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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화
"너... 많이 컸구나. 내 앞에서 주저하지도 않고 막 욕 쓰는 걸 보면"
"욕이 안 나올 상황이 아니잖아. 내가 거길 다시 돌아가고 싶을 리가 없다는 건 누나도 잘 알거고"
딱히 부모님이 싫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들은 나를 너무 모른다.
예전에 딱 한 번, 대학교 들어갔을 무렵에 부모님과 한 집에 살았던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드디어 인생 20년차 만에 부모님을 상봉하는 구나 좋아했지만, 갈수록 그런 식이 아니었다.
너무 놀기만 하는 거 아니냐. 게임만 하지 말고 공부 좀 해라, 등등.
그 당시 내 방을 게이밍 컴퓨터와 잡지로만 도배해놓은 내가 심하기도 했고, 그들의 잔소리도 부모라면 당연히 할 만한 소리였다.
하지만, 초등학교 입학하기도 전에 못 키우겠다면서 날 먼 지역으로 내팽겨쳐버린 부모한테 들어야 할까?
그땐 이런 생각이 들었었고, 갈수록 우리들의 사이는 좁혀질 생각을 통 안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날 맞선 봐주겠답시고 그들이 내게 간섭할 때 나는 확실하게 생각했다.
이건 아니라고.
"평범한 부모였으면 이런 식의 참견이 괜찮았을지도 모르겠죠. 하지만, 집 잡아서 꼬박꼬박 돈주기만 하면 부모 노릇 다 한거에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나 싶었지만, 그렇다고 그곳이 좋다는 건 절대 아니지.
마지막으로 유모가 양육비를 먹튀해갔다는 사실까지 알려준 뒤, 나는 그 집에 두번다시 찾아가지 않았다.
그런데 좀 있으면 다시 그곳에서 살아야된다고?
그것도 이젠 영원히?
"그럴 순 없지"
"후우... 그래. 나도 너가 반길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절대 반길리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잖아. 누나가 어떻게 해볼 방법은 없는 거야?"
"일단 나도 최선을 다해볼게. 하지만, 너도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어. 그분들도 썩 나쁜분들은 아니셨잖아"
"아직 사업 성공하기 전이셨던 누나 어릴적엔 그랬겠지. 아니, 그때도 그러셨으려나. 날 봐. 좋은 분들이 날 이런 곳에 쳐박아두셨겠어?"
"넌 아직 그분들에 대해 잘 몰라"
"그들이 나에 대해 몰랐지"
"그 선택은 누구보다도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가장 후회하고 계시고, 나보다도 더 널 걱정하는 분들이셔. 그러니까 집에 가게 되면, 너무 차갑게 대하기만 하지는 마"
문득, 저번 회상 때의 나와 지금의 나의 생각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분명 그때는 부모님에 대한 분노 따윈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다시 그들에게 증오심을 느끼고 있다니.
하지만 그게 뭐 중요해?
어차피 시시때때로 변덕을 부리는 게 사람 마음이고, 지금의 나는 그들을 용서하지 못했다.
"알았어... 난 이만 가볼게"
그렇게 누나는 현관 밖으로 나갔고, 넓은 집엔 다시 나 혼자 남았다.
* * *
게임 시간으로 몇 주 뒤.
"무슨 일 있어요? 왠지 표정이 좀 안좋아 보이시는데"
"아, 아냐. 그냥 몇 주전 일이 갑자기 생각나서"
"헤에. 그때 사람들 몰려왔던 것 때문에 그래요? 그래도 랭커나 됐는데 당연한 거잖아요. 그래도 인기가 많으면 차라리 좋은 거 아니에요?"
"현실에서 일 때문에 그래"
"아아..."
"그렇게 크게 신경 쓸 건 아냐. 근데 우리 슬슬 쉰지 한달 되어가고, 여관도 좀 있으면 끝나는데, 슬슬 복귀할까?"
"네! 저도 이젠 괜찮아요"
유희도 회복이 된 모양이네.
다시 날 보러온 인파가 몰려들기 전에 우린 재빨리 도시를 떠났다.
이젠 다시 여행하러 가야지.
앞으로 총 남은 포인트는 세 곳.
지금 있는 동향왕국에 두 곳, 미개척지에 한 곳이다.
미개척지에 있는 곳은 아스칼에 부탁했으니 알아서 찾아볼 거고, 동향왕국 중앙 즈음에 있는 곳을 택했다.
"여기는 뭐하는 곳일까요?"
"캣츠의 시설을 직접 들어가봐야 알겠지. 근데 지금은 아무것도 안보이네"
근처에는 꽤 큰 마을이 있었지만, 정확히 점이 찍혀 있는 곳은 그 살짝 옆쪽의 산이었다.
"또 산이냐..."
메멘텔처럼 높은 건 아니라지만, 확실히 그 때 뒤로 평소보다 산을 더 멀리하게 되었다.
"그래도 산 높게까지 올라갈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그쵸?"
"응, 대충 이 쯤이 점이 찍혀있으니까, 저 정도까지 범위 안에서 찾아보면 되나?"
저 너머에 있는 나무 앞 정도까지 찾다 보면 나오겠지.
산 위에서 대놓고 건물 같은 걸 기대하지도 않는다. 뭔가 위장을 해 놓았겠지.
그런데, 생각보다 정말 아무것도 안나온다.
"끄응... 잘도 숨겨놨구나"
보이는 거라곤 나무와 땅, 떨어진 나뭇잎 뿐이다.
나뭇잎으로 위장했을 거라고 쉽게만 생각하던 내가 바보였지.
"확실히 인공구조물 같은 건 안보여요. 저 우물을 빼고는"
우리가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닌 지역에는 내 키보다 좀 작은 낡은 우물이 있었지만, 수상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아얏!"
페이크인가 궁금해서 들춰보려다가 벽돌 사이에 손 찧인 건 안 비밀.
"위장 오브젝트가 아닌 건 맞는데. 과연 그냥 아무것도 없는 우물일까?"
진짜 우물이라고 해서 그 밑에 아무것도 없다는 뜻은 아니니까, 어쩌면 이 밑에다가 뭔갈 숨겨둔 걸지도.
"탐지마법 같은 게 있으면 좋을텐ㄷ..."
그때, 우물에 얼굴을 가까이 대자 상태창에 메세지 하나가 나타났다.
[미확인 포탈을 발견하셨습니다! 입장하시겠습니까?]
이거구나.
"여기에 비밀 포탈이 있었다니. 이렇게 허술하게 만들어놔도 되는거야?"
"저 그게... 현우님. 그런 상태에서만 상태창이 뜨는 거면..."
"아...!"
생각해보니 나 지금, 우물에 반쯤 몸을 쳐박은 채로 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물이 높았으니 뭘 떨어뜨릴 일도 없고,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런 동작을 할 이유가 없겠구나.
"이게 포탈이니까, 여기서 그냥 뛰어내리면 바로 반대편에서 나올거야"
"그랬다가 혹시라도 바로 본진까지 들어가버리면 어떡해요?"
"죽으면 다시 부활할테니까 걱정마. 어차피 아직은 마을 영토 안이라 그쪽에서 리스폰돼"
"헤에, 그래도 살짝 무서운데..."
"내가 뒤따라 가는데 뭐가 무서워"
툭.
"꺄악! 갑자기 밀지 말라구요!"
"꽉 잡아!"
다소 소란스러운 방법(?)으로 우린 우물 안으로 들어갔다.