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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력 1로 랭커 까지-105화 (106/117)

<-- 우리 현우가 달라졌어요 -->

105화

“음... 이렇게 입고 가면 되나?”

평상시에 진지하게 외출할 일이 거의 없었다보니, 입을 옷을 진지하게 고민한는 건 역시 어려웠다.

결국 얇은 셔츠 위에 검은 바람막이 하나 걸치고 집을 나섰다.

“어디 간다고?”

“애들보러 정모 간다니까”

“차 박살내면 알지?”

“날 뭘로 보고. 장롱면허라곤 하지만 면허도 있다구”

누나는 살짝 미심쩍은 눈빛으로 날 쳐다보고는, 이내 내게 키를 넘겨주었다.

“고마워”

“어디 한군데 긁히기만 해봐”

그러고보니 차를 모는 것도 오랜만이구나.

솔직히 대학생 때 면허를 딴 뒤로 운전을 해본 경험이 몇번 없었다.

간신히 감각정도야 기억하고 있지만, 과연 사고를 안 낼 수 있을까.

* * *

“남상공원 주변 카페라고 했지, 여긴가?”

다행히 짧은 거리를 운전해오는동안 사고는 없었고, 제시간보다 조금 빠르게 약속한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문 안으로 들어가서 잠깐 기다리자, 이내 익숙한 얼굴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여어, 일찍 왔네?”

“어차피 집에서 먼 곳도 아니니까 그냥 와서 기다리고 있었지. 나도 온지 얼마 안됐어”

“우와... 여기가 서울이구나...”

“아 진짜! 촌티나게 뭐하는 거야?”

오늘도 저 남매는 티격태격한다.

“그래도 세 명 다 일찍왔네. 아참, 엔초는 안온대?”

“에 그게... 아무래도 영 가볍게 서울까지 올라올 수 있는 곳이 아니래서 말야”

제주도 서귀포에 산다고 했나.

게임 정모 한 번 하겠다고 왕복비행기표를 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하긴 뭐, 테이블도 4인용이라 한 명 더 끼면 좀 불편해지긴 하겠다”

“그럼 이번 정모는 이렇게 넷이서 소소하게 하는거야?”

“나도 몇백명 정도 다 불러서 거하게 파티 한번 하고 싶었지만, 우린 자본이 풍족한 사람이 아니잖아”

부모님이 부유한 상류층에 속하긴 했지만 그건 나와 전혀 관련없는 이야기.

사실상 정모에 몇백명을 채우는 건 쉽다.

저번에 만났던 뉴비들은 제쳐두고도, 이 인원에 포도당만 데려와도 순식간에 200~300명이 늘어나게 되는데 말 다했지.

“자 그럼, 남향왕국 국왕이 뭐 알려준 거 없어? 전략이라던가. 아니면 혹시 비밀로 숨겨둔 뭔가가 있다거나”

보통 NPC는 신뢰도가 기준치 이상이 아닌 유저에겐 ‘절대’ 정보를 알려주지 않는다.

또한 신뢰도가 높은 유저가 다른 유저에게 정보를 알려주는 것도 넘어가주지 않는다.

그래서 게임 내에서는 알려주기 힘든 그런 것들을 오프라인에서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는것도 이런 회의의 장점이다.

“비밀이야 엘카피가 전부였는데, 이미 다 까발려졌잖아. 심지어 이 새끼는 지 안방인것마냥 맨날 거기 가서 뒹굴거리는데”

내가 테오, 아니 선우를 쏘아보며 노골적으로 저격하자 승현이와 수아는 웃음이 터졌고, 그도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꼭 말을 해도 그런 식으로 하냐. 맞는 말이긴 한데”

다시 한번 웃음바다가 되었다.

“일단 나도 특별히 들은 건 앞으로의 전략 정도야”

미리 워랜진에서 인쇄해 준비해둔 워랜드 맵을 테이블에 펴서 설명을 시작했다.

“일단 이곳으로 돌아서 군대를 보내고, 동향왕국에 다른 병력을 동시에 보내 전력을 분산시키면 엘카피까지 합류해서 바로 서향왕국을 점령할거야”

“엘카피는 아군 영토 밖으로 나가면 안된다면서?“

“누적 30분 정도는 괜찮아. 그러니까 그 전에 점령하면 돼”

“잠깐만요. 갑자기 궁금한 게 생겼어요”

이제야 뭔가를 알아챘다는 듯 승현이가 손을 번쩍 들고 내게 물었다.

“애초에 언데드 군대도 한 번에 전멸시킨 함선이잖아요? 어차피 30분 정도는 괜찮다면 그냥 세 곳의 수도로 바로 워프해서 다 박살내면 되지 않나요? 군대도 필요없이 혼자 할 수 있을것 같은데”

“야 이 멍청아”

내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선우가 먼저 눈치를 주었다.

“서향왕국은 그렇게 무작정 부숴버리면 안된다고. 지금 거기 누가 있는지 잊었어?”

“아아...”

유희가 납치를 당했다. 그리고 지금 서향왕국 수도 어딘가에 있을 확률이 가장 높다.

아마 그가 눈치를 준 말 속에는 이런 의미를 담고 있지 않았을까.

“그냥 리스폰하면 된다는 걸 알지만 나도 유희를 다치게 하고 싶지는 않고, 무엇보다 국왕이 그런 폭력적인 방식을 좋아하지 않아서”

국왕은 전형적인 평화주의자다.

전쟁이 터졌으니 어쩔 수 없이 전략을 짜서 전투를 벌이고 있지만, 가능하면 불필요한 희생 없이 끝내고자 한다.

엘카피를 보내서 수도를 불태워버리면 전쟁이야 쉽게 끝나겠지만, 그만큼 무고한 사람의 희생이 늘어나.

“내가 아는 것도 대충 여기까지밖에 없어. 나한테 비밀을 숨기거나 할 사람은 아니니까, 아마 지금 당장 전략은 이쯤인 것 같아”

그 말을 끝으로 잠깐동안 뻘쭘한 정적만이 흘렀다.

“...너무 일찍 끝난 것 같지?”

“그러게요. 하루 스케줄 다 빼고 왔는데 뭔가 너무 허전하네”

“딱히 모였다고 할 게 있다는 뜻은 아니구나...”

원래 아메리카노 같은 거 마시면서 이야기도 하고 천천히 작전회의하다가 헤어질 생각이었는데.

“주문하신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손님”

정작 주문한 커피가 오기도 전에 회의가 끝나버리면 어쩌자는거냐고.

“딱히 워랜드에 대해선 할 얘기가 없는 것 같구나...”

“오라버니들. 그럼 우리, 그냥 놀래?”

수아가 활짝 웃으며 제안했다.

“그냥 놀자니, 아무것도 안 챙겨와서 어떻게 놀자는 거야?”

“음... 생각해보면 이 근처에는 딱히 아무것도 없네. N타워에 올라간다고 해도 레스토랑이나 전망대 말고 딱히 우리가 할 만한 건 없을거 같으니까”

“그럼, 대중교통타고 H대까지 가는 건 어때요? 그쪽이라면 재밌을거에요!”

내가 무슨 소리인지 의아해하는 와중에도 셋은 잘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응? 우리 현우는 왜 이렇게 뻘쭘하게 있나. 정모 주인공이 이리 찌그러져 있으면 안되지”

“그게, 난 이렇게 ‘노는’ 거에 영 익숙하지가 않아서 말야”

“에엥? 형 대학교도 다녔었다면서요? 설마 그때동안 한번도 안 놀아본거에요?”

“그 당시에도 선후배나 동기랑 어울릴 줄도 몰랐고, 방에 틀어박혀서 게임밖에 안했으니까”

그래도 어찌어찌 학점은 항상 A였지만.

“그때부터 겜창이었던 거냐”

“사실 그것보다 좀 오래됐지. 사실 초딩때부터 손에서 게임을 놔 본적이 없어”

“…너도 참 대단하다”

문득 내가 뱉은 말에서 잠시 멈칫 했다.

초딩때부터 게임을 놔 본 적이 없다.

어릴 적 기억나는 내 일과는 총 세가지.

유모한테 맞기, 학교생활, 게임.

중학교부턴 유모가 사라지며 두가지가 되었지만, 그 중 엄청난 비율을 차지하는 ‘게임’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었다.

그렇게나 폐인짓을 했는데도, 정작 내 기억속엔 남는 게 많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루말할 수 없는 공허함.

남들은 성인이 될때까지 수많은 걸 경험하며 추억을 남겨왔을텐데, 나만 그 순간들이 텅텅 비어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씨발... 잠깐 나 화장실좀 갖다올게”

“으, 으응”

계속 이 자리에 있었다간 울음이 터져나올 것 같아 재빨리 시선을 피했다.

* * *

다시 마음을 진정시키고, 우린 대중교통을 이용해 H대거리에 도착했다.

“이야, 여기 좋다~!”

“대한민국에 이렇게 사람이 많았다니... 복잡해서 눈도 못 뜨겠잖아!”

이렇게까지 북적이는 곳은 난생 한번도 와 본적이 없었다.

“대체 이런 곳에서 어떻게 재미를 찾을 수가 있는거냐.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지칠거 같애”

“푸흡! 됐고, 이런데가 낯설다고 하니 내가 좀 알려줄게. 그냥 따라오면서 즐겨!”

“하아 참, 즐기지를 못하겠다고오...”

한숨을 푹 쉬면서도 좋다고 달려가는 승현이와 선우를 따라갈 수 밖에 없었다.

대체 이런 게 뭐가 재밌다는거야?

6시간 후.

“토도케테~ 세츠나사니와~~ 나마에오~~...!!”

“…미치겠다 진짜. 단체로 노래방까지 와서 애니송을 부르는 새끼는 너가 처음이다”

“헤헷. 아는 노래가 이거밖에 없는걸”

중고딩때쯤 처음으로 게임중독 판정을 받고는 충격을 먹어서 한동안 십덕질에 빠졌었다.

반년도 안되어서 다시 게임에 복귀했지만, 아이돌 애니 덕질하며 사는 것도 꽤 재밌었던 것 같다.

굳이 게임이 아니더라도 말이지.

“어레? 벌써 시간이...”

“이젠 저희도 슬슬 가야 될 것 같아요. 차 시간때문에 지금 안들어가면 밤까지 집에 못들어가거든요”

“아 진짜, 좀 더 놀고 싶었는데”

수아랑 승현이는 진심으로 아쉬운 표정이었다.

선우야 집이 근처라고 하니 여유로웠고, 그렇게 우리의 첫 정모는 종료되는 듯 했다.

내가 그들을 부르지만 않았더라면.

“모두들 잠깐만, 할 얘기가 있어”

“응?”

“무슨 일 있으세요?”

“첫 정모 기념 축사같은 거 하는거야?”

모두가 궁금증에 가득찬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을떄.

나는 가만히 일어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승현이, 선우, 수아.

만날 수 없었지만 만나게 된 소중한 인연들.

하지만 너무 오래 시간을 허비했다.

앞으론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내린 결정.

“나, 이제부터 워랜드 그만둘거야”

““…!!””

한순간에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무,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미친놈아. 아까 밥먹다가 체했냐?”

“형. 농담이죠? 제발, 진심 아닐거라고 믿어요”

“아니, 진심이야. 오늘로 확실히 알았어”

게임이 아니어도 삶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많다는걸.

캡슐을 빼앗기고 집에 틀어박혀 살던 며칠이 지옥 같았던 것은 게임을 할 수 없어서가 아니었다.

단지 흥미있는 활동을 하지 못해서였을뿐.

프로게이머 할 것도 아니고 그 활동이 게임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이젠 게임이고 싶지도 않다.

“전쟁은 어떡할거야? 유희 씨는 또 어떻게할거고? 설마 무책임하게 그냥 버려두겠다는거냐”

“전쟁이야 내가 없어도 어떻게든 끝날거야. 엘캐피탄이 있는 이상 무승부가 될지언정 패배하진 않을거니까 안심해”

그리고 유희는...

“나는 예전부터, 언젠가 이런 정모를 하지 않을까 상상을 했었어. 친한사람들끼리 모여서 얘기도 하고. 그런데 그 자리에 유희가 없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지”

“갑자기 무슨 소리야. 불길하게”

“하지만 이미 그녀는 떠나간 인연이 아닐까?”

어딨는지도 모르는 걸.

어차피 다시 만나지도 못할, 이미 끝나버린 그런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젠장, 망할새끼야. 그렇다고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 있어?”

“닥쳐. 내 부주의로 잃은 사람이야. 내가 실수만 안했더라도 지금 옆에서 지킬 수 있는 사람이었다고”

그런 정말 터무니없는 실수 때문에 잃은 사람을... 내가 쉽게 잊을 수 있을 것 같아?

단지, 지금 내가 게임중독으로 겪고 있는 괴로움이 더 심했을 뿐이다.

“게임중독 판정 난지 10년. 그리고 유희를 만난 건... 1년도 안됐어”

“크윽...”

이 정도 말하면 됐겠지.

선우도 이제는 단념하고 돌아서는 듯 했다.

그러나, 그건 내 착각이었다.

“씨발, 이새끼가 진짜!”

따악!

========== 작품 후기 ==========

업로드 실수로 102화 다음에 바로 104화로 넘어가버리는 실수가 발생했습니다...

정상적으로 수정완료했고, 지금 재업로드한 뒤 오늘 9시에 본편이 다시 올라갈 예정입니다.

마지막에 이런 실수를 ㅠㅠㅠ 정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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