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스 드라이버 -->
102화
“고블린을 다 잡고 온다고요?”
“그래. 좀 많을거니까 한명 씩 갔다오고, 내가 안 맞게 방어해줄테니까 때리면서 사냥만 해”
전략은 대충 이랬다.
사람이 올라타면 내려갔다가 5분후에 자동으로 올라가는 리프트.
하지만 리프트가 올라갔어도 위에 있던 사람이 또 올라탄다면 다시 내려오게 된다.
이걸 이용하면 저 밑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은 무제한.
한 사람씩 밑으로 데려가서 내가 호위해주면, 그동안 안의 고블린을 전부 사냥한다.
나중에 가면야 걸어다니는 골드일 뿐이지만, 초반에는 꽤나 빡센 몬스터.
그만큼 저 밑에 득실대는 수백마리를 잡았을때 주는 경험치가 꽤 쏠쏠할 것이다.
“그럼 우선, 현수부터 가자. 장비 전부 챙겼지?”
“네”
시작하기도 전에 쫄아버리지 않게 하게 위해서 밑에 있는 고블린의 수를 미리 말해주지 않았다.
워랜드의 던전정보에 대해 조금만이라도 알고 있다면 바로 눈치챘을텐데, 다행히 얘네는 그런거 전혀 모르는 것 같네.
“너희는 여기서 기다리다가 정확히 10분뒤에 다시 내려와줘. 아 그리고 재민아, 오늘 하루만 네 방패좀 빌리자?”
“네? 아...네”
잠시 당황하는 듯 했지만 날 보더니 결국 방패를 넘겨주었다.
굳이 방패를 드는 이유는, 애들 지켜주겠답시고 고블린을 검으로 쳐내다가 스택쌓이면 어쩔수 없이 내가 고블린을 처치하게 될테니까.
가급적이면 내가 경험치를 먹는 일이 없는 편이 좋았다.
방패를 들어서 밀쳐내버리면 스택이 쌓이진 않겠지.
장비까지 전부 갖춘뒤, 현수와 나는 둘이서 리프트를 타고 내려갔다.
“후아. 되게 어둡네요”
“밑으로 내려가면 불이켜져 있을거야”
잠시후.
덜컹이는 소리와 함께 리프트가 멈춰섰고, 문이 열리며 던전 내부가 드러났다.
총합 500마리의 고블린 무리가.
[고블린 소굴 토벌이 시작되었습니다!]
[5분 뒤 리프트가 올라갑니다. 그동안 최대한 많은 고블린들을 사냥하십시오]
[남은 고블린 수 : 500마리]
“오, 오백마리요?!! 얘네를 다 잡겠다고요?!”
“응. 왜그래? 아까 얘기까지 다 됐잖아”
“그래도 이렇게나 많을 줄은 몰랐죠. 어떻게 혼자서 이렇게 많은 몬스터들을 상대해요?”
“너 혼자서 하는 거 아니잖아. 내가 지켜준다니까 그러네. 이번 기회에 제대로 다굴 상대법을 배워봐”
사실 내게도 딱히 알려줄만한 상대법이라고 할 게 없었다.
그냥 돌아다니면서 베고, 피하는 게 몸에 익은 것 뿐이니까.
그러니까 얘네들도 알아서 터득하게 되겠지 뭐.
여전히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우리가 수적으로 불리하다.
전쟁을 잘 헤쳐나가려면 이들도 다굴을 이겨내는 법을 알아야 했고, 그러려면 먼저 이렇게 다굴을 털려보는게 제격이었다.
“됐으니까 안심하고 사냥 시작해! 공격 못하게 내가 막아줄게”
재민이에게서 받은 방패를 오른손에 쥔 채로 현수에게 등을 맞대어 서자, 그도 조금 안심한 듯 했다.
몸통만을 가리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의 한손 나무 라운드 실드.
하지만 이것 만으로도 현수를 호위하기엔 충분했다.
내구도가 꽤 까이기는 하겠지만, 이 기회에 더 좋은 걸로 하나 구해주면 되지.
“가자!”
“네!”
현수가 쌍단검을 꽉 쥐며 고블린 무리에게로 돌진했고, 나는 그의 등을 곧장 뒤쫓아갔다.
엄청난 혼전.
현수는 민첩과 힘 등등 데미지 스탯에 몰빵한 암살자인 만큼 빠르게 고블린을 암살해갔고, 그럴때마다 주변의 모든 고블린들이 그에게 한꺼번에 덤볐다.
이럴 때 사냥에만 신경쓸 수 있도록 공격을 막아주는 게 내 역할.
공격루트인 정면은 스스로 막게 내버려두고, 시야가 닿지 않는 측면과 후면으로 다가오는 고블린들을 전부 쳐냈다.
퍽!
방패가 고블린의 볼을 후려갈겼고, 엄청난 속도로 강타당한 녀석은 그대로 튕겨졌다.
이거라면 땅을 구를때 낙뎀은 좀 받아도, 스택이 쌓이진 않겠지.
현수는 내 방패로 인해 쓰러진 고블린들을 우선적으로 잡았고, 고블린의 숫자가 하나 둘씩 줄어들어갔다.
[리프트가 올라갈때까지 30초 남았습니다]
[남은 고블린 수 : 259마리]
아직 반 정도 남았구나.
그래도, 현재 그의 전투를 보면 정말 놀라울 수 밖에 없었다.
“잘하는데?”
뜸들임 없이 순식간에 진입해서 필요한 동작만으로 공격하고, 다음타겟을 정하는 것도 순식간이다.
암살자라는 직업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는 듯한 느낌.
에렌의 후예인 과학자라는 직업은 나보다도 차라리 현수가 더 제격인 듯 했다.
지금 여기서 나랑 사냥하고 있는 걸 보면 충분히 폐인짓할 수 있을텐데.
고블린이 백마리 남짓 남았을때.
“뭐, 뭐하시는거에요?!”
“한 번 혼자 상대해봐. 이 정도면 숫자도 꽤 줄었고, 너라면 이정도는 충분히 이겨낼 것 같은데“
[시간 초과. 리프트가 올라갑니다]
나는 그의 호위를 멈추고는 저만치 너머로 물러났다.
“혹시라도 여차하면 바로 달려가서 도와줄테니까 너무 쫄지 말고!”
“으으... 네 알겠어요! 한번 해볼게요”
그런 자세 좋아.
어그로가 잠시 내게 튈 동안 현수는 바로 공격해 다시 어그로를 끌고 갔고, 영화보는 느낌으로 편안하게 그의 전투를 지켜볼 수 있었다.
“얘 이거, 레벨만 충분히 키워두면 그냥 대장군 자리에 앉혀도 되겠다”
팝콘이 없는게 아쉬울 따름.
백 마리에 육박하는 몬스터들을 홀로 상대하고 있는 현수의 모습은 한편의 영화같았다.
마치 3차 웨이브 때의 나를 보는 것처럼.
결국, 남은 고블린들은 내 호위 없이 그의 능력만으로 전부 잡아내는 데 성공했다.
[남은 고블린 수 : 0마리]
원래 이 던전은 뉴비용으로서 끽해야 500 중 십 몇 마리 정도 잡고 끝나는 게 정상이다.
클리어 목적의 던전에 아님에도 불구하고 5분안에 전부 잡을 경우엔 추가 보상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게 없다.
이미 5분이 초과된 순간 리프트는 올라갔다.
사실상 클리어하지 못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
거기다가 이젠 올라갈 방법도 없게 되었다.
하지만.
“이럴까봐 위쪽의 애들한테 10분 지나면 리프트 타고 내려와달라고 부탁했지”
아니나 다를까.
쿠구구궁.
출입문이 열리며, 리프트를 타고 내려온 조성찬의 모습이 보였다.
“현수는 먼저 올라가서 나머지랑 있어. 다음으로 내려올 애한테는 똑같이 10분뒤에 내려오라 전해주고”
“넵”
조성찬이 리프트에서 내려와 내게 다가왔고, 현수는 리프트를 타고 혼자 올라갔다.
얘는 마법사라고 했던가?
“야, 이거 받아”
“네? 이건 뭐죠?”
“정확한 이름은 나도 기억 안나는데, 마나 물약이랬나. 어쨌든 그거 마시면 10분동안 마나소모값 줄여준대니까 미리 마셔둬”
버스기사가 돼서 이런 준비도 안해두면 섭섭하지.
아 맞다, 마지막 말을 빼먹었네.
“500마리나 잡으려면 꽤 빡셀테니까”
“예?!! 500마리라뇨?!”
정보는 여기까지.
마나물약을 강제로 손에 쥐어주고 그의 등 뒤에서 방패를 들어주었다.
“잘해봐”
“에에에에?!!!”
[고블린 소굴 토벌이 시작되었습니다]
* * *
속성 토벌의 효과는 굉장했다!
단 한시간도 안되는 시간만에 레벨을 엄청나게 올려놓는 데 성공했다.
[이현수 Lv. 76]
[조성찬 Lv. 75]
[조재민 Lv. 68]
[김진홍 Lv. 71]
불과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10~20레벨 대였던 뉴비들.
확실히 경험치를 받는 인원이 줄어드니 효율이 엄청났다.
“이거, 그냥 오늘 안에 100레벨 만들어줄 수도 있겠는데?”
워랜드가 이렇게 레벨 올리기 쉬운 게임인줄 몰랐다.
나도 최소 한달은 걸렸던 건데, 이런 꿀루트를 알았더라면 진작에 만렙을 찍었을지도 모른다.
아, 버스기사가 필요해서 안되는 거였구나.
“저... 현우 님. 그럼 이제 어디로 가서 사냥해요?”
“음. 잠깐만 기다려봐. 나도 생각좀 해보자”
솔직히 말해서 나라고 이렇게까지 빨리 레벨업이 될 줄 알았던게 아니다.
이거 끝나면 대충 50레벨대 쯤 될거라고 생각하고 그에 맞는 던전을 돌아다녀볼까 했는데, 예상외로 성장속도가 너무 빨랐단 말이지.
“어디 파티퀘스트 같은 거 딱 떠주면 좋을텐데. 난이도는 대충 B급 정도로”
대부분의 파티퀘스트 같은 경우는 기여도에 상관없이 경험치가 1/n로 분배된다.
보스레이드 때 같은 탈퇴버그가 안 통한다는 게 좀 아쉽긴 할테지만, 그래도 효율이 엄청 좋은 편이다.
진짜 어디 딱 맞는 퀘스트 같은 거 없을까?
“B급 퀘스트가 그리 쉽게 나올리가 있나. 뭐 그냥 부른다고 누가 와서 떡하니 던져주고 가는 것도 아니ㄱ...!”
[파티퀘스트 : 지하실의 어비스 나이트]
[난이도 : B]
[얼마전 연합군 진영 방향에서 발견된 언데드.
에킬라 영토에 발을 들인 순간 간신히 로드란의 지하감옥으로 가져오는 데 성공했다.
연구를 위해서는 영혼을 잠재울 필요가 있다.
어비스나이트를 처치하자]
[보상: 왕국과의 신뢰도 상승]
[파티퀘스트는 모든 파티원에게 보상과 경험치가 골고루 분배됩니다]
진짜로 왔다!
정말 말그대로 갑자기 나타난 누군가가 퀘스트를 떡하니 던져줬다.
이분은 대체 누구셔?
“에킬라 연구원이라... 그나저나 이 어비스 나이트라는 놈은 뭐하다가 나타났대?”
“저희가 어찌 알겠습니까. 생포된 건 처음이라 연구해보고 싶은데, 역시 산 놈을 건드릴 수는 없더군요”
“그래서 우리보고 그 놈을 잡아달라는거구나”
어비스나이트라면 저번에 상대해봤다.
아틀란티스 고급수련장에서, 수백마리를 한번에 상대해봤지.
다신 떠올리기도 싫은 기억이다.
어째됐든 이걸로 꿀 퀘스트가 생겼다.
굳이 거절할 이유가 있나?
“너네도 다 할거지?”
“물론이죠”
“이번에도 버스 잘 얻어가겠습니다!”
“버스충 개오져버리는 부분이구여!”
“닥치시구여!”
“…”
이새끼들 급식이냐?
* * *
어쨌든 만장일치로 퀘스트를 수락하고나서, 곧장 로드란의 지하감옥까지 텔레포트했다.
최하층에 갇혀있는 어비스 나이트.
“쿠오오...”
왠지, 고급수련장에서 만났던 것보다 훨씬 더 강하게 보인다.
어비스 나이트.
지금까지 알려진 언데드 중에서 단연 최강의 오버레벨 몬스터.
빠르고 강하며 히트박스도 좁아 원거리 딜러는 좀처럼 공격을 맞추기가 어렵다.
근접에서 휘두르기만 하는 근딜 랭커도 자주 공격 미스가 일어나는 녀석.
“너희들은 저 사람이랑 여기에 있어. 나혼자 잡고 올게”
“네? 그래도 저희가 빠지면...”
“어비스나이트를 얕보지마. 들어가는 순간 죽지 않게나 걱정해야될걸?”
들어가면 오히려 방해가 될 뿐이라는 말을 최대한 돌려서 말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제대로 알아들은 듯 했다.
“네에... 그냥 여기있을께요”
“너무 시무룩해하지마. 어차피 파티퀘스트 중이니까 참여 안해도 경험치랑 보상은 다 받잖아?”
덕분에 나혼자 들어가서 잡고 와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끼이이익.
당당하게 문을 열어재끼고 어비스나이트가 갇혀있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물론 지금도 속으론 엄청 떨고 있는중이지만, 날 신급으로 보는 뉴비들이 뒤에 있으니 깡으로 패기 한번 부려봤다.
감옥은 사람을 위한 출입문이 있고, 그 안쪽에 죄수를 가두는 철창을 한 번 더 열어야 하는 이중구조였다.
“문을 열어주세요”
연구원에게 소리치자, 마법으로 봉인되어 있던 철창이 해제되었다.
그리고.
“크르르르...”
이제 어비스나이트와 나의 사이를 가로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