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막아둔 문을 뜯어야 할 때 -->
81화
순간 이상한 곳에 키를 꽂아서 그런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아니면 충분히 돌리지 않은 거라던가, 충분히 깊게 꽂지 않았다던가.
"진짜? 이게 왜 안되지?"
하지만 개발자로 보이는 사람이 와서 해봐도 똑같았다. 함선이 움직이지 않는다.
"뭔가 문제가 있는거 같은데요. 왜 사전에 눈치 못채신 거죠?"
"저, 그게... 완성된채로 아직 점검도 안해본 상태라, 지금이 사실상 시험가동해보려던 참이었거든요"
마법 감정 스킬 같은게 없는 내게는 정말 완벽해보였는데, 전문가들에겐 그렇지가 않았나보다.
"말도 안돼. 드래곤 언어가 선체에 작용하지 않고 있어"
"조립이 확실하게 된 거 맞아? 그게 아니라면야 그럴리가 없잖아"
"방어막처럼 독립적으로 만든 건 잘 돌아가는데 메인 시스템 연결이 안돼. 조립 문제라면 전부 안 먹어야 된다고"
이건 큰 문제다.
해결방법도 잘 모르고, 지금은 애초에 원인조차 확인이 안 된 상태.
"마치, 드래곤 언어가 일부러 타이탄 기술로 만들어진 함선을 거부하는 거 같아"
"...! 그거라면 말이 되는데요?"
전쟁 당시 드래곤들을 전멸 코앞까지 몰아넣었던 병기 '마검 블러드터스터'.
드래곤과 타이탄의 능력이 합쳐지면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알게되었으니, 일부러 자신들의 마법에 봉인을 걸어두었을 확률이 컸다.
"하지만 그 때 공성전에 나왔던 골렘은요? 그것도 일반 마법 대신 드래곤 언어가 새겨져 있었다면서요"
"일정 수준 이상의 기술만 거부하도록 되었을 것 같아요. 그 이하는 별로 위협적이지 않으니까"
어쨌든, 이건 훨씬 더 큰 일이다.
원인이 이게 맞다면, 아예 기술적으로 막힌거니까 정말 방법이 없다고.
"어쩔 수 없죠. 게임이 시작되기도 전의 역사에서부터 이미 막힌거니까. 아무리 게임이라고 해도 과거를 바꿀순 없잖아요"
이런 연구실에도 일반 유저가 있었구나.
솔직히 말해서 사실이라서 말이지. 아무리 워랜드여도 과거로 돌아갈 방법은 없...!
"아예 없지는 않네"
"네?"
어디 버리지는 않았으니 아직 남아있겠지.
곧바로 인벤토리를 펴서 아이템 목록을 뒤져보던 중, 내가 찾던 것이 나타났다.
[마법 주문서 : 메모리 테크닉]
[마나 소모 : 1,800]
[빈사 상태인 몬스터나 NPC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 기억을 바꿀 수 있다]
[스킬 레벨 고급을 달성할 시 실제 역사를 바꿀 수 있습니다. 단, 플레이어가 개입된 역사는 불가능]
당시에는 마나가 없어서 전혀 생각도 안 하고 있던 스킬.
이게 있으면, 드래곤들의 역사로 돌아가 그들이 타이탄 기술과 결합되지 않도록 봉인하는 걸 막을 수도 있다.
"분명 각성모드가 되면 모든 기본 스탯을 얻고, 소모값과 습득 제한이 사라진댔지"
메모리 테크닉 고급도 껌.
물론 그 세계로 돌아간다고 무조건 봉인을 막을 수 있을 거란 보장도 없다.
[히든 퀘스트 : 드래곤의 신뢰]
[난이도 : A]
[과거 전쟁의 크나큰 아픔을 아는 자라면, 그들이 자신들의 언어를 이리 봉인한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그대들은 힘이 절실이 필요한 상태.
시간마법도 갖추었으니, 드래곤을 처치하고 그들의 세계로 내려가 봉인을 막아라.
장로드래곤에게 신뢰를 보인다면, 설득을 가볍게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보상 : 드래곤 언어의 비기 습득. 엄청난 경험치와 명성 점수 및 장로에게 선물을 받을 수 있습니다]
퀘스트가 뜨는 거 보니 맞네.
내가 지금까지 중얼거리고 퀘스트가 나타나는 것을 전부 봤을테니, 이 연구원도 대충 이해한 듯 했다.
"우와... 워랜드 시작하고 여기 스카우트 됐을때까지도 A급 퀘스트는 처음보는데, 대단한 사람이시구나"
"저 이래뵈도 랭커라니까요"
"그런데, 일단 이걸 수행하려면 드래곤을 잡아야되잖아요? 드래곤 둥지도 찾아야되고, 랭커라고 하셔도 솔로 레이드는 힘드실 텐데, 어떡하시게요?"
피식.
"그거야, 다 방법이 있죠"
* * *
삐걱.
못을 박아 막아두고 있던 판자를 강제로 뜯어내자, 낡고 너덜너덜해진 화장실 문이 나타났다.
"여기를 다시 오게 될줄이야, 그래도 돈 먹이길 잘했네. 이렇게 제대로 막아두고 있던걸 보면"
"...그냥 가게가 망해서 폐건물이 돼버린 거 같지만요"
그래서 정문에도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구나.
"여, 여기 남자화장실이잖아! 이런 곳을 나보고 들어오라고..."
"아무도 없는데 뭐 어때. 빨리 들어와"
"100레벨 넘겨놓고 아틀란티스는 처음오네. 그나저나 여기 네 명이서 한번에 들어가기엔 좀... 끄악!"
"어이! 거기 문 낮으니까 조심하라고 했잖아!"
그 연구원도 말했듯, 아무리 나라고 해도 솔로레이드는 무리.
때문에 테오랑 승현이 수아 거기에 엔초까지, 전투에 도움이 될 만한 친구들은 전부 끌고 왔다.
나머지 포도당을 다 데려올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역시 그러기엔 입구가 너무 좁아.
랭커인 나도 있는데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그러고보니 너희들, 서로 초면인가?"
"사실 만나기는 다 만나봤지. 대화가 별로 없긴 했지만"
그러고보니 아스칼 왕국 이벤트 때문에 전부 다 한번씩은 만나봤겠구나.
"그럼 여기서 미리 제대로 퉁성명 하고 가는 건 어때? 편하게 긴장 풀고 가는게 좋을테니까"
"좋죠. 이쪽은 제 동생 수아고, 저는 임승현이라고 합니다! 레벨은 둘 다 90대 정도에요"
"반가워요. 제 이름은 테오구, 레벨은 대충 120대 정도입니다!"
"저, 전... 엔초에요 레벨은 108..."
"왜 긴장하고 그래. 다 나랑 아는 사람들이니까 편하게 대하라니까"
"그럼 다들. 앞으로 잘부탁 드립니다!"
인사까지 끝났으니, 이젠 던전에 들어가야 할 차례다.
"...꼭 드래곤 둥지 입구가 재래식 변기여야 했을까"
"나한테 묻지마. 우리도 우연히 발견한 거니까"
"그럼, 한명씩 들어가자. 우선 나부터"
끈임없이 이어질것만 같은 어두운 구멍으로 뛰어내렸다. 은근 그렇게 좁지는 않았다.
[히든 던전 : 숨겨진 드래곤 둥지의 입구에 입장하셨습니다]
얼마만에 돌아온건지 모르겠네, 여기도.
승현이랑 새벽에 뭣도 모르고 둘이 내려와서, 영영 갇혀버리는 건 아닌지 엄청 걱정했었지.
"그런데, 둥지 감시자가 없는데 진짜 드래곤 둥지 맞아? 또 가짜인 거 아니야?"
"예전에 나랑 승현이가 미리 잡아둔 거니까 걱정하지 마"
둘이서 결국 포션빨로 꾸역꾸역 깼고, 더 나가볼 생각은 하지도 못한채 바로 돌아왔었다.
감시병이 있던 공간을 가로질러 조금 걸어가자, 곧장 이어진 큰 대문 한 쌍이 나타났다.
"진짜구나 이거. 드래곤 둥지라니, 지금까지 꿈도 못 꾸던 건데."
"그래도 조용히 온 거니까 클리어해도 랭커들처럼 오피셜 뉴스 뜨고 그러진 않을테니까, 다들 기대하지마. 그럼 연다?"
양 손바닥을 최대한 넓게 펴 문에 바짝 대고 세게 밀자, 드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둥지가 개방되었다.
그리고, 꼬리와 몸을 둥글게 말아 엎드린 채로 자고 있는 푸른 빛의 드래곤.
[Lv. 465]
[HP : 5,000,000,000]
========== 작품 후기 ==========
9시에 까먹을 거 같아서 기억 났을때 미리 올립니당... 비축분이 있어 편한 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