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찾으러 갈게 -->
79화
"목 마르냐? 뭐 마실거라도 줄까?"
"아뇨, 괜찮아요"
처음 이곳에서 아저씨를 만났을때, 그대로 아무생각도 하지 못하고 뇌가 정지해버렸다.
"참 나, 나도 놀랐다니까. 설마 현우 너도 서울까지 올라왔을 줄은. 도시는 웬 일이니?"
"부모님 사정때문에 올라왔어요. 아마 다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 같아요"
"그러냐. 하긴 세상 구경 한번 못해보고 살았으니 너도 이젠 수도권에 올라와봐야지"
나는 의자에 앉아 천천히 캡슐방을 둘러보았다.
조용하다.
하긴 캡슐에 들어가 있는 지금은 다들 수면상태나 마찬가지이니, 시끄럽게 떠들어대던 구 PC방 문화같은게 남아있을리 없었다.
거기다가, 강원도 시절 때보다 훨씬 더 넓고 깔끔하다.
"꽤 성공하셨나봐요?"
"역시 서울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더라고. 요즘은 장사도 잘돼서 빚도 많이 갚고 있는 중이야"
"그런가요. 다행이네요"
서울까지 가서도 아저씨가 힘들게 지내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조금은 있었다.
그래도 잘 하고 계시다니, 뭐.
"그러고보니, 내가 그때 선물해줬던 캡슐은 잘 쓰고 있냐?"
"아아. 그거 말이죠. 부모님한테 뺏겼어요"
원래 가장 신뢰하던 사람이기도 했고, 굳이 숨길필요는 없으니 사실대로 말했다.
이사오면서 부모님이 버렸다고. 그래서 이젠 다시 게임아바타로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계정이 온라인으로 저장되어 있었다고.
"역시, 서울로 올라왔다고 할 때 그럴거라고 예상하고 있었지. 온라인 저장은 내가 설정해놓은 거다"
"진짜요?"
저 아저씨가 그런 것 까지 신경을 써줬다니 살짝 놀랐다.
"겜창으로 살다 들키면 바로 압수라고는 말했지만, 내가 말한다고 네가 달라지진 않는다는걸 알고는 있었으니까"
"아저씨..."
"그래서 그냥 넘겨준 거야. 혹시나 게임에서라도 네 게임중독을 고칠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봐"
"하... 하하...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같이 사냥하는 동료가 옆에서 '넌 맨날 게임만 하냐?' 이러면 너도 뻘쭘할거 아니냐"
"아아, 듣고보니 그렇기도 하겠다"
"그런데, 썩 성공한 것 같지는 않네. 젠장"
옆에서 그런 충고 해주는 동료가 없다는 게 문제였다.
"얼마전 랭커 순위에 올라가 있는 닉네임을 보자마자 알았지. '현우 이 녀석, 또 폐인이 됐구나' 하고"
그냥 폐인이 아니었죠.
"자리가 몇개 남아있으니, 특별히 무료로 해주마. 한 30분만 해볼테냐?"
"...아니요"
"에엥? 웬 일이래?"
아마 지금 여기서 워랜드에 돌아가면, 동향왕국의 그 숲쪽에서 스폰되겠지.
많이 있지도 못할텐데 괜히 어설프게 있다 오고 싶지 않았다.
"개발자 한 명이 캡슐 선물해준대서, 그냥 그때 확실하게 다시 시작하려고요"
"...너 부모님이 게임하는 거 반대하신다며? 그런데 캡슐은 어디에 설치하게?"
"...?!!!"
그렇네?!
전혀 생각을 안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지? 캡슐을 받는다 하더라도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전혀 없잖아.
"역시 난 진짜 병신이야..."
"다 아는 사실 괜히 떠벌리지 말고, 그럼 내가 도와줄까?"
"네? 어떻게요?"
"일단 좀 있으면 문닫을 시간이니, 그 때까지 기다렸다가 날 따라와봐"
"...?"
무슨 생각이신걸까.
대충 한시간 쯤 뒤, 아저씨는 캡슐방 문을 닫고는 내게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어디로 가시려고요?"
"우리 집. 앞으로 게임할 공간이 없는 거면, 우리 집에 캡슐 설치해서 하는 건 어떠냐"
"에에?! 진짜 그래도 되요?"
"물론 되지. 그 편이 나도 감시하기 편하고, 어차피 집엔 나 밖에 없으니까"
"우와, 감사합니다..."
시내로 나와 골목을 반바퀴 돈 뒤, 한강 주변에 있는 작은 빌라로 향했다.
A동 301호.
"아저씨 집이에요?"
"그럼 어디 옆집 백수네 집이겠어? 당연히 내 집이지"
비밀번호로 도어락을 풀고, 신발장을 거쳐 거실까지 들어갔다.
"정말 아무것도 없구나..."
TV도 소파도 시계도 안보이고, 거실에서 보이는 거라곤 벽과 바닥과 천장이 전부다(+창문까지?).
"혹시 집 구하고 나서 가구를 들이신 적이 없으신건가요?"
"음, 저쪽에 냉장고가 있긴 하지. 안방에 이불이랑"
"..."
이분도 참 대단하게 사시는 구나.
캡슐방이 그렇게 성공했으면 조금 편하게 사셔도 될텐데. 굳이 왜 이렇게 사시는 거지.
설마 가구 들이기가 귀찮아서?
"그래도 어떠냐, 이 정도면 눈치 안보고 게임하기엔 충분하지?"
"충분하고도 남죠"
공간도 확보되었고 시간은 원래 많다.
이젠, 캡슐이 오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 * *
[그래서, 집 말고 그 빌라쪽으로 보내달라고?]
"네. 아무래도 집에서 설치하기엔 조금 그래서요"
[알았어. 그럼 그쪽으로 USB랑 같이 보낼게]
정찬호와 통화를 끝내고 몇시간 쯤 뒤, 아저씨네 빌라로 커다란 택배 하나가 도착했다.
"우와, 이게 캡슐 상자에요?"
"그래. 넌 아마 처음 봤겠구나. 그런데 안쪽에 워랜드 설치디스크 말고 USB가 하나 더 있는데?"
"아 그거, 개발자가 같이 보내준 거에요. 신경쓰지 마세요"
나중 패치 때 쓰려고 만든 프로토타입이라는 데 괜히 막 알려주고 다니면 그쪽에게도 실례일 것이다.
따로 설치기사가 없었음에도 아저씨는 거실에다가 능숙하게 캡슐을 설치했다.
"이제 워랜드를 설치하고 실행하기만 하면 되겠네"
"...제가 기계치인건 아시죠?"
"걱정마. 이렇게 귀한 물건을 너한테 맡기진 않을거니까. 물론 내가 설치해줘야지"
뭔가 묘하게 기분이 나쁘단 말야.
"그나저나 너, 가족한테는 뭐라고 둘러대고 여기 왔냐"
"그냥 서울 올라간 친구들 만난다고 하고 왔어요"
물론 실제론 친구가 없다.
"맨날 그러고 올 순 없잖아. 그러다가 걸리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그래"
"아저씨... 여기 근처에 한강다리 있죠?"
"미친놈"
그러던 사이 워랜드 설치도 완료되었고, 정찬호가 넘겨준 USB를 단자에 꽂은 채로 캡슐 의자에 앉았다.
"몇시간이나 하고 올거냐?"
"그런 게 의미가 있을까요. 캡슐방도 아닌데"
"전기세는 어떡하려고"
"아아"
"후우, 일단 괜찮으니까 그냥 갖다와라. 그리고, 꼭 그 사람을 찾아"
"...네"
그러고보니 아저씨한테도 유희에 대해서 말해줬었지.
캡슐이 닫혔고, 검은 공간이 날 뒤덮었다.
[가상현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수행하실 작업을 선택해주십시오]
[게임 접속이나 장비 설정, 외장드라이브 확인 등의 작업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개발자 콘솔"
[확인했습니다]
[명령어를 입력해주십시오_]
메모장 같은 창 하나와 앞의 가상 키보드가 나타났다.
FPEM IDN이라고 했었지.
[외장 드라이브의 확장 코드파일이 확인되었습니다. 계정에 추가하시겠습니까?]
"네"
[사용자가 확인되었습니다. 워랜드의 아바타 '현우'에 추가됩니다]
이걸로 됐으려나.
개발자 콘솔을 나와 바로 게임 접속을 클릭했다.
[워랜드에 접속합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확인.
가운데 점에서 빛이 뿜어져나와 나를 집어삼켰다.
이제, 다시 돌아간다.
"유희야 조금만 기다려, 지금 찾으러 갈게"
========== 작품 후기 ==========
이걸로 2권분량입니드아ㅏㅏㅏ 끊다보니 한 편 정도 남아버렸다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