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널 찾아 헤메고 있어 -->
74화
녀석들은 칼을 꽉 쥔채 계속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진짜 우리한테 오는건가?
계속 고개를 들고 있다간 들킬수도 있으니 일단 텐트 안으로 들어가 바깥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자고 있는거 맞겠지?"
"이 시간에 안자고 뭐하겠어. 로그아웃했다하더라도 던전이라 수면모드로밖에 안되니까, 지금 가서 잡으면 돼"
"...!"
진짜 우리 잡으로 왔나보네
젠장. 캣츠 그 새끼들... 이렇게 야비하게 나올 걸 예상했어야됐다.
처음부터 우릴 감시하고 있었던건가.
이렇게 된거, 방심하고 있는 틈을 타서 역관광 시켜줘야겠어.
녀석들이 텐트 안으로 들어오는 그 순간.
"순순히 잡혀줄줄 알았냐?"
"히익! 깨, 깨어있었잖아!"
"내가 뭐랬어!"
가엔을 녀석들의 목 부분 쯤에 겨누며 말없이 노려보기만 했다.
"할 말이 있으면 한 번 해보지 그래. 이렇게 비겁하게 나올거면 그냥 처음에 잡았을 때 죽이지"
"그러게 말이야. 굳이 이 좇같은 미로 돌아다니면서 너희들을 찾아다닐 필요도 없었을텐데"
"아니... 그걸 알았으면 그냥 그렇게 하지 그랬어"
"굳이 그걸 너한테 알려줄 필요가 있나? 여기서 죽을텐데. 어차피 이거에 맞아봤자 아프지도 않잖아"
녀석이 자신의 목에 드리워진 검에 눈짓하며 웃었다.
"야, 너희들. 나에 대해서 꽤 많이 알고 있는 거 같은데"
어떻게 정보를 입수했는지야 모르겠지만 적어도 게임 내에서 그들에게 비밀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을 것이다.
"설령 내가 너희를 죽일 수 없다 해도, 너희는 날 한 대라도 때릴 수 있을까?"
랭커급 민첩스탯을 가진 플레이어를 듣보잡들이 맞힐 수 있을리가 없지.
"다 한번에 덤비라고!"
괜히 안에서 싸웠다간 위험하니 한 놈의 옆구리 틈 사이로 베고 지나가며 안전하게 텐트를 빠져나왔다.
까딱까딱.
칼끝을 위아래로 조금씩 흔들며 녀석들을 도발하자, 아무 생각없이 달려오는 게 참 귀여웠다.
* * *
"크윽, 미친... 어떻게 한 대를..."
"속도 차이라니까. 앞으론 뭣 모르고 나대지마라"
굳이 가엔이 없어도 맨주먹으로만 싸워도 이길 것 같다.
녀석들의 공격은 날 단 한대도 스치지 못했고, 스택 쌓아서 참교육했다.
"다음번엔 좀 더 레벨업해서 오라고. 컨트롤이고 뭐고 여기선 스탯 낮으면 아무것도 안 되니까"
이미 사망해서 시체모드가 되어버린 두 놈을 구석에다가 던져놓았다.
잠깐.
그런데 아까 쟤네 3명 아니었ㄴ...!
"시발"
텐트 쪽을 계속 신경 써야 했었다.
다른 한 놈이 더 있다는 생각을 미처하지 못했고, 때문에 그 놈에게 완전히 텐트를 허용하고 말았다.
무방비 상태로 유희가 자고 있던 텐트를 말이다.
"당장 걔 내려놔"
"가, 가까이 오지마! 다가오면 이 년 죽어!"
놈이 자고 있는 그녀를 한손으로 제압하고는 목에 칼을 겨누었다.
"여기서 죽으면 다시 던전 앞에서 부활할텐데, 그러면 그냥 풀어주는 꼴이 되잖아? 차라리 그 편이 나한텐 좋은데"
"설마 우리가 던전 입구에 아무것도 없이 놔뒀다고 생각한 거냐. 이미 그쪽에도 친구들이 쫙 깔려있지. 그쪽에서도 바로 잡힌다는 뜻이야"
"그런...!"
"일단 무기부터 내려! 손 올리고 항복해. 빨리!"
젠장, 이러면 또 그냥 죽일텐데... 어떻게 될 지 뻔하잖아.
그래도 항복하지 않으면 바로 유희를 죽일게 분명하다. 최소한 잠깐이라도 시간을 벌어보자.
툭.
가엔을 내려놓고 양손을 번쩍 올린채 무릎을 꿇었다.
역시 이 얍삽한 새끼는 내가 항복하자마자 바로 칼을 내지른다.
기습하면 먹힐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여전히 너무 느리다고"
재빨리 반응해 유화술로 유희와 놈의 뒤로 이동했다.
아직 스택이 남아있으니 주먹 한대면 잡을 수 있ㅇ..!
[마비독에 중독되셨습니다]
[상태이상 효과로 단기간 동안 몸이 경직됩니다]
"큭! 너 이새끼..."
전부 다 준비해두고 있었던 거냐.
그, 그래도 마비독은 비교적 시간이 짧은 편이야. 칼에 찔리기 전엔 풀릴테니 타이밍만 잘 맞춘다면...
그런데 이새끼, 눈동자가 흔들린다.
방금 전 동료들이 그렇게 죽었으니 자기도 쫄았겠지.
날 죽일 생각은 없어보이고, 대신에 그냥 도망가려고 한다.
"안 돼. 유희를... 혼자 잡혀가게 할 순 없어..."
차라리 내가 잡혀가는 한이 있어도 그녀를 보내서는 안된다.
절대로, 절대로 안되는데... 씨발.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로...
[마비 효과를 벗어나셨습니다]
됐다!
이제 쫓아가서 저새끼를 잡으면 돼!
"히익"
"어딜 도망쳐!"
그때.
콰앙!
마비 효과가 풀리자마자 최대한 빨리 유희를 구하러 갔지만, 갑작스럽게 생겨난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혔다.
[미로의 구조가 바뀝니다]
"안돼!"
비명을 질렀다.
돌벽이 공간을 가로막고, 양쪽간의 빛이 완전히 닿지 않게 되는 그 순간까지.
하지만 이미 미로는 바뀐지 오래.
유희가 사라진 방향으로의 벽은 사라졌고,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 길만이 남았다.
"그래! 친구 추가가 되어 있으니 위치 추적이 될거야"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만 알 수 있다면, 어떻게든 미로를 뒤져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친구 리스트(3명)]
[테오 Lv. 129]
[승현 Lv. 98]
[수아 Lv. 83]
유희의 이름이... 없다.
"아, 아냐. 그럴리가 없어. 다른 목록에다 숨겨둔 거겠지. 그렇지?"
아무리 뒤져봐도 없다.
내 친구 목록에는 유희가 추가되어 있지 않았다.
"씨발 왜 없냐고. 대체 왜!"
지금까지 같이 여행한게 몇달인데, 그동안 친구 추가를 안 했을리가 없다.
그런데도... 그녀가 안보인다.
하루 뒤.
[던전 보스를 처치하셨습니다!]
유희가 사라진 뒤 정말 쉬지도 않고 던전 공략만 했다.
로그아웃을 하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이고, 텐트 치고 쉬는 시간도 없이 계속 미로를 돌며 보스방까지 도착했다.
나타난 보스는 미로 제작자인 100레벨대의 네임드 몬스터, 타이탄 아바돈.
보스 몬스터를 클리어하고 난 직후에야 보스방으로 뛰어들어오려는 캣츠 녀석을 발견했고, 우린 던전 입구로 이동되었다.
"먼저 클리어했구나. 인상적이네. 축하해"
제일 처음, 우리에게 던전 경쟁을 제안했던 그 녀석만 있었다.
"나머지는... 부하들은 전부 어디갔냐?"
"나도 모르겠다. 이 새끼들, 던전 돌다 말고 갑자기 휙 하고 사라져서는 말이야"
"그래. 야밤에 습격해서 우릴 몰래 납치해갈려고 사라졌겠지!"
쿵.
던전 클리어에 집중해 겨우겨우 억누르고 있던 감정이 지금 터져나왔다.
말도 안되는 그날의 기습.
잘못된 판단을 내렸고, 그 결과로 유희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지, 진정하라고. 나도 정말 그런 놈들인줄 몰랐어. 미안하다... 상부의 명령이랍시고 갑자기 뛰쳐나가더니, 설마 그런 명령을 받았을 줄은"
"역시... 그때 그냥 다 죽였어야 했어..."
솔직히 머릿수가 차이난다고 해도 이기지 못할 싸움은 아니었다.
그때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그냥 싸웠더라면, 이렇게 유희가 납치당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 새끼들이랑 유희 지금 어딨어! 당장 말해!"
"나, 나도 몰라! 알고 있었다면 이미 말해줬을거야"
녀석의 눈에는 떨림이 없었다.
날 속이는 거라고 생각하고 싶었고, 그렇게 한껏 분노를 표출하고 싶었지만 불행히도 저 녀석은 정말로 몰랐던 듯 싶다.
"이미 나하고도 연락이 끊어졌어. 맵 추적도 안 돼. 그녀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고"
"..."
그때, 갑자기 알림창이 요란하게 울렸다.
[호출메세지가 있습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
캡슐안에 있는 사용자는 현실의 감각이 완전히 차단된다.
현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직접적인 반응이 불가능하기에, 밖에 있는 사람이 캡슐 외부의 콘솔을 이용해 직접 메세지를 쓸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누가 지금 호출을?
누나가 벌써 다시 왔을리는 없을텐데.
[이삿짐센터입니다. 캡슐을 옮겨야되는데 안에 계셔서요. 나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짜고짜 이삿짐센터라니. 이사람들이 왜 여기ㅇ...!
문득, 누나가 저번에 들려주었던 얘기가 생각났다.
'조만간, 부모님이 널 집으로 데려오려고 하시는 것 같아'
========== 작품 후기 ==========
드디어 이 장면이 나왔네요... 첨 쓸때부터 구상하던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