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틀란티스 -->
94화
슬슬 규모가 커지니, 아틀란티스 앞 평지가 좁아터질 듯 했다.
빨리 전장에 뛰어들어 정리를 해주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케인이 날 가만히 두지 않았다.
"상대가 되는 사람끼리 붙어야지"
"아 쫌!!"
내가 저쪽에 합류하려는 기색을 조금이라도 보이는 순간 녀석은 곧장 내게 달려들었다.
전혀 틈을 안주네 진짜.
그래도 이렇게 붙잡아두고 있으니 적어도 케인이 전장에 합류할 일은 없을 것 같다.
괜히 보내줬다간 저번처럼 우리 군대를 한번에 전멸시킬지도 모르니 차라리 이런 구도가 나을수도.
결국 나도 합류를 포기하고 케인을 향해 가엔의 날을 세웠다.
"이렇게 된 거 1 대1이다!"
케인이 뽑아든 무기는 리치가 비슷한 롱소드.
맨날 무기가 저리 바뀌니 그의 직업을 추측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래도 '민첩'이라는 전투방식이 변하지 않으니, 나도 그냥 속도로 밀어붙힐 생각이었다.
티잉.
검을 일부러 수직으로 맞부딪히게 한 뒤, 곧장 검을 뒤로 당겼다.
힘싸움을 생각하고 있던 케인은 순식간에 몸이 앞으로 쏠렸고, 그 사이에 난 땅을 박차고 공중을 한바퀴 돌아 무방비 상태가 된 녀석의 등을 노렸다.
하지만...
"이걸 막아? 좀 빠른데"
공격이 닿기 직전 케인은 공중에서 몸을 돌려 검을 막아내는데 성공했다.
역시 민첩 위주로 올렸구나.
그렇지 않은 이상 방금 전 저 속도는 성립이 안 된다.
얕보면 안되겠어.
에렌을 상대할 때와 비슷하다.
더 이상 이 규모의 싸움에선 내가 속도에서 우위가 아니다.
잠시 호흡을 정리한 뒤, 우리는 곧장 다시 검을 부딪혔다.
일촉즉발의 전투상황.
더 이상 그 누구도 아까처럼 여유롭게 말을 주고받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만큼 다들 긴장해 있다.
아틀란티스는 양측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자원.
적들에게 있어서 우리한테 아틀란티스를 넘겨줬다간 괜히 역전각을 만들어주는 행위.
그리고 우리에게 있어서 저들에게 아틀란티스를 넘겨주면, 그 순간 그냥 게임 끝이라고 사형선고를 찍는 거나 다름없다.
어느쪽에게도 서로 포기할 수 없는 곳.
그러니만큼 다들 마지막 전투라고 생각할 정도로 필사적으로 싸웠다.
"하압!"
그러고보니, 나머지 군대들의 전투는 어떻게 됐으려나?
케인과의 1대1에만 신경을 쓰다보니, 정작 제일 중요한 그쪽에 신경을 못 썼다.
다행히 아직 어느쪽이 밀린다거나 하는 기세는 보이지 않는다.
반반 싸움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우리 둘중 이기고 먼저 합류하는 쪽이 훨씬 유리해.
이번 싸움의 승패는 내게 달려있다.
그런데 그 순간.
"으윽!"
방금 대체 뭐에 밀린 거지?
분명 케인은 어느정도 거리가 있었는데, 갑자기 뭔가가 강하게 쳐내는 느낌과 함께 멀리 튕겨나가버렸다.
"이번 패치, 아무래도 영 꿀이더라"
땅바닥에 쓰러진 날 보며 케인이 키득거렸다.
잠깐 사이에 모습이 조금 변한 것 같은데... 잠깐 설마?
"각성모드냐?"
"이렇게 좋은 시스템이 나왔는데 바로 써봐야지. 제일 좋은 주문서 구하느라 돈이 탈탈 털렸지만 말이야"
위험하다.
케인은 대충 200레벨 후반.
안그래도 레벨차이 때문에 각성모드로 간신히 따라잡은 건데, 녀석마저 각성하며 격차가 너무 벌어졌다.
"돌풍의 전령. 민첩 뻥튀기에 매 10타마다 추가 데미지. HP 60% 감소가 좀 빡세긴 하지만, 이런 곳에서 안쓰면 언제 쓰겠어?"
"큭, 젠장..."
"죽으면 방송부터 들어가봐. 적어도 너희 마지막 희망이 어떻게 당하는지는 지켜봐야지"
그 말을 끝으로 녀석이 사라졌다.
너무 빨라져서, 아예 시야가 잡지를 못했다.
스윽.
녀석의 왼팔을 베고 지나갔다. HP가 훅 깎였다.
그 다음은 오른 허벅지. 그 다음은 옆구리.
계속 당하면서도 방어는 커녕 회피조차 할 수가 없었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는 걸.
[HP가 50% 미만으로 감소하셨습니다]
젠장, 어떡해?
[HP가 40% 미만으로 감소하셨습니다]
패턴... 분명 패턴이 있을거야. 다음은 저쪽인가? 확실하지도 않은데 틀리면 어떡하지?
잠깐. 보이지 않아도 귀는 살아있잖아?
바람이 갈리는 소리에 잘 집중하면...
지금이다!
[각성모드 : 마검 블러드터스터에 돌입합니다]
깡!
"커헉!"
너 딱걸렸어.
달려오는 케인의 검을 있는 힘껏 쳐내자, 녀석은 반대방향으로 튕겨져 나갔다.
유화술로 바로 그를 따라잡고는, 등에 검을 찔러넣으며 속삭였다.
"여긴 우리거니까, 넘볼 생각하지 말고 꺼져"
"...!"
확인사살로 발로 뻥 걷어찬 뒤, 꽂힌 검의 출혈데미지에 낙뎀까지 더해지자 케인은 바로 즉사했다.
HP 60% 감소가 이런 결과를 만들줄은 몰랐겠지.
그리고 곧장 각성모드를 해제했다.
[HP: 1/11,000]
"또 이 꼴이냐..."
각성모드 전까지만 해도 항상 이 HP로 당당하게 돌아다녔는데, 이젠 털썩 주저앉는 것도 쫄린다.
기다려봐. 좀만 쉬었다가 포션 하나 빨고 나머지 처리하러 가자.
* * *
상황이 좀 좋아졌다.
좀이 아니라 많이 좋아졌다.
아틀란티스도 최소한 하나의 왕국으로 친다면, 이젠 3 대 3의 해볼만한 싸움이 된 것이다.
물론 단순히 유저들의 수만을 따지자면 여전히 삼위 연합군 쪽이 압도적.
그렇지만 아틀란티스를 얻음으로서 전쟁에 필요할 충분한 자원이 확보되었다.
아틀란티스는 농사, 마법 등등 생산적인 것들은 탑이라고 봐도 되지.
전투에서 승리한 덕분에 신규 가입하는 유저들도 우리 쪽에 꽤나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모양이다.
"하필이면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유희를 찾으러 가는 건 한참 걸리겠네. 괜히 희망만 준건가..."
아냐. 그래도 어느정도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겠지.
상단에 고정 된 '그 게시물'은 어느새 조회수가 68,000.
저번 유희의 글과 연관되어 있다는 걸 알고 눈치챈 사람들도 있었고, 대부분 응원하는 댓글들을 달아주었다.
-꼭 찾으시길 빌게요. 힘내세요!
-전쟁 터졌는데 어떡해ㅠㅠㅠ
-유희라는 사람 찾으려면 무슨일이 있어서라도 이겨야 겠네. 많이 불리한데 이길 수 있겠음?
-이번 아틀란티스 점령전도 이겼자나. 어떻게든 되겠지 머.
저 6만 8천 명의 사람들 중에 유희가 있기를.
보고 희망을 버리지 않았기를.
그때.
"현우 님 맞으십니까?"
"네"
님은 누구신데요.
설마 또 '~~님이 찾으십니다' 같은 레파토리로 날 데려가려는 건 아니겠지?
"전투에 관한 소식은 들었습니다. 시장님이 현우 님을 찾으십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잠깐만 동행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
벌써 몇번째냐고, 이거.
========== 작품 후기 ==========
와! 연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