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틀란티스 -->
98화
“뭐, 뭐야?!”
중간에 메세지들이 몇 나타났던 것 같긴 하지만, 지금 상황에 정신이 팔려 잘 기억하지 못했다.
지진강타는 효과적으로 어비스나이트들을 전멸시켰지만,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곧이어 땅이, 내가 시험을 받던 곳 전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구조 전체가 흔들리다 하더니, 이내 무너져버린 것이다.
“으어어어!”
내가 뛰어가 들어갔어야 할 문도 같이 무너져내렸고, 밟을 곳이 없어진 나는 무너진 잔해와 함께 추락했다.
그리고, 정신을 잃었다.
[고급수련장 클리어를 축하드립니다!]
[보상은 NPC로부터 직접 받으십시오]
여긴 어디지?
추락을 멈춘채로 나는 밝은 방 한 가운데에 누워있었다.
이전에 나타난 메세지듣로 추측해보자면 여긴 선조들의 공간인건가.
조금 이상하게 깨긴 했지만 클리어했다는 메세지도 나왔으니, 아마 바로 그들에게 이어지는 게 맞을 것이다.
역시, 곧 허공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험을 통과하셨군요”
“당신들이 선조입니까? 모습이 보이지 않는군요”
“저희들끼리의 소통에 있어 형상은 무의미하니까요. 하지만, 당신과의 소통을 위해선 모습을 갖추는게 좋겠군요”
잠시 후 선조들로 추정되는 희한한 모습의 존재들 여럿이 내앞에 나타났다.
실루엣은 인간과 흡사하지만, 부위 사이에 명확한 구분이 없고 희푸른 에너지가 감싸돌고 있었다.
“지도자가 아닌 다른 자가 이곳에 온 것은 처음인데, 새롭군요”
“그분께서 이곳으로 보내주셨습니다. 지금의 상황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면서요”
“...그 상황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나는 찬찬히 선조의 얼굴을 살폈다.
아니, 얼굴이라고 추정되는 곳을.
새하얗고 푸른 에너지가 눈 부분에서 조금씩 빛나고 있었다.
그래도 아틀란티스 시장이 추천해준 곳인데 설마 나쁜 사람들은 아니겠지.
제대로 된 도움을 받으려면 지금 상황을 똑바로 알려줘야 할 것이다.
“그렇군요. 아틀란티스는 결국 다른 이들의 전쟁에 휘말린 것인가”
“적들이 먼저 선제공격을 하는 바람에 어쩔수가 없었습니다”
삼위연합군에서 먼저 아틀란티스를 쳤고 방어하기 위해 전투를 벌이다 보니 이겨서 어쩔수 없이 우리가 점령하게 됐다.
거의 이런 식으로 말하게 되어버렸지만, 사실 반쯤은 맞는 말이었다.
언젠가는 하게 되었을지 몰라도, 적어도 지금은 삼위연합군이 먼저 치지 않았다면 아틀란티스 점령을 시도하진 않았을테니까.
“어찌됐든, 지금 아틀란티스는 당신들의 도시가 되었군요”
“네, 그렇게 돼버렸네요”
“혹시 아틀란티스의 과거에 대해 알고 계신게 있나요?”
“딱 남들이 아는 정도만 압니다”
수천년 혹은 그 이전부터 존재했었다는 발단을 알수 없는 도시.
마법이 굉장히 발달해있고 전투를 좋아하지 않는 다는 정도밖에 아는 게 없었다.
“저희 부족은 아시다시피 평화를 사랑합니다. 모든 싸움에서 중립의 입장을 지켜왔지만, 그런 우리를 끌여들일 정도라면 꽤 규모가 큰 전쟁일테지요”
“아스가니아 전체가 끼어든 싸움입니다”
“저런. 벌써 두 번째 대전쟁이라니...”
아마도 에렌의 후예라는 설정의 내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스토리상으로 이 전쟁은 수백년 후에나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내가 캣츠의 일을 사사건건 방해하고 다니자 위험을 느낀 캣츠가 일을 앞당겨 벌인 것일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전쟁에서 저들이 승리하는 꼴을 보게 할수는 없겠군요”
“오오!”
선조의 영혼은 뭔가 다짐한 듯 하더니, 이내 내게 검 한자루를 내밀었다.
“저희는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지식을 전수받아 마법을 발전시켜왔습니다. 저희는 그 지식으로 바닷속에 도시를 세웠고, 보호막을 만들어 유지시켜왔지요”
“그럼 이 검은 뭐죠?”
“저희의 마 법에서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담아 이 검에 각인시켰습니다. 아쉽지만 제가 직접 전수해드릴 수는 없을 것 같더군요”
그러고보니 지능스탯이 심각하게 딸렸지.
한 번도 찍지 않아 기본 스탯인 10인 상태.
각성모드인 에렌의 후예로 얻은 제한해제 옵션이 아니었다면 지능 15를 요구하는 파이어볼도 배울 수가 없다.
무슨 검인지나 한번 볼까?
[카르킨의 검]
[전설로만 전해져내려오는 기사의 명검.
현재는 아틀란티스 부족의 고대 마법이 담겨있다.
전쟁 중 영토 안에 고정할 경우 해당 진영에게 특별한 효과가 부여된다.
실제 전투에서 사용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공격력 : 오브젝트 공격력]
전설의 기사의 명검이래놓고 실제 전투에서 사용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니.
설정이 뭐 이따구인데?
“특별한 효과라는 건 정확히 어떤거죠?”
“말로 설명드리기는 어렵군요. 직접 가서 확인해보십시오. 하지만 장담컨데, 장기적인 전쟁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될겁니다”
지금의 아틀란티스를 만들어낸 선조가 장담하는 버프.
어떤 종류일 지 의문을 품었지만 역시 정답을 알아내긴 어려웠다.
공격력 상승 버프라던가 그런 간단한 거만 생각나잖아.
“이제 슬슬 작별할 시간이군요”
“에에, 벌써요?”
어쩌면 캣츠에 관련된 정보라던가 그런 것들을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었는데, 벌써 가야된다니.
“안녕히가시죠. 문은 저쪽입니다”
“언젠가 다시 만날수 있을까요?”
“인연이 된다면 이곳에서 다시 만나겠지요. 꼭 승리하시기바랍니다”
여전히 표정은 알 수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에게서 온화한 미소가 느껴졌다.
피식.
“네, 안녕히계세요!”
여전히 아쉬움이 남았지만, 마지막 인사로 깔끔하게 털어버린채 곧장 문을 열어재꼈다.
그리곤 밖으로 달려갔다.
* * *
“돌아오셨군요. 선조분들과의 만남은 어떠셨습니까?”
“꽤 친절한사람들이더라. 저런 사람들이랑 자주 만날 수 있다니, 아틀란티스의 시장도 괜찮겠는걸”
“지도자는 강력한 마법권능으로 수백년을 살 수 있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저도 그 방으로 들어가야 할 날이 오겠지요. 육신은 잠든 채로 영혼은 영원히 쉬지 못하는 곳으로”
“미, 미안...”
“아닙니다. 후대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면 꼭 해야되는 일인걸요”
시장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보고있자니 측은한 감정이 나를 뒤덮었다.
그리 된 후, 나는 다시 남향왕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아틀란티스 포탈로 향했다.
가엔은 검집에 집어넣은 채 손에는 대신에 카르킨의 검이 들려있었다.
“오브젝트 공격력이라... 별도의 공격력 없이 무게와 속도의 법칙만으로 데미지를 판정한다는 건가?”
현실에서도 그렇듯, 공격아이템이 아닌 사과를 던진다고 해도 충분히 속도만 빠르다면 꽤 쎈 데미지가 들어간다.
아마 이 검도 그렇게 된다면 어느정도는 딜 용도로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순간, 귓속말이 날아왔다.
[테오 : 어이. 위 좀 보고 살아라]
[나 : 뭔 개소ㄹ... 미친 언제 왔냐?!]
원래 아틀란티스는 배경이 어둡다보니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엘캐피탄이 바로 내 위를 날고 있다는 것을.
[테오 :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해줄테니까, 일단 위까지 텔레포트 시킬건데 괜찮지?]
[나: 나야 상관없지만... 무슨 일 있는거야?]
하지만 대답대신 나온 것은 엘카피로의 텔레포트 전송을 허락하겠냐는 메세지 뿐이었다.
할수 없이 한숨을 쉬며 확인을 눌렀고, 곧장 엘카피의 함교로 텔레포트 되었다.
“좋아, 현우 픽업 완료. 이제 워프!”
“아니 제발 설명 좀... 으억!”
선체가 심하게 흔들리더니 빠른 속도로 워프했다.
한 20초 정도 엄청난 속도로 달렸고, 그동안 나는 관성 때문에 튕겨져 함교에 머리를 부딪혔다.
“어이, 괜찮냐?”
“아야야. 아프잖아... 괜찮을 거 같애? 그나저나 여기는...”
워프에서 빠져나온 뒤 나는 곧장 창문을 살펴보았다.
밑쪽은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땅이었지만, 저 너머 바닷가쪽에 딸려있는 작은 섬은 굉장히 익숙했다.
“시작섬? 여긴 또 왜 온거야”
“그게, 또 이쪽에서 선동질이 시작돼서 말이야”
“…?”
“삼위 연합군 녀석들, 시작섬에서 전언 마법 켜놓고 신규 유저들을 전부 끌어들이고 있어”
“…!”
새로운 유저의 대량 합류는 생각보다 큰 효과를 발휘한다.
특히 길드나 왕국 같은 대규모 집단에서 모집할 경우, 각종 저레벨 아이템 지원과 사냥 버스를 통해 무서운 속도로 성장시켜 전투력을 키울 수 있다.
어느정도 능력이 있는 곳에선 워랜드 시간으로 1주일만에 신규유저를 100레벨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모든 신규유저가 모이는 곳에서 그렇게 모집을 한다니.
심지어 지금까지 우리는 미개척지로 넘어온 사람들에 한해서만 홍보를 한 터라 경쟁상대도 없다.
“우리도 옆에서 같이 홍보해야 하려나”
“그러는 편이 좋겠지. 아니면 확실하게 선 긋자고 담판을 짓거나. 신규 유저는 건드리지 말자고 말이야”
동향왕국 사건도 잠잠해지지 않은 참이라 똑같이 홍보를 한다면 우리가 조금 더 불리한 상황에 있다. 아직까지는.
“아틀란티스 점령전의 긍정적인 효과도 기대해보자고. 그럼, 그냥 여기서 홍보하자고 나 부른거야?”
“그것도 있지만, 연합군에서 전투병력도 꽤 보낸 것 같아서 말이야. 혹시라도 전투상황이 되면 너가 있는편이 맘 편하지”
“제대로 봤네. 안그래도 나 이번에 폭렙업했어”
“오오, 100레벨대에서 폭렙이 가능해? 얼마나 했는데?”
“기다려봐”
고급수련장을 나선 뒤로 한번도 상태창을 보지 않았다.
과연 몇레벨이나 올랐을까?
[이름 : 현우]
[레벨 : 204] [직업 : 과학자]
“…꿈이냐 이거...?”
‘아닌 것 같은데... 그럼 뭐냐...”
“하하... 시바알...”
고급 수련장에 들어가기 전 레벨이 108~ 110 정도.
그리고 고급수련장을 클리어하고 온 현재의 레벨은 204.
한번에 90레벨 정도가 올라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