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널 찾아 헤메고 있어 -->
75화
"시발... 여기를 다시 오게 될 줄이야"
평범한 2층집.
아파트나 빌라가 아닌 단독주택이란 점이 서울에서 보기 힘들긴 했지만, 그것 외에는 전혀 특별할게 없는 집이었다.
그래도 여기는 영 익숙하지가 않아서 말이지.
"안 온지도 거의 4년이 다 되어가는구나"
서울 온지도 대충 그정도 되었을 것이다.
이 집을 떠난 뒤로는 계속 강원도의 그 집에만 처박혀 있었으니...
"하아, 이걸 들어가, 말아?"
짐도 전부 옮겨졌고 들어가는 길 밖에 없다는 거야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영 마음에 걸렸다.
썩 좋은 추억이 있는곳도 아니잖아.
띵동.
잠시 숨을 가다듬고, 차라리 소리가 들리지 않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초인종을 눌렀다.
아무 반응도 없기를 바랬지만...
"아들! 왔어? 얼굴 보기 한번 힘들다, 얘"
"네, 네... 엄마..."
4년만에 보는 어머니의 얼굴은 별로 늙은 것 같지는 않았다.
관심이 없었어서 그런건가, 딱히 차이를 못 느끼겠다.
"이게 얼마만이야, 많이 배고프지? 너랑 같이먹으려고 점심 준비해놨단다. 같이 가서 먹자!"
"네..."
이렇게 잘해주시니까 뭔가 어색한데. 하긴, 그때도 잘해주시는 것처럼 하긴 하셨지.
"뭐해, 빨리 안들어오고"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나는 어머니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여러 문들과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 부엌이나 거실 그런 곳들로 이어지는 복도.
그때와 전혀 변한게 없다.
"부엌이 어디었는지는 기억하지?"
"네. 오른쪽에 두번째 문이잖아요"
"풉, 기억력 안좋은 건 여전하구나. 세번째 문이야. 두번째는 화장실이었잖니"
윽. 살짝 뻘쭘하다.
신발을 벗은 뒤 어머니를 따라가자, 넓은 식탁 위에는 이미 밥이 차려져 있었다.
"하도 안오길래 다들 먹고 있었지. 자, 너도 어서 먹으렴"
"어서와"
누나도 있네.
나는 눈치를 살피며 조용히 빈 식탁에 앉았다.
어머니와 아버지, 누나와 나까지. 4년만에 가족이 한 자리에 앉아 먹는 식사였다.
역시 이거 너무 조용하다.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환영인사나 그런 것도 없고, 완전히 정적 상태로 그냥 밥만 먹고 있다.
딱히 한 것도 없는데 뭐 죄 지은 느낌이잖아.
"그러고보니, 요새는 뭐하고 지냈니?"
"네? 따, 딱히 별로 한 거는..."
밖에 나가지도 않는 채로 먹고 자고 게임만 했다고는 차마 말 못하겠다.
그러고보니 오늘 전으로 집 밖을 나간게 언제였더라?
"그래서, 앞으로는 어떻게 할 생각이냐? 언제까지고 놀고만 있을 생각은 아니겠지"
아버지가 처음으로 말을 꺼내셨다.
딱딱한 말투는 아직도 안 변하셨네.
"글쎄요. 차차 알아봐야죠 뭐"
그 뒤로 식탁엔 다른 말이 오가지 않았고, 식사를 끝낸 뒤 나는 제일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짐은 예전에 살던 방에 풀어놨단다. 2층에 올라가서 바로 왼쪽에 있는 방이야"
"네"
30평도 넘었던 집의 짐을 그 좁은 방에다 쑤셔박았다니, 얼마나 많은 짐들이 버려졌을까.
밥그릇을 싱크대에 넣어두고 곧장 계단으로 향했다.
이 복도, 뭘 칠한건지 알 수 없는 이 냄새.
오랜만에 맞이하는 상황이었지만 딱히 그리워하진 않았다.
오히려 다시 오지 않기를 바랬던 걸까.
스르륵.
방문을 열자 4년 전 '그 방'이 나타났다.
컴퓨터나 TV 등으로 방구조가 조금 변하긴 했지만, 여전히 그대로였다.
좋아. 이사도 끝났으니 빨리 워랜드에 접속해서 유희를 찾으러 가야돼.
"어라...? 잠깐만"
그런데 캡슐은 어디있지?
"..."
책상, 의자, 침대, 컴퓨터, 전등, TV.
강원도 집에 있던 가구들 대부분은 다 있었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캡슐이 없었다.
"오랜만에 돌아오니 어떠니? 다시 집에 온 거 같지?"
"엄마... 지금부터 제가 묻는거에 똑바로 대답해주세요"
"응?"
"이삿짐센터 불러서 짐 가져오셨죠? 버린 것들중에 캡슐도 있었나요?"
"그, 그건..."
말 더듬는거보니 맞네.
"왜요? 대체 왜?? 그걸 왜 버리셨어요. 아아, 그게 그냥 굴러다니던 휴짓조각처럼 쓰레기로 보이셨구나. 그렇지?"
"현우야... 엄마는..."
그래. 그때도 이랬지.
단순한 참견이 아니다. 부모라는 명분 만으로 내 생활을 건드리면서, 정작 그걸 가장 잘 알아야할 내게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나랑은 단 한마디도 없이 모든걸 송두리째 바꿔버리는 것. 난 그게 너무 싫었다.
"그 캡슐은 뭐 어디다가 버리신거에요? 애초에 누가 그런 결정을 내리신거죠?"
스륵.
"내가 그랬다"
"여보..."
"아버지?"
"너 그동안 아무것도 안하고 그놈의 오락에만 빠졌다면서. 그런 식으로 통제가 안되는 걸 너한테 넘겨줄 수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거냐?"
"어, 어떻게 그걸..."
부모님한테는 철저히 비밀로 숨기고 있었던 건데. 내가 게임에만 빠져있었다는 건 누나만 알고 있었다.
오직 캡슐방 아저씨랑 누나만...
"정혜한테 다 들었다. 앞으로 그딴 부질없는 짓은 꿈도 꾸지 마라"
쿵.
어머니는 조용히 방을 나가셨고, 아버지는 문을 쿵 닫고는 떠나셨다.
* * *
뭘 한거지.
한창 워랜드를 할 때는 시간이 4배나 느리게갔음에도 불구하고 괜찮았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더 느린 것 같았다.
아무것도 하는게 없다.
"뭐해. 서울까지 올라와놓고 또 계속 방콕이냐"
"닥쳐. 지금 내가 누나랑 농담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잖아?"
지금까지 그녀는 내가 이 집에서 유일하게 신뢰하고 기댈 수 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누나에게조차 실망했다.
"갈 데가 있어서 그러는데, 너도 같이가자"
"혼자 가. 난 그냥 집에 있을래"
"권유하는 거 아니라 강요하는거야. 빨리 옷입고 따라나와"
"하아... 알았어"
이럴땐 쫓아낼까봐 겁나서라도 따라가야한다.
챙긴 것도 없이 대충 옷만 주섬주섬 입고 누나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삐빅.
"타."
차까지 끌고오다니. 어딜 갈 생각인 거지.
일단 말없이 앞좌석에 탔고, 그녀는 시동을 걸어 도심 쪽으로 차를 몰고 갔다.
"어디로 가는 건지 쯤은 말해주지"
"H대"
"자기 대학도 아닌 곳을 찾아간다니, 그것도 누나랑은 전혀 관련없는 미대를?"
"S대랑 K대, 그 외에도 몇 곳 더 가볼거야. 나 때문이 아니라 널 위해서 가는 거고"
날 위해서라니.
"명문 대학 견학이라도 시켜주게? 어떤 대학이 좋을 지 나보고 직접 골라보라는 거야?"
"2년제 대학다니다가 때려치고 돌아갔으면 솔직히 대학 졸업했다고 하기 힘들지. 당시 수능 만점씩이나 받아온 머리면 다시 갈 수 있잖아"
"...차 세워"
뚝.
"분명 말하지만, 난 부모님처럼 너한테 강요하는 게 아니야. 선택지를 넓혀주려는 거지. 너도 알다시피 앞으로 뭔가를 하려면 대학 경력은 필수..."
"집어치워. 차 세우라고"
좁은 승용차 안에 얼음장처럼 차가운 정적만이 감돌았다.
========== 작품 후기 ==========
휴재를 끝내고 돌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