장 심문작업에 들어가려했다.
“도망갈 수작같은거 부릴 생각은 하지마. 이래뵈도 스킬차단구역이고, 네 텔레포트 수정도 여기있으니까”
남자가 의자에 묶인 몸을 뒤척이며 빠져나갈 궁리를 하자, 엔초는 미리 빼 두었던 수정을 흔들어보였다.
“걱정마. 아무리 적이라고 해도 초면에 죽이지는 않을거니까”
“그래서 뭐 정보만 알려주면 돌려보내주시겠다? 어차피 나 유저라서 목숨으로 협박해도 소용없는거 알잖아”
“못 돌려보내게 할 순 있지”
“전쟁 다 말아먹게 알려줄바엔 그냥 여기 쭉 묶여있는게 나을거 같은데”
그 말에 승현과 엔초는 쉽게 반박하지 못했다.
‘생각보다 진지하게 게임하고 있는 녀석이구나’
이러면 심문이 생각보다 어려워진다.
둘이서 좀처럼 꺼낼 말을 떠올리지 못하고 있을 때, 다행히도 남자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이봐, 나는 나쁜 목적으로 온 사람이 아니라고. 그냥 너희 랭커분한테 볼 일이 있었을 뿐이야”
“현우한테? 적 진영한테 무슨 볼일이 있는거지”
순간 그가 스파이였던건가 하는 생각이 잠시동안 들었지만, 이내 말도안되는 생각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캣츠 소속이지만, 그 중에서도 테클라시티에 카지노를 운영하고 있는 한 상인의 쫄병 노릇을 하고있다”
“벨라를 말하는건가?”
“현우 그 새끼가 카지노 수익 떼어달라고 했지만 방법이 없어서, 이렇게 매달마다 직접 찾아와서 전해주고 있었는데, 오늘은 코빼기도 안보이길래 그냥 돌아가려던 참이었지”
“아아...”
이런 비밀이 있었다니.
현우를 통해 벨라라는 이름은 몇 번 들어봤었지만, 설마 이런 어둠의 계약(?)이 있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잠깐. 이거 생각보다 쉬워질지도 모르겠는데?’
아이디어를 하나 떠올린 엔초는 곧장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알려줄게 하나 있어. 워랜드 시간으로 앞으로 일주일 뒤에, 우리 군대가 전군을 동원해서 서향왕국 수도를 공격할거야”
“야이 미친! 그걸 알려주면 어떡해!”
엔초의 생각을 알지 못하는 승현은 당황해서 고함을 쳤다.
지금 정보를 뜯어내기 위해 데리고 있는 놈에게 오히려 역으로 정보를 주다니.
그것도 작전을 대차게 말아먹게할 지도 모르는 중요한 정보를 말이다.
‘다 생각이 있으니까 가만히 있어. 내가 알아서 할게’
엔초는 승현에게 눈짓을 주었고, 승현은 미심쩍어 하면서도 일단 가만히 두었다.
‘혹시라도 계속 정보를 줄려고 했다간 검으로 저 나불거리는 주둥이를 쑤셔버리겠어’
그 생각을 읽기라도 했다는 듯 엔초는 피식거리며 남자에게 말을 계속했다.
“터무니없이 무모한 싸움이라고 생각해서 안심하고 있는거냐?”
“당연하지. 그렇게 쉽게 수도가 점령될리 없잖아?”
“하지만 엘캐피탄이 나선다면 어떨까”
남자의 표정이 갑자기 굳었다.
“이 중세기술을 천년은 앞선 함선이 그 거포로 도시를 찢어발기면 꽤 볼만할거 같은데”
“헛소리 하지마. 너희의 그 병기라면 적 진영을 넘어올 수 없을텐데...!”
“뭐, 마음대로 생각하라고. 하지만 이걸로 돌아가야할 이유가 생겼지? 최소한 네 그 상인나으리라도 구하게 말야”
승현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항상 엔초를 볼때마다 무식하게 현우 부하 노릇만 하며 졸졸 따라다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저렇게 머리를 굴리다니.
거기다가 날짜도 훨씬 늦은 날짜를 알려주었다.
이제 저 남자에겐 빨리 돌아가서 이 소식을 알려야할 의무가 생긴 것이다.
“크윽, 젠장!”
“진정하라고. 아까도 말했잖아. 대답만 해주면 돌려보내준다고”
지금이라면 남자는 정보를 넘겨주는 걸 고려해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건 간단해. 유희 님은 지금 어디있지?”
“…캣츠의 소속병을 잡아놓고 물어보는게 고작 그거냐? 전쟁에 유리해질만한 요소가 전혀 아니잖아!”
중요 정보를 알려주지 않아도 된다는 이점은 넘겨두고 남자는 당황했다.
“네 입장에선 그냥 좋은 거잖아. 자, 빨리 말해줘봐”
“가테즈의 수도 안에 있는 캣츠의 본거지성 안에 있다. 성의 사진은 이 주머니 속에 있을거야”
남자의 말대로 승현은 그의 주머니에서 사진 한장을 찾아냈다.
저번에 현우가 아스칼 반란군의 대장에게서 찾아낸 것과 같은, 창 너머로 유희가 보이는 성의 사진.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외벽에 걸려있는 인장이 동향왕국이 아닌 서향왕국의 것이라는 점이었다.
“이걸 가지고 그렇게 주작을 쳤던거냐”
“파일로 다운받아서 오프라인으로 편집한 다음에 다시 업로드해서 오브젝트화했지. 하지만 이걸 안다 해도 찾기 힘들걸”
“왜지?”
“캣츠 놈들도 멍청이는 아냐. 수도 안에 가만히 있다면 너희가 어떻게든 찾아내겠지만, 성 자체에 이동마법이 있어”
즉 침입했다는 걸 들키는 순간 절대 따라오지 못할 곳으로 달아나버릴 수 있다는 뜻이었다.
“젠장...”
승현은 혀를 찼지만, 사실상 기분이 꽤 좋았다.
이 정도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성 규모의 건물을 한번에 텔레포트하려면 차원석이 아무리 많다 한들 최소 10분은 걸릴 터.
충분히 빠르다면 안으로 들어가 유희를 데리고 나올 수 있을지도 모르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정도라면, 현우가 자신의 한계에 부딪히더라도 시도해볼만한 충분한 메리트가 될 것이다.
‘이걸로 현우 형을 다시 불러올 수 있을 지도 모르겠어’
물론 자신의 기대가 너무 섣부른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충분히 가능성있는 이야기라고 승현은 생각했다.
그건 엔초도 마찬가지였다.
“자 그럼, 난 돌려보내줄거지?”
“약속은 지켜야 하니까. 가라”
엔초는 지하감옥의 문을 열고 남자를 의자에 묶고 있던 밧줄도 풀어주었다.
“다음에 돈전해주러 올땐 미리 얘기하고 올게! 다신 보지 말자!”
휘잉.
스킬제한 구역인 감옥을 벗어나자마자, 남자는 도주기를 총동원해 순식간에 감옥을 빠져나가버렸다.
“...그냥 쭉 묶어놔도 되지 않았어?”
“그래도 저렇게 보내주면 증거가 생기잖아. 우린 정보 얻으면 보내준다는”
“아하, 그래서 다음 번에 인질 잡았을 때는 좀 더 협조적으로 만들려고?”
“설마 내가 아무생각도 없이 보내줬겠냐”
승현은 다시 한번 엔초의 깊은 생각에 감탄했다.
“어떻게 이런 머리만 굴러갈까”
“야! 다른 때도 잘 굴러가거든?!”
“아, 네에 네에...”
* * *
다음날, 테오로부터 소식이 들려왔다.
“전국 지역의 군대 전부 준비 끝났어. 오늘 곧장 가테즈 수도를 친다”
“에에, 아직 현우 형도 안왔는데 벌써 가요?”
어제 정보를 얻자마자 사진과 함께 박혜정을 통해 현우에게 전달하도록 했다.
유희를 구할 희망을 던져줬으니 기다리기만 하면 와줄지도 모르는데, 너무 섣부른거 아닌 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국왕은 아무래도 더 지체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야. 그래도 엘카피가 따라오니까 현우의 부재도 어느정도 커버가 되겠지”
확실히 엔초가 이미 정보를 던져놓은 이상, 일주일 이상 지체했다간 완벽하게 대비가 된 적을 맞아야 할 것이다.
텔레포트 수정도 안주고 돌려보냈으니 남자가 돌아가려면 꽤 걸릴 터.
지금이 가장 적정기였다.
“미리 기사 몇명이랑 베테랑 뱃사람 몇명이 서향왕국에 도착했어. 해안가에 워프 포탈을 설치했으니, 우린 포탈을 타고 가기만 하면 돼”
“그냥 전부 엘카피에 태워가면 안되는 거에요? 어차피 같이 워프해갈텐데”
“NPC랑 유저군대 전부 합치면 몇 만대인데 전부 다 들어가겠냐? 그쪽은 쾌적하게 남겨두기로 했어”
“아아”
그제서야 승현은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모두가 준비를 끝마쳤다.
각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군대는 전부 각각의 포탈앞에 서서 대기중인 상태.
역시 병사가 제일 많아 북적이는 곳은 수도인 로드란이었다.
“모두들 준비되셨으면, 이곳부터 차례로 포탈을 열겠습니다!”
갑작스런 부재로 인해 현우가 있었어야할 총사령관의 지위를 맡은 것은 그 다음으로 랭킹이 높은 한 검사였다.
강한 만큼 신뢰할 순 있겠지만, 그래도 왠지 테오와 승현 일행은 마음 한구석이 찝찝했다.
‘결국 이때까지 안 오는 구나...’
‘조금만,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더라면’
‘현우 형님이랑 같이 싸웠으면 했는데. 결국 그렇게는 안되는군요’
잡생각이 지나가는 틈도 잠시.
포탈이 열렸고, 군대는 서향왕국을 향해 진격했다.
[허용치 이상의 군대가 영토를 침범했습니다!]
[목격자가 발생하는 즉시 전투 이벤트가 시작됩니다]
[수도에 진입하셨습니다. 점령전을 벌여 승리할 경우, 왕국 전체의 영토를 차지하게 됩니다]
삼위 대항군의 군대가 모인 곳은 아무도 없는 잔잔한 바닷가였다.
좀처럼 목격자가 발생하기 힘든 곳인 만큼 최종적으로 군대가 집합하기에도 적절한 장소.
“다행히 전부 모였군요. 조금 있으면 엘캐피탄이 워프로 합류할테니, 바로 수도를 칩시다!”
인원수 체크까지 끝냈다.
NPC들까지 포함해 총 61,479명.
도시 하나 점령하기 위해 모인 것 치곤 엄청난 숫자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절대 쉬운 싸움은 아닐 터.
마지막까지 긴장을 줄이지 않고, 6만대군은 가테즈의 수도에 모습을 드러냈다.
[대량의 목격자가 발생하였습니다!]
[긴급 전투 : 가테즈 공방전이 시작됩니다!]
전장 전체가 붉은 빛으로 변했다.
그와 동시에 몰려드는 언데드들.
“맙소사...”
아무리 이쪽 군대가 많다 한들, 언데드들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대충 봐도 수십만의 언데드 군은 그들을 한없이 무력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많은 녀석들을 어떻게 상대하라는거야...”
그러나 그 순간.
하늘 위에서 거대한 워프 파장이 일어나더니, 이내 빠른 속도로 거대한 물체가 나타나 하늘을 가렸다.
엘 캐피탄이다.
쿠웅!
거대한 굉음과 함께 엘카피의 공격이 대항군을 가로막던 모든 언데드를 차례차례 가루로 만들어버리기 시작했다.
얼티밋스킬인 주술거포는 범위 문제 때문에 사용하지 않았지만, 일반 주포만으로도 충분히 위력적이었다.
“와 미친, 우리 팀도 엄청나게 세구나”
승현 뿐만이 아니라 전장에 있던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금까지 저렇게 강력한 병기가 우리를 지키고 있었다니.
최근에 들어온 유저들이야 이젠 당당히 랭킹 1위인 현우를 믿었지만, 그 전에 들어왔던 사람들에게 이 싸움은 확연히 불리한 전쟁으로 생각되고 있었다.
“이건 뭐, 처음부터 밸런스가 안 맞았잖아... 이렇게 사기인 무기가 있었다는건”
그러나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위잉.
언데드 군대를 싹 청소하고 중앙으로 진격하던 엘캐피탄이 갑자기 이동을 멈추었다.
그러더니 전기 막 같은 게 형성되어 선체를 덮고는, 이내 완전히 무력화되는 것이었다.
“…! 제압 마법?”
일시적으로 사람은 물론 골렘이나 대형석궁같은 병기마저 완전히 작동불능으로 만들어버리는 고위마법.
한순간에 모든 유저가 경악했다.
저렇게 큰 함선을 한번에 제압해버리다니.
이윽고 도시 내의 탑 위에 세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두 사람은 랭커 마법사중에서도 쌍벽을 이루는 두 사람. 엘카피의 무력화 마법은 저 둘의 듀얼캐스팅이었을 것이다.
“젠장, 엘카피가 묶여버리면 일이 꼬이잖아”
타워 위에 서 있던 세명 중 한 명, 케인이 순식간에 밑으로 내려왔다.
“그 형님은 안보이네. 무슨 깡으로 쳐들어오셨어요?”
케인이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지었다.
“쎈 함선이랑 군대 몇 만만 있으면 될 줄 알았나보네. 우리가 아주 그냥 만만하게 보이셨나봐”
6만명이나 되었던 대항군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엘카피를 잃었다.
심지어 다시 소환된 언데드 군대가 진영을 포위한 상태.
“제가 그래서 기다리자고 했잖아요. 현우 형 만 있었으면...”
판단이 너무 섣불렀다.
차라리 시간을 조금만 더 가져 현우와 함께 왔었다면, 지금처럼 허무하게 당하지는 않았을텐데.
“여기서 전멸당하면 전쟁은 그대로 끝이겠네요. 참고로 지금 거 전부 생방중이니까, 앞으론 워랜드 못하시겠어요. 발린거 전부 박제될테니까”
입가에 고이는 미소를 마지막으로 군대를 전부 작별시키려는 순간.
“크헉”
“꺄악!”
탑에 올라가 있던 두 명의 마법사가 동시에 쓰러졌다.
케인도 예상하지 못했는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일그러진 표정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고, 제압 마법을 시전하고 있던 둘이 쓰러지자 엘캐피탄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긴 롱소드를 하늘 높이 들어올린채 탑에 홀로 서있는 남자.
“역시 여기가 최고구만!”
현우였다.
========== 작품 후기 ==========
늦어서 죄송합니다 엉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