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스 드라이버 -->
100화
“그냥 서울 올라온지도 오랜만이라서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어. 친구들도 만나고, 대학이나 직장같은데도 알아보고”
너무 무난하게 말해버렸나?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해서 말문이 막힌 나머지 그냥 생각나는 대로 내뱉고 말았다.
“음...그러니? 우리아들 열심히 하네, 힘내!”
엄마는 엄지를 척 치켜세우고는 힘껏 미소를 지었다.
“으, 으응...”
만약 이랬다가 내가 계속 게임을 하는 걸 알게 된다면 어떨까?
실망하시겠지 아마.
더 생각하고 싶지 않아 나는 곧장 방으로 올라갔다.
마음 한구석이 찝찝했다.
* * *
콜로세움.
가끔가다 한군데씩 있는 워랜드의 공식 결투장으로서, 유저라면 언제든지 콜로세움에서 결투를 할 수 있다.
보통은 그냥 pvp 시스템을 이용하지만, 오늘처럼 관중이 많을 때 사용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조사는 잘 해왔냐?”
“응. 대충 어느정도는”
케프와 제프.
워랜드 초창기때부터 플레이해왔던 듀오 유저들로서, 탱커와 딜러를 동시에 겸하는 딜탱유저들이다.
주로 사용하는 무기는 긴 장검.
힘 스탯도 어마어마해서 저 둘에게 한대씩만 맞아도 바로 몸이 두동강 날 것이다.
그만큼 민첩부분에선 저들이 좀 딸리겠지만, 빈틈없는 방어술로 잘 메꿔나가고 있다고 하는데.
“하긴. 서로 등대고 대치하기만 해도 좀처럼 틈 보기가 힘들지”
깊숙히 파고드는 전술은 사용하기 힘들 것 같다.
설령 들어간다 하더라도 안쪽에서 포위당할테고.
“1분 뒤에 시작한다. 준비하고 있어”
“응”
검집에서 가엔을 뽑아 단단히 쥐며, 나는 경기장으로 향했다.
눈앞에 보이는 탁 트인 공간.
너머를 둘러싼 관중석.
맞은 편에서 날 기다리고 있는 제프와 케프 듀오.
한 사람은 큰 타워실드와 한손검을, 또 하나는 긴 장검을 양손에 쥐고 있었다.
방어구로 떡칠하는 건 어차피 무의미하다는 걸 알고있었는지 기본적인 갑옷만 장착한 상태.
“역시, 빈틈이 전혀 안보이잖아”
여유롭게 가만히 서 있는 자세임에도 안쪽으로 들어갈 만한 빈틈이 보이질 않았다.
그냥 저렇게 쭉 서있기만 해도 저런 방어자세가 나온다니.
위험하다. 자칫 잘못하다간 제대로 데미지도 못 넣고 져버릴 수도 있어.
압승을 줘버리면 시작섬의 유저들은 전부 포기한 거나 마찬가지다.
[결투 시작까지 1분]
[59]
[58]
카운트 다운 시작.
동시에 시끌벅적하던 콜로세움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32]
[31]
선진입은 위험해. 적당히 물러서서 각을 본다.
“3! 2! 1!”
[결투가 시작되었습니다!]
푸슉.
“…!”
제프가 타워실드를 옆으로 밀어내더니, 왼손으로 쇠사슬을 던졌다.
순식간에 꽁꽁 묶인 신세가 되어버린 나는 움직여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고, 곧바로 놈들이 내게 달려왔다.
“끄응, 시발!!”
몸을 뒤척여 풀을 방법을 찾아보았지만, 절대 풀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군중제어 ‘속박’에 속하니 몇 초안에는 풀리겠지만, 그때쯤이면 이미 저 녀석들의 검에 머리가 깨진 후가 아닐까.
이미 코앞까지 왔는걸.
“하아압!”
“어림없어!”
여전히 몸이 묶인 상태.
장검으로 꽉 쥐고 날 벨 준비를 하며 달려오는 케프에게 유화술을 사용했다.
갑자기 내가 사라지자 당황하고 있을 시간에, 눈치채고 고개를 돌리기 직전 간신히 속박이 풀렸다.
씨익.
곧바로 가엔을 쥔 오른손을 높이 들어 공격하려 했지만.
“커헉!”
곧장 제프가 타워실드를 내 턱까지 들어올렸고, 관성으로 방패에 맞아버리자 그대로 튕겨나갔다.
[HP 10,0287]
무슨 한번 부딪혔다고 800씩이나 닳는건데?!
“하아아!”
방패가 위를 보고 있을 때 곧바로 돌진해서 틈을 노렸지만, 금세 다시 정면이 막혔다.
옆으로 뛰어가 등을 노려봐야겠어.
그렇지만 그쪽에는 피식 웃으며 내게 장검을 찔러넣으려는 케프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크!!”
끼이이이익.
쇠 마찰음과 함께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그리곤 순식간에 위치를 바꾼 제프가 다시 방패로 나를 밀쳐냈다.
“크윽. 콜록...”
바닥에 뒹결다 흙먼지를 마시는 바람에 기침이 나왔다.
그 잠깐의 틈을 노린 녀석들은 곧장 날 좇아 다가왔고, 잠시 쉴 틈도 없이 다시 싸워야 했다.
이렇게 된 거, 장비 파괴를 노려보자.
타워실드의 내구도를 전부 닳게 만들어 파괴 시키면 어떻게든 방어를 뚫을 수 있을거다.
팅팅팅팅팅.
먹히지 않는 공격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계속 방패에 공격을 가했다.
어차피 내구도는 오브젝트 공격력으로만 닳기 때문에 스택이 올라가봤자 파괴되는 속도가 빨라지거나 하지는 않는다.
속도가 꽤 붙었다하더라도 박살내려면 꽤 걸리겠지.
그래도 지금 상황에선 그나마 나아보이는 전략이었다.
그 순간 타워실드가 치워지며 안쪽에서 휘둘러지는 케프의 장검.
검을 휘두르던 도중에 팔의 궤도를 틀어 막아냈지만, 그 방향까지 돌린 건 너무 무리수였다.
“아악!”
공격을 막으려고 무리하게 손을 돌렸다가 결국에는 손목이 꺾이며 가엔을 놓치고 말았다.
추가 피해가 일어나기 직전에 그림자도약을 써 사정거리 밖으로 빠져나왔다.
[관절부위에 큰 피해를 입으셨습니다. 5분동안 다음 신체부위가 마비됩니다 : 오른손]
[HP : 7,980/11,000]
오른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이러면 검을 쥘수가 없잖아.
설령 쥘수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가엔 자체가 저쪽에 있다.
근처에 다가가서 주워오는 건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 다음에는 어떡하라고.
왼손으로 휘두르기라도 하라는거야?
"이게 정답인거냐"
미리 말하지만 어렸을 때 난 왼손잡이였다.
지금도 밥을 먹거나 펜을 잡을땐 왼손을 쓰지만, 그외에 가위질이라던지 스포츠 등등 다른건 전부 오른손을 쓰는 희한한 사람.
불행히도 검을 잡고 휘두르는 건 오른손에 속했다.
"어떻게든 해봐야하는거잖아"
지금 이미 케프와 제프는 내가 떨어드린 검을 잡으러 가고 있었다.
저게 손에 들어가는 순간 그대로 끝장. 반드시 먼저 가서 낚아채야했다.
"니네 같은 새끼들을 위해 만들어진 검이 아니라고!!"
달려가며 곧장 유화술을 사용하자 즉각 반응한 녀석들이 내가 방패와 검을 들이댔다.
무기도 없는 나를 노리기엔 딱 좋은 타이밍이었지만, 내 유연함을 너무 과소평가한거 아니야?
"...!!"
"미친 이게 가능해??!"
경기장 전체가 술렁였다.
높게 점프해 수평으로 다가오는 방패를 밟고 돌며 검을 회피한 것.
밖에선 어떻게 보였을 지 몰라도 그짓을 직접하는 내 입장에선 정말 소름끼쳤다.
바로 눈앞에 닿을 거리를 0.1mm 차이로 스쳐지나갔는데, 안쫄면 그게 사람이냐?
전투보정이 없는 현실에서의 싸움이었다면 이미 떨다가 베였을 것이다.
어쨌든 모세의 기적같은 플레이로 간신히 위기를 넘긴 뒤, 그대로 녀석들을 통과해 반대쪽에서 떨어진 가엔을 주웠다.
왼손으로.
“아아 진짜, 이거 너무 어색하다고!”
오른손으로 펜을 쥐는 느낌이었다.
잡을때부터 뭔가가 살짝 묘하게 다른 느낌.
곧장 달려가 전투를 펼칠때는 더 심해졌다.
검을 휘두를 때의 궤적이 자꾸만 틀어졌고, 익숙하지 않은 손이다보니 자연스레 잔동작마저 늘어났다.
그래도 오른손을 다시 쓸 수 있게 되려면 5분이나 남았는걸.
아무것도 안할 바에야 어색하더라도 계속 때려보는 게 나았다.
비록 어색한 동작으로 인해 공격속도도 느려졌고 빈틈도 많이 노출하게되었지만 어느정도 이 패턴에도 익숙해져가고 있고.
텅!
“크윽”
결국 큰 빈틈을 내주게 되어 다시 밀려났다.
처음 한번 밀려났을때는 그냥 조금 짜증나는 정도였는데, 세번이나 당하니 진짜 뭣같다.
저 방패는 백 번 가까이 때렸는데도 깨질 생각을 안하네.
하긴 애초에 이러는 게 너무 무식한 건가.
차라리 방패를 때릴 시간에 직접 공격을 노려 한대라도 맞추면 바로 이길 듯 했다.
지금 상태의 풀스택은 어떤 유저도 못 버텨낼테니까.
하지만 절대 그런 틈을 안준다고.
“전투 패턴이라던가, 그럴 때 틈을 주는 건 없는거야?”
니가 3시간 전에 찾아봤잖아 이 빡대가리야.
“하지만 그렇게나 영상을 봤는데도 끝날 때까지 빈틈같은 건 하나도...잠깐”
있다.
대체 왜 잊어버리고 있었을까.
딱 한번정도밖에 없긴 하지만, 그리고 그렇게 긴 시간도 아니지만.
이들이 전투 중에 틈을 보이는 경우가 딱 한 번 있었다.
하지만 그 상황이 꼭 온다는 보장도 없고, 정말 순식간에 사라지는 터라 나조차도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틈을 보이게 만들려면 최대한 비비면서 그들이 모든 체력을 쏟게 만들어야 한다.
“왼손이 어색하긴 하지만, 킬각보는 것도 아니고 비비는 것 뿐이라면!”
단순히 방패를 박살내겠다는 이전의 계획보다는 훨씬 승산이 있었다.
다시 듀오에게 접근한 나는 세게 때리기보다는 속도에 초점을 맞췄다.
빠르게 방패에 충격을 줘서, 안쪽에서 끙끙대며 팔이 흔들리고 있을 제프의 상상되었다.
결국 한손검을 버리고 양손으로 방패를 잡은 제프.
저것까지 내가 쓸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오른손은 쓸 수 없는 상황이라.
그나저나 진짜 조금만 더 하면, 조금만 더 각보면 될 거 같기도 한데...
“흐아아아!!”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왼손은 처음이라고 해도 쉬지않고 휘두르다보니 어느정도 균형감을 찾아낼 수 있었다.
현재 녀석들은 타워실드 뒤에서 가만히 서 있는 상태.
워낙 내가 빠르게 견제하다보니 방패를 내리고 케프가 공격할 각을 보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케프를 쉬게 둘수는 없어서, 끈임없이 뒤로 돌아가기를 시도하며 움직이게 했다.
이러는 편이 체력빼기가 쉽지.
1분 정도 지났을까.
마침내 느껴졌다. 타워실드를 들고 막고 있던 제프의 체력이 한계점에 다다른 게.
이 타이밍에서, 나는 아주 잠시동안 공격을 멈추는 듯한 움직임을 취했다.
실제로 이렇게까지 몸을 세웠다면 이전의 속도로는 최소 몇초동안은 공격하지 못할테니까.
그리고 그 순간.
재빠르게 케프와 제프가 장비를 교환하기 시작했고, 그것을 본 나는 씨익 눈웃음을 지었다.
“걸렸다”
체력이 바닥나자 장검을 들고 있던 케프는 타워실드로, 실드를 들고 있던 제프는 장검으로 교대한 것이다.
그리고 그 교대가 끝나기 직전, 찰나의 시간.
[각성모드 : 마검 블러드터스터에 돌입합니다]
마검각성으로 세 배의 속도를 얻고는 순식간에 그들의 뒤로 돌아갔다.
“뭐, 뭐야?!”
이펙트가 없었으니 유화술이나 그림자 도약도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 빨라졌나 싶겠지.
저들을 당황시킨 덕분에 시간이 조금 더 생겼고, 나는 곧장 뒤쪽으로 물러난 제프에게 돌려차기를 날렸다.
“크헉!”
관성 그대로 한바퀴 돌아서 바로 뒷차기까지.
튕겨져나간 제프는 그대로 케프와 부딪혔고, 듀오의 진형은 순식간에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
여기서 빗나가면 전부 끝난다.
“죽어라!!!!”
검을 수평으로 잡은 뒤, 그대로 베는 모션을 취하며 녀석들에게 그림자 도약을 사용했다.
풀스택 상태에서 그림자도약을 사용하며 공격.
역시 이들도 내 한방을 버텨내지 못했다.
[결투 종료]
[현우 승리! (2분56초)]
* * *
시작섬 콜로세움에서 벌어진 하이랭커들의 2대 1 결투.
그리고 1이었던 나의 승리.
이미 워랜드 소식통에 능한 사람 치고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결투장면을 직접 촬용한 영상들은 클립으로 완전히 박제가 되어버렸다.
박제가 된 클립은 워랜드와 아이튜브는 물론이고 커뮤니티란 커뮤니티에 전부 떠돌기 시작했다.
인기급상승에 뜨자마자 바로 밴 먹었다고는 하지만, 게임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안쪽접시 갤러리의 식물 갤러리에마저 나타났다고 한다.
-제프 케프 듀오도 예전엔 엄청 인기있었는데, 완전 발렸넼ㅋㅋ
-이젠 현우가 랭킹 1위아님? 솔까 1대1로 이길 수 있는 사람 아무도 없을텐데
ㄴ케인은 가능하지 않나
ㄴ저번 아틀란티스 영상 보니까 케인도 발림
-워랜드 계정판지 얼마 안됐는데 그냥 남향왕국으로 들어가야긋다.
-이와중에 이거 식갤에 올린새끼 누구냐 지금 존나 갑분싸됨 ㄷㄷ
그야말로 폭발적인 인기.
[NEVAR 실시간 검색어 순위]
[1. 워랜드 시작섬 결투]
[2. 현우]
[3. 케프 제프]
[4. 워랜드 랭킹]
[5. 식갤 갑분싸]
워랜진도 아니고 무려 대한민국 최대규모의 웹사이트 중 하나인 NEVAR의 실검.
내 이름을 포함해 나와 관련된 단어들이 4위까지 전부 차지하고 있었다.
아, 5위도 포함이려나?
“그러고보니까 신규유저들 진영선택절차도 이젠 다 끝났겠지. 나도 들어가야되려나”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말해버린 후다.
전투 직업 유저들은 내가 직접 책임지고 100레벨까지 버스태워주겠다고.
그래도 밤새면서까지 사냥할 수 있을 폐인만이라고 해뒀으니, 그렇게 많이 모이진 않았겠지.
현실 시간으로 8시간이면 충분하다는 테오와의 약속시간이 지난 뒤, 곧장 워랜드에 접속했다.
내가 로그아웃했던 광장 동쪽으로 모이라고 해뒀었지.
“에이 설마 몇 명이나 왔겠ㅇ...”
“””현우님 안녕하세요!!!”””
“시발?”
이 사람들이 전부... 내가 데리고 버스태워야 하는 사람이라고?
이건 족히 100명은 되잖아!
========== 작품 후기 ==========
원래 100화 기념 축사글을 어제 연재분에 올릴려고 했는데, 프롤로그 제외 100화 분량은 사실상 이번 편이라 지금 올립니다! 100화까지 올 동안 따라와주신 독자분들께 모두 감사드립니다. 모두들 수고 하셨어요 이제 완결까지 50화도 안남았네염 ㅠㅠ 차기작은 레이드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