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현우가 달라졌어요 -->
106화.
테오, 장선우는 순간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남는 시간에 간간히 캡슐방에서 즐기던 게임, 워랜드.
자신보다 훨씬 늦게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단순에 강자가 된 현우를 보고 살짝 허무했다.
하지만 같이 전투도 겪고, 여러 고난을 함께 헤쳐가는 과정에서 모두와 함께하는 즐거움을 느꼈다.
살면서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게임의 희열.
그런데 그걸 맛보여준 장본인이 갑자기 게임을 그만두겠단다.
“전쟁은 어떡하려고 그래”
“내가 없어도 어떻게든 될거야. 엘카피가 있는 이상 이기지 못할지언정 패배하진 않겠지”
너무나도 안좋은 타이밍이다.
여러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 문장.
지금까지 쭉 그가 목표로 삼아왔던 유희의 구출도 이뤄내지 못했고, 심지어 당장의 전쟁조차 끝나지 않은 상태.
이런 상황에 난데없이 그만둬버린다고 하니, 절대 용납할 수가 없었다.
“시발, 이새끼가 진짜!”
따악!
결국 화를 주체하지 못한 선우는 현우의 뺨을 세게 후려갈겼고, 현우는 말없이 맞은 곳을 손으로 어루만졌다.
“미안... 더이상 해줄 말이 없다”
그 말을 끝으로 현우는 돌아섰다.
자신의 가장 든든한 동료가 뒤돌아 버리는 그 모습을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선우.
당연히 붙잡으려 뛰어갔지만, 그 순간 고개를 휙 돌린 현우와 눈을 마주치자 기세에 억눌려 더이상 다가갈 수가 없었다.
그 사이 현우는 도로 건너편으로 뛰어갔고, 신호등이 바뀌어 붙잡을 수도 없게 되었다.
“젠장...”
선우는 얼굴을 잔뜩 구겼다.
* * *
현우가 사라졌다.
로그아웃이라는 개념을 모르는 NPC들은 갑작스런 부재에 당황해했고, 테오 일행은 하루종일 방에 앉아 회의만 하고 있었다.
“어떻게하면 얘를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을까?”
모습을 감춘 랭킹1위를 다시 접속하게 할 방법.
“지금 현우가 게임을 하기 싫어한다는 건 알아. 모처럼 게임을 절제할 마음이 생겼는데, 지금을 놓치고 싶지 않겠지”
다시 게임의 유혹에 빠졌다간 언제 헤어나올지 그들조차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걸 알고 있음에도, 이들은 방법을 모색했다.
“하다못해 정말, 여기 시간으로 단 일주일이라도 좋으니까... 그 쯤이면 전쟁도 끝낼 수 있지 않을까?”
“운이 좋으면 유희 님을 구해오는 것도 가능할 지 몰라요”
“이런 생각을 현우가 안해봤겠어?”
아주 잠깐의 시간. 정말 잠깐이면 모든 걸 끝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점에서 관두겠다고 선언한 것은 위의 그런 것들이 아무런 영향이 없을만큼 무관심 해졌다는 것.
“그러니까 현우가 다시 복귀하게 만들려면, 아주 잠시라도 이곳에 돌아와야 할 분명한 이유를 만들어줘야 돼”
케인과 다른 랭커들이 있는 한 현우 없이 승리할 수 없다.
“하지만 이유를 만들어줘야한다는 걸 알았다고 해도, 무슨 이유가 있을까?”
“…”
부정하고 싶을 정도로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는 정적.
대화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흐아아, 이렇게 되면 아무것도 생각해낼수가 없잖아요오오!”
끝내 답답함이 극치에 달한 승현이 울분을 토해냈다.
셋 모두 마찬가지였다.
방 안에서 머리를 맞대고 한 시간이나 있었는데도 아무 것도 건져내지 못했다.
“정말... 현우 형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걸까요?”
“하긴, 이미 결심까지 끝냈는데 우리가 좀 무모하게 생각하긴 했지”
애초에 억지로 게임에 불러들이겠다는 생각 자체부터가 잘못된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 잠깐? 메세지가 왔는데?”
워랜진 개인 메신저를 통해 발송된 메세지.
발신자는, 현우였다.
“얘 뭐야?! 접속 중도 아닌데 메세지는 어떻게 보낸거지?!”
심지어 접겠다고 선언해놓고 자기쪽에서 먼저 톡을 보내는 건 대체 무슨 상황일까.
테오는 승현과 수아가 지켜보는 와중에 메세지를 열었다.
[지금 뭐하고 계세요?]
심지어 난데없이 존댓말까지.
너무 수상쩍었다.
이걸 보낸 게 정말 현우가 맞나 싶을 정도로.
[나 : 죄송하지만 누구세요? 현우는 아닌 것 같으신데]
[현우 누나임다 ㅎㅎ 울 동생은 지금 꿈나라에용]
“에엥? 누나라고?”
워랜드 접속은 생체정보 인식으로 실행되어서 대리접속이 불가능하다.
그럼 이건 대체 무슨 상황?
[나 : 어떻게 현우 계정으로 메세지를 보내셨죠?]
[워랜진 앱에 자동로그인 기능 되어있잖아요. 휴대폰 패턴이야 알고 있고, 그걸로 들어왔죠]
“그 방법이라면 가능은 하겠구나”
실질적인 게임 접속은 불가능할테지만, 이런 식의 오프라인 메세지는 보낼 수 있을터였다.
[어쨌든 제가 하고 싶은 말은, 혹시 세 분이랑 언제 만날 수 있을까 해서요]
[나 : 저희를요? 무슨 용건이시길래...]
[현우가 게임 접겠다고 했다면서요? 아마도 꽤 당황하셨을거라 생각하는데,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나 : 네? 저희를 도와주신다고요?]
시작부터 끝까지 의문밖에 없는 대화였다.
[싫으심 말아도 되구요. 하지만 아마 제 얘기를 들어보시는 게 좋을텐데]
[나 : 아, 아닙니다! 도와주신다면 저희야 감사하죠. 직접 뵈러 갈까요?]
[제가 갈게요 ㅎㅎ 이틀 쯤 있다 넷이서 같이 만나요]
[나 : 넵!]
현우의 계정이 메신저를 닫은 것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방 안에는 기쁨만이 감돌았다.
“됐다. 이거다!”
* * *
며칠 뒤, 본의아니게 승현 남매와 테오는 다시한번 정모를 가지게 되었다.
카페 창가 테이블에 앉아 서로를 마주보는 네 명.
이번엔 현우가 있던 자리에 대신 그 누나가 앉았지만.
“박정혜입니다. 잘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장선우입니다”
누나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 그렇게 나이들어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나이차가 그렇게 많이 나진 않는 것이 분명했다.
“저기... 선혜님은 저희랑 얘기를 하시려는 이유가 뭔가요?”
“게임을 접는다면 당연히 좋아해야할 제가 왜 여러분을 돕느냐고요?”
선혜는 질문의 핵심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그녀는 현우와 누구보다 가까운 그의 친누나.
게임중독이 판정되고 치료를 직접 도왔다면 워랜드를 그만둔다는 소식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야하는 것이 아닌가.
굳이 심리치료사라는 걸 몰라도 가족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 충분히 생각해볼만한 질문이었다.
“물론 저야 동생이 게임을 끊겠다고 하면 좋겠죠. 하지만, 그게 이런식은 아니에요”
“무슨 뜻이시죠?”
“게임을 접고 며칠이 지난 지금, 현우의 상태가 말이 아니랍니다
어딜 나갈 생각도 않고 방 안에만 틀어박혀있단다.
방안에는 아무도 못들어오게 하고, 가끔씩은 안에서 우는 소리 같은게 들리기도 한다고 한다.
“그래도 오늘은 어딜 나간다길래 밖에다가 태워주는 길에 여기까지 왔어요. 어쨌든, 이대로 뒀다간 게임에 빠져살때보다 훨씬 나빠져요”
차라리 스트레스를 해소할 취미라도 찾았으면 좋겠건만, 지금은 그냥 방안에만 틀어박혀있다니.
“그런...”
“그래서 도와드리려는 거에요. 차라리 지금 포기한 목표를, 그 여자분을 다시 만나고 나면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해서요”
“에에, 유희 씨를 아세요?”
“예전에 현우한테 몇번 들었었어요. 자세한 얼굴은 저도 잘 모르지만, 현우한테 중요한 사람이라는 건 잘 알고 있어요”
딱히 직접 뭔가를 목격한 사람은 없지만, 둘 사이에 이런 저런 관계가 있다는 건 다들 눈치채고 있었으니까.
“현우 이새끼가 진짜... 이럴거면 왜 그만둔건데”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테오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런데 저번에 하는 말 들어보면 유희 님을 이미 포기한 것 같던데, 이젠 무슨 수로 다시 게임에 돌아오게 만들죠?”
승현이 솔직하게 자신의 걱정을 털어놓자, 정혜가 웃으면서 대답해주었다.
“현우는 지금 유희라는 분을 포기한 게 아니에요. 단지 찾을 수 있는 단서가 너무 없으니 슬슬 지쳐가는거죠. 확률이 너무 희박하니까요”
“음... 확실히 그렇긴 하겠네요. 지금 유희 씨가 어디있는지는 커녕 게임에 들어오고는 있는건지도 모르니까”
테오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렇다는 건, 유희 언니를 다시 찾을 희망을 줄 수만 있으면 다시 현우 오빠를 데려올 수 있다는 거죠?”
“네. 제가 말씀드리려는 게 바로 그거에요”
그러면서 정혜는 현우가 게임을 접은 것은 해야할 이유를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하기가 싫어진 것이라는 말을 덧붙혔다.
“지금은 게임을 하면 좋은 이유가 아니라, 게임을 해야만 하는 이유가 필요하다고 봐요”
“조금 강한 이유가 필요하다는 거군요”
“예를 들어 여러분이 위험에 빠져있다는 걸 듣게 된다면 바로 구해주러 올지도요. 현우는 은근 영웅심리같은 것도 있으니까”
“그나저나 저희 이래도 되는걸까요?”
게임 동료이기 전에 한 사람의 친구로서.
게임중독에 빠진 친구를 다시 게임에 불러들일 방법을 모색하다니.
밖에서 그가 어떤 삶을 사는 지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왠지모르게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그런 승현에게 정혜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제가 확신합니다. 지금은 이게 치료에요”
* * *
다시 게임으로 돌아온 세명. 이젠 워랜드 시간으로 현우가 게임에 접속하지 않은 지 6일 정도 지났다.
내일 쯤이면 아마도 서향왕국을 점령하기 위한 군대가 출발할 것이다.
“결국 정혜 님이랑 얘기하고도 정작 방법은 못 찾았네요”
“그래도 어느 정도 갈피는 잡았잖아”
유희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거나, 아니면 위험한 상황을 연출해서 도와주러 오게 만들거나.
후자의 경우는 연출에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하니 패스.
“그럼 유희 씨를 어떻게 찾아야할지 방법을 찾아보면 되려나. 그런데 그게 쉽게 되는 방법이었으면 진작에 현우가 했겠지...”
무슨 방법이 없을까?
그 순간.
“…!!”
승현이 천장을 재빠르게 가로지르는 그림자 하나를 목격했다.
방금 그건 분명, 암살자 클래스의 이동기.
즉 이 방 지붕 위에 누군가가 있었다는 뜻이었다.
“잡아!”
승현은 재빨리 지붕 위로 올라갔다.
저 멀리 건물들 지붕을 뛰어넘으며 한 사람이 달려가고 있었다.
“윽, 젠장”
승현도 똑같이 지붕들을 가로질러 뛰어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암살자 클래스와 전사. 속도는 확실히 전자가 우위를 점했고, 승현은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포기하려던 그때.
“커헉!”
“…?”
자신은 손도 대지 않았는데, 갑자기 앞을 달려가던 암살자가 쓰러진 것.
그리고 그 앞에는 많이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엔초?”
“그냥 있다가 지붕 쪽으로 뭐가 하나 지나가길래 슬쩍 쳐다봤는데 너나 쫓아가길래, 이거 잡아야될놈이구나 하고 바로 왔지”
자신보다 뒤늦게 합류했음에도 훨씬 앞쪽에 있다니.
이게 직업별 차이라는 건가.
“어쨌든, 이 분은 어디서 오셨을까나”
“연합군에서 보냈다고 짐작은 하고 있지만, 일단 확실히 알아봐야겠지?”
“그게 좋겠네. 일단 데려가서 심문해보면 뭔가를 알수 있을수도. 예를 들면 중요한 정보라던가”
엔초와 승현은 기절해서 쓰러진 암살자를 끌고 갔다.
30분 뒤.
그들은 확신했다.
“유희 님을... 찾을 수 있겠어”
========== 작품 후기 ==========
죄송하니까 연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