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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화
"흐아, 아직도 한참이나 남은 건가"
수시로 지도를 펼쳐서 보스방에 가장 가까운 길을 선택하고 있는데도 좀처럼 가까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확실한 건, 가까워 질수록 더욱 미로는 복잡해지고 어려운 몬스터가 나타난다는 것.
12시간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미로가 바뀌었지만 구조만 달라질뿐 난이도는 여전했다.
취익, 취익.
"응? 방금 저쪽에서 무슨 소리가..."
"네, 저도 들었어요"
왼쪽 길이다.
몬스터들인 건가?
모퉁이를 돌아 소리가 난 쪽으로 가보니, 평소보다 훨씬 더 넓은 공간에 오크 무리들이 서 있었다.
"흐미, 저게 다 몇명이야"
저번에 싸웠던 고블린들이랑은 비교도 하지 못할 정도로 수가 많았다.
대강 백 마리는 되는 것 같은데, 부족하나를 통째로 데려왔구나.
"싸울까요?"
"음... 굳이 싸울필요는 없긴 한데, 그래도 얘네를 깨면 경험치도 받을 테니 한번 시도라도 해 볼까?"
지금까지 다녀본 결과 대부분의 갈림길들은 몬스터가 있는 방향이 맞는 길인 확률이 많았다.
설령 아니라면 다른길이 있겠지 뭐.
"조심해. 혹시라도 다른 뭔가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조심히 오크 녀석들 앞까지 다가갔다. 자기 영역이 있는건지 먼저 공격하진 않는다.
그런데, 너네가 가만히 있어도 난 때릴거거든.
바닥에 굴러다니던 돌멩이를 하나 주워, 제일 앞에 있는 녀석 이마에 스트라이크를 날렸다.
퍽.
"쿠엑?"
"...역시 안 아픈가"
현실이었으면 내 힘이랑 상관없이 돌멩이의 속도와 질량만으로 머리뼈에 금이라도 갔겠지만, 여기는 게임.
하지만 설령 안아프다고 해도, 저 녀석들을 빡치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취익! 침입자!! 죽인다!!"
"그래, 와라 이 새끼들아!"
퓨북.
응?
어디서 날아온 건지 화살 하나가 내 바로 앞에 꽂혔다.
방향을 보면 위.
그리고 위에는, 수십개의 장전된 석궁이 날 바라보고 있었다.
"시발, 함정이다"
빠져나가야ㄷ...!
쿠궁.
미로의 돌천장이 심하게 흔들리더니,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
젠장, 출구가 닫히고 있어!
"현우 님! 빠, 빨리...!"
"가고 있어! 먼저 달려!"
자칫 잘못하면 함정 안에 영영 갇혀버린다.
유희에게 먼저 가라고 신호를 보낸뒤, 나를 죽이려고 달려드는 오크 무리를 힘껏 밀쳐낸 채 나도 최대한 빠르게 문 밖으로 달려나갔다.
"꽉 잡아!"
"꺄악!"
만렙 급 민첩스탯을 보유하고 있어서 그런지 역시 빠르다.
거의 중앙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작 몇 초만에 유희를 데리고 문밖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쿠웅.
결국은 문이 닫히기 직전에 간신히 탈출에 성공했다.
"후아, 살았다"
잔뜩 긴장한 몸은 자리에 쓰러지자 부들부들 떨렸다.
"그런 종류의 함정이 설치되어 있을 줄이야. 뭣 모르고 당할 뻔 했네"
"일단 저쪽은 위험할 것 같으니 다른 길을..."
이때 최대한 빨리 움직였더라면 가능했을까.
아냐, 그래도 너무 빨랐어.
잠시동안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로가 바뀌었던 게 정확히 12시간 전이었다는 걸.
"미친..."
구조가 바뀌면서, 주변에 있던 다른 길들이 전부 사라져버렸다.
막힌 길이 되어버린 것.
이젠, 저 함정 방향밖에 길이 없다.
좆됐다.
* * *
이제 어떡하지?
이번엔 저쪽밖에 없는 길로 설정되었다는 건 저기가 꽉 막힌 함정은 아니라는 뜻일 테고, 분명 저기를 통과해야만 한다.
"무조건 가야된다면, 혹시 저 녀석들과 싸우지 않고 지나갈 방법은 없을까?"
아까도 내가 먼저 때리기 전까지는 공격않고 가만히 있었고, 화살도 그 전까진 날아오지 않았다.
여기서 가만히 앉아있는것보다는 그래도 해볼만 하겠지.
우리가 빠져나가자 저 안으로의 문은 다시 활짝 열려있었다.
"같이 가보자"
위험한 곳에 유희를 같이 데려가는 게 조금 걸리긴 했지만, 그녀를 괜히 놔두고 갔다가 더 큰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안으로 들어간 뒤, 오크 녀석들의 눈치를 살폈다.
역시 해탈한 성인군자마냥 먼저 때릴 생각은 없어보인다.
그래도 얘네가 언제 태세변환할지 모르니까, 최대한 천천히.
순간, 오크 중 한 놈이랑 눈이 마주쳤다.
마치 '편히 지나가십시오' 같은 느낌인데.
얘네들, 정말 그냥 지나가도 되는건가?
...될리가 있냐.
내가 첫번째 줄의 녀석들을 지나치자마자, 바로 오크들이 몰려와 나를 저지했다.
그리고 똑같은 레파토리로 날아오는 화살.
"튀어!"
* * *
결국 간신히 도망쳐 이번에도 문이 닫히기 직전에 빠져나왔다.
마지막에 그림자도약을 쓰지 않았다면 정말 갇힐 뻔 했다.
가만히 있어도 선제공격해오고, 바로 돌아가지 않는 한 도망칠 길도 막히는 데 어떡하지?
"뭘 어떡해, 통과해야지"
솔직히 다른 게 있을수도 없다.
12시간 동안 길이 바뀌길 기다리며 가만히 앉아있을 순 없어.
그 시간동안이면 캣츠 녀석들과 격차가 점점 벌어질 거고 그렇게되면 어차피 경쟁에 패배할 것이다.
죽는 한이 있어도 무조건 부딪혀본다.
"좋아요, 조금만 쉬었다가 다시 한번 해봐요"
다행히 유희도 날 응원해주고 있고.
대충 빵으로 끼니를 떼우고 그녀에게 버프까지 받은 다음.
나는 숨을 졸이며 다시 한번 입구 앞에 섰다.
"일단 저것부터 처리해야겠네"
지금까지야 바로 탈출했으니 모르지만, 저 수십발의 화살들을 방치해두었다간 갈수록 위험해진다.
가엔을 꽉 쥔채 그림자도약으로 순식간에 천장까지 날아올라 석궁들을 슥 베었다.
평범한 나무 구조물들의 내구도는 1로 고정이라 그런지 바로 파괴되었다.
좋아, 이걸로 화살은 처리했고.
착지하는 타이밍과 동시에 유화술로 피해를 없애며 오크 무리 한복판에 떨어졌다.
"취익! 인간!"
"겁없이 우리들을 상대하려 하는구나 취익!"
말은 그렇게 해도, 갑자기 내가 자기들 사이에 나타나자 조금은 놀란 모양이다.
생각이 없기로 소문난 오크들도 내 힘을 가늠하려는 듯 어느정도 힘조절을 하고 있었다.
물론 데미지는 0.
그러자, 이 놈들이 슬슬 날 얕잡아보기 시작한 것이었다.
"취익! 약하다, 이 인간. 취익!"
"별거 아니다. 취익"
"빨리 끝내고 밥먹자!"
딜이 1도 안박히는 걸 눈치챘는지 갑자기 각성모드에 돌입한다.
"젠장, 뭐가 이렇게 빨라?!"
내가 만만한 상대라고 생각하게 됐는지, 쉴틈도 없이 빠르게 압박해온다.
물론 그걸 맞아주진 않았고, 전부 튕겨내거나 피하고 있었지만 힘든건 힘든 거지.
근데 이걸 어째.
형 이제 70스택이다. 더이상 약골이 아니라고.
한창 다구리 대형이 형성되어 있는 지금 유화술로 빠져나오자 순식간에 진형이 붕괴되었다.
그런데...
"대체 이 새끼들 몇 명인거야?!"
잠깐 위로 떠 있는 상황에서, 뒤쪽으로 셀수 없이 많이 몰려있는 오크 무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거 한 놈 한 놈 잡다간 끝도 없겠어.
이럴때 쓰라고 만든 스킬이 있지.
"유희야, 잠깐 뒤로 물러나있어!"
"네? 이미 뒤쪽인데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벽에 바짝붙어! 위험하니까"
유희를 최대한 안전지역으로 보낸뒤, 최대한 높이 떠올라 스킬을 시전했다.
지진강타.
콰앙!
던전도 무너뜨릴 것 같은 큰 소음과 함께 수백의 오크족이 전멸했다.
좋아, 이걸로 클리어한건가?
"어라? 한놈 남았네?"
용케 살았구나.
그런데, 약간 다른 놈들이랑은 다르다.
로브를 걸치고 지팡이를 들고 있다니, 장로인가?
"취익, 일어나라... 나의 군단이여..."
"...?"
놈이 지팡이를 들어올린채 주문 같은 것을 읊는다.
뭔가 불안한데 설마... 막 애들 부활시키고 그러는 건 아니겠지?
"시발... 말을 하지 말았어야했어..."
녀석이 시전을 끝내자, 내 앞엔 다시 수백의 오크들이 일어나 있었다.
젠장, 지진강타 쓰느라 완전히 탈진했는데 또 불어났잖아.
녀석들은 바닥에 쓰러진 날 향해 달려왔다.
여기서 포기하고 뭐고가 아니라 스태미나가 바닥나 아예 움직이지 못했다.
녀석의 무기가 내 몸에 닿았다.
[사망하셨습니다]
유희야 미안해... 여기서 죽어서...
어라?
[유희 님의 기적 주문으로 부활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